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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키드, 머니 피트, 돈스코이호... 수백년간 보물에 미치다[김형민의 역사 팩트체크] 국내외 보물 탐사의 역사

대한민국 사람치고 어려서 영국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보물섬>과 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어느 날 주인공 짐의 여관에 투숙한 한 늙은 ‘선장’. 그리고 그를 찾는 정체불명의 사나이들. 그 선장은 왕년의 해적이었고 엄청난 해적들의 보물이 숨겨진 보물섬 지도를 가지고 있었고 그를 찾아온 이들은 보물을 탐내는 옛 해적 동료들이었다. 어느 날 선장은 갑자기 쓰러져 죽고 숙박비를 받아낼 계산으로 짐을 뒤지던 짐과 어머니는 보물 지도를 찾아낸다. 짐은 마을 유지 트릴로니와 의사 리브지 등과 합세하여 보물섬으로 떠나게 된다. 선원 모집 과정에서 유쾌한 외다리 요리사 존 실버를 만나게 되는데 그의 주선으로 유능한 선원들을 쉽게 모은다. 그런데 그가 바로 해적이었고 이후 짐과 짐 일행은 지난한 고생을 하다가 마침내 보물을 찾는다는 내용.

그런데 소설 속에서 직접 활약하지는 않으나 아주 무게 있는 캐릭터 하나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플린트 선장. 그 거친 해적들도 이름만 듣고 얼어붙는다는 전설의 해적 두목. 짐의 여관에 투숙했던 ‘선장’이나 외다리 실버와 그 일당들 모두 플린트의 부하였다. 그는 일생 동안 모은 보물을 보물섬에 숨겼다. 보물을 숨기기 위해 상륙할 때 플리트는 여섯 명의 부하들과 함께 갔지만 돌아올 때는 혼자였다. 부하 여섯 명을 모두 죽여 버렸던 것이다. 이 잔인한 해적의 실제 모델이 있다. '캡틴 키드'로 불리는 윌리엄 키드(1645~1701)라는 사람이다.

Captain William Kidd. Painting by Howard Pyle

그는 정통 해적이라기보다는 영국 정부가 발행한 나포 증명서를 가지고 프랑스 국기를 단 배들을 공격하고 해적을 소탕하던 사람이었다. 물론 본연의 임무에 더하여 부유한 선박을 약탈하는 것도 절대 마다하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해적질에 나서게 되지만 말이다. 어느 날 프랑스 깃발을 달고 항해하던 무굴 제국 배를 털었는데 무굴 제국은 영국 동인도 회사에 강력히 항의했고 동인도 회사가 본국에 이 사실을 통보하면서 해적으로 영국 해군에 의해 체포돼 처형된다. 처형 이전에 그는 영국 정부에게 자신을 살려 준다면 자신이 숨긴 수백만 파운드의 보물을 내놓겠다고 제안했다고 하는데 영국 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온몸을 꽁꽁 묶은 채 교수형에 처하고 그 시신을 템즈 강 부두에 백골이 진토되도록 오래 오래 전시했다.

그는 비참하게 죽었지만 그가 곳곳에 숨겨 놓았다는 보물섬의 존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윌리엄 키드는 세계 곳곳에 보물을 숨겨 놓았다고 전해진다. 심지어 우리나라 제주도에 상륙해 백록담 근처에 보물을 파묻었다는 믿거나 말거나의 전설마저 있으니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윌리엄 키드의 전설은 그야말로 글로벌한 수준이었다. 1997년 해양 고고학자 클리포드는 역사학자 킨코르로부터 한 장의 문서를 입수한다. 테오 터너라는 한 해적이 윌리엄 키드의 기함이라 할 어드벤처 갤리 호의 침몰지점을 기술하고, 그 사실성을 맹세하는 내용이었다. 또 프랑스의 국립문서박물관에서 어드벤처 호의 정확한 침몰지점이 명시된 지도가 발견됐다. 윌리엄 키드가 배를 버린 곳이라 전해지는 마다가스카르 근처 해역이었다. 클리포드는 즉시 첨단 장비를 동원하여 마다가스카르 해저로 뛰어들었다. 2000년 어드벤처 갤리 호로 추정되는 배를 발견했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가장 화제가 된 사건은 2015년 해저에서 50킬로그램짜리 ‘은괴’를 건져올린 일이었다. 이 은괴는 각국의 외교사절까지 초청된 가운데 마다가스카르 대통령에게 전달되지만 유감스럽게도 납 성분 95%로 밝혀져 많은 이들의 실망을 자아내기도 했다.

어드벤쳐 갤리호로 추정되는 난파선에서 건져올린 것은 은괴가 아니라 95%가 납인 밸러스트(배의 균형을 잡기 위해 바닥에 놓는 중량물)였다.

