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문소리를 위한 시나리오 쓰고 있다"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18.09.12 09:5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저도 앞으로 이런 연애를 해보고 싶어요.”

2002년 종합문예지 《다빈치》 편집국에 서평 하나가 전해졌다. 쇼가쿠칸에서 나온 신간 소설에 대한 것이었다. 그러나 심드렁한 표정으로 문장을 읽어 내려가던 담당자가 자세를 고쳐 앉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평을 보낸 사람은 영화 <고(Go)>(2001)로 그해 3월 구보츠카 요스케와 함께 일본 아카데미 신인배우상을 받은 여배우 시바사키 코우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투고로 신호탄을 울린 “세카츄(セカチュー) 현상”(『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일본어 애칭을 따 명명된 멜로 열풍)은 데뷔 2년차 CF 모델이던 그녀를 주연으로 발탁해 스타의 반열에 올려놓은 <고>의 감독 유키사다 이사오에 의해 정점을 찍었다.

 

유키사다 감독은 동료 두 사람과 함께 시나리오 집필에 매달린 끝에 ‘투고사건’ 2년 뒤인 2004년 5월 8일,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Crying Out Love in the Center of the World)>를 선보였다. 아직 멀티플렉스가 보편화되어있지 않았던 시절, 한국의 약 두 배에 달하는 요금으로 인해 대중오락으로서의 영화관람이 한국과 좀 다른 위상을 지니고 있는 환경에서 이 영화의 흥행실적은(관객동원 수 620만, 흥행수익 85억 엔)은 실로 가공할만한 것이었다. (일본에서 만들어진 실사영화를 통틀어 15위에 해당하는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

그러나 이 사건은 필자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의 강렬한 인상 때문에 유키사다 감독이 그 이후에도 13편의 장편 상업영화와 8편의 중ㆍ단편영화, 9편의 TV 드라마ㆍ웹 드라마, 8편의 TV CF, 5편의 연극, 심지어 아무로 나미에하마사키 아유미 등 14명에 이르는 정상급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며 사랑받아 왔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하는 한국의 팬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유키사다 감독은 올해 2월 열린 제68회 베를린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서 <리버스 엣지(River's Edge)>(2018)로 국제비평가연맹(FIPRESCI)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0년 직접 시나리오를 쓴 <퍼레이드(Parade)>가 2010년 같은 상을 수상한 이후 두 번째였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던 도쿄에서 지난 8월 3일 쉰 번째 생일을 맞은 유키사다 감독을 만났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홍상현 촬영.

홍상현:

우선은 ‘멜로의 거장’이라는 수식어에서부터 시작해 보자. 물론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기억하는 팬들 입장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일 지도 모르지만, 그 이후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드라마의 모든 장르를 섭렵해온 당신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유키사다 이사오:

1980ㆍ90년대 무렵 방대한 양의 영화를 보았는데, 대부분 1960년대 이전에 제작된 고전들이었다. 당대의 살아가는 방식을 묘사하거나 인간의 어리석음, 아름다움, 추함 등에 대해 호소하는 작품이 많았다. ‘영화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회였다. 시대에 따라 사회적 배경은 달라져도, 사람, 그리고 삶 자체를 다룬다는 점에 서 일관성이 있었다.

이 경험을 돌이켜 보는 것으로 내 필모그래피에 대해 설명해볼 수 있겠다. 확실히 내 영화들은 러브스토리가 주류를 이룬다는 인상이 강할지 모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애정’이라는 하나의 원인에서 비롯된 고뇌를 그린 것들이 많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초점을 맞추되, 그 덧없음 또한 이해하는 작은 이야기들.

 

홍상현:

인간을 이야기하되 그것이 ‘미시적(micro)’이라는 데 방점이 찍히는 듯하다.

유키사다 이사오:

나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웃사람들의,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어떤 형태로든 내 영화에 담아내려고 한다. 특별한 환경에서 전개되는 특별한 소재에 대한 이야기를 저널리스트 같은 관점으로 풀어낸 연출자는 내 선배세대들 중에도 많이 있잖은가.

