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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지배자' 송가이 제국, 머스킷총에 무너지다[이경혁의 게임 팩트체크] '문명5' 송가이 아스키아

지난 글에서 우리는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던 서아프리카의 문명이었던 말리 제국과 그 중흥기를 이끌었던 황금의 왕 만사 무사가 게임 ‘문명’ 시리즈에서 어떻게 등장하고 있는지, 그리고 실제로 말리 제국의 모습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았다. 한 때 유럽과 중동 지방에 이름을 드날렸지만 이제는 쉽게 만나보기 힘든 말리 제국의 이야기는 그래도 아직까지 말리라는 현대 국가 이름으로 남아있기는 하기에 이번 글에서 다룰 문명보다는 인지도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송가이라는 이름은 아예 금시초문인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15~16세기 서아프리카를 지배했던 송가이 제국. 출처: 위키미디어

게임 문명 5편에서 '강의 지배자'로 등장한 송가이 문명

송가이 문명은 ‘문명’ 5편에 처음 등장한다. ‘문명 5’는 등장하는 문명들이 각각 고유의 특성을 하나씩 달고 나오는데, 송가이의 경우 ‘강의 지배자’라는 이름의 특성이 붙는다. 송가이가 생산한 걸어다니는 지상 군사유닛은 기본적으로 ‘방어적 승선’ 과 ‘수륙양용’이라는 스킬이 추가되는데, 각각 강이나 바다를 건너기 위해 유닛이 물로 들어갈 때 방어력이 2배로 상승하는 효과와 상륙작전시 발생하는 패널티가 사라지는 특성이다. 보통 지상유닛이 물로 들어가면 적 해군의 공격 한 방에 날아가는 게임의 기본 룰에 비해 안정적이며, 수상에서 바로 지상으로 공격시 발생하는 상륙작전의 막대한 피해도 크게 줄어드는 편이다. 따라서 송가이로 플레이할 경우 해안이나 강가를 이용한 군사유닛의 수송과 상륙이 상대적으로 유연해지는 효과를 낳는다.

송가이의 고유 유닛으로 주어지는 만데칼루 기병대는 같은 시대의 기사(Knight)를 대체하는 기병 유닛으로, 지상유닛이 도시를 공격할 때 받는 공격 패널티가 없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도시 공격시 별도의 공성유닛 없이도 기병 특유의 기동력을 살려 빠른 공격이 가능해지는데, 이는 ‘강의 지배자’ 특성이 제공하는 또 하나의 장점인 도시 약탈시 들어오는 금이 3배 증가하는 특성과 맞물리며 약탈의 효용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게 한다.

문명의 고유 건물로는 진흙 피라미드 모스크가 제공된다. 사원(Shrine)을 대체하는 모스크는 유지비가 들지 않으며, 신앙 뿐 아니라 문화 생산을 추가로 제공해 타 문명보다 빠르게 문화수치를 확보할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 그러나 문화로 승리를 노릴 만큼의 장점은 아니며, 전반적인 문명의 컨셉은 빠른 기동력으로 주요 도시를 약탈한 금을 바탕으로 한 정복 승리에 맞춰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강력한 능력치는 아니다보니 ‘문명 5’ 에서의 평가는 약체 문명에 가까운 편이다.

'문명 5'에 등장하는 송가이 문명의 아스키아 왕

세계사 전반에서 거의 전면에 드러나지 않았던 서아프리카의 송가이 문명이 ‘문명 5’ 게임에 등장하는 데는 전편인 4편에 말리 제국의 만사 무사가 등장한 데 기인하는 바가 클 것이다. 실제 서아프리카 역사 속에서도 말리 제국의 쇠락 이후 가장 강력한 지배력을 발휘한 문명이 송가이 제국이기 때문이다. 게임 속에 등장하는 서아프리카 이야기의 두 번째로는 그 송가이 제국의 역사를 간단하게나마 살펴보고자 한다.

'황금의 땅' 말리 제국을 정복한 송가이 제국

나이저 강 유역을 중심으로 인구가 점차 늘어가던 서아프리카는 초기 가나 제국의 번성을 이어 패자로 등극한 말리 제국 시절에 지중해권까지도 영향력을 미치며 번영을 이뤘다. 그러나 이후 말리 제국은 점차 쇠락하기 시작했고, 그 빈틈을 노린 여러 왕국의 발호 속에 패권을 차지한 것은 가오(Gao)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일어난 송가이 제국이었다.

송가이 제국의 등장은 말리 제국 이전인 서기 800년경부터였다. 초기의 역사는 사실상 전승되지 않으나, 외국의 기록과 구전 등을 통해 현재는 11세기경 송가이의 왕이었던 코소이 왕이 이슬람으로 개종하면서 점차 중앙집권적인 체계를 갖추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저 강 계곡 유역에서 채취되는 암염 등을 토대로 무역에 기반해 번성하기 시작한 송가이 왕국은 13세기 초 말리 제국에 의해 정복당했지만, 곧이은 말리 제국의 쇠퇴를 틈타 슐레이만마르 왕에 의해 다시금 가오를 탈환함으로써 재독립의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독립 후 점차 나이저 강 유역을 정복하기 시작한 송가이 왕조는 강줄기를 따라 정복로를 개척하며 수도 가오를 중심으로 강을 따라 대략 2000㎞에 가까운 영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왕조로 자리하기 시작한다. 게임의 특성 이름 그대로 ‘강의 지배자’로 자리한 것이다. 나이저 강이 만들어내는 생산력과 유통력을 바탕으로 송가이 왕조는 1464년부터 최전성기를 맞이하기 시작한다.