은괴 사건은 유감이지만 최초의 보도로부터 은괴 사건까지 걸린 시간이 15년이다. 그 동안 들인 돈과 노력은 그곳에서 찾아낸 보물을 능가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정도는 약과다. 윌리엄 키드가 보물을 숨겨 놓았다고 전해지는 곳 가운데 가장 유력하고 가장 오랫 동안 사람들을 끌어들였던 곳은 캐나다의 오크 섬이다. 1795년, 그러니까 키드 선장이 교수형 당한 94년 뒤, 오크 섬에 살던 16세의 소년 다니엘 맥기니스가 오래된 참나무 밑에서 움팩 패인 지면을 발견했다. 누군가 팠다가 다시 덮은 흔적이었다. 해적의 시대가 가긴 했으나 최소한 할아버지들에게는 해적의 이야기를 익히 들었을 소년 맥기니스는 친구 두 명과 함께 그곳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수직 갱도인 것은 분명했다. (이곳은 ‘머니 피트’, 즉 돈 굴로 명명된다)

하지만 두꺼운 참나무 판을 만나 발굴이 중단됐다가 1804년 한 사업가가 발굴을 재개한다. 이제는 청년이 된 세 소년도 합류했는데 그들은 그 이후 수많은 사람들을 미치게 만든 석판 하나를 발견한다. 거기에는 기이한 문자가 새겨져 있었는데 수수께끼는 곧 풀렸다. 영어 알파벳을 대입하면 간단한 문장이 성립했던 것이다. “40피트 (12미터) 아래 200만 파운드가 묻혀 있다.”

오크섬의 머니 피트에서 나온 석판을 해석한 내용. "40피트 아래 200만 파운드가 묻혀 있다"

보물 탐사대는 만세를 불렀을 것이다. 용기백배 삽질을 계속하던 그들은 뜻밖의 난관에 부딪친다. 갑자기 갱도에 물이 차기 시작한 것이다. 탐사대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쪽으로 길을 냈고 보물의 위치에 거의 다다랐는데 또 낭패를 보았다.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고 이윽고 발굴 후원자였던 사업가 린즈의 재산이 바닥나고 말았다. 바로 몇 미터 앞에 보물을 두고 차오르는 물을 어쩌지 못해 돌아서야 했던 사람들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1849년 또 다른 보물 탐사가 재개됐다. 최초 발견자 맥기니스는 죽었지만 그의 두 친구, 존 스미스와 안소니 보건은 일흔의 나이로 다시 보물 탐사대에 합류했다. 보물은 그렇게 여럿의 평생을 지배한다는 것을 보여 주기라도 하듯. 그러나 또 갱도에 차오르는 물이 문제였다. 황망한 것은 이 물이 바닷물이라는 점이었다. 지하수라면 민물일 것인데 이 짠물은 어디서 치솟는 것인가. 인근 해안을 탐사하던 탐사대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무려 다섯 개의 배수로가 정교하게 조성돼 머니피트로 흘러들고 있었던 것이다. 탐사대는 손을 들고 떠났다. 그래도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1864년 지구 반대편 스웨덴의 과학자 노벨이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했고 30년쯤 뒤인 1893년 다이너마이트를 든 일군의 탐사대가 머니피트에 도착했다. 그들은 다이너마이트를 터뜨려 지하 33미터에 있던 배수로를 막아 보려고 했다. 그러나 소용 없었다. 물은 계속 들어찼고 탐사대는 떠나갔다. 1942년에는 또 다른 배수로가 발견됐다.

도대체 이런 정교한 갱도를 누가 팠으며 왜 팠으며 지하에는 무엇이 묻혀 있을까. 금십자가 (초기 발견자 맥기니스와 그 친구들이 발견)나 양피지 조각 등 ‘뭔가 있을 듯한’ 유물들은 발견됐으나 보물은 나오지 않았다. 1995년 65미터까지 파헤쳐 내려갔으나 여전히 보물은 없었다. 그래도 보물을 찾아 헤매는 사람들은 끊이지 않았다. 지금은 미국의 갑부 라기나 형제가 섬의 소유권을 획득하고 체계적인 발굴을 진행하고 있다. 무려 223년 동안의 보물찾기. 보물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그리도 큰 것이다. 또 보물을 숨기려던 인간의 의지 또한 대단하지 않은가. 18세기에 그 어려운 토목공사를 벌였던 누군가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윌리엄 키드의 보물이라고 전해지기는 하지만 학자들에 따르면 그 이전에 조성된 것이라는데.

머니 피트가 있는 캐나다 오크 아일랜드 전경.

