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는 '흙수저' 흑인 여성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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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는 '흙수저' 흑인 여성을 선택했다
  • 황장석
  • 승인 2018.06.2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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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석의 실리콘밸리 팩트체크] '소수자의 경쟁' SF 시장선거가 주목받은 이유

6월 5일 치러진 샌프란시스코 시장 선거는 경합했던 3명의 후보들 중 누가 당선돼도 화제를 불러올 선거였다. 런던 브리드(London Breed) 후보는 샌프란시스코 최초의 '흑인 여성 시장', 한국계인 제인 킴(Jane Kim) 후보는 샌프란시스코 최초의 '아시아계(동시에 한국계) 여성 시장'마크 레노(Mark Leno) 후보는 샌프란시스코 최초의 '게이 시장'으로 기록될 예정이었다.

샌프란시스코 시장 후보 3인. 왼쪽부터 흑인 런던 비리드, 한국계 제인 킴, 게이인 마크 레노.

승자는 런던 브리드 후보였다. 2위 마크 레노 후보와 막판까지 치열한 접전을 펼친 끝에 근소한 차이로 당선됐다. 샌프란시스코 시장선거는 '순위 매김 투표(Ranked Choice Voting)'라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 방식으로 계산한 결과 1위 브리드 후보와 2위 레노 후보의 최종 득표율은 각각 50.55%, 49.45%였다. 1.1% 차이였다. 샌프란시스코 빈민 가정에서 태어나 자란 흑인 소녀가 시를 이끄는 수장이 된 순간이었다.

 

샌프란시스코는 2004년부터 시의 모든 선거에서 순위 매김 투표(Ranked Choice Voting) 방식을 사용해 왔다. 방식은 이렇다. 유권자는 세 명의 각기 다른 후보에게 1, 2, 3순위 표를 준다. 1순위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면 상황 종료.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다소 복잡한 계산을 거치게 된다. 어떻게 해서든 과반수 1위 후보를 만들기 위한 과정이다.

먼저 1순위 표 집계 결과 꼴찌 후보가 탈락한다. 그러면서 꼴찌 후보를 1순위로 뽑은 유권자들이 2순위에서 어느 후보에게 표를 줬는지 계산해 재분배를 하게 된다. 예를 들어 F라는 후보가 1순위 표 집계 결과 유권자 150명의 선택을 받아 꼴찌를 했다. 그런데 그가 받은 2순위 표를 계산해 보니 150명 중 100명이 A, 50명이 B에게 표를 줬다고 하면, A에게 100표, B에게 50표를 주게 된다. A의 1순위 표가 100표, B의 1순위 표가 50표 늘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과반수 후보가 나올 때까지 꼴찌를 탈락시키고 꼴찌의 2순위 표를 재분배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참고로 3순위 표는 2순위 표를 계산해서 과반수 1위가 나오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사용한 적은 없다고 한다. 지역방송에서 투표 방식 설명 리포트를 내보내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 시장의 정치적 '무게'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정치적으로 결코 가볍지 않은 자리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연방의회 의원 등의 더 큰 자리에 도전하는 발판이다. 올해 11월 주지사 선거에서 무난히 당선될 것으로 예상되는 개빈 뉴썸(Gavin Newsom) 후보, 브리드에 앞서 최초의 (백인) 여성 시장이었던 다이앤 페인스타인(Dianne Feinstein) 연방 상원의원 등은 모두 샌프란시스코 시장을 거쳤다. 이렇게 보면 브리드에겐 '전국구 흑인 여성 지도자'로 성장할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경제 측면에서도 샌프란시스코의 수장은 만만치 않은 권한을 지녔다. 예산만 따져 봐도 그렇다. 샌프란시스코는 인구 87만명, 한 해 예산은 100억달러(약 11조원)다. 인구 1000만 명 서울시의 한 해 예산이 약30조원인 걸 감안하면 결코 작지 않은 도시다.

 

샌프란시스코 빈민가에서 자란 흑인 소녀

런던 브리드는 시에서 월세를 지원해주는, 이를테면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에서 할머니 손에 자랐다. 자랄 때 왜 부모가 곁에 없었는지,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인지 등의 사연은 알려지지 않았다.

가족이 살았던 집은 엉망이었다. 하수도는 망가져 있었고 샤워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바퀴벌레와 함께 살았다. 주변에선 폭력과 약물이 만연했다. 여동생은 약물 남용으로 숨졌다. 역시 약물 중독이었던 오빠는 강도 등의 범죄를 저질러 현재 감방에 있다. 현지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것들이다.

