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치다 다쓰루 "공동체 복원해 내셔널리즘ㆍ인종주의 극복"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18.06.07 0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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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할 쾌(快)

우치다 다쓰루(內田樹)라는 이름을 말하는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글자다. 심방변에 3획, ‘마음이 상쾌하고 기분이 좋다’, ‘몸이 건강하다’, ‘기뻐하다’, ‘빠르다’, 그리고 ‘날카롭다’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들어맞지 않는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소개된 공전의 베스트셀러 『하류지향』, 『스승은 있다』, 『반지성주의를 말한다』 등 2017년 현재 단독 저서만 무려 50권에 이르는 방대한 그의 책들은, 어떤 것을 펼쳐 읽어도 논리에 거침이 없다. 한 사나흘 서재에 틀어박혀 순식간에 원고를 써내려간 것 같은 확신과 박력으로 넘친다. 물론 모든 논리에는 저마다 독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근거가 제시된다. 늘 수강자가 장사진을 이루는 그의 강연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의 이러한 활약상이 결코 우연으로 이루어진 결과가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별한 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합기도(7단), 거합도(居合道, 검술의 일종ㆍ3단), 장도(杖道, 봉술ㆍ3단) 등 도합 13단의 무도인인 탄탄한 몸은 ‘사상가ㆍ철학자’라는 직업과 관련해 존재하는 세간의 선입견을 불식시킨다. 2012년 12월 총선거로 아베가 돌아온 이후부터는 여지없이 ‘독재’라고 카운터펀치를 날리며 지식인 사회의 최전선에서 날을 세웠다. 필자가 도쿄대학의 시미즈 연구실(대학원 국제사회과학 전공)에 적을 두고 안보법제(전쟁법안) 반대투쟁에 참여했을 당시(2015년)에도 그는 암 투병 중에 돌아온 거장 사카모토 류이치와 더불어 당당히 대열의 선두에 서 있었다.

결국 우치다 다쓰루 한 시대를 대표하는 독보적인 사상가로 자리매김 시켜준 것은 끝 모를 학식뿐만이 아니라, 그의 ‘모든 모습’이었다.

우치다 다쓰루는 50여권의 저서가 있는 일본 최고의 작가이자 사상가 중 한명이다. 우치다 다쓰루 제공

홍상현:

첫 번째 질문은 최근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동북아시아 정세에 관한 것이다. 4ㆍ27 판문점 선언으로 지금까지 외부(구체적으로는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일본을 지키기 위해 ‘일본을 되돌린다’(보통국가화, 평화헌법 개악)는 아베의 프로파간다도 더 이상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치다 다쓰루:

북한의 위협을 근거로 개헌과 군사력 증강을 정당화시켜온 아베 정권의 프로파간다 자체는 이것으로 설득력을 잃었다. 하지만 아베 정권을 지지하는 코어(core)층(일본 유권자의 약 30퍼센트 이상)은 별로 합리적 근거에 기초해서 정권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그런 까닭에, 북한이라는 ‘위협’이 어느 정도 해소된다 해도 그들은 개헌과 군사력 증강이 필요한 근거를 또 다른 부분에서 찾으려 할 것이다. 예컨대 동중국해의 영토분쟁이라든가, 미국의 위상 저하에 따른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공백, 또는 남북통일 이후 이루어질 한반도의 새로운 정체의 대일외교압력 강화 등, 얼마든지 나름의 이유를 만들어 낼 테니까.

 

홍상현:

일본의 극우 정치세력 등은 자신들의 사상적 뿌리가 국체론(國體論), 즉, 개인주의와 민주주의를 배격하고, “천황” 중심의 조화를 강조하는 정치이데올로기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처럼 행동해왔다. 하지만 내가 볼 때는 그 진정성조차 무척 의심스러운데.

우치다 다쓰루:

확실히 전통적으로 일본의 극우는 '천황주의'를 내걸어왔지만, 명치시대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자신들이 당면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천황제'를 공리적으로 이용해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또, 일본의 극우는 ‘외국군대가 반영구적으로 국내에 주둔하는 것에 일절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세계에서도 예외적인 ‘내셔널리스트’이다.

이런 기묘한 일이 가능한 것은, 일본의 극우가 '천황'의 위에 미국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미국이라는 ‘일본의 실질적 지배자’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본의 극우는 어디까지나 ‘속국ㆍ위성국의 극우’이며, 그 충성의 대상은 자국의 천황도,자국의 정치세력도 아닌, '그 위의 존재’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그들을 엄밀한 의미에서 ‘내셔널리스트’라든가 '천황주의자’로 부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그들과 유사한 정치적 현상을 찾아본다면, 오래전 나치스의 치하 유럽의 ‘부역자’들이나 구소련의 지배하에 있던 동구권 국가의 (자칭) ‘공산주의자’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홍상현:

그것은 예전에 기시 노부스케(아베의 외할아버지이자 정치적 아버지) 등이 자유세계의 지도자로 인정받기 위해, 강한 반공이데올로기를 내걸었던 것과도 관련된다고 생각한다. 민주주의에 대해 동의하는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우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세계”의 논리, 즉, 강력한 반공주의에 근거를 두지 않았나.

우치다 다쓰루:

그들의 미국에 대한 충성은 “반공주의”라는 이데올로기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73년이라는 세월에 걸쳐 대미종속을 지속시켜온 결과다. 강대한 정치적 ‘파워’에 종속되어, 지시에 따르고, 보호를 받으며, ‘보상’으로써 강대한 권력에 의한 자기이익을 확보한다는. 

