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통치행위 단죄' 흐름 역행한 양승태 대법의 긴급조치 '면죄부' 판결

  • 기자명 최윤수
  • 기사승인 2018.08.23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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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의 재판 거래 의혹은 더디지만 조금씩 그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외교부 압수수색 결과 일제강제징용 사건 대응을 위해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이 윤병세 외교부 장관, 차한성 법원행정처장과 1차 회동을 했을 뿐 아니라 박병대 후임 법원행정처장, 조윤선 청와대 정무수석과도 2차 회동을 한 정황이 포착됐다. 일제강제징용 사건은 판결이 지연되고 있는 상태지만, 더 나아가 재판의 결과가 부당하게 뒤바뀐 사건은 없을까.

재판거래 의혹 '긴급조치 면죄부' 대법 판결은 최근 판례에서 역행

가장 의심스러운 것은 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이다. 대법원은 항소심을 뒤집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헌법에 근거해 긴급조치권을 행사한 것은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로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에 대해서 불법행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의심이 가는 첫 번째 이유는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 설득방안'에 사법부가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협조해 왔다는 사례로 언급된 점이다. 두 번째로는 법원행정처에서 이 판결과 다른 판단을 한 판사들의 징계를 검토할 만큼 무리하게 관철시키려고 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판결은 긴급조치권 행사를 통치행위로 보아 사법심사를 자제한 것으로 해석되는데, 통치행위에 대한 판례의 흐름에서 이유 없이 역행해서다.

통치행위.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최고기관의 행위로서 그 성질상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기에 부적합한 행위를 의미한다. 과거 국왕, 의회, 국가의 행위를 통치행위로 인정하여 사법적 심사를 배제하였으나, 민주주의의 발전에 따라 점차 그 인정 범위가 축소되는 추세이다.

우리 사법부는 그동안 통치행위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해 왔을까.

1974년 1월 8일 김성진 당시 문화공보부 장관이 긴급조치 1호를 발표하는 텔레비전 영상.

독재정권 시절엔 정치권 '통치행위' 폭넓게 인정

대법원 종합법률정보에서 검색되는 판결 중 통치행위를 인정한 최초의 사례는 서울고등법원 1966. 2. 24. 선고 65구246 제1특별부판결이다. 당시 한일협정의 국회 비준 과정에서 한일간조약과제협정비준동의안심사특별위원회는 토론을 생략하고 재청도 없이 위원 28명 중 단 2명이 찬성하여 거수하였음에도 위원장이 가결을 선포했다. 또한 야당 의원 전원이 사퇴서를 제출하여 여당만이 있는 1당 국회에 산정하여 의결했다. 원고들은 특별위원회 의결은 존재하지 않고, 본회의 의결은 헌법 제7조 제1항에 위배되어 무효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울고등법원은 국회 특별위원회 및 본회의 결의는 국회가 국정의 최고기관의 하나로서 고도의 자주성과 자율성에 의하여 그의 책임아래 종국적으로 처리한 의회행위이므로 통치행위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법적 쟁송에 의하여 유효, 무효의 판단이 가능하더라도 법원의 심사권 밖에 있기 때문에 그 판단은 주권자인 국민에 대하여 정치적 책임을 지는 정부 국회 등의 정치부분의 판단에 맡겨지고, 최종적으로는 국민의 정치적 판단에 맡겨진 것이라고 했다. 심판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본안의 판단으로 나아가지 않고 각하판결이 선고됐다.

또한 대법원은, 1969년 9월 14일 박정희 전 대통령의 3선 연임을 위해 공화당과 정우회가 야합하여 새벽 2시에 국민투표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사안에서 통치행위에 대한 사법심사를 배제했다. 국회가 적법하게 통과하였다 하여 정부에 이송하고 국방회의가 의결하고 대통령이 승인 공포했으면 실질상 입법의 전 과정에 걸쳐 적법히 통과하였다고 인정되므로 삼권분립의 원칙으로 보아 법원이 헌법상 동등한 위치에 있는 입법부의 자율권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다(대법원 1972. 1. 18. 선고 71도1845 판결).

