뉴욕 타임즈가 정의하는 한국 재벌과 갑질(Gapjil)

  • 기자명 박기범
  • 기사승인 2018.04.19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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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회항' 갑질에 이어 이번에는 '물벼락' 갑질이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차녀 조현민(35) 대한항공 전무가 그 주인공이다. 땅콩회항 사건으로 이미 악명높은 언니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의 뒤를 이어 논란의 중심에 섰다.

조현민 전무는 협력업체 광고대행사의 직원 얼굴에 컵에 담긴 물을 뿌린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조 씨의 괴성과 욕설이 담긴 녹음파일마저 공개되면서 경찰 수사까지 받을 처지가 됐다.

이에 분노한 시민들이 대한항공의 영어 표기 Korean Air에서 'Korean'을 삭제할 것과 태극문양을 더이상 로고로 사용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했다. 한국의 대표적인 항공사가 오히려 한국 망신을 시키고 있다는 인터넷 여론의 결과다.

실제로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 영국의 로이터 통신(Reuters)을 비롯한 세계 여러 외신들은 이번 갑질 사건을 심도있게 보도했다.

 

뉴욕타임즈 홈페이지 캡처

뉴욕타임즈는 4월 13일 'Sister of Korean ‘Nut Rage’ Heiress Accused of Throwing Her Own Tantrum'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여기에 등장하는 rage는 '분노'라는 뜻이다. 재미있게도 rage의 어원은 '광견병'을 뜻하는 rabies와 관계가 깊다. 마치 광견병 바이러스에 감염된 개가 발광을 하듯 제정신이 아닐 정도로 화가 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 rage다. 하긴 미치지 않고서야 활주로를 질주하는 비행기를 제멋대로 회항시킬 사람이 또 있을까?

그리고 이 기사 제목에는 Tantrum이란 단어도 등장한다. Nut Rage 조현아의 여동생 조현민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영영사전에는 a violent demonstration of rage라고 정의되는 이 단어는 '분노를 폭력적으로 표출함'이란 뜻이다. 따라서 '광견병 걸린 개처럼 화가 나서 폭력적으로 성질을 부리는 모양'이라고 보면 tantrum의 뉘앙스를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뉴욕타임즈 기사의 제목은 '대한항공 땅콩회항 상속녀의 여동생, 미친 개처럼 성질부리다 고발당하다' 정도로 볼 수 있겠다. 여기서 조현민 사건에 대한 필자의 해석을 그녀에 대한 모욕이나 인신공격으로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우리말에서는 개가 사실상 욕설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지만, 미국문화에서는 약간 다르다. 영어로 mad dog은 '매우 호전적인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농담이나 약한 조롱의 의미를 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초대 국방장관이었다가 얼마전 해임된 제임스 매티스의 별명이 바로 mad dog이다. 그가 '미친 개'라는 별명을 얻은 건 이라크의 팔루자에서 반 정부 세력을 미친 개처럼 싸워 섬멸했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즈 기사는 또한 이번 사건이 소위 '갑질'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the abuse of underlings and subcontractors by executives who behave like feudal lords" (마치 봉건영주들처럼 행세하는 경영자들이 부하직원이나 하도급업자들을 학대하는 것)

abuse는 'away from'을 의미하는 접두사 [ab-]과 '사용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use가 결합된 형태로서 '본래 취지와는 동떨어진 사용', 즉 '남용'이나 '학대'의 의미다. underlings와 subcontractors에는 공통적으로 '아래'라는 뜻을 가진 접두사 [under]와 [sub-]이 포함되어 있다. underlings는 아랫사람 혹은 부하직원을 의미하고, subcontractor는 '하도급자'란 뜻이다. executive는 형용사처럼 보이지만 '경영자'라는 뜻의 명사로 사용되었다. 중요한 것은 feudal lords라는 표현인데, '봉건 영주들'이란 뜻이다. 한국 기득권층의 갑질 행태를 전근대적인 봉건사회에서나 볼 수 있는 미개한 것으로 표현한 것이다.

게다가 뉴욕타임스는 한국의 재벌(Cahebol)에 대해서도 corporate empire(기업 제국), military dictators(군대식 독재자), deep resentment of the families (가족간의 깊은 원한), greedy and arrogant(탐욕스럽고 오만한) 등의 표현을 써서 비판하고 있다.

"Over the years, a handful of chaebol families have developed reputations for running their corporate empires like the military dictators who set the stage for their success in the decades after the Korean War."

"But there is also deep resentment of the families who run the conglomerates, especially the children of the founding tycoons, who are widely considered greedy and arrogant."

영어 사전이나 외국 백과사전에는 재벌이 우리말 그대로인 고유명사 'Chaebol'로 등재되어 있다. 한국의 대기업 족벌 경영체제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불가능할 정도로 괴이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진 돈의 권력이 국가권력과 국민주권을 능욕하고 민주적 사회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비판도 많다.

하지만 한국 사회가 빠져있는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가 갑질이라는 괴물의 자양분이 되진 않았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갑질과 재벌에 대해 보도하는 뉴욕타임스 기사에 다음 문장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South Koreans covet jobs at chaebol companies, which are among the most lucrative in the country." (한국인들은 가장 돈을 많이 주는 재벌 회사의 일자리를 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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