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서' 임요환 vs '페이커' 이상혁, 누가 최고인가

  • 기자명 이경혁
  • 기사승인 2018.08.3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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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는 처음으로 e스포츠가 시범종목에 선정되어 참여하게 된다. 29일 SBS와 KBS는 '리그 오브 레전드'(롤) 한국 대 중국 결승전을 생중계하기도 했다. SBS는 아시안게임 축구 4강전 중계를 위해 롤 결승전을 온라인 중계로 전환하기도 했지만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 시범종목 채택으로 게임의 위상이 확연히 올라간 것은 사실이다. 

디지털게임 플레이가 스포츠의 영역에 들어가느냐 아니냐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많은 편이다. 단순히 e스포츠에 대한 호오로만 찬반이 나뉘는 것도 아니다. 어떤 게이머들은 굳이 일반 스포츠의 영역에 포함될 필요가 있느냐고 이야기하며 독자적인 경쟁부문으로서의 e스포츠를 말하기도 한다는 것은 어쨌든 e스포츠가 기존의 스포츠와 같은가 다른가를 떠나 나름 이 시대의 문화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이야기일 것이다.

e스포츠라는 길지 않은 역사를 가진 종목은 그러나 사실 그 안에 너무도 다른 수많은 게임의 방식들이 포함된다는 점에서 아주 보편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쉽지는 않은 편이다. ‘배틀그라운드’ 와 ‘스타크래프트’ 의 프로게이머들을 상호비교해서 평가한다는 것이 가능할까? 서로 선호하는 사람들도 다르고 플레이 유형과 전략도 완전히 다른 여러 게임들 속의 게이머들을 한 데 묶어 이야기하는 것은 자칫 팬들간의 불필요한 감정소모만을 불러일으키는 데 머무르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이야기해볼 수 있을 지점이라면 역시 ‘누가 최고의 e스포츠 플레이어인가’ 라는 질문일 것이다. 서로 다른 게임에서 각자의 영역을 구축해 낸 수많은 게이머들의 업적을 단순비교하는 것은 그들의 노력에 실례인 일일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e스포츠라는 새 영역을 대표할 이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에는 여러 사람들이 나름의 답변을 공통적으로 내놓는 편이다. 가장 크게 거론되는 두 인물은 이른바 ‘VS놀이’ 라는 이름으로 가끔씩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누가 e스포츠를 대표하는 플레이어인가를 놓고 떠들썩한 판을 벌이게 만드는 주인공인데, 바로 임요환과 이상혁이다.

SlayerS_’BoxeR’(임요환)와 Faker(이상혁). ‘스타크래프트’ 와 ‘리그 오브 레전드’ 라는 온라인 대전 중심의 게임에서 각기 자신의 분야를 대표할 만한 커리어를 쌓은, 혹은 쌓아가고 있는 두 사람은  비단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e스포츠를 거론함에 있어서도 보편적으로 꼽히는 선수들이다.

 

e스포츠 정착의 공로자, 임요환

임요환은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생활을 그만둔 뒤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tvN '더 지니어스'에 출연한 임요환의 모습