구체적으로 들여다 보면 “한 달 900달러로 다섯 식구가 살았다”고 한다. 그녀의 나이 열 살이었을 때, 그러니까 1984년 8월 시점에 한 달 900달러면 지금 시점에선 2180달러 정도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섯 식구가 2180달러로 생활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방 한 칸, 욕실 하나 아파트 월세도 2500달러, 아니 3000달러를 훌쩍 넘는 곳이 대부분이다. 시에서 70% 가량의 보조를 받아 월세로 400~500달러만 내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살 수 있다고 쳐도 나머지 돈 1700~1800달러로 다섯 식구가 먹고, 입고, 생활해야 한다.

어린시절 할머니와 함께 찍은 사진(왼쪽)과 젊은 시절 집 앞의 런던 브리드

브리드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매주 일요일 교회에 나가 손녀를 위해 기도한 할머니를 비롯해 그녀를 아낀 학교 선생님 등이 버팀목이 돼 줬다고 한다. 무사히 고등학교를 마쳤고 명문주립대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UC Davis)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1997년 졸업한 뒤엔 샌프란시스코 시청의 주거복지 담당 부서 인턴을 시작으로 시청과 관할 기관에서 일했다. 특히 1999년 당시 윌리 브라운 시장의 재선 선거운동에 참여해 선거에서 승리한 뒤 더 많은 기회가 열렸다. 여러 공직을 거쳐 2002년엔 자신이 자란 동네의 흑인문화예술관(African American Art & Culture Complex) 관장을 맡았다. 10년 동안 흑인문화예술관을 이끌며 수백만 달러를 기금으로 조성하는 등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런 경력이 발판이 돼 2012년엔 시의원 선거에 나가 당선됐다. 정치 무대에 입성이었다. 2015년 1월엔 시의회를 이끄는 2년 임기 의장이 됐다. 그리고 지난해 1월 다시 한번 신임을 받아 의장 연임에 성공하면서 차기 시장 선거를 준비해 왔다.

 

밀려나고 위축돼 온 샌프란시스코 흑인 공동체

샌프란시스코에서 흑인 공동체는 점점 더 위축돼 왔다. 브리드는 1974년 8월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샌프란시스코에는 흑인 주민이 제법 많이 모여 살았다. 1970년엔 주민 7명 중 1명이 흑인이었다. 인구의 14% 정도를 차지했다.

당초 1930년대까지만 해도 샌프란시스코에서 흑인 주민은 찾아보기 드물 정도로 적었다고 한다. 미국 이민 역사에서 서부의 관문 같은 곳이 샌프란시스코였기 때문에 주로 중국, 일본, 한국 등 아시아에서 배를 타고 온 많은 이민자들이 샌프란시스코에 내렸다. 비옥한 캘리포니아에서 농사를 짓고 공사장에서 일하는데 필요한 일꾼들이었다.

흑인 인구가 늘게 된 건 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 미국 해군이 당시까지만 해도 개인 소유였던 샌프란시스코의 조선소를 사들이면서였다고 한다.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등에서 많은 흑인 노동자들이 군용 선박을 만드는 대형 프로젝트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이주해 왔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흑인 인구는 계속해서 늘었지만 인종차별 때문에 이들이 살 수 있는 주거지역은 제한됐다(1968년에야 흑인에 대한 주거 제한이 불법으로 규정됐다). 그런 상황에서 흑인 주민의 문화, 경제 중심지가 된 곳이 필모어 지구(Fillmore District). '서부의 할렘'이라고 불린 이곳에선 재즈 음악을 비롯한 흑인 문화 예술이 꽃을 피웠다. 하지만 도시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이곳에 살던 흑인들은 다시 주변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지역방송이 전한 내용이다.

브리드가 자라는 동안 샌프란시스코 흑인 주민 비율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미국 인구통계국 자료를 확인해 보면, 현재 샌프란시스코 인구 87만 명 중 흑인 비율은 5.5%다. 18명 중 1명 꼴로 줄어든 셈이다. 거의 50년 만에 14% 정도에서 5.5%로 줄었다. 현재 백인은 53%, 아시아계는 약 36%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흑인은 확실한 소수 인종이 됐다.