 

홍상현:

다만, 그런 연출의도가 보편적 감성에 호소하는 작품으로 이어지는 지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누구나 느끼고 생각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풀어놓기란 쉽지 않은.

유키사다 이사오:

내 또 다른 관심사와도 맞물리는 이야기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시대를 초월해서 마치 자신의 이야기처럼 느낄 수 있는 것에 무엇이 있을지 생각했는데, 그 중심에 문학이 있었다. 자신의 발상이 ‘문학적(literary)’이라고 느끼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 문학이라는 장르에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까지 아우르는 힘이 있다. 특히 소설이 그렇고, 이는 내가 문학으로부터 가장 많은 영향을 받고 있는, 또한 내 작품 가운데 유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것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2005년 작품 <북의 영년> 포스터.

홍상현: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고>가 공개된 지 4년 뒤 당신에게 다시 한 번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감독상을 안겨준 <북의 영년(Year One in the North)>(2005)의 경우다. 1800년대를 배경으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1939)를 연상시키는 한 여성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그려냈다는 점에서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와 사뭇 달랐을 뿐더러, 소설이 원작인 작품도 아니었다.

유키사다 이사오:

그렇지. <북의 영년>은 시대극(period drama)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내 작품들과 다른 색체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하게 들어가 보자. 19세기 말, 효고 현 이와지시마(淡路島, 효고 현의 섬)의 몰락한 상급 무사들이 개척지인 홋카이도의 시즈나이(静内)로 보내져,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해나가야 하는 환경과 맞닥뜨린다. 상류계급의 자존심을 버리지 못한 남성들은 모두 좌절하고 위정자 원망이나 하며 술로 소일했지만 여성들은 괭이를 들고 밭으로 나갔다. 눈앞의 난관을 극복하며 삶을 지속해가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내용 자체가 실화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지만, 여기서 내가 특히 영화의 소재가 될 만하다고 받아들인 지점은 그 내용이 지극히 ‘모던’하기 때문이었다. 현실에 맞서 나 자신, 그리고 내 가족을 지켜내려는 여성들과,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몽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남성들의 대비. 오늘날의 사회를 비춰보더라도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홍상현:

버블 붕괴 이후 정확히 1992년부터 ‘잃어버린 20년’이라 불리는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가 이어진 시대상을 떠올려보면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유키사다 이사오:

예컨대 영화가 제작되던 2004년 당시 남성들은 불황에 몸을 움츠리며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해 들어갔다. 반면, 여성들은 달랐다.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며 자립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지.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 영향력이 역전되어버린 시대를 영화를 통해 그려보고 싶었다. 요시나가 사유리(※ 일본의 국민배우. 최근에는 아베 정권의 전쟁법과 원전정책에 반대하는 등 다양한 사회참여 활동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라는, 일본을 대표하는 배우가 주인공으로 열연을 펼치기도 했고.

2016년 작품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 포스터.

홍상현:

<북의 영년> 외에도 전형적 여성성ㆍ남성성을 뒤집는 인물의 예는 당신의 작품 속에 자주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사랑과 욕망의 짐노페디>(2016)의 주인공 ‘신지’는 인상적이다. 베를린영화제 수상 이력에 관한 부분부터 누가 봐도 당신의 페르소나인데, 심지어 이 인물까지 가차 없이 풍자했다.