e스포츠의 시작을 열어 낸 게이머, SlayerS_’BoxeR’ 임요환은 ‘스타크래프트’ e스포츠의 시발점으로 기록되는 인물은 아니다. 한국 최초의 프로게이머로는 보통 신주영 선수가 언급되는데, 이 때의 프로게이머와 지금의 프로게이머의 의미는 조금 달라졌다는 점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정식 리그가 활성화되고 e스포츠의 생태계가 돌지 않았던 시기의 프로게이머는 주로 특정 대회의 상금 획득을 노리는 바운티 헌터로서의 의미이거나 개인에 대한 스폰싱을 통해 수입을 확보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신주영과 함께 ‘스타크래프트’ 부문에서 라이벌 구도를 이뤘던 1세대 프로게이머 이기석의 경우도 2002년 KTF 매직엔스에 입단하기 전까지는 개인 자격으로 CF촬영 등을 소화하는 방식으로 게이머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e스포츠 영역에서 임요환의 의미는 그래서 최초의 프로게이머라기보다는 어느 정도 프로게이머라는 새로운 팬덤의 전조가 확보된 시기에 이를 본격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흐름을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는 측면에서 두드러지는 편이다. 그는 개인의 활동보다도 e스포츠라는 커다란 ‘씬’의 확장에 주목했다. IS라는 팀에서 커리어를 만들기 시작한 그는 그의 영입을 탐낸 회사들에게 자신과의 단독 계약이 아닌 자신을 포함한 팀 전체의 계약을 늘 제안했다. 최초로 그가 스폰을 받아 낸 동양오리온스가 그랬고, 끝내 임요환 개인만을 원했던 기업과의 협상 결렬로 인한 해체 이후도 그는 개인 자격으로 움직이기보다는 ‘4U’라는 자신의 팀을 창단하고, 이 팀에 대기업의 스폰서가 붙을 수 있는 방향을 모색했다. 실력과 인기를 동시에 구가하는 자신의 위치를 십분 활용한 결과로 창단된 SK텔레콤 T1은 임요환의 4U 팀을 통째로 인수하는 방식을 통해 대기업의 e스포츠 참여를 시작했고, 그 결과는 ‘스타크래프트’를 넘어 이제는 다양한 여러 종목의 팀 창설로 이어지는 중이다. 임요환은 프로게이머 중 최초로 억대 연봉을 받았다는 상징성도 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이러한 성과는 단지 그가 판 자체에만 집중했다는 말만으로는 설명하기가 불가능하다. 임요환이 보여주었던 플레이는 언제나 사람들의 기대를 넘어서는 새로움을 향하고 있었고, 특유의 승부욕이 더해진 그의 플레이는 실제로 일궈 낸 수많은 우승 경력과 함께 엮이며 본격적으로 e스포츠 선수에 대한 팬덤의 형성을 일궈낸 바 있었다. e스포츠라는 판 안에서 인기와 실력을 겸비한 스타 플레이어가 바라본 큰 그림이 있었고, 그에게는 자신의 그림을 실행해볼 수 있을 만한 실력과 배경이 있었다. 비록 e스포츠라는 오늘날의 새 문화가 비단 임요환 개인의 노력만으로 성립했다고 말하는 것에는 어폐가 있을 지언정, 그의 공로 자체를 폄하하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임요환은 단지 ‘스타크래프트’ 안에서의 ‘테란의 황제’ 라는 별명 이상으로 e스포츠에서 또한 ‘황제’라는 별명이 어색하지 않을 위치를 차지한다.

 

확장일로의 e스포츠의 중심에 서 있는 이상혁

이상혁은 어느 e스포츠 선수보다 큰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e스포츠 시장의 글로벌화 때문이다.

Faker 이상혁. 임요환의 전성기와는 10여 년 이상의 차이를 가지는 이 선수의 커리어는 그 세계적 인지도 면에 있어서는 임요환을 능가하는 수준을 보인 지 오랜다. 세계적으로 널리 플레이되는 ‘리그 오브 레전드’ 에서 SK텔레콤 T1의 미드레인 플레이어로 오랫동안 활약해 온 이상혁의 커리어는 이제 전 세계를 뒤덮는 위명을 자랑한다. 농구의 고향 미국을 국적으로 가진 이들이 이상혁을 마이클 조던에 비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고, 해당 게임의 전 세계 대회에서 팀을 수 차례 우승시키면서 존재감을 과시한 사실상 최강의 e스포츠 플레이어로 ‘페이커’ 이상혁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세체미(세계 최강 미드)’ 타이틀을 자랑한다. 

e스포츠의 영향력이 과거와는 위상을 달리하는 수준에 이른 최근의 시점에서 이상혁의 존재감은 이제 기존 스포츠 매체들 속까지 파고드는 추세다. Espn이 적지 않은 분량으로 다룬 페이커 특집 기사, 2018 아시안게임 출전만으로도 기대감을 드높이는 게이머들의 반응은 임요환이 상상했을 그 규모의 e스포츠 문화 속에서 탄생한 월드스타의 존재감이 무엇인지를 대변하는 증거들이다. 프로는 연봉으로 자기 존재감을 드러낸다. 2018년 현재 이상혁 연봉(연수입)은 50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서 페이커보다 돈을 많이 버는 스포츠 스타가 몇 명이나 될까.

