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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바야시 우라라 "미디어는 진실과 무관한, 관심 끌 이야기 만들어 낸다"[홍상현의 인터뷰] <그녀에게 죄가 없다> 주연 마쓰바야시 우라라의 영화 인생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 리셉션에서 오가타 다카오미 감독의 화제작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The Hungry Lion)>의 주연배우, 마쓰바야시 우라라와 나눈 대화는 특별했다.

필자가 프랑스어 감탄사를 연상시키는 이름에 대해 질문을 던지자 그녀는 19세기말 주로 서정적인 곡들을 발표해 대중에게 사랑받은 음악가 타키 렌타로가 1900년 발표한 '꽃'이라는 노래의 가사 '봄날의 아름다운 스미다 강'에서 따온 것이라고 차분하게 설명했다. ‘왠지 시를 좋아하실 것 같다’고 하자, 이번에는 “하이쿠(俳句ㆍ일본 고유의 짧은 시가 형태. 5·7·5의 17음 형식으로 이루어진다)에 조예가 깊은 조모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단 한 줄의 문장으로 무엇을 전할지 고민하는 문학의 장르가 자신만의 표현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것.

그리고 대화의 주도권은 어느새 그녀에게 넘어갔다.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는 사실만큼이나, 체재기간동안 좋아하는 한국영화를 원 없이 볼 수 있다는 사실에 고무된 그녀가 <밀양>, <오아시스>, <살인의 추억> 등 이창동, 봉준호 감독의 작품들에 대해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며 많은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며칠 뒤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는 아시아영화인들이 주는 넷팩어워드(NETPAC Award)를 받았다.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지포니영화제(Giffoni Film Festival) 참석을 위해 서둘러 출국한 오가타 감독의 GV는 그녀가 도맡았다. 무척 상냥하면서도 겸허한 어조 속에 ‘25세, 데뷔 8년차’라는 물리적 시간을 넘어서는 전문성이 번득이던 것을 생각하면 무리는 아니었다. 도쿄에서 아시아와 구미의 국제영화제를 누빈 끝에 9월 15일 도쿄의 예술영화전용관 떼아트르 신주쿠(Theatre Shinjuku) 개봉을 앞두고 있는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의 스기모토 히토미(극중 이름), 혹은 마쓰바야시 우라라와 7월 12일 부천에서의 대화를 이어가보기로 했다.

<그녀에게 죄가 없다> 주연 마쓰바야시 우라라. 이토 미유키 촬영

홍상현:

당신에게 받은 가장 강렬한 인상은 ‘말할 수 없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마쓰바야시 우라라:

애초에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 자체가 영화를 좋아해서였다. 전혀 특별하지 않은 가정환경이었지만 부모님이 워낙 영화를 좋아하신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보여주신 스필버그 영화들로 시작했는데, 초등학생 시절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꿈(Dreams)>을 본 이후부터 ‘고전’을 즐겨보게 되었다. 구로사와나, 기노시타 케이스케, 오즈 야스지로의 작품들. 물론 최근에 만들어지는 작품들 중에서도 좋은 것들이 많지만, 서사 자체의 힘을 느낄 수 있다는 매력이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자아를 형성하는 데도 적잖은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막상 학교생활을 해보니 나 같은 아이가 많지 않아 친구를 많이 사귀기 힘들기도 했다.

홍상현:

그러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열여덟 살 무렵부터 모델에이전시에 스카우트되었다. 여기서 또한 재미있는 점이 또래의 아이돌 연기자들처럼 연기교습 등을 받기보다 대학에 가서 인문학을 공부했다는 사실이다.

