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은 왜 승부조작 제의받은 이영하를 공개했나

  • 기자명 최민규
  • 기사승인 2018.06.11 04: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두산 베어스 구단은 지난 7일 소속 선수인 투수 이영하(21)가 “승부조작 제의를 받고 구단에 곧바로 알렸다”고 발표했다.

사건 개요는 이렇다. 이영하는 4월 30일 휴대전화를 통해 브로커로부터 승부조작 제안을 받았다. 거부 의사를 밝히고 전화번호를 차단했지만 5월 2일 또다른 전화번호로 제안이 왔다. 이영하는 곧바로 구단에 신고를 했다. 구단은 한국야구위원회(KBO)에 해당 사실을 알렸고, KBO는 자체 조사를 거쳐 5월 18일 관할 경찰서에 수사를 의뢰했다.

두산 이영하 선수. SBS 화면 캡쳐

한국 프로야구는 2012년과 2016년 두 차례에 걸쳐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렸다. KBO는 2015년 야구규약을 정비하며 승부조작과 관련해 ‘보고 의무’를 삽입했다. 승부조작을 권유받은 선수, 감독, 코치, 구단 임직원은 즉시 구단을 경유해 KBO 총재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이영하는 모범적으로 규약을 준수한 선수였다.

문제는 수사 의뢰 20여 일이 지난 뒤인 6월 7일에 두산 구단은 이영하의 실명을 공개했다는 데 있다. 우선, 성실한 신고자의 신원을 노출시킴으로써 위험에 빠뜨렸다. 승부조작은 프로야구의 존립을 흔드는 중대한 사안이다. 승부조작에 대한 신고는 야구계 내에선 고도로 공익적인 성격을 띈다. 공익제보자는 ‘보호’가 원칙이다.

KBO는 이런 승부조작 신고에 대해선 비밀주의 원칙을 갖고 있다. KBO 뿐 아니라 메이저리그나 일본프로야구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프로야구는 2016년 야구 도박 사건이 터졌을 때 선수들을 대상으로 자신신고를 받은 적이 있다. 이때 신고에 대해서는 익명을 원칙으로 했다. 도박에 연루된 경우에는 징계 대상이 되기 때문에 익명성은 실질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영하 케이스와 같은 브로커의 제안에 대한 신고라면 물론 익명이다.

대만 프로야구에선 승부조작을 실행했던 범죄조직에서 선수나 코치를 협박하는 사례가 많았다. 1996년 ‘블랙 이글스’ 사건 때 쉬성밍 웨이취안 드래건스 감독은 승부조작 제안을 받고도 응하지 않았다. 2014년 승부조작 사건에 대한 대만 고등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승부조작을 제안한 폭력 조직은 쉬성밍에게 백주 대낮에 흉기로 테러를 감행했다.

두 번째, 수사가 진행되기도 전에 신고자를 노출시켰다. KBO 관계자는 “5월 18일 관할 경찰서에 신고를 접수했지만 아직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영하에게 전화를 걸었다는 브로커의 신병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졌다. 두산의 발표는 KBO리그의 승부조작 감시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걸 승부조작 업계에 알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선수의 신원이 노출시킬 필요는 없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6월 7일 오전 연합뉴스는 <또 '승부조작' 검은 거래 제보…KBO "소문 확인 중">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송고했다. 실명은 거론되지 않았지만 두산 구단이 KBO에 신고한 내용이 기본이었다. 프로야구에서 승부조작 브로커가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는 건 충분한 보도 가치가 있다. 이 기사는 당일 포털사이트에서 94만4804건 조회됐다. 이 기사에서 가장 많은 반응을 불러 일으킨 댓글은 “그 구단을 없애라 이제”였다.

승부조작 제의 폭로를 다룬 연합뉴스 기사에 달린 네이버 댓글들.

두산 구단 입장에선 규약을 성실하게 따랐음에도 구단 이미지, 나아가 프로야구 전체 이미지가 망가지는 상황에 처했다. 다른 언론 매체에서도 취재 요청이 빗발쳤다. 두산 관계자는 “사실 관계가 일부만 알려진 상태에서 불필요한 오해와 억측이 나오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두산 구단은 7일 KBO에 연락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겠다”고 했다. KBO도 동의했다. 이 과정에서 두산 구단은 이영하의 동의를 구하긴 했다.

지금 이영하는 승부조작 제의를 뿌리친 용기있는 선수가 됐다. 야구 팬들은 여러 불미스러운 일을 겪었던 프로야구에서 모처럼 나타난 ‘의인’을 칭찬한다. 구단과 KBO도 이번 일에 대해 침묵을 지키는 것보다는 나은 효과를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원을 노출시킨 데 따르는 위험은 오롯이 이영하의 몫이다.

KBO 승부조작 방지 시스템에서도 나쁜 전례다. 비밀이 보장되지 않는 신고 시스템을 신뢰할 신고자는 과연 얼마나 될까. 두산은 이영하에게 동의를 구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엔 선수가 먼저 나서겠다고 해도 구단이 만류해야 한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