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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싱챔프ㆍ두부장인ㆍ탈핵운동까지 '삶 속의 진보' 실천 고바야시 슈이치[홍상현의 인터뷰] 100년 가업 이은 복싱 챔프, 고바야시 슈이치

세 사람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 최고 이공계 교육기관(도쿄공업대학교)의 과학도, 여섯 명의 상대를 파죽지세로 누르고 10라운드에 걸친 혈투 끝에 챔피언 벨트를 거머쥔 근성의 파이터(2003년 전일본 프로복싱 웰터급 챔피언), 지역의 진보적 중소상공인 단체 '분쿄민주상공회'와 탈핵운동 단체 '원ㆍ수폭 금지 일본협의회', 아베 정권의 폭주를 정면에서 저지하는 평화운동 단체 '9조의 회' 시민활동가, 일본 최대 진보매체 《신문 아카하타》의 독자상담 회답자, 그리고 문필가.

하나하나 범상치 않은 이력을 훑어 내려가던 필자는 두 번 놀랐다. 이 모든 타이틀의 주인공이 한 사람의 인물, 올해 44세의 고바야시 슈이치라는 것과, 그런 그가 105년 전 개점한 분쿄 구의 노포, 고바야시 두부점의 4대 점주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그가 지금껏 단 한 순간도 장인(匠人)의 자리를 벗어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역사’는 매일 새벽 두 시면 일어나 두부를 만들고, 가게에서 손님들을 맞으며 종일 배달을 다니는 일과시간 외에 이루어졌다.

오늘도 가게를 찾은 손님들에게 ‘성심(誠心)’이 배어나오는 손길로 두부를 건네는 그를 만났다.

홍상현:

스물아홉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내셔널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1년 만에 홀연히 은퇴해 두부 장인이 되셨는데.

고바야시 슈이치:

매스컴에서 종종 프로복서를 은퇴하고 가업을 시작한 것처럼 보도하는데 그렇지 않다.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가업을 잇게 되었을 무렵에 복싱을 시작했으니까. 이미 ‘본업’이 있는 상태에서 틈틈이 체육관에 다닌 거지. 복싱이라는 스포츠에 매료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시절 당시 레오파드 타마쿠마가 세계타이틀전을 보면서 부터다. 그런데 바로 그 복서가 3년 뒤 은퇴하고 체육관을 열었다. 곧장 등록을 하고 대학 졸업식 다음날부터 체육관에 나갔다. 한번쯤은 고라쿠엔 홀의 링에 서보고 싶었거든. 시합이 있을 때도 타이틀매치가 아니면 전날까지 일을 하고 시합 당일만 쉬었다. 돌아오면 다시 다음날 새벽부터 일을 시작했고.

홍상현:

‘프로복서가 되고싶다’는 생각이야 누구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다 챔피언이 되지는 않는다. (웃음)

고바야시 슈이치:

대학시절 조정부에서 동아리 활동해서 체력적으로 자신이 있는 편이었는데 막상 프로복서가 되려고 보니 장난이 아니더라. (웃음) 복싱을 좋아한다지만 결국 팬에 불과했으니까. 그래서 프로복서가 과연 나한테 맞는 일일까 갈등했지만, 차츰 나름의 스타일을 만들어 갔다.

2003년 3월 10일 전일본(全日本) 프로복싱 웰터급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던 고바야시 슈이치. 팬츠에 '고바야시 두부점' 상호가 새겨져 있다. 고바야시 슈이치 제공

홍상현:

슬슬 가업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보자. 단순히 ‘가게를 물려받아야 한다’는 당위성만으로 삶의 방향을 결정하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분야에, 평균 이상의 재능이 있었다.

고바야시 슈이치:

물론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가업을 이를 준비는 초등학생 무렵부터 시작된다. 처음에는 가게를 지키거나 심부름 등을 하게 되는데, 특히 중요한 것은 두부를 만드는 도구를 씻는 작업이다. 그런데 이게 너무 힘들다 보니 다른 일을 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꼭두새벽부터 일어나는 것도 만만치 않았고. 대학시절에도 전공을 살려 우주개발 분야에 진출하거나,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가업을 이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내가 하지 않으면 오랜 세월을 이어온 가게도 사라져 버리니까. 또한 나 자신 두부에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두부는 하루 세 끼 매번 다른 메뉴로 만들어 식탁에 올릴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 식문화가 달라졌다지만 두부 외에도 유부, 낫토 등 두부점에서 파는 식재료는 여전히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 않나. 이런 먹거리를 만든다는 건, 생업의 문제를 떠나 무척 의미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나만의 레시피를 정리해 책을 쓴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홍상현:

심지어 대학에서의 전공이 지구행성과학(Earth and Planetary Sciences)이다. 아마추어 천체관측가로도 유명하다.