이러한 종속적인 생존방식이 깊이 내면화되어버린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이 현대 일본의 정계ㆍ관계ㆍ재계ㆍ언론계의 지도층을 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반공주의에도, 민주주의에도, 자유세계에도 딱히 흥미가 없다. 그저 미국이 그런 대의명분을 내걸고 있는 국가이기에 그에 친화적으로 행동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미국의 속국이 아니라 소련의 속국에 태어났다면, (구소련 식) 공산주의와 일당독재를 열광적으로 지지했을 유형의 인간들이다.

 

홍상현:

최근 유럽 국가들에서도 우익 정치세력이 대중적 지지를 얻으면서, 일국주의(一國主義)를 아무렇지 않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저는 앞서 드린 말씀과 같은 맥락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것은 단지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일 뿐, 공공적 목적과 무관하다고 보는데.

우치다 다쓰루:

장기적으로 생각한다면 일국주의나 배외주의(chauvinism)가 지배하는 불관용적이고 폐쇄적인 사회는 언젠가 생명력을 잃는다. 그러면서 국운 자체도 쇠퇴하게 된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이 사회가 이렇게 잘 안 돌아가는 게 누구 때문이냐’며 타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은 느낌도 그들에게 무척 편안함을 줄 것이다. 그런 눈앞의 안심을 추구하면서 장기적인 국가의 자세에 대해 사고하기를 멈춰버린 사람들이 세계 어디에서든 다수파를 점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홍상현:

한반도에 화해 무드가 조성됨에 따라, 아베 총리는 한국의 결과에 무임승차하는 대북정책으로 정치적 승부수를 띄우려하고 있다. 납치문제와 북ㆍ일 국교정상화가 그것이리라 예상하는데, 그는 지금껏 이 두 가지 문제와 관련해서 어떤 노력도 한 적이 없지 않은가? 선생의 견해를 들려달라.

우치다 다쓰루:

지적하신 대로, 아베 정권은 한반도의 정치적 난제를 해결하는데 무엇 하나 공헌한 바가 없다. 따라서 그가 어떤 ‘정치적 승부수’를 띄우려 해도, 주변국에서는 그를 중요한 외교적 플레이어로 대우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지율이 떨어져 정치생명의 위기를 맞은 아베에게 외교적으로 점수를 딸 수 있는 ‘미끼’를 던지고 납치문제나 국교정상화와 관련해서 북한이 일본에 양보하는 ‘척을 해 줄’ 가능성은 존재한다. 그러면 아베 정권이 반대급부로 제재의 해제나 경제지원 등을 내놓는 것 말이다. 지금의 아베 정권이라면 그런‘미끼’에 매달려 북한 문제에 끼어들어 보려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홍상현:

마지막 질문이 되겠는데, 저는 일본은 물론 동북아시아의 민족주의 자체에 대해 회의적이다. 근대적 국민국가(nation state)를 구성하는 이념으로서의 내셔널리즘이 아닌 인종주의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규정이 아닌 타자에 대한 부정으로부터 시작해 자기강화, 확증편향으로 이어졌다는 이야기다. 아시아인민은 이러한 한계, 또는 만성적인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까.

우치다 다쓰루:

내셔널리즘ㆍ인종주의의 극복은 원리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인간이 정신적으로 안정을 얻기 위해 어떤 종(種)의 집단에 깊이 귀속되어있다는 정치적 '환상'을 늘 필요로 하니까. 인간의 이러한 본질적인‘약함’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내셔널리즘ㆍ인종주의 비판은 시작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현재 세계적으로 내셔널리즘ㆍ인종주의가 항진(亢進)하고 있는 것은 오히려 사람들이 ‘어떤 종의 공동체에 깊이 귀속되어있다’고 실감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가족도, 지역도, 공동체도,‘의사(疑似) 가족’으로서의 기업공동체도 모두 해체 프로세스를 밟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원자화ㆍ사립화(砂粒化)된 개인이 국가나 인종이라는 환상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있는 것이다.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귀속될 수 있는 공동체, 명확하게 상호부조적인 느낌을 주는 공동체를 국민국가의 내부에 다시 한 번 구축하는 것 외에 수단이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현재 국내에서 그런 ‘작은 상호부조적인 공동체’를 재구축 해보려 시도하고 있다. 이런 뜻을 가지고, 같은 공동체의 재생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세계 각지에 이미 널리 존재하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인터뷰를 마치고...

필자는 2011년 3월 우치다 다쓰루가 고베여학원대학 종합문화학과를 퇴임하고 명예교수가 되었을 때, 이제 연구와 강의 외에도 그의 시간표를 가득 메우고 있던 바쁜 일정이 어느 정도 소강상태로 접어들게 되리라 여겼다. 하지만 그 생각이 심각한 오해임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같은 해 11월, 자신의 집 1층을 개조해 무도와 공부를 겸한 배움의 공간, 개풍관(凱風館)으로 개방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결기를 모아 순식간에 일필휘지의 문장을 쓰듯 이루어진 이 인터뷰 직전에도 그는 막 모리토모ㆍ가케 학원 문제와 재무부 문서 조작, 재무부 사무차관 성희롱 사건, 자위관 폭언 사건 등으로 시민ㆍ야당연대가 포위망을 좁혀 들어가고 있는 아베 정권에 “내가 아는 한, 전후 최악의 내각”이라며 직격탄을 날린 참이었다. 네 편이나 되는 원고의 조판본을 검토하면서.

올해 예순 여덟 번째 생일을 맞는, 단순히 인간의 생애주기(life cycle)에 비추어 보더라도, 결코 젊지는 않은 나이임에도, 그의 행보는 여전히 수많은 희망과 기대로 가득 차 있다. 주말 오후 텅 빈 체육관에서의 격렬한 수련시간 같던 인터뷰를 마친 필자가 이별에 아쉬워하기보다 후일을 기약할 수 있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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