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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산업혁명이 와도 당신은 여전히 불행할 것이다박재용의 '4차 산업혁명에 이의 있습니다' ① 산업혁명과 빈곤의 미래

21세기 들어서서 시작되는 이 변화를 ‘4차 산업 혁명’이라고 불러야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18세기 중반에 시작된 산업 혁명이 영주와 농노라는 두 계급에 기초한 봉건제를 허물고 자본가와 임노동자라는 두 계급에 근거한 자본주의를 형성한 것과 같은 의미의 체제 변화를 몰고 올 혁명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1차’ 산업 혁명은 1차라는 딱지를 떼고 ‘산업 혁명’이라는 고유명사로 지칭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본격화된 대량생산체제와 중화학공업, 전기 및 통신 기술의 발달을 2차로, 1970년대 중반부터 나타난 공장 자동화 및 사무 자동화와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정보통신 산업의 발달을 3차로 본다면 이들이 자본주의를 고도화하고, 그 당시의 자본주의체제를 새롭게 특징짓는 밑바탕이 되었다는 점에서 최초의 산업 혁명에 이은 지속되는 혁명이라 부르는 것도 약간의 호들갑이 없지는 않으나 아주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4차 산업혁명 또한 인공 지능과 초연결성을 기초로 자본주의 체제의 새로운 특징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2차와 3차에 비견할만한 변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처럼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라 할 수도, 독일처럼 인더스트리 4.0 (Industry 4.0)이라 할 수도, 일본처럼 사회 5.0이라 할 수도 있다. 그 명칭에 과도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다면 기존의 명칭대로 이 변화를 불러도 큰 문제는 없으리라 여겨진다.

오히려 문제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변화가 18세기 이후 기술적 변화가 만들어낸 대부분의 양상과 마찬가지로 자본에 절대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다. 일상으로 다가오는 혹은 예상되는 변화가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변화가 완성되기 전에 변화의 방향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필요를 느낀다. 어쩌면 늦었는지도 모르지만. 이 시리즈는 지금 현재의 변화에 대해, 변화의 바탕이 되는 기술이 무엇인지에 대해가 아니라, 그 변화가 만들어낼 자본의 판타지가 아니라, 우리가 겪어야할 불행과, 우려를 보여주기 위해 기획되었다. 이 시리즈의 대부분은 2018년 1월에 출간된 본인의 책 <4차 산업혁명이 막막한 당신에게>의 내용을 중심으로 다루어질 것이다. 물론 그 사이의 변화나 새로운 사실 등이 추가될 수 있다.

Industry 4.0 ⓒwikimedia

4차산업혁명이어도 당신은 여전히 불행할 것이다

원래 세상은 불공평했습니다. 최소한 신석기 혁명 이래로는 그러했죠. 왕과 귀족이 있었고, 노예와 농노가 있었습니다. 간혹 고대 그리스의 민주정 같은 이상한 정치체제가 나오기도 했지만, 그곳에서도 여자와 노예, 외국인들은 차별을 받았습니다. 초기 로마의 공화정도 그러했지요. 그 외의 사회에선 차별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프랑스 대혁명 이후 모든 사람은 성, 종교, 출신, 인종에 관계없이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는 ‘아주 당연한’ 선언이 나왔습니다. 최소한 지금 지구의 절반 정도는 그 인권 선언이 맞다고 주장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상징적인 선언은 대부분의 사회에선 투표를 하러 갈 때만 가능한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투표라도 잘 살고 못 사는 구분 없이 모든 개인이 각자 한 표씩 행사할 수 있게 된 것도 19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긴 투쟁 끝에 이룬 것이기에 그를 폄하하는 뜻은 없습니다. 다만 자본주의 사회가 본격화되면서 우리는 투표장에서만 서로 동등한 개인이 된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런 불평등은 20세기를 넘어 21세기가 되어도 해소가 되기는커녕 더 심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9.99% 즉 거의 10%의 가구가 월 소득이 평균 93만1637원입니다(통계청 자료). 흔히 소득 1분위라 하는 분들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중 월 100만원을 벌지 못하는 가구가 열 가구 당 1가구란 말이죠. 이들의 가구원수는 평균 2.38명입니다. 즉 둘이 살거나 아니면 셋이 사는 거지요. 가구주의 평균 연령이 65.5세로 전체 인구 중 가장 높습니다. 둘이나 셋이 사는 가구인데 그 중 최소한 한 명은 노인인 것이죠.

