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동기부족이 ‘반둥참사’ 가져왔다

  • 기자명 김지석
  • 기사승인 2018.08.20 09:0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시안게임 축구 반둥 대참사, 원인은 방심.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대한민국 U-23(=23세 이하) 축구대표팀이 지난 17일 밤 세계 랭킹 171위 말레이시아와의 예선 2차전에서 1대 2로 패했다. 첫 경기였던 바레인전의 6대 0 압도적 승리 이후 이틀만에 한 수 두 수 아래의 팀에게 ‘반둥 참사’ 라고 불리는 치욕적 패배를 기록한 것이다.

장기간의 리그를 치르며 각종 컵대회와 챔피언스 리그 등 수많은 토너먼트에도 함께 참가해야 하는 프로팀에서는 소속팀 선수들 간의 기량차가 적고 선수단 로스터의 깊이가 뒷받침되는 경우, 로테이션(=팀을 마치 두 개의 분리된 팀처럼 선발 선수진을 나누어 연이은 경기에 교대로 출전시키는 운영방법)을 활용해 선수들의 체력과 컨디션을 관리해 준다. 그러나 이와 달리,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과 같은 단기전에서는 다음 라운드 진출이 확정된 후에나 조심스럽게 적용하는 것이 로테이션이다. 우리 대표팀은 1차전 쾌조의 경기력에도 불구하고, 예선 2번째 경기만에 어떤 것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골키퍼까지 포함한 주전 선수 6명을 선발 라인업에서 교체하는 로테이션을 감행하였고, 코칭스탭에서 시작된 이러한 자만심은 선수들의 방심과 안일한 플레이로 이어지며 결국 대회 최대 이변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앞으로의 경기에서 반전하는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으나, 금번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이미 한국 축구사에 깊은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KBS 화면 캡쳐

왜 안일했나. 군면제만이 현실적 목표.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에게 군면제라는 병역 혜택을 부여하는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우리 U-23 축구대표팀은 손흥민이라는 슈퍼스타를 와일드 카드로 포함시키며 오로지 우승만을 유일한 목표로 삼았다. 더욱이, 연령 제한과 관련하여 손흥민이 군면제를 위해 참가할 수 있는 마지막 국제대회라는 점에서 금번 아시안게임 축구대표팀을 바라보는 축구팬들의 현실적 관심은 대회 성적 자체보다는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을 통한 대표팀 에이스 손흥민의 군면제 획득에 집중되었다.

또 다른 와일드카드 발탁 선수인 황의조의 선발 과정에서는 논란도 있었다. 최근 J리그에서의 빼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과거 대표팀에서의 미진한 활약을 근거로 아시안게임에 참가할 만한 기량이 아닌 선수를 코칭스탭이 인맥으로 발탁했다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었다. 이와 유사한 논란은 아시안게임 야구대표팀에도 존재한다.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포함된 오지환 등 일부 선수들이 리그에서 뚜렷한 성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군미필이라는 이유로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병역혜택 기회의 특혜를 받고 있다는 형평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아시안게임보다 참가국 수준이 높고 권위도 인정받는 세계야구선수권에는 구단과 프로선수들이 참가를 꺼려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한가지, 우승시 병역혜택이 주어지지 않아서다. 

이렇듯 프로선수들이 대표팀을 구성하고 있는 축구, 야구 등 일부 인기 스포츠 종목에서는 유독 군면제와 관련된 다양한 잡음들이 발생하는데, 이러한 논란의 기저에는 ‘아시안게임에 참가하는 축구, 야구 대표팀은 웬만해서는 금메달을 딸 것이다’ 라고 하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주요 경쟁국들이 우리와 같은 ‘베스트 팀’을 내보내지 않고, 아시안게임을 자국내 각급 팀들의 다양한 경험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어가고 있다는 데 그 배경이 있다.

금번 아시안게임에 참가하고 있는 일본 축구 대표팀은 U-23 대표팀이 아닌 U-21 대표팀이다. 활용할 수 있는 3장의 와일드카드(=팀별로 3명의 23세 이상 선수를 포함시킬 수 있는 규정)도 사용하지 않았다. 2년 후 개최되는 2020 도쿄 올림픽에 U-23 대표선수로 출전할 현재의 U-21 유망주들의 경험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심지어 우리 축구대표팀이 1차전 6:0 대승을 거두었던 바레인 역시 U-23이 아닌 U-21 대표팀이었다.

바레인에 6:0 대승을 거둔 한국 축구 대표팀은 말레이시아에 패배했다. KBS 화면 캡쳐.

