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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임 크레이지' 쿠도 마사아키 감독 "영화 그만두려 했을 때 시작된 영화"[부천국체판타스틱영화제 특집] 홍상현의 인터뷰 시리즈

“인생에는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철저하게 살아갈 것인지, 사회가 요구하는 천박하고 타락한 인생에 질질 끌려갈 것인지.”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초청작 <아임 크레이지(I’m crazy)>의 오프닝과 엔딩에 나오는 주인공의 독백이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맞닥뜨려 보았을, 혹은 아직도 풀지 못한 과제로 남겨두고 있을 질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초청작 '아임 크레이지' 쿠도 마사아키 감독

여기서 전제하고 싶은 두 가지는 이 영화의 감독인 쿠도 마사아키가 그 타이틀이 주는 선입견과 다르게 결코 ‘광란의 서사’로 스토리를 풀어가지 않는다는 점과, 이 글이 부천에 가서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이상 홈페이지에 소개된 수준을 넘어서는 정보를 얻을 수 없을 <아임 크레이지>에 대한 소개 혹은 평론이 아니라는 점이다. 아니, 그 정도로 마무리하기에는 쿠도 감독의 이야기가 너무 극적이다.

올해 서른다섯. 줄곧 영화감독을 꿈꾸었던 그에게 10년 가까이 이어진 촬영소의 조감독 생활은 실망의 연속이었다. 기대만큼이나 컸던 실망. 밖에서 바라보던 영화계의 모습과 개봉일자를 정해놓고 공산품처럼 만들어지는 메이저 스튜디오의 제작현장은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다. 결국 그는 낙향을 결심한다. ‘쿠도 마사아키의 인생’이라는 드라마가 반전 포인트를 만나는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그 중심에 재일한국인 소설가 가네시로 가즈키의 자전적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고(Go)>(2001)의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이 있었다.

Q. 실력 있는 조감독으로 기라성 유명 감독들과 호흡을 맞춘 커리어가 절정을 맞이하던 시기, 영화계 생활을 완전히 정리할 뻔 했다.

A. 내가 영화 일을 하던 당시는 TV 방송국이 영화제작에 손을 대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그렇다 보니 다들 비슷비슷한 영화를 만들었다. 반면 내가 한참 영화를 보던 당시에는 영화들이 무척 자유로웠다. 주제도, 표현방식도. 그런 영화들을 통해 문화를 배우고 외국의 문화도 접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영화계에 입문할 무렵이 되자 그런 분위기들이 사라진 거다. 이해할 수 없었다. 영화계의 불황 탓도 있었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실망도 커지는 느낌이었다.

내 인생의 영화인 <고>의 연출자이며 동경의 대상이던 유키사다 감독을 만났지만, 오히려 그와의 작업을 마지막으로 영화 일을 접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막상 그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흔히 생각하는 일본 감독의 스테레오타입과 다른 면이 보였다. 권위적이지 않고 무엇보다 ‘일’이 아닌 ‘영화’ 그 자체를 너무나 좋아하는, 바로 그런 이유로 영화를 만드는 모습.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물었다. ‘자네는 어떤 영화를 찍고 싶으냐’고. 생각해 보니 내가 원하는 영화의 상이라는 게 없었다. 그래서 ‘영화를 그만둘 작정’이라고 했더니 오히려 ‘자네는 분명히 감독이 될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반드시 데뷔할 수 있을 테니 초조해하지 말고 사회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테마를 발견하면 그걸로 영화를 만들어보라고. 그날부터 사회와 나 자신의 관계에 주목해서 영화적 화두를 고민하는 나날이 이어졌다.

음악을 끝내기로 결정한 뮤지션의 하루를 그린 '아임 크레이지' 한 장면

Q. 어쩐지 음악인생을 끝내기로 결심한 뮤지션의 하루를 그린 <아임 크레이지>의 주인공과 묘하게 겹치는 흐름이다.

A. 나도 어린 시절 밴드를 했던 경험이 있고, 영화의 주인공인 후루타치 유타로도 메이저 밴드(The SALOVERS) 출신이다. 원래 인디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메이저에 진출한 케이스인데 단 한 장의 앨범을 내고 무기한 활동중지를 선언한다. 그리고 1년간 백수생활을 했다. 팬이자 친구인 나는 후루타치의 그런 이력에 끌렸다. 만약 그때 결심했던 대로 영화를 그만두었다면 내 상황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테니까.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이런 무궤도적인 면. 이것이 바로 내 데뷔작의 주제가 되었다.

