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민연금 200조 요구? 강용석이 가짜뉴스 주범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8.09.10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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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북한에서 국민연금 200조원을 요구했다’는 글이 카카오톡 단체대화방(단체카톡방)과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널리 확산되고 있다. 이 내용이 어디에서 비롯됐고 누가 이런 내용을 확산시키고 있는지 뉴스톱이 확인했다. 

 

카카오톡화면캡처

카카오톡 '국민연금 퍼주기' 루머는 유튜브가 출처

이 글은 노년층 ‘단톡방’, 보수개신교계 커뮤니티와 블로그 등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국민연금 200조 북한에서 요구

국민연금 큰일이네

북한 김영철이가 남한의 국민연금 200조를 넘기라고 하는데 누굴 믿고 이런말을 할 수 있을까?

국민연금은 국민 개인 돈인데 정부에서 관여한다? 내돈을 어디로 준다고?

다음 2차 남북 정상회담때 어떻게 대답할까? 

저는 이자료를 혼자만 보시라고 보내드린건 절대 아닙니다. 국민연금 전국민이 알아야하기 때문 1명이라도 좋으니 많이많이 전파해 주시라고 보내드리며

만일 이자료를 반대하는 좌파나,  보기 싫어서 거부하시거나, 혼자만 보고 홍보 안하시겠다면 저에게 연락 주시면 저는 당장 카톡을 끊겠습니다. 많이많이 보내주시길

이것이 진정한 안보를 바로 잡는 초석이고 바로 애국자입니다

이 글의 근거는 마지막 부분에 링크로 달려 있는 유튜브 영상이다. '남-북한 국민연금 통합??' 이라는 제목의 이 영상은 지난 8월 27일 3분 26초 분량으로 게시됐다. 텍스트에 TTS(text to speech : 문자음성자동변환프로그램)로 읽힌 음성을 입힌 극히 단순한 형태이지만 9월 10일 현재 8만5천회의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면 이 동영상이 인용한 글의 출처는 어디일까?

유튜브 내용은 부동산업체 사이트 게시판에서 시작

유튜브 동영상은 크게 두 개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전반부의 글은 극우성향의 ‘일간베스트(일베)’ 게시물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일베 게시물은 583명이 가입되어 있는 개신교 관련 카페를 출처로 링크하고 있다. 이 카페의 해당 글은 허위정보가 많이 공유되는 온라인 커뮤니티나 카페, 블로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동일한 내용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는 한 부동산 업체 홈페이지의 게시판의 글이다. 이 사이트에는 8월 13일에 글이 올라왔다. 

사실관계는 대부분 틀렸다. 지난 8월 13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남북 고위급회담이 열린 것은 맞다. 그런데 당시 조명균 통일부장관을 만난 북측 대표는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아니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었다. 남북대화에서 공식적으로 북측 김영철 부위원장의 대화 상대는 조명균 장관이 아니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고, 조 장관의 상대는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다. 이 때문에 지난 7월 5일 ‘남북통일농구경기’ 방북단으로 평양을 방문 중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의 숙소에 김 부위원장이 깜짝 방문한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민연금 200조원 요구 발언도 사실이 아니다. 국민연금은 정부 마음대로 사용처를 결정할 수 없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의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에서 투자처를 결정하는데 대부분 투자금은 국내외 주식과 채권에 투자되어 있기 때문에 수백조원씩 현금화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비슷한 내용의 언론 기사는 단 한 건도 없다. 이렇게 중대한 일을 북한측이 요구했다면 언론에서 다루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 부동산 게시판에는 2008년부터 1754개의 글이 올라와 있는데 거의 관리자 한 명이 올렸다. 다른 글들 역시 근거가 전혀 없는 루머 수준이며 지역비하나 명예훼손성 글이 상당수다.

'국민연금 북한 퍼주기' 강용석 글도 사실관계 틀려

동영상 후반부의 글은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을 지냈던 강용석 변호사의 8월 28일 페이스북 게시글이다. 강 변호사가 주장하는 '국민연금 800조 퍼주기'는 2017년 국민연금공단이 펴낸 '한반도 통일에 대비한 남북연금 통합 기본계획 연구' 보고서(962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연구원은 이 연구에서 통일 이후 북한 지역의 체제전환과 대량 실업 문제 등 경제적 후폭풍을 고려해 연금 통합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분석했다. 북한과의 소득 격차 등 연금 통합 환경을 신중하게 살펴봐야 하며, 급진적 통일과 점진적 통일의 경우 모두 연금 통합에 통일 정부의 국고 보전이 필요하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보고서는 통일이후 국민연금 재정 회계는 남한과 북한을 분리하고 북한 지역은 적립방식이 아닌 완전 부과식을 적용할 것으로 제안했다. 재정적자가 발생하는 부분은 통일 정부가 국고로 부담할 것으로 전망했다. 보고서는 남ㆍ북한 연금 재정회계를 통합하지 않고 분리운영할 것으로 제안한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이 갑자기 '국민연금 북한 퍼주기'로 둔갑했다.