생활비에 못미치는 소득수준이 전체 절반

서울시 통계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2인가구의 평균 생활비는 230만원입니다. 3인가구의 경우 355만원이네요. 물론 번 돈을 다 쓰는 건 아닙니다. 총 소득의 약 85%를 쓰고 나머진 저축을 합니다. 어찌 되었건 2인 가구라고 쳐도 벌써 이들의 소득 두 배가 넘어가는 돈을 평균 생활비로 쓰는 겁니다. 별달리 낭비랄 것도 없습니다.

비용으로 보면 먹고 자는데 총 82만원이 듭니다. 그리고 생활용품을 사고 병원이나 약국을 가고 이자를 내는 데 29만원을 씁니다. 이 둘을 합하면 벌써 110만원이 넘네요. 물론 가난하면 좀 더 싼 걸 먹고, 좀 더 허름한 집에서 살아야지요. 감기 정도는 약 안 먹고 견디고 말이지요. 그래도 교통 통신비를 줄이긴 좀 힘듭니다. 교통비야 버스타고, 지하철 타는 건데 그걸 걸어 다닐 순 없잖아요. 물론 핸드폰이야 없는 살림이니 제일 싼 알뜰 폰으로 한다고 해도 말이지요. 그 비용이 25만원입니다. 합하면 136만원입니다. 지금 이 금액에는 용돈도, 교육비도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경조사비용이나 교양오락비도 물론이지요. 결국 반지하방으로 가고, 먹을 걸 줄이고 해서 겨우 맞추면 맞춰지려나요? 이런 분들의 경우 대부분 비정규직입니다. 따라서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저금할 여력이라곤 단 돈 만원도 없어 보입니다. 만약 편의점 알바생이라면 내일이라도 그만 나오라면 그만둘 수밖에 없지요. 혹은 오토바이 배달원이 있을 것이고, 식당의 주방에서 일하는 분도 있겠습니다. 파지를 주우러 다니는 노인분일 수도 있고요.

조금 범위를 넓혀보면 그 바로 위 10%, 즉 2분위가 버는 소득은 월 평균 181만2016원입니다. 180만 원 정도 버는 거지요. 이 경우 가구원수는 2.57명입니다. 즉 둘이 살거나 셋이 산다는 겁니다. 이 경우를 대비해 봐도 서울시 통계에 따른 2인 가구의 평균 생활비 230만원에 한참 모자랍니다. 3인 가족 기준에는 택도 없지요.

그리고 다시 그 위 10% 정도(정확히는 9.97%), 3분위가 버는 소득은 월 300만 원 정도 됩니다. 그런데 가구원수도 이미 2.82명으로 거의 3명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물론 4명인 경우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여기에 속하는 분들도 소득 전부를 써도 서울시 평균 3인 가족 생활비에 55만원이 모자라게 됩니다. 가구주의 나이도 어려져서 54세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엔 거의 대부분 학생인 자녀가 있을 터이니 소비의 폭을 줄이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 위 10%인 4분위도 3분위와 별 차이가 없습니다. 한 달 버는 돈이 319만 원 정도라서 3분위와 10만 원 정도 차이일 뿐입니다. 5분위로 가야 비로소 한 달 소득이 369만원으로 서울시 평균 3인 가족의 생활비를 10만 원 정도 상회합니다. 물론 가구원수도 늘어서 평균 3.18명입니다. 서울시 기준 4인 가족 평균 생활비 465만원에는 한참 못 미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축을 아니 할 순 없을 겁니다. 가구주의 평균 연령이 47세 정도로 50도 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초등에서 대학 사이의 자녀가 한 명 정도는 있을 터이고, 미래에 대한 대비를 하지 않을 수 없을 때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10월 11일 서울 마포구 에스플렉스센터 공개홀에서 열린 4차산업혁명 위원회 출범 및 제 1차 회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빈곤' 4차산업혁명이 해결할 수 있을까