다만 시나리오를 쓸 때 의도적으로 내 인생사를 반영하고자 한 건 아니다. 그리고 후루타치의 밴드가 해산한 것도 그가 아니라 같은 팀에서 기타를 치던 친구가 음반사의 간섭을 끝내 수용하지 못했던 원인이 컸다.

Q. 하긴, 리스크관리(risk management) 때문인지 몰라도 일본 영화는 소설이나 만화, 혹은 TV 드라마 등 원작이 한번 그 상품성을 검증받은 것들인 사례가 많다. 돈(자본)의 문제가 결정적이겠지만.

A. 그렇다. 그밖에도 일본인의 기질은 획일적인 면이 있다. 이를테면 벚꽃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벚꽃이라고 하면 너도나도 왕벚나무를 떠올리는 것이 그 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그런 분위기가 적응하기 힘들었다. 다들 똑같이 생긴 벚꽃나무 아래서, 똑같은 모습으로 앉아 벚꽃놀이를 하고. 매화도 있고, 벚꽃만 해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최근 일본영화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나 한다.

또한 경제적인 면은 스태프 개인의 생활과 관련해서나 제작환경과 관련해서나 커다란 어려움이다. 영화를 해서 먹고 살기라는 게 무척 힘들지. 이 영화에도 사비를 들였다. 투자를 받아 영화를 제작하면 무조건 조류에 편승해야 하고, 영화적 표현도 예산에 따라 통제된다. 이런 흐름을 거슬러보고 싶었다. 기존의 정해진 스타일을 벗어나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고, 상상력에 대한 어떤 제한도 거부하고 싶었다.

홍상수,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이런 한국 감독들이 내게는 엄청난 동경의 대상이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어떤 것에도 얽매지 않는 느낌이다.

Q. 개막식 리셉션에서 첫인사를 하던 당시, 한국영화 전반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놀랐다. 그저 해외영화제에 초청되어 온 감독의 그것을 넘어서는 감회가 느껴진다는 점도 특별했고. 한국이라는 나라에 그 정도로 애정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A. 교토에는 오래전부터 재일한국인들이 무척 많이 살고 있었고, 내 친구들 중에도 재일한국인이 많았다. 어머니의 영향도 있었다. 강인한 성격에 의협심이 강하신 분인데 어린 시절 재일한국인 친구들과 어울린다고 주변에서 수군거리면 ‘그따위 소리 신경 쓰지 마라. 그런 말을 하는 일본인이 문제야’라고 말씀하셨다. 자유에 대한 동경도 그녀의 영향이다.

또한 재일한국인의 이야기를 다룬 <고>는 그런 나의 영화에 대한 관점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려주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살인의 추억>을 비롯한 수많은 한국영화들을 접했다. 요즘도 정서적으로 한국영화에 더 일체감을 느낀다. 한국영화가 보여주는 다양성도 큰 매력이다.

한국에 대한 내 나름의 이미지도 있다. 정치가 잘못되어 있으면 누구나 아무렇지 않게 ‘아니라’고 말하고, 제 아무리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이라도 잘못된 행동을 하면 마땅히 수정할 수 있는 사회. 영화에도 표현의 자유에 규제가 가해지지 않는.