마쓰바야시 우라라:

역사를 전공했다. 영화, 그리고 연기에 대해 좀 더 넓은 범주에서 이해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 학교도 예컨대 국사나 세계사가 아닌 역사학(the historical sciences) 전반을 즉 미술사, 영화사 같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공부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그렇다 보니 고고학에도 관심이 많았고, 졸업논문 주제는 영화사였는데, 지도교수의 전공에 따라 영화 속에 나타나는 복식사를 다뤘다. 구체적으로는 서양의 옷과 그 배경이 되는 역사에 대해서. 특히 오드리 헵번이라는 배우에 주목했는데, 제인 오스틴(Jane Austen)의 원작을 영화화한 <센스 앤 센서빌리티(Sense And Sensibility)>나 <오만과 편견(Pride and Prejudice)> 같은 낭만주의 스타일의 작품을 좋아하는 개인적 취향과 관련이 있었다. 물론 배우는 판타지와 리얼리즘의 양날개를 가진 존재지만.

홍상현:

올해 초 재일교포 작가 츠카 코헤이의 연극 <뜨거운 바다>에도 출연했다. 한국에서도 1985년 초연된 이래 지금도 사랑받고 있지만, 츠카 선생의 성정만큼이나 격정적인 작품이라 여간한 배우라면 엄두를 내기 힘든 작품인데.

마쓰바야시 우라라:

말씀하신 대로 <뜨거운 바다>는 상당한 수준의 연기를 필요로 하는 작품인데 스케줄이 촉박했다. 혼자 소화해야할 대사만 30페이지가 넘는 상황에서 설 연휴까지 포함해 채 한 달이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잠 잘 시간까지 줄여가며 준비해야 했다.

하지만 배역에 깊은 애착을 느끼면서 몰입할 수 있었는데, 인격적으로 부침이 심한, 즉, 상황에 따라 감정의 변화가 격렬하다는 점에서는 평소 여유 있는 성격인 나와 달랐지만, 세상살이에 서툴다는 공통점 때문이었다. <뜨거운 바다>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모두들 나름의 ‘결여’를 안고 살아간다. 그런 면에서 연기적으로도 무척 공부가 되었다.

홍상현:

이 시점에 <뜨거운 바다>에서 당신이 연기한 미즈노 토모코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 데는 이유가 있다. ‘야만적 사회에 짓밟히는 무력한 개인’이라는 면에서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의 히토미와도 일맥상통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두 작품에서 모두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오가타 감독의 연출방식은 어땠나?

마쓰바야시 우라라:

일단은 상대역을 맡은 배우와 깊이 교감하면서 리허설을 많이 했다. 예컨대 어떤 상황이 주어지면 그 안에서 배우들이 각자의 연기를 통해 하나의 장면을 완성해내는 방식으로. 어떤 내용을 촬영하느냐에 따라 표현해야 하는 감정에 대해 대략적 전제는 있었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지적이나 요구가 가해지지는 않았다. 감독이 루이스 부뉴엘(Luis Bunuel)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 리얼리즘에 큰 비중을 두어서였을까. 이 작품에 출연하기 전까지 유럽영화를 그렇게까지 즐겨 보는 편은 아니었는데, 오가타 감독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유럽영화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 일본 개봉 포스터. ⓒ2017 The Hungry Lion

홍상현:

바로 그 ‘리얼리즘’과 연관되는 질문인데, <그녀에게는 죄다 없다>는 관객에게 일반적인 의미의 아름다움을 어필하고 싶어 하는 배우의 욕망 정 반대편에 서있는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주저되지 않았나?

마쓰바야시 우라라:

오히려 그 반대였다. 시니라오를 읽자마자 이 작품에 반드시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떻게 해야 캐스팅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래서 영화의 모티브가 된 회화, '굶주린 사자가 영양을 덮치다'를 보려고 마침 도쿄에서 개최되던 루소(Henri Rousseau)의 작품전까지 찾았다.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의 주인공은 영화 전편에 걸쳐 온갖 괴로운 감정들을 다각적으로 보여주는데 내가 그중 핵심으로 파악한 것은 ‘고독감’이었다. 모두에게 외면당하지만, 누구도 손을 내밀어주지 않을 때 느끼는. 나 역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으니까. 집단 속에서 느끼는 고독감은 가장 힘든 감정이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사람들과 다른 면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종종 배제를 경험한다. 나도 중학교 2학년 시절 이지메를 경험한 일이 있다. 어느 날 학교에 갔더니 모두가 나를 투명인간처럼 대하는 거다, 무엇보다 충격적인 점은 그 타겟이 돌고 돈다는 사실이었다. 예컨대 어제의 가해자가 오늘의 피해자가 되는 식으로.