일본은 금번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에도 프로선수가 아닌 사회인 야구선수들을 출전시켰다. 일본은 최근 아시안게임에 지속적으로 아마추어 선수들을 출전시켜오며, 자국 내 야구의 저변 확대와 유지를 위한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한국과 수위를 다툴 대만 역시 금번 대회부터 야구 종목에 프로선수와 아마추어 선수를 함께 출전시키고 있다.

결국, 우리 대표팀만이 축구, 야구 종목에 생산가능한 ‘베스트 팀’을 구성하여 대회 결과에 지극정성을 쏟고 있는 것인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병역 혜택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선수들에게 있어 아시안게임 참가의 현실적 이유가 바로 ‘군면제 혜택’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군면제 획득이라는 확고한 목표가 걸린 대회에서 어떻게 ‘반둥 참사’와 같은 안일한 플레이를 할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겠다. 그런데 선수들의 실질적 목표가 군면제라면, 그 결과만 획득하면 된다는 잠재의식이 바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즉, 월드컵과 같은 전세계인이 주목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무대’도 아닌, 23세 이하의 아시아 지역 선수들만 참가하는, 심지어 21세 이하 팀들도 다수 출전한 ‘만만한’ 무대에 ‘그저그런’ 선수들을 상대로 ‘적절히’ 뛰며 ‘효율성 있게’ 결과를 얻고 군면제에 성공하겠다 라는 생각이 대회에 참가한 어린 선수들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어느 선수에게 각오를 물어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겠다고 말하고는 있으나, 그들의 현실적 체감에서 오는 플레이는 느슨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야구의 경우, 한국팀과 정상적인(?!) 경기를 펼칠 수 있을 팀은 일본, 대만에 불과할 것인데, 이 팀들도 사회인 선수들을 대회에 출전시켰으니,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금메달을 따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인 것이다.

2002년 월드컵 8강전에서 스페인을 이긴 뒤 환호하는 한국 축구국가대표팀. 참가국의 수준이 높은 대회에서의 실질적 성과에 병역혜택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수준높은 대회 '의미있는 성과'에 병역 혜택 고려해봐야

이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바로 아시안게임이 과거와 같이 대표선수들의 국위 선양의 무대가 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예전 80-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초에 올림픽만큼이나 열광했던 아시안게임에 대한 열정과 감동이 여전하냐는 것이다. 또 다른 말로, 아시안게임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하는 프로 선수들에게 군면제 혜택을 부여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필자는 종목별로 국민들이 인정할 수 있는 각각의 현실적 성과와 성적들로 선수들에게 군면제 혜택을 부여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굳이 종목에 상관없이 일괄적인 기준을 적용할 필요가 있을까. 이를 테면, 축구는 월드컵 16강, 올림픽 4강, 아시안컵 결승진출 시 참가한 선수들에게 군면제 혜택을 부여하고, 야구는 올림픽, WBC 결승 진출 시 군면제의 혜택을 부여하며, 양궁은 올림픽, 세계선수권 메달 획득 시 군면제 혜택을, 육상은 국제대회 입상을 못하더라도 한국신기록 혹은 아시아신기록 달성 시 군면제 혜택을 부여하는 등 종목별로 목표하는 지향점을 고려하여 군면제의 혜택을 다양하게 부여한다면 더 효과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또한 과거 존경받는 선수들이었던 박찬호, 이승엽, 박지성 등과 같이 소속된 리그에서 누구나 인정할 만한 위대한 업적을 남기며, 그 인성이나 영향력에서 절대적 가치를 인정받는 선수들에게는 국제대회 성적과 별도로 병역의 혜택을 부여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약 2년마다 종목별 군면제 해당 성적에 대한 기준을 협의하고 선정하는 병역법관련자, 대한체육회, 체육학교수, 언론인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개최되고, 그들의 결정사항이 투명하고 실제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법적 시스템이 갖추어 진다면 어떠할까. 길어야 10여년에 불과한 선수생활 기간동안 자신의 꿈을 이루어내야 하는 선수들에게 전성기 시절 입대가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다소 주관적이고 이상적일 수 있는 제안이지만, 스포츠 선수들의 병역 혜택 이슈에 있어서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방법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대표선수들에게 우승과 1위의 성적만을 강요하지 않는다. 결과물에서만 기쁨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선수들이 우리 국민을 대표하고 대신해서 세계 무대에 나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이제 결과가 다소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박수를 보내고 환호하며 기쁨과 만족을 느낄 준비가 되어 있다.

아울러, 아시안게임 축구 대표팀 역시 ‘반둥 대참사’를 통해 단한번의 자만이 가져다 주는 ‘쓰디쓴’ 결과의 맛을 보았으니, 이제 남은 기간은 제대로 집중하여 극적인 반전 스토리를 써내려 가는 감동의 대회로 마무리해 주기를 기대하며 끝까지 응원하겠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