우리나라에도 보물의 소문은 끊이지 않았다. 지난 2016년 5월,당시 부산 사상구의 문재인 의원 사무소에서 인질극이 벌어졌다. 범인은 “문현동 금괴사건 도굴범, 문재인을 즉각 구속하라.”는 해괴한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내막을 들여다보자면 이렇다.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은 오늘날 부산 남구 문현동 인근 바닷가에 잠수함 도크와 어뢰 공장을 건설했다. 이곳에는 일본이 중국과 동남아에서 긁어모은 보물들이 보관돼 있었지만 패전 후 급박한 상황에서 채 가져가지 못하고 땅에 묻어 버렸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져 왔다. 이 보물을 찾겠다고 나선 사람들이 여럿 있었고 어디서 흘러나왔는지 정교한 보물지도까지 등장했고 금괴니 비취불상이니 하는 세세한 보물 내역도 전파됐다. 그러나 대개는 사기였는데 인공굴을 발견했노라고 기염을 토하며 사람들 돈을 끌어들였다가 구속된 사람이 있었다. 법원은 문현동 일대에 일본 어뢰 공장 자체가 없었고 다른 보물 헌터가 판 굴을 일본인들이 판 굴이라고 우겨 돈을 뜯어냈다고 판결했으나 피고 당사자는 강력히 반발했다. 보물은 있었고 누군가 도굴해 갔다는 것이다.

문재인 의원 사무실에서 인질극을 벌인 사람은 피고인의 동생이었다. 그는 형의 동업자들이 노무현 정권 비호 아래 보물을 도굴했고 노무현 정권의 실세였던 문재인 의원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인질극을 벌였던 것이다. 요즘도 태극기 부대가 간간이 외치고 다니는 ‘문재인 금괴설’의 진원지가 되겠다.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지만 이 문현동 보물에도 수십 명의 일생과 재산이 허비됐다. 보물은 그렇게 치명적인 마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인질극이 벌어진 문재인 대표의 부산 사상구 지역 사무실

실제로 발견된 우리나라 최대의 보물로는 역시 신안 해저 유물선을 들 수 있을 것이다. 1975년 8월 최형근이라는 어부가 고기를 잡던 중 뻘흙과 굴 껍질이 덕지덕지 묻은 항아리 여섯 개를 건져 올린다. 대충 씻고 보니 청자였다. 최형근의 동생이자 국민학교 교사였던 최태호의 눈에 그 도자기는 심상치 않아 보였다. 그래서 1976년 1월 군청에 가서 문화재 신고를 하지만 군청 관계자로부터 타박을 듣는다. “어디서 이런 걸 들고 와서 보상금이나 타먹으려고!” 그런가 보다 넘어갔는데 어떻게 알고 왔는지 서울에서 골동품상이 찾아왔다. “이건 원나라 가마에서 나온 진품이오.” 이어 또 다른 어부 박창석이 청자와 백자를 건져 군청에 알려 왔다.

“원래 신안군 지도면 방축리 앞바다는 이곳 어부들에게 오래 전부터 ‘바다의 무덤’으로 알려져 왔던 곳이다. 어부들이 그물을 던지면 부서진 그릇들이 걸려나와 그물을 찢기가 일쑤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경향신문 1976년 10월 13일자 노다지 쏟아진 '바다의 무덤'

예로부터 바다에서 그릇이 그물에 올라오면 “옛날에 사람을 수장(水葬)하면서 사용했던 그릇이다”라는 속설이 있었다. 어부들은 그릇에 죽은 자의 원귀가 끼어 있다고 생각하여 가까이 두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물을 찢는 불청객으로 취급, 바다에 다시 던져 버리기 일쑤였다. 심지어는 개밥그릇으로 사용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최평호와 박창석의 발견으로 분위기는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다. 먼저 몰려든 이는 도굴꾼들이었다. 도굴꾼들과 골동품상이 별안간 신안 앞바다로 몰렸다. 갑자기 엄청난 양의 원나라, 고려 때 도자기들이 일본으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이를 눈치챈 경찰이 도굴꾼 조직을 붙잡고 보니 상상 이상의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닌가. 그제야 정부는 신안 앞바다에 예사롭지 않은 보물선이 잠들어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당최 어디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해운대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만큼이나 막막한 일이었다.

“어떡하죠?” “보물이 있으면 건진 놈이 있을 거 아닌가?” “있죠. 지금 감옥에 있죠.” 당국은 도굴 혐의로 구속돼 있던 골동품상 조장호와 잠수부 정삼순을 생각해 낸다. 둘은 집행유예로 풀려나 신안 앞바다로 직행한다. 조장호는 대충의 위치를 짚었고 정삼순은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공식 인양 작업에 참가한 해군 특수부대원들이 엄지를 내밀만큼 정삼순의 잠수 실력은 탁월했고 사흘만에 신안 보물선의 위치가 밝혀진다. 8백년 전 세상과 이별했던 배가 다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8년 동안의 발굴 끝에 인양된 유물은 “청자 12359점을 비롯한 도자기 20661점, 쇠붙이제품 729점, 돌제품 43점, 잡동사니 574점 등 22007점이었다.” (<위대한 발굴> 가람기획, 이병철 저) 특이한 것은 배 하부에서 발견된 28톤 중량의 800만개의 동전이었다. 까마득한 옛날, 후한과 전한 사이 잠깐 들어섰던 신나라의 왕망이 발행한 동전으로부터 당, 북송, 남송 서하, 심지어 베트남의 동전까지 있었다. 이 동전들은 대체 무엇에 쓰려던 것일까. 신안유물선은 중국에서 출발해 일본으로 가던 배였다. 일본에서는 은과 동에 비해 금값이 쌌다.