아마추어 시절부터 입소문으로 이름높았던 이상혁의 플레이는 프로 씬에서 빛을 발하며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의 중심에서 붙라올랐다. 다양한 챔피언의 선택과 활용, 재기발랄하면서도 매섭고 날카로운 플레이로 시청자들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공격적이고 화려한 플레이는 비단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의 e스포츠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밖에 없었다. 불가능해 보이는 시도들을 현실에 그려내는 그의 플레이는 오랫동안 그와 그의 팀을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 대회에서 왕좌를 놓치지 않도록 이끌었으며, 비록 2017년 결승에서 좌절하며 쓰라린 패배를 맛보고 그 뒤로 과거만큼의 폼을 보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세계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에 ‘페이커’가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만큼의 위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이상혁의 빛나는 플레이는 특히 여러 모로 안 좋은 소리가 넘쳐나는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게이머 씬에서 특유의 안정된 성격과 준비된 인성을 통해 보다 대중적인 스타로서 갖춰야 할 진면목을 만들어내면서 부각될 수 있었다. 온갖 욕설이 난무하던 초기 ‘리그 오브 레전드’ 선수들 속에서 그는 한결같이 흠결없는 발언과 태도로 실력 외의 측면에서도 모두로부터 존경받을 만한 품위를 유지했고,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압도적 실력과 결부되면서 e스포츠가 결코 세간의 상상처럼 비뚤어진 아이들의 부질없는 놀이터로 여겨질 수 있는 여지 자체를 차단할 수 있었다. 최강의 실력자가 보여주는 품위는 갈수록 인지도를 넓혀 가며 대중화하는 e스포츠 확장 시기에는 초창기의 임요환이 보여주었던 큰그림에 대한 실천 이상으로 의미깊은 행적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누가 최고인 걸까?

여전히 여러 커뮤니티에서는 ‘페이커 VS 임요환’ 놀이가 끊이지 않는다. 대체로 ‘스타크래프트’ 세대를 겪어 본 이들의 반응은 임요환에 무게를 싣는 편이고, ‘리그 오브 레전드’ 가 인생게임인 세대에서는 이상혁에 대한 지지가 높은 편이다. 세대를 기준으로는 그럭저럭 명확하게 갈리는 이러한 지지세는 그러나 e스포츠에 대한 기여도라는 측면에서라면 각자의 기준으로 갈리곤 한다. 초창기 지형의 설립에 공헌한 초기 플레이어냐, 대중화의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역 플레이어냐는 쉽게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 어려운 질문일 것이다.

한 쪽의 편을 들기보다 더 적합한 방식은 아무래도 시대의 흐름 속에서 두 플레이어의 입지를 생각해 보는 방식일 것이다. 산업과 문화 사이, 중독과 놀이 사이, 서브컬처와 대중문화의 사이에서 여전히 다중적 평가를 받는 게임과 e스포츠는 두 영웅적 플레이어가 갖는 전성기의 시간차이만큼이나 많은 변화를 겪어 왔고, 이 변화에서 자신들이 몸담은 필드에 대한 애정과 헌신은 둘 중 누구 하나의 우위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90년대 지상파 아침프로그램에 e스포츠 홍보를 위해 출연한 임요환은 진행자로부터 ‘게임중독자’ 취급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최대한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험난하던 시절을 버텨 내며 정진해 온 임요환의 10여 년 뒤에는 이제 이상혁이라는 한 게이머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낸 다큐멘터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시대가 찾아왔다. ‘아침마당’ 의 임요환과 ‘The CHASE’의 이상혁 사이의 시간이 가져온 변화는 이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시범종목에서 지상파 생중계를 통해 전세계로 송출될 ‘페이커’ 이상혁의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결과로 우리앞에 나타날 것이다. 경기에 출전할 이상혁의 마음도, 그 경기를 보고 있을 임요환의 마음도,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해 온 나이와 성별을 떠난 모든 e스포츠 시청자들도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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