고바야시 슈이치:

초등학교 때부터 천체관측이 취미였다. 마침 핼리혜성이 76년 만에 지구에 찾아와 붐이 일던 때이기도 했고. 대학진학 당시 전공을 선택하는 데까지 영향을 주었지만, 굳이 연구자 직함을 달고 있을 필요가 있겠나 싶어서 취미 수준에 머물러 있기로 했다. 복싱은 생물학적 연령에 따라 이런저런 제한이 생기는 까닭에 좀 달랐지만. 2004년 챔피언 벨트를 내려놓은 뒤 천체망원경을 장만해서 지금까지 매달 천체관측 모임을 개최하고 있다. 가게에 붙여놓은 포스터를 본 사람은 누구라도 옥상으로 올라와 참가할 수 있는데, 주로 동네 주민들이 오신다. 특히 여름철에는 40~50명의 인원이 참가해서 옥상이 가득 찬다.

재수 끝에 도쿄공대에 입학했는데 스스로를 수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물론 일본에도 중학생 무렵부터 진학할 대학을 정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지만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기에 학력에 미련을 갖지 않았다.

홍상현:

조금 딱딱한 주제로 옮겨가보자. 2000년대 들어 자민당 정권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에 박차를 가하면서 일본 경제의 상황도 많이 달라졌다. ‘소규모 자영업자’로서 그간 겪어온 어려움과 생존전략에 대해 듣고 싶다.

고바야시 슈이치:

대기업이 100엔도 하지 않는 값싼 두부를 대량생산하는 바람에 가격경쟁에 밀려 문을 닫은 가게들이 많다. 하지만 그 한편으로 여전히 단골 가게를 고집하는 분들도 계신다. 정말 소중하지. 이 동네에는 대략 2천 명의 주민들이 거주하고 계신다. 그분들 모두 우리 가게에 오시면 좋겠지만 하루 대략 70분에서 100분 정도의 손님들이 찾아주시면 그럭저럭 현상유지를 할 수 있다.

다만, 손님을 늘리려고 무조건 가격을 낮춰야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가게를 꾸려가려면 품질을 낮출 수밖에 없으니까. 다른 가게들과 제 살 깎아 먹기 경쟁도 하게 되고. 결국 지금까지 살아남은 가게는 모두 나름의 고집과 특색을 유지하며 단지 매출을 늘리려고 무리한 가격인하 경쟁에 나서지 않은 곳들이다. 비단 두부가게 뿐만 아니라 다른 상점이나 소매점의 경우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다들 ‘가격경쟁력’이 아니라 ‘충성고객’에 신경을 쓴다.

도쿄도 분쿄구에 있는 100년 전통의 고바야시 두부점.

홍상현:

이제 ‘시민활동가 고바야시 슈이치’에 관한 주제가 등장할 타이밍이다. 정말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참여를 하고 계신다. 그것도 장인으로써의 삶에 조금의 영향도 주지 않으면서.

고바야시 슈이치:

우리 가게는 원래 분쿄민주상공회(민상)에 가입되어 있었기에 나 역시 자연스레 민상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물론 당시에도 사회에 대한 나 나름의 생각은 있었지만, 그 실제적 양상을 민상을 통해 접하게 된 거다. 1997년 자민당 정권이 소비세를 3퍼센트에서 5퍼센트로 올렸는데, 이 정책에 반대하는 민상의 활동에 참여한 게 내 사회운동의 시작이다. 서민과세로는 세수확보도 어려울뿐더러 소비침체만 지속시킬 뿐이라는 판단에서.

탈핵운동과 조우한 것도 2005년 민상을 통해서인데, 전후 60년을 맞아 히로시마를 방문했다. 고등학교시절 수학여행으로 처음 가 본 이래, 피폭자의 증언을 직접 들은 일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도쿄로 돌아와 일본평화위원회(일본의 대표적 반전평화 시민단체) 기관지인 《평화신문》 편집장과 도쿄 도에 계신 피폭자들을 만나기 시작해서 7년 정도 활동을 이어갔다. 또 일본 정부에 핵무기금지협약 가입을 촉구하는 운동에도 참여했다.