유키사다 이사오:

내 필모그래피에는 나 자신의 부족함을 참회하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 많다. 영화의 원작, 혹은 작가가 쓴 시나리오가 따로 있다 해도 마찬가지다. 결국 연출자가 어떤 시점을 가지고, 어떤 부분에 집중하느냐가 중요하니까. 또, 여성과 관련해서는 아름다움과 추함을 함께 가지고 있는 입체적인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 관건이다.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일단 미모의 여배우만 캐스팅하면 간단한 시각적 연출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적지 않으니까. 문제는 ‘추함’을 어떻게 표현하느냐다. 예컨대 영화 속의 여성 캐릭터는 그 파안(破顔)으로 남성에게 안도감을 주지만,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배신하는 모습 또한 보여준다. 평면적인 아름다움이 다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범주를‘여배우’가 아닌 ‘인간’으로 넓혀보자 사랑이 아닌 것을 사랑이라고 말해놓고 그것을 정의로 포장하는 모습은 어떨까. 역설적으로 이 또한 ‘미’를 표현하는 제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홍상현:

그간 당신이 장르영화의 범주 안에 들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을 만들면서도 그 안에서 어김없이 나름의 색깔을 드러냈던 것과도 연관되나.

유키사다 이사오:

누군가 내게 산타클로스가 주인공인 영화에서 그를 액션히어로로 표현할 것이냐, 혹은 가족영화의 주인공으로 그려 내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오히려 굴뚝을 통해 들어간 산타클로스와 그 집에 살던 여성과의 사이에 사랑이 싹트는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답하겠다. 다른 생각의 여지. 그녀는 배우자로부터 학대를 당하거나, 아이는 있지만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지속시키고 있을 수도 있다. 또한 선물을 받게 될 아이는 이 모든 진실에 대해 파악하는 가운데 엄마의, 한 인간으로써의 행복을 바라고 있을 수도 있다. 이처럼 갈등하는 인간상을 구현하는 것이 내 영화적 관심사다.

 

홍상현:

그리고 보면 당신의 작품은 연애 이야기를 다룬다 하더라도 만면에 미소를 띤 미남미녀가 등장하고 그림 같은 배경 속에 트렌디 드라마 같은 스토리가 펼쳐지는 영화들은 아니었다.

유키사다 이사오:

순탄한 연애스토리에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내 의식의 한구석에는 늘 ‘연애’라는 감정을 의심하는 마음이 있거든. 세상에는 연애를 일종의 도피처로 보고, 단순히 그에 대한 이야기만 하면 모두가 행복해 할 거라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 경우, 십중팔구 천편일률적인 결말이 따라온다. 해피엔딩이거나, 슬프게 마무리 된다 해도 긍정적인 여지를 남겨두거나. 나는 이 지점에서 멈추고 싶지 않다. 가능한 한 영화 속 인물의 모든 것을 표현하고 싶으니까. 그런 목표를 이루기 위한 장치로써 ‘벽’을 설정한다. 가령 상대가 기혼자라든가, 병을 앓고 있거나, 그렇지만 이러한 난관을 해결하고 꿈을 이루는 경우 또한 많지 않지. 스토리를 억지스러운 결말로 끌어가기보다 ‘그래도 만나서 좋았다’고 느낄 수 있게 하는 데 비중을 둔다.

 

홍상현:

<고>부터 <리버스 엣지>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행보는 늘 글로벌했다. 안정적인 국내시장에 안주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당신의 조감독 출신으로 얼마 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넷팩상을 수상한 쿠도 마사아키 감독도 비슷한 느낌이다. 그가 영화를 포기하려던 시절 붙잡아 준 것이 바로 당신이었다던데.

유키사다 이사오:

아니, 마사아키는 원래부터 재능이 있었다. 대견한 친구지. 나도 못 받아본 상까지 받고... (이 대목에서 그는 아들의 칭찬에 쑥스러워하는 아버지처럼 말끝을 흐리면서도 대단히 흐뭇해 하는 미소를 지었다.)

조감독으로 같이 작업하는 친구들에게 입버릇처럼 말한다. 해외영화제에 가거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라고. 다양한 친구를 사귈 수 있으니까. 이는 나 자신의 경험이기도 하다. 딱히 영어를 잘한다거나, 한국어나 중국어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지만 내게는 많은 나라의 친구들이 있다. 일본 말고도 한국, 중국, 그리고 말레이시아 등에서 영화를 연출한 경험도 있고.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야 다를지 몰라도 ‘영화’라는 공용어로 소통할 수 있잖은가. 나의 작품을 사랑해주고, 나 또한 기쁜 마음으로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국경 따위는 간단하게 뛰어넘을 수 있다.

