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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의 땅' 지배자 만사 무사를 아시나요[이경혁의 게임 팩트체크] '문명4' 말리 제국의 만사 무사

지난 번 글에서도 다룬 바 있듯이, 인기 시뮬레이션 게임 ‘문명’ 시리즈는 게임에 등장하는 문명들에 비교적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문명과 지도자들을 반영하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비서구, 비백인, 비남성들에 의해 그려지는 덜 알려진 세계에 대한 게임 ‘문명’ 시리즈의 접근은 한편으로는 단지 유명 선진국 문명만으로는 진부해지기 십상인 게임 구성의 다양성 확보라는 측면이겠지만, 또다른 의미로서는 획일화된 중심성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기점이 되기도 한다.

뉴스톱에서는 그러한 ‘문명’ 시리즈가 비추고 있는 탈중심적 역사의 현장들을 함께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어 자료조차도 희귀한 지역의 이야기부터 우리에게 익숙한 선진국 역사의 뒷면까지 다채로운 세계사의 구석구석이 게임 안에 녹아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게임은 게임대로 더 즐거워지고 세계를 이해하는 관점 또한 다양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아프리카 권역의 고대문명들 – 가나 제국, 말리 제국

‘문명 4'에 등장하는 만사 무사는 일부 역사 마니아들을 제외하면 그리 익숙한 이름이 아니다. 그나마 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그가 말리 제국의 군주이던 시절 이슬람 성지인 메카로 다녀온 호화로운 순례길이 이슬람과 지중해권에 크게 회자된 덕분이었다.

서아프리카 머나먼 어딘가의 군주가 행차한 성지순례는 상당한 경제적 충격을 이슬람권 전반에 남겼는데, 만사 무사는 호화로운 순례 행차 내내 무지막지한 양의 황금을 경비로 시원하게 뿌려댔기 때문이었다. 덕택에 지중해권 전체의 황금 값이 하락할 지경까지 이르른 이 행차 덕분에 사람들은 서아프리카의 말리 제국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동시에 말리 제국은 ‘머나먼 미지의 황금 제국’ 같은 환상의 이미지로 포장되었다.

1375년 카탈류냐 지도에 그려진 황금 동전을 쥐고 있는 만사 무사. ⓒ위키미디어

실제로 이슬람권과 지중해권이라는 당시 여러 문명들의 중심권역으로부터 서아프리카는 격리되어 있는 편이었다. 어쨌든 바닷길과 육로로 그럭저럭 상호 교통이 가능했던 지중해 – 이슬람과 달리, 서아프리카지역은 바다보다 험한 사막으로 가로막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마그레브 권역으로 불리는, 지중해 연안의 북서 아프리카 영역으로부터 분리된 사하라 이남의 서아프리카는 쉽게 접근하기가 어려운 곳이었다. 그러나 이 지역에도 상당한 수준의 인구가 모이고 문명이 존재했는데, 바로 나이저 강 덕택이었다.

서쪽의 기니 고원지대에서 시작해 동쪽 말리로 흐르다가 남으로 꺾여 기니만 자락으로 흘러가는 나이저 강 유역은 오래전부터 풍부한 수원지로 기능하며 서아프리카 일대의 인구를 부양해 온 곳이었다. 나이저 강을 따라 형성된 부락들은 강 유역에서 풍부하게 채취되는 금을 바탕으로 적지 않은 부를 이룩했고 이를 바탕으로 북쪽의 마그레브 권역과 무역관계를 만들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사하라 사막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은 이 무역의 가치를 드높였고, 무역 루트를 독점할 수 있는 이의 권력을 막강하게 만드는 힘을 발휘했다. 무역루트에 올려진 금의 힘으로 나이저 강 상류에는 서아프리카 최초의 왕국인 가나 제국이 세워졌다.