홍상현:

동일본대지진 이후부터 지역에서 개인적으로 방사능 오염도를 측정하는 활동도 해 오신 걸로 안다.

고바야시 슈이치: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을 당시, 관공서에서 방사능 오염이 우려되니 배달을 중지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 순간 왜인지 가게의 두부가 보라색으로 보였다. 방사능 지표물질이 세슘과 요오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일어난 착시현상이지만 그 일이 있자마자 방사능 측정기를 마련해 지역의 오염도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물론 탈핵집회에도 참가하면서. 측정기를 들고 다니는 아내의 모습을 본 지역 주민회의가 협조를 요청해 왔고, 결국 주민회의에서도 기기를 구입해 현재까지 측정을 계속하고 있다.

홍상현:

지금까지 삶의 행보를 돌이켜보면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아베 정권에 대해 시종일관 단호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계신다.

고바야시 슈이치:

경제 분야에서 이 정권이 아베노믹스가 성공했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사람들의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뉴스에서 경기가 좋아졌다고 떠들지만 그런 일 따위, 고이즈미 정권 시절부터 없었고. 대기업의 주가상승은 우리의 삶과 무관하다. 특히 아베 정권이 위험한 것은 자위대 등 군사문제와 관련한 사안에서다. 표현과 실제적 의미가 정반대인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세우면서 대놓고 평화헌법(헌법 제9조)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고.

동북아시아에는 평화무드가 조성되고 있건만 일본 정부 혼자 역주행하고 있다. 최근 1년 동안에도 줄기차게 시대착오적 감각을 드러내왔다. 한국과 미국은 그렇게 노력하는데. 심지어 북한 쪽에서 우호적인 시그널을 보내오더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아예 되어있지 않을 거라는 생각마저 든다. 그러면서 북한 때문에 군사력을 증강해야 한다고 선전하지. 자민당 내부에서야 다른 대안이 없으니 아베가 계속 총재 자리에 머물러 있을지 모르지만 국민들의 생각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됐다. 그만해라’는 목소리가 불거지고 있거든.

홍상현:

일본어에 ‘○○바보(○○馬鹿)’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일가를 이룬 분야를 제외한 다른 것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장인정신을 상징하는 표현이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당신은 ‘뉴 타입 장인'이다.

고바야시 슈이치:

평화헌법 개정 저지도 그렇고 정치개혁도 그렇지만, 나 같은 사람 입장에서 보더라도 아베 정권은 다음세대까지 이어져서는 안 된다. 이는 누군가가 굳이 앞에 나서서 이야기 하지 않더라도, 나와 비슷한 민상의 동료들 모두 공유하는 바이며, 그런 생각으로 우리들 스스로 여러 가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 탈핵운동도 마찬가지다. 평화나 환경은 물론, 궁극적으로 우리 자신을 위한 운동이기도 하니까. 손님들에게 방사능에 오염된 물건을 내놓을 수 있나.

우리는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는 것들에 저항하고, 행동할 뿐이다.

4대째 두부 가게를 이어오고 있는 전 복싱 챔프 고바야시 슈치이.

최근 고바야시 두부점은 내부 개장 공사로 분주하다. 올해 안에 거실과 부엌이 있던 곳을 하나의 큰 방으로 만들어, 동네 아이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는 ‘어린이 식당’으로 개방하기 위해서다. 3년 전 지역의 한 야채가게가 가게 한 쪽에 테이블을 놓고 시작한 일. 이에 질세라 2년 전부터 매달 한 번씩 어린이 식당을 운영해온 아내가 ‘아예 우리 집에서 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빈 집을 지켜야하는 맞벌이 가정의 아이들까지 모여 (물론 그의 아이들도 함께) 부모들이 귀가하는 저녁 무렵까지 함께 지내게 될 공간.

이제 곧 분쿄 구 코히나타의 아이들은 오래된 친구처럼 편안하지만, 결코 그게 다는 아닌‘두부 아저씨’의 집에서, 따듯하고 맛난 밥상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해가 저물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밤하늘을 바라보게 되리라. 상상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홍상현 팩트체커  contact@newstof.com  최근글보기
일본의 경제월간지 <게이자이(經濟)> 한국특파원. 도쿄대학교 이미지인류학연구실(IAL) 네트워크 멤버다. 도쿄대 시미즈 연구실 소속으로 국제관계와 언론보도의 상호작용을 연구했다. <마르크스는 처음입니다만> 등 논쟁적인 책을 한국에 소개하는 번역가다. <시사인> 등에 일본 소식과 국제관계 기사를 게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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