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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기요하라 유이 감독 "여성 4명 인생이 집에서 중첩되는 영화"[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특집] 홍상현의 인터뷰 시리즈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로써는 상상하기 힘든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18세기 초엽 오르간은 ‘악기의 여왕(Königin der Instrumente)’이라 불렸다. 그 중심에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 라단조’가 있었다.

이 곡을 시각화하면 어떤 느낌일까?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유럽의 성을 무대로 한 뱀파이어판타지? 꼭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그 또한 일종의 스테레오타입이기 쉽다. 오르간 특유의 음색이라는 ‘외피’가 아니라 집요하게 반복되는 유니즌의 셋잇단음. 어느새 프레스티시모(prestissimo)로 현란한 전개를 보여주는 악상에 집중해보자. 하나의 멜로디라인 아래 각각 독립적으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실은 끊임없이 중첩되는 독창적인 악곡(Musikstück)이 보인다.

이 모티브를 그대로 장편데뷔작 <우리 집(Our House)>(2017)에 차용해 피아영화제 그랑프리를 차지한 뒤, 바쁘게 이어지는 해외영화제 초청 스케줄 속에 제22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은 기요하라 유이 감독의 이야기다.

'우리 집'의 기요하라 유이 감독

다만, 올해 나이 스물여섯의 도쿄 출신 청년예술가의 천재성에만 주목한다면, 독자들의 관심은 이 언저리에서 멈추어버릴지 모른다. 폭염경보로 대변되는 치명적 더위 속에 최저임금으로 끓어오르는 보통사람들에게 혁명적 표현이라는 예술적 화두는, 그 자체 의미심장할망정 긴 글의 마지막까지 시선을 끌고 가는 동인으로 작용하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그녀와의 대화 속에서 필자가 초점을 맞춘 것은 일생을 바쳐 하나의 집을 마련해, 다음세대에 그것을 남기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고,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면서 그런 삶의 방식은 거의 해체되었지만 여전히 평균 월수입의 상당부분을 여전히 주거비로 쓰고 있는, 필요이상으로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정작 서로에게 다가가기 쉽지 않은 현대 일본 사회에서, 사실상 1인칭 소유격의 의미를 함유한 ‘우리 집(我が家)’이 아니라 정확히는 ‘우리들의 집(わたしたちの家)’이라 번역되는 제목의 작품을 통해 이 여성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이다.

홍상현:

<우리 집>은 하나의 집에 서로 다른 사춘기 소녀와 그녀의 어머니, 기억을 잃은 여성과 그녀가 의지하는 다른 한 명의 여성, 즉, 두 그룹의 여성이 마치 다른 차원의 존재들처럼 살고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된다. 당신이 다른 인터뷰에서 말했듯 바흐의 푸가(fugue)처럼 각기 존재하지만 결코 서로 만나지 않는.

기요하라 유이:

원래부터 복수(plural)의 이야기를 하나의 영화에 담아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기존의 군상극(群像劇)이나 옴니버스와 차별화된 형식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 와중에 좋아하던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로부터 영감을 받았다. 각각 독립적이면서도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스토리를 통해 일견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라도 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고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

영화 '우리 집'의 한 장면.

홍상현:

‘집’이라는 공간의 제시가 특별했다. 다만 그것을 많은 돈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영화(film)’로 시각화하기 위해서는 추진력이 필요했을 텐데.

기요하라 유이:

우선, 집이라는 아이디어는 직관적으로 나온 것이다.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이야기를 묶는데 가장 유효한 공간이 집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또, 영화를 제작하는 동기와 관련해서는 역시 아직 본 적이 없던 무엇인가를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컸다. 누구도 해보지 않았던 시도.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보여준다는 건 설레는 일이니까.

홍상현:

슬슬 영화의 서사에 관한 이야기로 옮겨가 보자. 이 영화에서 당신이 언급한 영화의 소재(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사람들)는 작품의 정체성과도 직결된다. 구상단계에서 비슷한 경험을 해 본 일이 있나.

기요하라 유이:

나는 공동주택(일본어 표현은‘集合住宅’)에 살고 있다. 같은 건물로 연결되어 있으니 오다가다 인사 정도는 하지만 상대의 가족이 몇 명이고, 어떤 일을 하는지 같은 정보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가끔 그들의 내는 일상의 소리를 들을 때면 그들이 실제(real)로써 느껴졌다.

홍상현:

영리한 설명이다. 실제로 일본의 다세대 주택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웃에 누군가 살고는 있지만 그 사람이 실제의 인물인지, 혹은 가공의 인물인지조차 감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극단적 고립감. 그런데 그 ‘누군가’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인지함으로써 고립감이 깨진다는 것 아닌가.

기요하라 유이:

맞다. 전혀 모르는 사람일망정 누군가가 살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은, 일방적일지도 모르지만, 일단 그 사람과 이어져있다고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스쳐지나가거나 한 순간 눈이 마주친다 하더라도 사람과 사람사이의 연관성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니까.

홍상현:

그런 맥락에서 보면 <우리 집>은 문화적 환경에 의해 ‘부끄럼쟁이’로 성장할 수밖에 없는, 하지만 고립감을 넘어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고 있음을 확인하고, 소통하고 싶어 하는 현대인의 욕망을 담아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요하라 유이:

그렇다. 푸가도 독립된 멜로디가 서로 중첩되는 형식을 띠고 있잖은가. 일단 같은 멜로디라인이 흐르고 그것을 서로 다른 부분이 쫓아가면서 영향을 주듯이. 나 역시 메아리까지는 아니지만 누군가 내게 응답해주는 느낌을 표현하고자 했다.