게다가 연구는 남북한이 통일된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다. 강 변호사의 주장처럼 ‘북한 김정은 정권에 퍼주기’가 아니라 ‘통일한국의 연금통합계획’연구이다. 보고서의 결론은 “급진통일 시에는 현행 연금체계를 거의 그대로 적용하고, 점진(절충)통일 시 현 체계와는 크게 다른 신연금체계의 적용을 전제로 구체적인 연금통합 계획 수립해야 한다”이다. 심지어 보고서에는 “본 보고서에 수록된 모든 내용은 어디까지나 저자들의 의견이며, 공단의 공식 견해가 아님을 밝혀 둔다.”고 되어 있다.

강 변호사가 주장한 내용은 대부분 틀렸다. 30년간 쌓아온 국민연금은 800조원이 아니다. 국민연금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2018년 6월 현재 기금적립금은 635조5천억 원이다. 리선권 위원장이 조명균 통일부장관에게 200조원을 요구했다고 주장했지만 역시 근거가 없다. 결국 이 글 역시 부동산 게시글에 실린 허위 정보와 다를 것이 없는 것이다.

 

극우언론 뉴스타운 의혹을 사실확인 없이 기사화

더 큰 문제는 이런 근거 없는 주장이 사실 혹은 근거 있는 주장인 것처럼 확대 재생산되는 과정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탄핵반대 집회에서 각종 가짜뉴스를 게재해 가짜뉴스 확산의 진원지 중 한 곳으로 지목돼 논란이 됐던 뉴스타운은 지난 8월 21일 <유체이탈화법으로 책임회피하는 문재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남북 고위급 접촉시 북 참석자가 통일부장관(?) 조명균에게 국민연금에서 200조 원을 내놓으라고 했다는 의혹이 퍼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루머’가 ‘의혹’으로 바뀐 것이다.

기사를 쓴 기자는 앞서 19일에는 <주사파 운동권 수괴 문재인 아직 청와대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SNS상에는 북한이 우리 “국민연금 중 200조원을 북으로 보내라고 했다”는 설이 나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어 8월 22일 열린 ‘태극기집회’에서 허평환 대한애국당 공동대표는 대회사에서 “북한 김영철이가 문재인에게 국민연금 800조 중에 200조를 내놓으라고 그랬답니다. 통일부 장관을 통해서 그 이야기를 했다는 거예요. 이게 어떤 경로든지 새어나가 돌아다니고 있는데. 저 놈들이 핵을 가지고 공갈협박한다고 해서 거기 굴복해야 되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의혹’이 ‘전언’으로 바뀌었다. (해당 발언은 1분 7초부터)

정리하면 '국민연금 200조원 북한 퍼주기' 허위정보의 전파경로는 다음과 같다. 최초 국민연금연구원은 2017년 통일을 대비해 남ㆍ북한 국민연금 통합 문제를 연구했다. 보고서는 급진적 통일과 점진적 통일 시나리오를 살펴봤다. 통일이 되면 북한주민의 연금 수급권 등 기득권은 인정하되 남북한 국민연금 재정회계는 분리하고 부족한 부분은 통일 정부가 국고로 부담할 것을 제안했다. 

그런데 이 내용이 갑자기 국민연금 200조 퍼주기로 둔갑했다. 한 부동산사이트 게시판에는 이런 주장을 담은 글이 올라왔다. 뉴스타운이라는 보수성향 언론사는 사실 관계도 확인하지 않은 채 루머를 사실로 단정하고 기사를 썼다. 존재하지 않은 의혹이 실체가 생겼다. 허위정보가 가짜뉴스로 둔갑한 것이다. 강용석은 이런 내용을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전직 국회의원이 기정사실화하니 다른 사람도 믿지 않을 수 없다. 강용석 주장을 근거로 한 가짜뉴스가 일베와 유튜브에 널리 퍼졌다. 이를 근거로 카카오톡에 가짜뉴스가 돌고 있다. 

<근거 없는 일방적인 주장 → 주장을 근거로 의혹 제기 → 의혹을 사실로 단정한 비판 → 가짜뉴스로 공유 확산>이라는 전형적인 단계를 거치고 있다. 일반인이야 그렇다쳐도, 전직 국회의원 강용석과 포털사이트에도 언론으로 등록되어 있는 뉴스타운은 가짜뉴스 만들기에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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