“남송 말년 일본의 황금 1냥 가격은 630문이었는데 당시 남송의 황금 1냥 가격은 4만 문이었다.”

즉 이 동전들을 일본으로 가지고 가면 막대한 돈벌이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일설에 따르면 당시 일본에는 청동 대불 조성이 유행이었는데 중국의 동전을 수입하여 이를 녹여 청동대불을 만들려 했다고도 한다. 실제 일본의 3대 대불, 아스카와 나라, 가마꾸라의 대불 성분을 분석했더니 송나라 때 동전의 납 성분 함량과 거의 맞아떨어졌다고도 한다.

신안선에서 발굴된 보물은 2017년말부터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상설전시되고 있다.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가치다. 이 234가지 800만개 동전은 1백억원이 넘는 가치로 유물 인양에 든 비용의 17배를 상회한다. 동전만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 역사 최대의 보물선이었다. 이 보물선의 실마리를 제공한 교사 최평호는 실로 안타까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신안유물 발견 4년 전인 1972년 형 최형근의 그물에 뭔가 걸려 올라왔다. 높이 20센티미터 가량, 머리에 관을 쓴 관음보살상이었다. 그런데 이걸 아이들이 가지고 놀다 깨뜨리고 말았다. 대충 실로 묶어 놓았다가 고물상에 1500원 (아무리 당시라고 해도 큰 돈은 아니다) 에 팔았다는 것이다. (동아일보 1976년 12월 2일 '해저보물 중 걸작은 청자불상 고물상에 넘겨진 뒤 행방 묘연') 발굴단은 이 유물이 신안 유물 가운데 가장 값진 유물이었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이 진짜 보물은 지금도 행방을 알 수 없다. 과연 이 지구상에 남아는 있는 것일까.

일확천금, 그리고 부자가 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빈부의 차이가 생긴 이래 절대 끊기지 않는 DNA로 전해 내려왔다. 해적들은 보물을 긁어모으느라 목숨을 걸어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사람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누군가는 보물을 위해 21세기에도 감당하기 어려운 정교한 수직 갱도를 팠고 어떤 이들은 보물을 손에 넣기 위해 자그마치 230년 동안을 노력해 왔다. 그러나 보물은 그 숱한 사람들의 일생을 잡아먹은 블랙홀이기도 했다. 앙상한 근거에 목을 매다가 전 재산 들어먹거나 망상에 사로잡혀 국회의원 사무실을 점거하고 네가 훔쳐간 금괴 내놓으라며 인질극을 벌인 사람들이 어디 비정상이라서 그렇겠는가. 그저 보통 사람,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단지 보물에 눈이 멀고 판단력을 빼앗긴 것 뿐.

7월 25일 신일그룹 관계자는 기자회견에서 "돈스코이호 보물은 아직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출처:연합뉴스 유튜브

최근 독도 근해에 침몰한 구 러시아 제국의 함선 돈스코이 호에 실려 있다는 100조가 넘는 금괴가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했다. 배를 발견했다는 회사의 주가는 치솟았고 가상화폐까지 발행하며 자금을 모으겠다는 야심찬(?) 계획에 예상 외로 많은 사람들이 흔들렸다. 그러나 당시 제정 말기의 러시아가 무슨 경제적 여력이 넘쳐나서 그렇게 많은 금괴를 실었을까.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고 귀를 세우고 눈을 빛내게 되는 것, 그게 바로 역사 속에서 숨겨진 보물이 주는 매력일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있었을, 그러나 지금은 사라진, 또 한 번 그러나 어딘가에서 숨쉬고 있는 보물들. 탐나지 않는가. 솔깃하지 않는가. 물론 그게 사랑방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 순간 고달프고 기약없는 고생길이 열리겠지만. (경찰은 7월 30일 돈스코이호를 인양하겠다는 신일그룹 관계자를 투자 사기 혐의로 출국금지 조치했다.)

김형민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필명 산하로 알려져 있다. 글을 맛깔나게 써서 팬이 많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했고 1995년부터 방송 프로듀서로 일하며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다수의 매체에 역사글을 기고하고 있으며 10여권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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