Q. 원래 자유에 대한 동경이 컸는데, ‘한국’이 그것을 풀어내는 키워드로 작용한 것 같다.

A. 깊은 관련이 있다. 또한 그 주변에 내 친구 박군, 강군, 김씨 등이 서있었다. 교토에도 우익이 있다 보니 어린 시절 혐오발언을 하는 경우를 더러 보았다. 도대체 재일한국인과 일본인이 뭐가 다르지? 왜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면서 내 친구들을 공격하지? 이해가 가지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Q. 당신과 같은 교토 출신의 이봉우 씨가 제작한 <박치기>(2004)라는 작품이 떠오른다. 이야기를 좀 더 넓혀보면 일본 사회의 마이너리티가 주인공이고, ‘괜찮다’고 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사회에 이의를 제기하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그렇다. <박치기>는 최양일 감독의 <달은 어디에 떠 있는가>(1993)와 더불어 내가 깊은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고>와 함께.

아울러, 자유란 내가 늘 천착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스마트폰, 편의점, 특정 브랜드의 커피전문점, 모두다 똑같이 생활하면서 똑같은 것을 먹으라는 식의 분위기를 경멸한다. 각자의 생각과 느낌이 살아있는 것이 좋고, 그래서 자유가 느껴지는 한국의 분위기가 좋다. 남과 같아야만 안심하고 다른 것에 공포심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무서운 일 아닌가. 평화란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을 가짐으로 해서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젊은 세대에게 획일성이 강요되는 것에 위기감을 느낀다.

영화학교에서 가르치는 후배들에게도 들은 대로 행동하는 습성을 버리라고 강조한다. 어른들이 흔히 하는 일방적인 충고는 무시하는 편이 좋다는 거다. 심각하게 듣지 말고 자유롭게 정말 자신이 좋아하는 주제로 영화로 만들라고 말한다. 학교에서는 싫어하지만.

Q.‘유쾌한 얼굴로 이야기하는 자유’, 쿠도 마사아키라는 인물을 지켜보는 동안 떠오른 말이다. 다음 작품에서도 그런 면모가 발휘될까.

A. 내 고향인 교토 시에 사쿄 구라는 곳이 있다. 자유로운 학풍으로 유명한 교토대학교의 소재지답게 자유로운 분위기로 넘쳐나는 곳인데, 새로운 지역문화로 주목받고 있다. 오늘은 빵을 팔던 사람이 내일은 야채를 팔고, 가지고 있는 레코드를 팔기도 하고. 획일화된 삶의 경로를 따라가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이곳을 무대로 한 연작 코미디를 준비 중이다. 재미있을 거다.

'아임 크레이지' 메인 스틸컷

<아임 크레이지>에는 엉뚱한 상황에서 사건에 휘말리지만 낙천적인 모습으로 끝끝내 주인공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캐릭터 하나가 등장한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혹은 하루의 피로를 달래려 들른 선술집에서 어렵지 않게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은 아저씨.

왠지 가상의 이이야가 아닌 현실에서는 그런 사람들과 쉽게 마주치기 힘든 사회가 된 것 같다 서글프다는 필자의 말에 쿠도 감독은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의 생각보다 가까이에 선인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해주었다.

우리의 삶 속에서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생각지도 못한 누군가가 천사로 보이는 순간이 있다는 것. 그러면서 한 가지 경험담을 덧붙였다.

조감독시절 요요기역 앞의 육교위에서 샐러리맨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아래쪽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그 순간 자신의 눈에는 그 남자가 천사로 보였다. 혹시 자살하려는 것 아닌가 싶어 다가가 괜찮으냐고 물으니 역시나 절망감에 휩싸여있는 사람이었다. 함께 걸으며 ‘위기상황’을 넘겼는데, 헤어지는 순간 그도 자신의 눈에 쿠도 감독이 내가 천사로 보였다는 말을 해주더라는 이야기. 그러면서 ‘민머리에 털보, 거리를 걷고 있으면 누구도 말 한마디 붙이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제가’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그의 작품을 다음에도 꼭 한국에서 보고 싶어졌다.

홍상현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일본의 경제월간지 <게이자이(經濟)> 한국특파원. 도쿄대학교 이미지인류학연구실(IAL) 네트워크 멤버다. 도쿄대 시미즈 연구실 소속으로 국제관계와 언론보도의 상호작용을 연구했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논쟁적인 책을 한국에 소개하는 번역가다. <시사인> 등에 일본 소식과 국제관계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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