여기까지가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입니다.

이 통계들이 나타내는 또 하나의 시사점이 있지요. 5분위에서 1분위로 갈수록 가구주의 연령이 점점 높아집니다. 그런데 더 자세히 보면 비교적 여유가 있다는 6분위에서 10분위까지는 가구주의 연령에 별 변화가 없습니다. 모두 평균 47~48세입니다. 물론 이는 평균이니 더 젊은 가구주도 있을 것이고 더 나이든 분도 있을 겁니다. 흔히 하는 말로 이미 돈이 있는 집들은 다들 비슷하다는 거지요. 하지만 돈이 없고 배운 게 없는 분들은 나이가 들수록 직장에서 밀려나고, 더 소득이 적은 직종으로 옮길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1분위 쪽으로 갈수록 연령대가 높아지는 거지요.

‘내 주변에선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이 안 보이던데, 정말로 그렇게 많아요?’라고 의문을 가진 분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당신이 보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당신의 눈에 띠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의 가난한 사람들은 1960년대의 가난한 사람처럼 거지 행색을 하거나, 땟국물이 줄줄 흐르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비록 동대문 시장이나, 동네 주민회관 바자회에서 사더라도 남들 보기에 괜찮아 보이는 옷을 입고 다니죠. 아무리 가난해도 휴대폰은 들고 다니고, 잘 씻고 다니기도 합니다. 그래서 당신 눈에 띠지 않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만약 그 가난한 사람들의 부류가 아니라면 높은 확률로 당신의 지인들도 가난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닌다면 당신의 동료들도 비슷하게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고, 당신이 좋은 대학을 나왔다면, 먹고 살만한 집안일 확률이 높은 것처럼 당신의 동창도 먹고 살만한 집안 출신일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좋은 대학을 나왔다면, 마찬가지로 괜찮은 고등학교-자사고나 외고, 과학고, 혹은 강남이나 기타 비평준화지역의 일류고등학교를 나왔을 확률이 대단히 높고, 당신의 중고등 동창들도 다들 잘 사는 집 자제들일 확률이 높습니다. 당신이 의도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배제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환경이 배제하는 것이지요.

만약 당신이 비정규직 노동자의 아들이라면, 높은 확률로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한 반에 열댓 명 이상을 몰아넣고, 국영수과사 다섯 과목을 가르치면서 월 20만 원 정도의 싼 수업료를 받는 동네 보습학원에 다녔을 것이고, 서울에 살았다면 강북구나 중랑구, 동대문구, 관악구 등의 집값이 싼 동네에 살았을 것이며, 대부분 공립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고등학교에선 소위 일류 대학을 가는 경우는 매년 한 손가락에 꼽을 정도니, 당신이 만약 공부를 그래도 잘 했다면 서울의 평범한 4년제를 갔을 것이며, 중상이라면 서울의 2,3년제 대학이나 지방 대학을 갔을 터이고, 그 이하라면 경기도의 전문대학에 진학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차상위 계층에게 주어지는 장학금으로 등록금에 대한 부담은 덜었지만, 차마 부모님께 용돈을 달라고 손 벌리긴 어려우니 아르바이트를 했을 것입니다. 열심히 돈을 모아 3박 4일 정도 가까운, 그래서 비행기 삯이 싼 해외에도 한 두 번은 나갔겠지요. 그리고 취업을 합니다만, 당신이 원하는 대기업의 사무직은 언감생심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이공계라면 대기업의 생산직 노동자로라도 취업을 할 수 있다면 다행일 것입니다. 대부분의 당신은 부모와 비슷하게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어있을 것이고, 부모의 가난은 당신에게서 대물림되겠지요.