홍상현: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어떻게 극복했나.

마쓰바야시 우라라:

그때의 나를 구원해준 것이 영화였다.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를 보는데, 내가 경험하고 느끼는 세계를 넘어선 어떤 곳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리고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살다>를 보면서 ‘그래, 살아야지’하는 결론을 내렸다.

홍상현:

작품이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메스미디어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거세진다. 주인공으로써 평소 고민하던 바를 연기에 담아낼 여지도 많았을 것 같다.

마쓰바야시 우라라:

그렇다. 평소 매스미디어가 실체적 진실과 무관하게 대중이 관심을 가질만한 이야기가 만들어내고 있는 것 아닐까 싶을 때가 많았거든. 이를테면 방송이나 신문의 보도에서 단정적으로 보여주던 인물의 이면을 접하게 되면서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다던가. 그런 맥락에서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는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 지극히 명확해 보이는 사건이라도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물론 생각에서 멈추지 말고 공부를 해야겠지만.

홍상현:

모델 활동까지 포함해서 대중들 앞에 서는 일을 한 지 8년째다. 그런 당신에게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라는 작품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마쓰바야시 우라라:

주연으로 캐스팅이 된 후 영화가 관객들을 만나게 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2년, 바로 그 4분의 1이었다. 이제 스물다섯이고 일평생 배우로 살고 싶은 포부를 생각하면 무척 짧은 시간이랄 수도 있겠지만,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감이다.

감독은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를 본 관객들에게 “영화 속 사건이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는 남의 일로 생각되지 않도록 ‘죄책감’, ‘불쾌감’이 남았으면 한다”고 말했지만, 그 한편으로 내게는 크나큰 성장의 계기가 된 작품이다. 관객 여러분, 그리고 오가타 감독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마쓰바야시 우라라. SHREW 제공

1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필자는 <그녀에게는 죄가 없다>라는 작품 하나에만 4년의 시간을 투자한 완벽주의자, 오가타 감독이 그녀에게 깊은 신뢰를 보여준 이유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녀가 사람들이 원하는 ‘단지 그것(just it)’을 넘어 ‘그 이상의 어떤 것(something more)’을 고민할 줄 아는 사람이었끼 때문이다.

서울에서 한국 배우들이 연기하는 <뜨거운 바다>를 보고 싶고, 한국 감독들과 작업할 기회도 모색하기 위해 한국어를 공부하려 한다는 그녀는 예매해둔 영화를 보러 영화관으로 향하기 직전까지 배우로서 다양한 연기의 영역에 도전하는 한편, 언젠가 자신의 작품을 직접 연출해 볼 요량으로 구상중인 작품들에 대해 말해주었다. 문득 다음에는 감독으로 한국을 찾은 그녀를 인터뷰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물론 한국 감독의 작품에서 그녀의 연기를 보게 된 이후의 일이겠지만.

홍상현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사회과학과 영화이론을 넘나드는 전문적 식견을 갖추고 한ㆍ일 두 나라 매체에 분석 기사를 쓰고 있다. 파리경제대 교수 토마 피케티와 『21세기 자본』 프로젝트를 진행한 도쿄대 시미즈 연구실 출신으로, 현재도 같은 대학 이미지인류학연구실(IAL)의 네트워크 멤버다. 번역가로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의 논쟁적인 저작을 소개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램 어드바이저이기도 하다.

홍상현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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