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불법 불인정' 대법 판결은 법리적으로 틀렸다

  • 기자명 최윤수
  • 기사승인 2018.08.16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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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수의 법률 팩트체크] 기존 판례 '아전인수' 해석에 일관성 결여

1978년 6월 당시 대학생이었던 최모 씨는 신림동의 하숙집에서 중앙정보부 소속 요원들에게 연행됐다. 중정 요원들은 영장도 없이 최 씨를 남산 중앙정보부 건물로 끌고 가 20일 간 감금하면서 최 씨가 친구에게 유신 체제를 비판하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는 등의 혐의사실을 조사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정 시부터 일관되게 법관의 영장을 발부받아야 체포, 구속이 가능하고 예외적인 경우 사후영장을 받도록 천명하여 영장 없는 구금을 금지했으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영구 집권을 위해 대통령의 긴급조치권을 규정한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유신헌법을 반대하는 문서만 써도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을 할 수 있는 긴급조치를 발령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참조 : 양승태는 왜 '박정희 긴급조치 위법' 판결에 민감했나).

최 씨는 다행히 기소되지 않고 풀려났지만, 긴급조치에 근거해 단지 독재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영장도 없이 구금한 것이 적법할까? 대법원은 유신 체제 하에서 일관되게 긴급조치의 합헌성을 인정했다. 특히 사법살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인혁당 재건위 사건에서 대법원은 긴급조치의 합헌성을 인정하여 피고인 8명에 대해 사형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고, 바로 다음날 새벽 사형이 집행됐다(대법원 1975. 4. 8. 선고 74도3323 판결). 사법농단 사태 전까지 사법부 최대의 흑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긴급조치 9호 발령을 1면에서 다룬 조선일보.

이로부터 30년이 훨씬 지난 2010년 12월 16일에서야 대법원은 기존의 견해를 변경하여 대통령 긴급조치는 헌법 상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라서 위헌이라고 판단하고, 위헌·무효인 긴급조치로 처벌된 사람을 무죄로 인정하는 전원합의체 판결을 선고했다(대법원 2010도5986 전원합의체 판결).

나아가 헌법재판소는 2013년 3월 21일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 긴급조치는 입법목적의 정당성이나 방법의 적절성을 갖추지 못하고, 참정권, 표현의 자유, 집회·시위의 자유, 영장주의 및 신체의 자유, 법관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 학문의 자유 등을 침해하여 위헌이라고 결정했다(헌법재판소 2010헌바132 결정). 과거 대법원에서는 유신헌법 제53조를 근거로 대통령 긴급조치가 합헌이라고 판단했으나, 헌법재판소는 유신헌법 제53조는 이미 기본권을 지나치게 침해하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훼손하였다는 반성에 따라 폐기된 것이므로 긴급조치의 위헌성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보았다.

최 씨는 대법원에서 긴급조치의 위헌성을 인정한 뒤인 2011년 4월 22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공무원인 중앙정보부 요원의 불법구금과 박정희 대통령이 위헌인 긴급조치를 발령한 자체가 모두 불법행위이므로,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에 따라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1심에서는 최 씨가 패소했지만, 항소심 판결은 달랐다. 우선 중정 요원의 불법 체포, 구금은 불법행위라고 인정했다. 또한 긴급조치 제9호는 발동 요건 및 목적상의 한계를 벗어나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헌법상의 기본질서인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반하는 것이고, 유신헌법에 의하더라도 그 내용이 헌법의 문언에 명백히 위반되므로, 대통령이 긴급조치 제9호를 발령한 행위는 대통령의 헌법수호의무를 위반한 것으로서 역시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인정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피고(대한민국) 패소를 파기하고 이 사건을 대전지방법원으로 환송한다. 최 씨에 대한 상고심 판결이 이번 사법농단 사태에서 재판거래 의심 사례로 언급되는 대법원 2012다48824 판결(재판장 박보영, 민일영, 김신, 주심 권순일)이다.

JTBC 화면 캡쳐

법원행정처 문건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방안'에는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한 사례로 대법원 2012다48824 판결이 등장한다. 그러나 양승태 전 대법원장뿐 아니라 대법관들, 조사위원회까지 재판거래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정연한 논리를 가진 판결이라면, 문건 내용에도 불구하고 법과 양심에 의한 판단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 2012다48824 판결의 내용은 법리적으로도 의문점이 많다. 우선 긴급조치 제9호가 사후적으로 위헌·무효로 선언되었더라도,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대통령은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하여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그 근거로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을 언급했다.

대법원 2004다33469 판결의 사안은, 1951년경 국군이 공비 토벌을 명분으로 민간인을 학살한 거창 사건과 관련하여 국회가 특별법을 제정하지 않는 것이 불법행위인지 문제된 것이었다. 당시 대법원은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의회민주주의 하에서 국회는 다원적 의견이나 각가지 이익을 반영시킨 토론과정을 거쳐 다수결의 원리에 따라 통일적인 국가의사를 형성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국가기관으로서 그 과정에 참여한 국회의원은 입법에 관하여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관계에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대응하여 법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다만, 예외적으로 국회의원의 입법 내용이 헌법의 문언에 명백히 위배됨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굳이 당해 입법을 한 것과 같은 특수한 경우에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논리의 일관성이 있으려면 대법원은 2012다48824 사건에서도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이 헌법의 문언에 명백히 위배됨에도 불구하고 굳이 발령을 한 것이라면 불법행위라고 인정했어야 한다. 그러나 대법원은 입법행위가 예외적으로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경우에 대한 법리는 인용하지 않았다. 긴급조치는 헌법의 문언에 명백히 위배되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예외에 대한 법리는 인용하지 않았다고 충분히 의심해 볼 만한 상황이다.

또한 대법원은 2014. 10. 27. 선고 2013다217962 판결(재판장 조희대 신영철 주심 이상훈, 김창석)에서는 위헌, 무효인 긴급조치로 인해 부당하게 처벌된 사람의 국가배상청구권은 긴급조치관련 형사판결이 재심으로 무죄확정될 때까지는 권리를 행사하는데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그 이후로 소멸시효가 기산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논리적으로는 항소심 판결(대전지방법원 2012. 5. 3. 선고 2012나974 판결)처럼 최 씨의 국가배상청구권은 대법원에서 긴급조치가 위헌, 무효라고 판단을 변경하기 전까지는 행사하는데 법적인 장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대법원 2012다48824 판결에서는 긴급조치가 합헌이고 이에 근거한 처벌이 적법하다는 판례가 확고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최 씨가 긴급조치의 위헌을 전제로 해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했어야 한다고 본 셈이다. 솔직히 법리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했다는 사법부의 변명이 도무지 신뢰가 안 가는 이유는 바로 허술한 판결의 논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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