대법원은 이런 태도를 유지해서 10.26 사건 후 최규하 대통령의 계엄선포행위에 대해서도 고도의 정치적, 군사적 성격을 띠는 행위라서, 그 선포의 당, 부당을 판단할 권한은 계엄 해제요구권이 있는 국회만이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기존의 입장에서 조금 나아가 선포가 당연무효인 경우는 심사가 가능하다는 여지를 남겨두었다(대법원 1979. 12. 7. 자 79초70 재정).

그런데 1985년 1월 29일 유신헌법에 근거한 긴급조치가 유신헌법 개정 이후에도 효력이 있는지 문제된 사안에서, 대법원 판사 이회창은 통치행위라도 긴급조치와 같이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된 경우 그 실효여부를 심사 판단하는 일은 본래의 사법심사권을 행사하는 것이라서 결코 사법권의 한계 밖에 있지 않다는 진일보한 단독의견을 개진한다(대법원 1985. 1. 29. 선고 74도3501 전원합의체 판결).

이로부터 약 4개월 후인 1985년 5월 28일 대법원 81도1045 전원합의체 판결은 다수의견으로 10.26. 사건 직후 선포된 계엄이 해제된 이후에도 계엄실시 중 포고령위반행위를 처벌할 수 있다고 판결했고, 그 중 대법원 판사 전상석은 계엄선포는 통치행위로서 사법심사 대상이 아니라는 보충의견을 개진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사 이정우, 이회창, 오성환은 비상계엄 선포, 해제 등이 통치행위라고 해도 법률인 구 계엄법 규정에 대해서도 통치행위 이론을 적용하는 것은 이론상 무리라고 봤다. 또한 피고인이 헌법 상 보장된 군법회의 재판을 받지 아니할 권리를 현실적으로 침해당한 것이 명백한데도 통치행위라는 이유로 기본권 침해에 눈감고 사법의 개입을 주저하는 것은 사법심사권 자체를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현상유지를 위한 합리화의 기능으로 타락시킬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짧은 시간 동안 반대의견에 참여한 대법원 판사의 수가 1명에서 3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2004년 대법원은 대북송금이 통치행위라는 정부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를 선고했다. 당시 기사 캡쳐.

민주화 이후 '불법 통치행위' 단죄 방향으로 판례 형성돼

이후 통치행위의 사법심사 가능성을 넓히는 방향으로 판례가 형성되어 갔다.

대법원은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판결에서는 대통령의 비상계엄의 선포는 통치행위로서 명백하게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된다는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면 사법부가 당부를 판단할 권한이 없으나 신군부의 5.17 비상계엄선포는 내란 목적으로 행하여진 것이라서 범죄에 해당하는지 법원이 심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또한 대법원은 대북송금에 대한 사법심사를 인정하면서 통치행위의 개념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과도한 사법심사의 자제가 기본권을 보장하고 법치주의 이념을 구현하여야 할 법원의 책무를 태만히 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그 인정을 지극히 신중하게 하여야 하며, 그 판단은 오로지 사법부만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고 전제한 바 있다(대법원 2004. 3. 26. 선고 2003도7878 판결). 나아가 대법원 2008. 5. 29. 선고 2004다33469 판결에서는 국회의원의 입법행위가 고도의 정치적 행위임을 인정하면서도 예외적으로 국회의원의 입법 내용이 헌법의 문언에 명백히 위배됨에도 불구하고 국회가 굳이 당해 입법을 한 것과 같은 특수한 경우에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재판 거래가 의심되는 대법원 2015. 3. 26. 선고 2012다48824 판결은 이런 선례와 흐름을 무시하고, 기존 판결과 입장을 달리한 이유에 대해서 구체적 설명도 없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 발령은 통치행위로서 불법성을 판단할 수 없다는 식으로 면죄부를 부여한 셈이다. 이를 보고도 단지 대법관들이 법과 양심에 따랐을 뿐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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