문명4에 나오는 말리 제국의 만사 무사

만사 무사 – 황금의 땅 말리 제국의 주인공

그러나 무역루트는 단지 재화의 거래만이 오가는 곳은 아니다. 무역과 함께 북아프리카-지중해 일대를 주름잡던 이슬람교가 서서히 서아프리카로 넘어오기 시작했다. 토착종교를 중심으로 구성된 가나 제국은 사막화에 의해 서서히 커져가는 사하라 사막 덕택에 농경 가능한 영토를 잃으면서 동시에 이슬람 세력으로부터의 압박을 받으며 그 위세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가나 제국의 빈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말리 제국이었다.

이슬람교를 받아들이면서 나이저 강 중류에서 힘을 키워나가기 시작한 말리 제국은 사하라 무역의 거점도시로 기능했던 팀북투의 부를 바탕으로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다. 왕조의 개창자인 순디아타 케이타는 가나 제국의 빈자리를 차지하던 소소 왕국을 물리치고 나이저 강 일대의 최대 세력이 되었다. 지중해 권역에서 유통되는 금의 대부분을 쥐고 흔들 수 있었던 말리 제국은 이후 제 9대 황제인 만사 무사 대에 이르러 이슬람 문화권 전반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만사 무사의 화려하고 사치스런 메카 성지순례는 다분히 계획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막대한 금 산지로만 여겨지던 말리 제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드러낼 방법으로 선택되었다는 것이다. 수 백 명의 수행원을 대동하고 나선 만사 무사의 순례길은 실제로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서아프리카 말리 제국의 존재감을 동시대 여러 문명에 제대로 내는 이벤트가 되었다. 가는 곳마다 뿌려댄 금으로 곳곳의 경제가 뒤흔들렸고, 미지의 황금 제국의 존재감이 이슬람 세력 곳곳에 널리 퍼져나갔다. 그러나 아쉽게도 말리의 영향력은 만사 무사 이후 점차 줄어들었고, 이후 나이저 강의 주인 또한 말리 제국에서 송가이라는 신흥 세력으로 넘어가게 된다.

말리 수도 팀북투에 있는 세계 유산 산코레 이슬람사원. 2012년 다른 이슬람 반군이 우상숭배라며 이를 파괴했다.

게임이 재현해 낸 제3세계 역사의 흥미로움

‘문명’ 4편에 등장하는 말리 제국과 만사 무사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다. 말리 문명은 다분히 상업적인 어드밴티지에 특화되어 있으며, 고유 건물로 금광의 금 산출을 올려주는 건물이 따라붙어 미지의 황금제국으로서의 이미지를 강하게 드러낸다. 말리의 최전성기에 수도인 팀북투에 자리했던 동시대 최대 규모의 대학인 상코레 대학도 게임 내 불가사의로 등장하며 말리의 전성기를 알린다. 지도자로 등장하는 만사 무사는 상업과 교역에 특화된 AI로, 기술 하나를 사다가 그 기술을 모르는 여러 문명에 파는 장사를 열심히 하는 전형적인 상인형 군주로 등장한다.

서아프리카의 역사는 나일강이나 오리엔트 문명의 농경과 거의 비슷한 연대로 추정될 정도로 오랜 전통을 자랑하지만, 아직까지 두터운 연구가 쌓인 역사는 아니다. 게다가 지리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거리가 먼 한국에서 서아프리카의 역사를 꼼꼼히 읽어볼 수 있는 기회는 정말 드문 편이다. ‘문명’ 4편이 다룬 말리 제국의 모습 정도만으로도 상당히 한국의 일반교양 수준에서는 적지 않은 정보를 제공하는데, 게임 ‘문명’ 시리즈가 집중한 서아프리카의 역사는 비단 말리 제국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다음 편에서는 말리 제국의 뒤를 이은 나이저 강의 패자, 송가이 제국의 아스키아 왕조를 살펴보도록 한다.

이경혁 팩트체커  grolmarsh@gmail.com    최근글보기
게임칼럼니스트 겸 문화 비평가. 여러 매체에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게임과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게임이 사회를 매개하는 매체로서 지니는 의미를 발굴하고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이경혁 팩트체커  grolmar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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