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동경 135도 표준시 사용은 일제 잔재?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8.05.01 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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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서울 표준시보다 30분 늦게 설정된 평양 표준시를 남한측에 맞추기로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단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27일 김정은 위원장은 평화의 집 대기실 벽시계를 보고 "북과 남의 시간부터 먼저 통일하자"고 제안했다고 청와대가 29일 밝혔다. 북한은 2015년 8월부터 일본 잔재 청산을 이유로 한국과 일본이 채택한 동경 135도 표준시 대신 동경 127도 30분을 기준으로 하는 새로운 평양시를 적용해 왔다. 남한과 북한은 다른 나라라는 상징적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북한이 표준시를 남측에 맞추기로 한 것과 관련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김 의원은 본인의 페이스북에 "고종은 최초로 표준시를 동경 127도로 정하였으나 일제는 강점기에 동경 135도로 변경하여 한민족의 시간개념을 일본화한 것"이라며 "정부수립 후에 이승만 대통령이 원복시켰으나 박정희가 쿠데타한 후 다시 일본 시간으로 바꿨다"고 밝혔다. 남한이 쓰는 표준시가 침략의 적폐인 도쿄 시간대이므로 남한이 북한 표준시에 맞도록 변경하는 것이 맞다는 주장이다.

김 의원 주장대로 '동경 135도 표준시' 사용은 일제 침략의 적폐일까? 우선 동경 표준시라는 단어부터 확인하자. '동경 135도 표준시'라는 단어에서 동경은 도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동경(東經), 즉 본초자오선으로부터 동쪽으로 135도 위치한 곳의 표준시를 의미한다. 게다가 동경 135도는 도쿄를 지나지 않고 오사카 인근을 통과한다. 오사카 지방시가 일본 표준시가 된 것이다. 한반도는 동경 124도와 132도 사이에 위치한다.

한국의 최초 표준시 제도는 1908년 4월 1일부터 시행되었다. 통감부는 동경 127도30분을 기준으로 한국 표준시를 도입했다. 그런데 한국은 이미 일본 표준시를 사실상 사용하고 있었다. 경부철도를 부설한 일본은 한국에 표준시 개념을 도입했고 철도의 표준시를 일본 표준시(동경 135도)에 맞췄다. 전국 각 역사에 걸린 시간은 동경 시간이었다. 1906년 6월부터 통감부는 소속 관청에  대해서 일본 표준시를 채용하도록 지시한 바 있다.

즉 공식적으로 대한제국이 첫 표준시를 도입했을 때 동경 127도 30분이 기준이 된 것은 맞지만 그보다 수년전부터 사실상 일본 표준시가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의 철도 부설권을 가졌던 일본은 대륙 진출을 위한 교두보로 경의선과 경부선을 설치했고 일본표준시를 적용해왔다. 그런데 대한제국이 한국표준시를 독자적으로 사용하면서 조선인들의 철도 이용에 혼선이 발생했다.  한일합방 이후 한국을 식민지로 삼은 조선총독부는 1912년 1월부터 일본 표준시를 조선의 전 지역에서 사용하도록 결정했다. 한일합방 이후 표준시가 변경된 것은 맞지만 철도 이용 혼선 등을 줄이기 위한 현실적인 조치였다. 

동경 135도 일본 표준시를 버리고 동경 127도 30분의 한국 표준시를 다시 적용한 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1954년 3월이었다. 21일 0시 30분 부로 대통령령에 의해 한국표준시가 적용됐다. 그런데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세력은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국제관례를 이유로 표준시간을 동경 135도로 바꿨다. 이후 한국의 표준시는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국가재건최고회의가 표준시를 동경 135도로 바꾼 것이 민족 자주성 상실로 보는 관점과 국제 관례를 따르는 관점 두가지 모두 존재한다.  2013년 조명철 의원이 표준시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제출했지만 결국 통과되지 못했다. 의원들은 "일본으로부터 시간적 독립을 쟁취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이유로 내세웠다. 표준시를 변경하려는 시도의 명분은 대부분 일본 잔재 청산이었다. 

전세계 표준시 지도. 한국은 동경 135도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반면 동경 135도를 유지하자는 측은 비용과 불편함 발생을 얘기한다. 동경 127도 30분 표준시를 쓰면 시차환산이 복잡해 다른 나라와 거래를 하는데 비용이 발생하고 주한미군이 군사작전상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표준시 개정 시도가 있었지만 현실적이 이유로 무산됐다.

전세계 95%의 국가들이 1시간 단위로 떨어지는 표준시를 사용하고 있다. 남한처럼 표준자오선이 자국 영토를 통과하지 않는 나라는 프랑스, 독일 등 16개국이며 한시간 단위로 떨어지지 않게 표준시를 사용하는 나라는 15개국이다. 한국이 한시간 단위 표준시를 쓰려면 베이징 표준시(동경 120도)를 도입하든지, 도쿄 표준시(동경 135도)를 도입해야 한다. 익숙한데다 사실상 서머타임 효과가 있는 도쿄표준시를 더 선호하는 것은 현실적인 이유다.

북한의 경우 광복 70주년을 맞아 2015년 8월 15일부터 동경 127도 30분을 기준으로 하는 평양표준시를 실시했다. 북한 역시 명분은 일제 잔재 청산이었다. 당시 북한은 정통성을 강조하고 남한과의 차별화를 위해 표준시를 변경했다.

뉴스톱의 판단

김종대 의원은 "동경 135도 표준시 사용은 일제 잔재"라는 주장을 폈다. 그런데 동경 135도 표준시는 대한제국이 1908년 동경 127도 30분 한국 표준시를 도입하기 이전부터 한반도에서 사실상 쓰이고 있었다. 철도 시간을 일본과 맞추기 위해서였다. 한일합방 이후 일본 표준시가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적용됐다. 1954년 다시 표준시를 동경 127도 30분으로 변경했으나 1961년 이후 현재까지 동경 135도가 표준시로 이어지고 있다.

동경 135도 표준시는 분명 일제와 관련이 있다. 하지만 60년 가까이 이 표준시를 유지하는 이유는 일제 잔재 청산이 미흡해서라기 보다는 현실적인 이유가 크다. 표준시를 30분 간격으로 변경할 경우 겪게 되는 혼란과 사회적 비용을 감안할 때 유지하는 것이 실익이 크다는 이유다. 이미 여러 국회의원이 표준시 변경 법안을 제출했지만 모두 폐기됐다. 30분 단위 표준시를 사용하는 나라는 전세계 5% 정도 밖에 안된다. 종합적으로 판단해 김종대 의원 주장을 절반의 진실로 판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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