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하라 다카오 "남북일 핵무기금지협약 동시가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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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라 다카오 "남북일 핵무기금지협약 동시가입 필요"
  • 홍상현
  • 승인 2018.07.04 09: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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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현의 일본 팩트체크] 다카하라 다카오 국제평화연구소장 인터뷰

최근 들어 그 절대적 위상이 흔들리고 있는 '핵우산' 개념이 우리 사회에 등장한 것은 1978년 7월 27일 제11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 이후부터다.

4월 20일 파리를 떠나 앵커리지를 경유, 김포에 도착할 예정이던 대한항공 902편이 항법장비 이상 때문에 영공을 침범했다는 이유로 소련 전투기에 격추당했던 그 해. 누군가는 “한미동맹의 최고 가치이자 상징”이라 칭송하는 한미연합사 창설과 더불어 대한민국은 '핵의 공포로 또 다른 핵의 공포를 덮는' 핵우산이라는 거대한 아이러니의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만 40년이 되어가는 오늘까지 우리는 안전했다. 혹은 ‘추호의 의심도 없이’ 그렇다고 믿어왔다.

필자 역시 그러한 ‘신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쩌면 다카하라 다카오(高原孝生) 메이지가쿠인(明治学院)대학교 국제평화연구소(PRIME) 소장의 단호한 언명이 유난히 강렬하게 뇌리에 박힌 것도 그래서이리라.

다카하라 다카오 메이지가쿠인대학교 국제평화연구소장. <신문 아카하타> 제공


다카하라 소장에 따르면 핵우산이란 애초에 '쓰여서는 안 될 말’이었다. 핵무장의 실태를 은폐하기 때문이다. 전쟁은 사람이 일으키는 것이므로, 결코 비와 같은 자연현상이 아니다. 또한 ‘핵우산’을 쓴다는 것은, 항시적으로 핵공격을 준비한다는 의미로써 결국 상대의 목에 ‘핵의 창끝’을 들이대며 위협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공격무기라는 핵무기의 본질을 간파한 논리다. 이 시대를 대표하는 평화연구자의 한 사람인 다카하라 소장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이후, 동서냉전의 틈바구니에서 ‘일본을 반공의 교두보로 만드는 데 협조하겠다’면서 침략전쟁의 책임 추궁에서 벗어나 다시 권력을 쥐게 된 ‘어둠의 세력’에게 한 사람의 학자이자 인간으로써의 양심을 걸고 일평생 항거해 왔다.

 

홍상현:

정년퇴임을 앞둔 지금까지 평화연구에 모든 것을 바쳐오셨다. 한국의 시민들을 위해 소장을 맡고 계신 국제평화연구소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다카하라 다카오:

국제평화연구소는 1986년 메이지가쿠인대학교 국제학부 출범과 더불어 ‘평화의 제반 조건을 탐구하는’ 연구ㆍ교육기관으로 설치되었다. 여기서 ‘평화’란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 특히 앞으로의 세대가, 폭력에 위협받지 않고, 자유롭게 나답게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평화연구는 유한한 자신의 삶을 깊이 사랑하고, 생명을 가진 다른 존재와 풍요로운 공존ㆍ공생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평화로운 세계를 추구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 국제평화연구소는 국경을 초월한 제휴를 진행하며 활동을 지속하는(명칭에 ‘국제’를 넣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한편, 학생ㆍ시민들에게도 개방하는 연구 모임, 세미나 등도 적극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홍상현:

개괄적인 질문을 하나 드리겠다. 올해 초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북한의 긍정적인 태세전환이 시작되면서, 남북정상회담을 거쳐 북미정상회담까지 지금껏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련의 과정이 이어지고 있다. 평화연구자로서의 소감은 어떠하신가?

다카하라 다카오:

솔직히 말씀드리면, 예상을 뛰어넘는 전개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에 가까운 인상을 받았다. 정치적 이니셔티브의 유효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한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문재인정부의 역할이 컸다고 본다.

 

홍상현:

하지만 일본의 거대언론 및 보수, 심지어 일부 리버럴 계의 논객마저 이번 북미선언에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 폐기)가 명기되어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또, 그저 판문점 선언의 확인(당시는 그 내용이 추상적이니 북미정상회담을 보고 판단하겠다더니)에 불과하다고 지적하면서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다카하라 다카오:

그들의 그런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이번 북미선언에 다음 단계가 구체적으로 적혀있지 않은 점이 아쉽다 한들, 선언문은 나름의 균형을 취하고 있다. 판문점 선언 자체가 역사적인 것이었던 까닭에 그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다. 물론 향후 전개를 주시할 필요야 있겠지만, 이미 긴장 완화의 프로세스는 시작되었다.

 

홍상현:

선생께서는 평화연구로 쌓아 올린 학문적 성과를 사회적으로 공유하고, 최종적으로 그것을 시민운동으로 연계시키는 활동을 해 오셨다. 아울러, 대학에 히로시마·나가사키 강좌 등을 개설해 평화교육에도 앞장서고 계신다. 그간의 활동성과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다카하라 다카오:

스스로 ‘앞장서고 있다’고 자부할 정도인가 싶기는 하지만,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교육이라는, 그 자체로 가치를 부여하는 비폭력적 방법으로써 행해온 데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어떤 결실을 맺어 왔는지를 간단한 수치로 이야기할 수야 없겠지만, 예컨대 핵군축과 관련해서 우리는 미국에서 온 학생들과 함께하는 히로시마 연수여행을 지난 30년간 계속해왔고, 히로시마ㆍ나가사키 두 도시와 연계, 미국 현지에서 전시회와(핵무기에 반대하는) 피폭자의 증언활동 등 핵무기 금지를 호소하는 다양한 활동을 벌여왔다. 미국의 뜻있는 시민들과도 연대하면서. 그런 일들이 미국 내 여론을 조금씩 바꿔왔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핵군축을 진행해가려면 여론의 지지 또한 필요하니까. 그 기반을 조성하는데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었지 않나 한다.