또한 <고>에도 드러나듯, 내 초기작품에는 스스로 경계를 넘어 사람들에게 다가가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원래부터 이웃나라의 영화에 지대한 애정을 갖고 있기도 했고. 이는 후에 지향점을 공유하며 서로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 동료들을 만나는 결과로 이어졌다. 비단 감독들뿐만 아니라 내게 감명을 준 작품의 제작에 참여한 스태프와 일하게 된 경우도 있다. 물론 현장에서 익숙한 사람들과 작업할 때보다 힘들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런 ‘혼란’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누구라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내 작품이 만들어져 있더라는 사실이다. 현장에서는 한 장면 한 장면 찍으면서 온갖 고생을 했지만, 막상 편집을 한 뒤 사운드를 입혀 보니 틀림없는 내 작품이 완성되어 있는.

 

홍상현:

보통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진 감독들의 경우, 그에 버금가는 강한 카리스마로 스태프들 위에 ‘군림’한다. 구로사와 아키라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그 예라 할 수 있겠는데 당신은 전혀 다른 느낌이다.

유키사다 이사오:

영화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하는 일이다. 어떤 사안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분명 내 의지지만, 평가는 타자가 하고. 또한 영화는 개인이 아닌 집단의 작업으로 탄생한다. 그런 까닭에 힘께 영화를 만드는 이들, 즉, ‘타자’의 생각을 수용하면서 작업을 해나가는 것은 중요하다. 막내 스태프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그래서다. 영화제작에 참여하더라도 결정권이 없다 보니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 하지만 내가 놓치는 부분을 찾아낼 수도 있으니까.

 

홍상현:

영화를 흔히 ‘감독의 예술’이라고 부른다. ‘감독’으로 이름을 거는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책임 또한 져야하는 특성에서 연유한 말인데, 불안감을 느끼지는 않는가?

유키사다 이사오:

로케이션 헌팅을 예로 들어보자. 모든 것을 감독의 의지대로만 한다면 내 취향이야 반영될지 모르지만 관객에게는 딱히 매력이 없을 수 있다. 그러니 시나리오를 충분히 읽고 시각화를 고민하는 스태프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들에게 결정권을 주더라도 모든 책임을 내가 진다는 원칙은 변함없다. 편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현장에서 촬영된 장면들에 대해 객관적이 되기 힘들거든. 감정이입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편집기사는 냉정한 시선을 가지고 있으니 일단 그들에게 선택권을 주고, 최종적인 판단은 내가 하는 거다. 시나리오 작업에도 반드시 누군가를 참여시킨다. 최대한 바람직한 결과물을 내보자는 의도에서다.

2017년 작품 <나리타주> 포스터.

홍상현:

한국 배우들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옴니버스 영화인 <카멜리아>(2011)에서 설경구와 작업했고 <나리타주(Narratage)>(2017) 개봉 당시 한국을 방문해서 ‘문소리와 작업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유키사다 이사오:

예전부터 문소리 씨의 연기를 좋아했다. 문소리라는 배우는 어떤 감독과 함께 작업하느냐에 따라 무척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뛰어난 재능과 배역에 대한 깊은 탐구에서 비롯된 것 아니겠나. 또한 다양한 미의 스펙트럼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Hahaha)>(2009)에서 그런 면모가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실제로 만나봐도 무척 스마트하고 재치가 있는 사람이라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시나리오 집필을 하고 있는데 무척 재미있는 작품이 될 거다. 특히 구성을 재미있게 만들어 볼 생각이다. 캐스트로는 한국, 프랑스, 그리고 일본의 배우들이 호흡을 맞추면 재미있겠지. 다만 준비 작업에 조금 시간이 걸리고 있다. 한 편으로 끝날지 아니면 몇 편의 시리즈가 될지 충분한 고민이 필요해서다. 이 내용은 반드시 써주시면 감사하겠다. (웃음)