이 무렵 송가이를 지배한 왕 수니 알리 베르는 이미 나락으로 떨어진 말리 제국에 전격적인 침공을 감행하여 말리의 심장인 팀북투를 점령하고, 이후 송가이 제국의 영향력을 서쪽으로 확장하면서 말리 제국의 영토를 고스란히 승계한다. 말리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여겨졌던 무역도시 젠네가 1473년 첫 포위 이후 7년간의 항전 끝에 무너지면서 비로소 나이저 강의 패자는 송가이 왕조로 넘어오게 된다.

송가이 제국 아스키아 왕조를 세운 아스키아 왕의 무덤. 말리제국의 건축양식과 닮았다.

그러나 순니 알리 베르의 통치는 생각처럼 길게 가지는 못했다. 말리 제국 이래 이어졌던 금과 소금의 주산지로서 이름을 떨치던 나이저 강 유역이었지만, 권력은 단지 금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었다. 순니 알리 베르의 사망 후 왕조는 그의 후손으로 이어지지 않고, 가오의 도시 총독이던 아스키아 무하마드 투레라는 인물에게 넘어가게 된다.

송가이 왕조는 소규모 상비군을 갖추고 나이저 강 계곡 일대를 왕실 종친의 직접 통치 하에 둔 뒤 나머지 지역을 해당 지역의 토착민들에게 맡기고 공물만을 받는 구조를 취하고 있었다. 가오의 총독이던 아스키아(‘찬탈자’라는 뜻의 이름)는 1492년 손니 알리 베르 사망 후 무슬림 세력의 지원을 등에 업고 손니 알리 베르의 후손들을 밀어낸 뒤 왕좌를 차지한다. 일부다처제로 인해 발생하는 복잡한 승계 구도는 손니 알리 베르 이후의 정치적 구심점에 혼란을 가져왔고, 그 혼란의 틈은 중앙집권화되지 않은 제국의 상황에서 지방의 토착 세력들에게 큰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다.

아스키아 왕국을 건설한 아스키아 무하마드 투레.

그러나 왕권을 찬탈한 아스키아 왕조 또한 마찬가지의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장자승계와 같은 전통적인 권력승계 방식이 보편적이지 못했던 서아프리카의 특성은 쿠데타에 의한 왕조 교체라는 혼란의 국면에서 더욱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냈다. 가오의 총독으로 나이저 강 일대를 정복해 낸 왕조의 개창자 아스키아 1세는 무려 자신의 아들에게 똑 같은 방식의 쿠데타를 당한다. 그러나 아들은 쿠데타를 해낼 능력은 있었을지 몰라도 그 권력을 모두로부터 인정받는 데는 실패했고, 이후 조금의 정당성이라도 있다고 생각되는 이들의 대난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한 명의 왕이 장기간의 집권을 할 수 없는 난세 안에서는 한 때 세계를 휘어잡던 금 생산량도 별다른 의미를 발휘하기 어려웠다.

대혼란에 빠진 아스키아 왕조를 노리는 것은 모로코 왕국이었다. 아스키아 최대의 수입원이었던 타가자의 암염광산을 모로코에 빼앗기자 부유했던 왕국의 경제도 기울기 시작했다. 모로코 술탄 아마드 알 만수르는 지중해에서 수입해 온 머스킷총으로 무장한 보병과 기병을 동원해 대사막을 건너 1591년 송가이를 기습적으로 침공했다. 단 한 번의 전투는 근대식 화약병기가 얼마나 압도적이었는지를 전장에서 증명했고, 이 전투 한 번의 결과로 송가이는 가나 제국 이래 서아프리카의 심장으로 기능했던 두 도시, 팀북투와 가오를 한 번에 빼앗기게 된다. 사하라 이남의 사막무역 거점은 그렇게 마지막을 고했고,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시는 과거와 같은 제국의 출현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문명 5'에서 화약무기를 사용하는 모로코의 베르베르 기병대. 송가이제국을 무너뜨리는 등 당시 아프리카에서 맹활약했다.

세계 최대의 부가 움직이던 서아프리카 제국의 역사가 마지막을 맞는 과정은 마치 대륙 건너편에서 벌어졌던 남아메리카 제국들의 최후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강력하고 부유했던 제국이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소수의 적들에 의한 기습 한 번에 무너졌다는 공통점은 그러나 상대적으로 유럽의 신대륙 진출이라는 이야기가 세계사에 편입된 것과 다르게 아프리카에서의 이슬람사라는 점 때문인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말리 제국과 송가이 제국이라는 인지도도 낮고 그리 길지도 않았던 역사가 게임 ‘문명’ 안에 등장하는 이유는 아마도 그 발흥과 멸망의 역사가 상징하는 장면들이 게임 ‘문명’ 이 표현하고자 했던 문명의 흥망성쇠를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역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풍부한 자원과 지형을 쥐고도 불안한 정치체제와 기술력 차이로 인해 한 순간에 멸망해 버린 이야기는 단지 남아메리카로의 유럽진출에만 있었던 특수한 이야기가 아니며, 오직 유럽권의 이야기에서만 나타나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곳의 수많은 역사들을 더 알아볼수록 기존의 역사 또한 보다 나은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다음 글에서는 서아프리카를 떠나 그저 관광지로만 알려져 있던 하와이 제국의 이야기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경혁 팩트체커  grolmarsh@gmail.com    최근글보기
게임칼럼니스트 겸 문화 비평가. 여러 매체에 게임 칼럼을 연재하고 있으며 대학에서 '게임과 인문학' 강의를 하고 있다. 게임이 사회를 매개하는 매체로서 지니는 의미를 발굴하고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이경혁 팩트체커  grolmars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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