영화 '우리 집'의 한 장면.

홍상현:

다음은 캐릭터에 관한 이야기다. 우선 관객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두 모녀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자기반영적으로 구성한 면이 있는가.

기요하라 유이:

내 경험을 기반으로 직접적으로 투영하는 방식은 어떤 등장인물에 대해서도 쓰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 자신의 경험이 어느 정도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한때는 영화에 등장하는 아이처럼 소녀시절을 거쳤으니까. 그 시절 나와 어머니의 관계를 떠올렸다. 사춘기의 여자아이란 부모 입장에서 보더라도 귀찮은 존재일 테지만, 아이 입장에서도 부모와의 관계설정이 복잡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녀의 모습에도, 예컨대 (싱글인) 엄마의 데이트를 미행하거나, 늦게 돌아온 날 딸이 예민해진 모습을 보이는 시퀀스 등에 그런 부분이 반영되어있다.

홍상현:

모녀도 인상적이었지만 특히 내 시선을 붙든 것은 기억을 잃은 여성, 그리고 그녀가 의지하는 다른 한 명의 여성이다.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떤 의미인가?

기요하라 유이:

일단 기억을 잃은 여성 쪽이 일곱, 여덟 살 정도 나이가 많은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일본의 경우 (한국도 그렇지만)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연령이 큰 영향을 미친다.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는 존댓말을 써야하고, 관계의 주도권도 보통 나이가 많은 쪽이 갖는다. 그런 관계를 역전시켜보고 싶었다. 기억을 잃었다는 것도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가 되어 연령 개념이 사라졌음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자신보다 어린 사람에게 보호자가 부모처럼 의지하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듯 일반적인 인간관계와는 다르면서도 무척 친밀한 관계를 그려내고 싶었다.

홍상현:

나이주의(ageism)를 극복하는 친밀감. 상징이나 은유를 통해 완곡하게 표현했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사이를 잇는 연대감을 말하는 작품의 전체적인 맥락과 연결된다. 공동체의 개념이 사라지는 것은 현대사회의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하지 않은가. 영화는 판타지지만 엄연히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니까. 그리고 보면 집단 속으로 숨으면 어떻게든 안심감을 느낄 수 있던 일본사회도 이제 달라졌다.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면서 사회적 격차도 심해졌고.

기요하라 유이:

TV를 봐도 종종 워킹푸어(working poor) 관련 보도가 나온다. 최저임금만으로는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다는 문제도 심각하고. 미대시절 친구나 영화계 동료들을 보더라도 일단 정규직이 되면 개인 작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아르바이트로 최저임금에 아슬아슬한 돈을 벌어 생계를 해결할 수밖에 없는데 그럴 경우 도쿄에서 혼자 지내기 쉽지 않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부모와 함께 살며 따로 생활비를 버는 경우도 많고. 주위를 돌아보면 다들 힘든 모습이다. 원래부터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난 게 아닌 이상 전업 작가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무리 아닐까 싶다.

홍상현:

그래서일까? 영화에서는 선물상자가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던 두 그룹을 이어주는 대단히 중요한 소품으로 등장한다. 나는 그 선물상자의 내용물이 무엇인지 보다 선물(贈り物,‘마음을 담아 전하는 물건’이라는 의미에서 외래어인‘プレゼント’대신 사용했다) 자체가 갖는 상징적인 의미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기요하라 유이:

그렇다. 잘 아시다시피 선물상자는 기억을 잃은 여성이 등장하는 순간부터 가지고 있었던 물건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그 선물상자를 두 모녀가 발견하는 것도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지 않지만 무엇인가를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전해진 것을 의미한다.

영화 '우리 집'의 한 장면.

개막식 리셉션에서 인사를 나눌 때 밝은 표정으로 한국의 영화인 중에 자신에게 ‘영화란 무엇인가’하는 화두를 던져주는 홍상수 감독을 가장 좋아하며, <우리 집>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말하던 기요하라 감독과, 부천에 와서 같은 뜻을 가진 수많은 동료들의 존재를 확인하며 격려 받았고, 영화를 하면서 살아간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지만 다들 내가 살고 있는 나라의 현실만을 보고 포기할 것이 아니라, 세계인들과 국경을 뛰어넘어 함께 일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믿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던 인터뷰 룸의 그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필자의 무거운 질문 탓에 레드카펫의 화려함 속에서 잠시나마 잊고 있던 크리에이터로써의 삶과, 늘 애틋한 심정으로 바라보는 친구들의 모습이 떠올랐을까. 하지만 그보다 더욱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직은 창작의 기쁨을 이야기할 때 목소리에 더욱 힘이 실리는 이 ‘기대의 신예’가 바로 이 순간에도 긴 호흡을 고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홍상현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일본의 경제월간지 <게이자이(經濟)> 한국특파원. 도쿄대학교 이미지인류학연구실(IAL) 네트워크 멤버다. 도쿄대 시미즈 연구실 소속으로 국제관계와 언론보도의 상호작용을 연구했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논쟁적인 책을 한국에 소개하는 번역가다. <시사인> 등에 일본 소식과 국제관계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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