그래서 이 글을 읽는 20~30대의 당신 중 32.5%는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결혼을 포기합니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당신이 사랑하는 이는 당신과 비슷한 처지이기도 하지요. 비정규직 둘이 만나 아이를 기르는 건 너무 가혹한 일임을 당신도 잘 알기에 사랑하는 이와 같이 살더라도 아이는 낳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는 비율도 35.1%입니다. 사실 이 통계를 보고 놀랐습니다. 아니 결혼하겠다는 것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출산을 하겠다는 사람이 64.9%난 된다고? 하지만 경제적 부담 때문에 출산이 꺼려진다는 비율은 74.9%입니다. 낳고는 싶지만 제대로 키울 자신이 없는 거지요.

2017년 4월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에서 조사한 4차산업혁명에 대한 국민인식.

'가난의 대물림' 4차산업혁명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개인은 우연히 불행하거나 행복할 수 있지만 사회는 확률적으로 그래서 필연적으로 불행하거나 행복합니다. 통계가 말해줍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저소득계층의 80% 정도가 계속 가난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선 만약 당신이 가난하다면, 당신은 행복하기 힘들고, 당신이 혹시 아이를 낳는다면 아이도 행복하기 힘들 거라고요. 앞서 나열한 당신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왔던 과정을 여전히 아이도 겪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당신은 최소한 20년 이상의 인생을 아이를 위해 바쳐야 합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려는 겁니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먼저 2~3년 동거를 해보세요. 그래서 같이 잘 살 마음이 들면 계속 그냥 동거를 하세요. 여러 이유 때문에 결혼을 결심하게 되더라도 꼭 같이 살아보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되도록 아이를 낳지 마세요. 이 시대에 가난한 당신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건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은 모험입니다. 당신이 물려받은 가난을 아이에게 물려주지 마세요. 그리고 아이가 없다면, 당신은 좀 더 당신에게 좋은 일을 해줄 수 있습니다. 개 같은 상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직장을 때려 칠 수도 있고, 당신이 즐기는 취미로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사회가, 정부가 이야기하는 한국의 미래 따윈 그 얘기 하는 사람들에게 맡기세요. 그들이 앞으론 가난한 사람도 잘 살 거라고 하면, 실제로 잘 살게 만드는 게 먼저라고 하세요. 그러기 전엔 그들을 믿지 마세요. 자손을 낳는 건 돈 많은 집 자식에게 미루세요. 20년 쯤 후 우리나라에 돈 많은 집 아이들만 득시글거리겠죠. 나라도 참 좋겠네요.

여러분은 절대 출산이나 양육이라는 모험을 하지마세요. 모험은 자신이 좋아서 자신이 대가를 치룰 각오로 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강요한다고, 좋은 말로 구슬린다고, 잔돈푼 지원한다고 할 일이 아니에요. 다시 한 번 당부 드립니다. 당신이 행복한 것이 당신에겐 가장 중요합니다. 4차 산업혁명이 성공리에 완수되든 말든 말이지요.

박재용 팩트체커    chlcns@hanmail.net  최근글보기
과학저술가. <경계 생명진화의 끝과 시작>, <짝짓기 생명진화의 은밀한 기원>, <경계 배제된 생명의 작은 승리>, <모든 진화가 공진화다>, <나의 첫 번째 과학공부>, <4차 산업혁명이 막막한 당신에게>, <과학이라는 헛소리> 등 과학과 사회와 관련된 다수의 책을 썼다. 현재 서울시립과학관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박재용 팩트체커  chlcn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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