 

집 짓는 데 올인하겠다는 이유

이번 선거에서 경합했던 세 후보들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었다. 후보들은 모두 홈리스 대책, 주거 복지 방안, 소득불평등 완화 대책 등을 내걸었다. 그 중 주택 건설에 가장 적극적인 후보가 브리드였다. 그는 민주당 후보들 가운데 보다 기업 친화적인 중도 성향(moderate)으로 불렸다. 경쟁했던 후보들 중 제인 킴 후보의 경우 기업 규제에 보다 강조점을 둔 진보 성향(progressive)이었다. 브리드는 경쟁 후보 측으로부터 건설업체 등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브리드의 논리는 주거 복지를 위해선 그런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월세 급등에 거리로 나앉거나 샌프란시스코 바깥으로 밀려나는 저소득층에게 저렴한 주거공간을 제공하려면 더 많은 건설허가를 내주고 더 많은 주택을 짓게 해서 그런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였다. 지난 1월 그녀가 출마의 변을 담아 쓴 글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

“주거 위기는 최근 눈에 띄게 악화돼 왔습니다. 하지만 들여다 보면 그건 수십 년 동안 이어진 샌프란시스코와 주변 지역의 잘못된 주택정책의 결과입니다. 2010-2015년 샌프란시스코에선 집 한 채를 짓는 동안 8개의 일자리가 생겨났습니다. 이건 논리적이지도 않고 지속할 수 없는 정책입니다. 그런 (정책의) 결과로 월세는 하늘로 치솟아 왔지 않습니까. (중략) 저는 샌프란스시코가 더 많은 집을 지을 수 있도록 이끌 의지와 능력이 있습니다. 더 많은 주택 공급이 없다면 저처럼 샌프란시스코에서 자란 사람들이나 우리와 같은 가치를 추구하며 이곳에 온 사람들 모두(샌프란시스코에) 머물지 못하게 될 겁니다.”

 

브리드는 스스로 세입자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헤아린다고 자부한다. 태어나서 시장에 당선될 때까지 월세로 살아오기도 했다. 대학을 다니며 빌린 학자금도 계속해서 갚고 있다. 시의원으로 재직해 왔지만 2017년 가을까진 룸메이트와 함께 월세를 나눠냈다고 한다. 지난해 가을에야 룸메이트 없이 혼자 방을 쓰게 됐다는 얘기다. 다만 이제 시장 월급을 받게 되면 경제 사정은 확실히 나아질 것으로 보인다. 캘리포니아주 회계담당관실(State Controller's Office) 자료를 보면, 2016년 현재 샌프란시스코 시의원 연봉은 11만 달러가 조금 넘는 수준이지만 시장 연봉은 30만 달러에 가깝다.

지난 6월 14일, 브리드는 자신이 다녔던 샌프란시스코 로자파크스초등학교(흑인 여성 민권운동가 Rosa Parks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당선 소감을 밝히는 자리였다. 그는 모교 강당에 모인 청중들 앞에서 마약과 총기 사고가 놀랍지 않았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그때 저는 그 많은 문제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왜 하필 (이런 일이 발생하는 곳이) 나와 내가 사는 동네일까'라고. 당시엔 언젠가 샌프란시스코 시장이 될 기회가 있을 거란 생각은 결코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 입을 앙다물었다.

브리드 시장의 임기는 2018년 7월부터 2020년 1월 8일까지다. 이번 선거가 지난해 12월 당시 에드 리 시장이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잔여 임기를 채울 시장을 선출하는 임시 선거였기 때문이다. 내년 11월에 다시 4년 임기의 시장을 뽑는 선거가 치러진다. 2019년 선거에서 브리드가 현직 프리미엄을 안고 재신임을 받게 될지 속단하긴 어렵다. 내세운 공약을 실행하려면 시의회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데, 시의회는 그와 같은 중도 성향 의원들이 다수가 아니다. 선거에서 승리해 시장이 됐지만 시의회를 설득하는 과정이 결코 순탄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샌프란시스코는 실리콘밸리와 함께 성장하며 많은 기업이 생기고 고급인력이 모여들면서 스타트업의 도시로 떠올랐다. 한편에선 그런 성장의 바깥에서 급등한 월세와 집값 등을 감당하기 버거워 하는 사람들의 아우성도 커져 왔다. 경제를 성장시키면서 동시에 소득 불평등을 완화해 나가겠다는 흙수저 흑인 여성 시장의 목표는 어떤 결과로 이어지게 될까.

 

황장석    surono@naver.com  최근글보기
2002년부터 동아일보와 서울신문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기자로 일했다. 2012년 스탠포드대학교 후버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퇴사 이후 실리콘밸리 근처에 거주하며 한국 언론을 통해 실리콘밸리와 IT기업 소식을 전하고 있다. 2017년 실리콘밸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명한 책 <실리콘밸리 스토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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