 

홍상현:

배우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아이돌 그룹 출신으로 한국 팬들에게는 일본판 <꽃보다 남자>(2005)로 알려진 마쓰모토 준의 경우 <나리타주>를 통해 연기자로 거듭났다는 평을 들었다. 대중적으로 팔리는 이미지의 연기자라도 작품 안에서 부각시키지 않는 당신의 방식이 성공했다고 본다.

유키사다 이사오:

배우라는 존재가 갖는 인간적 특성과 연관되는 이야기다. 영화이론에서 말하는 리얼리즘과 좀 다른 개념인데, 나는 항상 배우의 퍼스낼리티, 즉, 자신의 본질을 작품 속에서 어떻게 발현하게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배우, 혹은 연예인은 그 일을 하게 되는 시점부터 자신과 다른 어떤 존재를 만들어 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본원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에게 절대 보여주지 않는 모습도 생겨나고. 이 부분을 조금이라도 좋으니까 영화 속에서 발현할 수 있도록 유도했다.

 

홍상현:

최근의 작품을 보면 기복이 심한 캐릭터나 극단적인 설정을 피해가려는 의도가 많이 보인다. 앞으로 보다 탄탄하게 구축해가게 될 ‘유키사다 이사오 스타일’과 연관되어 있는가?

유키사다 이사오:

어떤 배우가 장애를 안고 있는 인물을 연기한다고 가정하자. 충분한 스터디를 통해 역할을 창조하는 테크닉의 측면이 중요하겠지. 하지만 나는 애초에 특수한 역할창조가 필요한 소재를 선호하지 않으며, 특정한 형식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프로듀서들에게 ‘당신의 시나리오는 지나치게 잔잔하다’는 평을 들을 때도 있지만, 생각해보자. 예컨대 야쿠자를 등장시키더라도 그 유형은 얼마든지 다양할 수 있지 않나? 도리어 평범한 회사원을 주인공으로 설정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도 있다,

이는 내가 러브스토리를 선호하는 것과도 연관된다. 러브스토리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애를 경험하는 까닭에 보편적으로 공유될 수 있는 정서가 있다. 이로 인해 ‘통속적’이라면서 사회성이나 예술성을 추구하는 작품보다 낮게 평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굳이 러브스토리를 선택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드라마이며, 그 안에 특정한 캐릭터나 형식에 대한 답을 처음부터 제시하기보다, 배우와 더불어 만들어갈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굳이 극단적인 소재를 선택하려 하지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개인적으로 짐 자무쉬의 작품들을 좋아하는데, 그의 영화는 대단히 스타일리시하지만 소재가 지극히 일상적이다. 이런 이야기야말로 감독으로써 내가 관심을 갖는 부분이며 진입장벽이 매우 높기도 하다. 내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작품으로 귀결되니까.

 

홍상현:

심지어 '월간 유키사다 이사오'라는 팟캐스트 방송까지 할 만큼 팬들을 소중하게 대한다.

유키사다 이사오:

젊은 시절 뮤지션이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밴드를 조직했고. 라이브도 했지. 점점 감이 잡혀가면서 밴드도 인기를 끌었다. 뮤지션은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많다. 내가 관객들과의 스킨십을 소중하게 생각할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느끼는 것도 이 시절의 경험 때문 아닐까. 소통이란 중요하다. 인터랙티브의 시대니까.

 

홍상현:

<해바라기>(2000)로 지난 2000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연맹상을 받은 이후, 줄곧 인연을 맺어오고 있다. 올해도 참석할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본인이 느끼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매력에 대해 말씀해 달라.