 

홍상현:

이번 북미 정상 회담에서 세계인들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키워드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이보다 자신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납치 문제에 대해 제기하고, 그것이 김정은 국방 위원장에게 전달되었다는 점만 강조했다. 최근 끊이지 않는 스캔들로 궁지에 몰린 끝에 재생의 길을 모색하는 것 같은데, 사실 아베 총리는 지금껏 이 문제와 관련해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고 본다.

다카하라 다카오:

동의한다. 좁은 국내 정치적 맥락에서, 일본인 납치 문제는 현 정권에게 이용당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간 대북 제재와 압력으로 치달았던 것이 과연 북한에 살고 있는 일본인 아내들이나 납치 피해자들에게 바람직한 일이었는지 의문스럽다.

본래 일본은 ‘공화국(그는 이 대목에서 북한을 이렇게 표현했다)’과 연관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나라다. 여러 경로를 활용해 현지의 정보를 얻고, 사회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현 정권은 그런 자산을 스스로 허물어 온 것이다. 그의 말마따나 “납치 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임해 왔다”고는 도저히 평가할 수 없다.

 

"동아시아 핵우산 신화 해체할 때가 왔다"

홍상현:

마지막으로 다소 복잡한 질문이 될지 모르겠는데, 한국에서 그동안 ‘평화’와 ‘탈핵’은 정치의 핵심 의제가 아니었다. 북한과의 군사적 대치 상황 속에서 시민들은 호오(好惡)와 무관하게 군사 문화에 익숙해졌고, 미국의 핵우산으로 보호받는다고 믿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계 유일의 피폭국가인 일본의 평화 운동에 대해서도, 머리로는 ‘인류’의 입장에서 이해를 하지만, 가슴으로는 ‘식민지배의 피해국민’으로서 자업자득이라 생각하는 양면적 시각이 존재했던 게 사실이다. 이런 문제를 뛰어넘어 진정 평화를 위한 아시아 인민의 연대를 이뤄내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다카하라 다카오:

참혹했던 한국전쟁의 기억을 씻어내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본디 한국에는 군인(武)보다 문인(文)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군사문화로부터의 전환은 오늘날 국제사회의 과제다. 세계의 군사비는 현재 1조7000억 달러에 이르며, 그중에서도 동아시아의 군사비는 증가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통해 이러한 흐름을 바꾸고, 나아가서는 국제사회를 리드할 정도의 전망을 이끌어 낼 수도 있지 않을까? 군사적인 것만으로 국제관계를 논하는 ‘군비 관리 커뮤니티’의 발상에서 벗어나 안전보장을 보다 종합적으로, 인간의 입장에서 다시 파악해야할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 북한, 한국, 일본의 핵무기금지협약 동시 가입 등도 구상해 봐야할 필요가 있다.

비핵화가 현실적 과제가 된 지금 ‘핵우산’이라는 신화를 해체할 기회가 찾아왔다. 핵 체제(nuclear establishment)는 필사적으로 저항하겠지만 안보딜레마에 빠진 구미와는 다른 패러다임을 아시아에서 시작할 수 있다면 훌륭할 것이다. 나 자신 그런 공동작업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

메이지가쿠인대학교 시로가네(白金)캠퍼스 전경. 다카하라 다카오 제공

다카하라 소장에게 지난 2017년은 무척 분주한 한해였다. 7월 7일 UN에서 통과된 핵무기금지협약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이 그리 긍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한국과 북한, 미국 중 어느 나라도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았다. 특히 일본 정부는 세계유일의 피폭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기대에는 아랑곳없이 어떤 역할도 하지 않았다. 제2차 아베 정권 들어 더욱 노골화된 대미추종노선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당시 다카하라 소장은 그런 일본 정부의 외교기조를 강하게 비판하는 한편. 격차확대와 인종대립, 심지어 총기 규제 논란에 이르는 모든 문제들에 무력한 대응으로 일관하면서 군비확장노선으로 치닫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책임한 자세도 지적했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아베 내각의 태도였다. 아베 내각은 조약을 추진 채택한 국가들에게 ‘실효성’을 문제 삼았다. 결국 핵 폐기를 위한 핵보유국과 비(非)보유국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겠다는 주장이 말장난에 불과함을 스스로 입증한 꼴이다. 하지만 다카하라 소장은 그 시점에 절망하거나 분노하기보다 평화연구자와 시민사회의 과제에 집중했다. 핵무기를 결코 용서 없다는 피폭자의 호소를 다음 세대로까지 전해줄 책임. 평화연구, 평화운동, 그리고 평화문화에 젊음을 바쳤고, 여생마저 오롯이 바치려는 신념. 겨우내 얼어붙은 땅 위로 돋아나는 ‘한반도 평화’라는 새싹에서 느끼는 그의 설렘은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홍상현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을 갖추고 한ㆍ일 두 나라 매체에 분석 기사를 쓰고 있다. 파리경제대 교수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시미즈 연구실 출신으로, 현재도 같은 대학 이미지인류학연구실(IAL)의 네트워크 멤버다. 번역가로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의 논쟁적인 저작을 소개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램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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