유키사다 이사오:

부산국제영화제의 경우 신인들의 출품작은 경쟁하지만 나머지 출품작은 경쟁하지 않는다. 취지에 동의할 뿐만 아니라 대단히 좋아한다. 원래 비경쟁영화제를 선호하거든. 멋진 영화들을 잔뜩 준비해서 관객들과 만나고. 그들의 반응을 보며 다시 새로운 것들을 고민하고. 창작자와 관객 모두를 위한 만남의 장. 보통의 경우 창작자와 관객 사이에는 경계선이 존재하지만, 부산에서는 거리를 걷다가 수많은 스타들과 마주칠 수 있고, 수많은 감독들과 밤새 술을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 모든 기회는 ‘영화’를 통해 주어진다. 멋지지 않은가.

 

홍상현:

지난 8월 3일에 50번째 생일을 맞았다. 감회와 앞으로의 계획은?

유키사다 이사오:

데뷔 이후 23년간 쉼 없이 달려왔다. 그간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정말 하고 싶은 작업을 뒤로 미룬 경우도 많았는데, 쉰 살이 된 것을 기점으로 차근차근 진행해 보려고 한다. 말 그대로 ‘유키사다 이사오 오리지널’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거지. 이를 위해 영화를 시작하던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예전에 써 둔 시나리오나 기획도 다시 꺼내보고 있는데 무척 신선하다. 마치 나 아닌 다른 사람이 건네는 선물을 받아드는 느낌이랄까. 그리고 많은 이들과 언제 같이 작업을 해보자는 약속을 했는데, 이런 약속들도 하나하나 실현해 가려고 한다. 앞서 말한 문소리 씨, 그리고 설경구 씨와도 작품을 통해 만나고 싶고.

 

홍상현:

엄청나게 바쁜 10년간이 될 것 같다. (웃음)

유키사다 이사오:

벌써부터 그럴 조짐이 보이고 있다. (웃음) 자신의 데뷔작이 곧 자신의 대표작이 되어버리는 감독이 많다. 내 경우에도 <고>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를 가장 많은 분들이 기억하시지. 하지만 돌이켜 보면, 또한 수많은 감독들이 쉰 살에서 예순 살이 될 때까지의 기간 동안 영화사에 기록되는 작품을 내놓았다. 이는 앞으로의 10년이 내게 갖는 의미를 상기시켜준다. 진지하게 영화와 마주하며 창작에 매달리고 싶다.

유키사다 이사오 감독 대표작 2004년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포스터.

 

“아... 정말 즐거운 ‘대화’였어요.”

유키사다 감독이 인터뷰를 마치는 순간 던진 말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그저 우리의 추억 속에 머물러 있었던 게 아니라, 늘 자신의 자리에서 쉼 없이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구축하며 진화를 거듭해 왔다. 하지만 유키사다 감독과의 긴 ‘대화’(그는 내내 ‘인터뷰’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속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역시나 그가 자신의 최근작이 아니라, 우리가 생생하게 기억하는 초기작의 어느 장면에 등장할 법한, 지적이고, 쾌활하며, 인간미 넘치는 인물이었다는 사실.

비단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인터뷰 당시 쿠도 마사아키의 때문만이 아니다. 함께 밴드를 하던 친구들과의 추억이 서린, 고향 구마모토에 2년 전 지진이 일어나자 그 상처를 어루만지고 부흥에 조금의 힘이나마 보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지난 4월 구마모토 부흥 영화제의 디렉터를 맡아 팔을 걷어붙인 그였다. 이런 유키사다 감독에게 해당되는 표현은 ‘정체’가 아니라 ‘한결같음’이리라.

결국 많은 한국 팬들의 그리움은 집착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어느새 시원하게 흩뿌리던 소나기가 멎고,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한 거리로 나서는 필자를 배웅하던 유키사다 감독이‘다음에는 부산의 거리 어딘가에서 식사를 한 끼 하자’며 미소를 지었다.

왠지 그가 무척 그리워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이슈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