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실리콘밸리에서 170억원을 투자 받으며 배운 것

  • 기자명 황장석
  • 기사승인 2018.09.13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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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실리콘밸리 현지 벤처캐피탈(VC)로부터만 170억원(1600만달러)을 투자 받은 한국계 스타트업의 공동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 국내에서 게임회사를 창업해 일본 기업에 성공적으로 매각한 뒤 곧바로 다시 창업에 뛰어든 기업인. 그리고 서울대(컴퓨터공학부)재학 시절 1인칭 슈팅게임(FPS, First-person shooter) 언리얼 토너먼트에서 한국 랭킹 1위, 세계 랭킹 3위를 기록한 프로게이머. 그리고 자칭 한 때 '게임폐인'.

이건 모두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센드버드(SendBird) 김동신 대표 얘기다.

센드버드는 기업용 메시징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다. 기업이 자사 모바일 앱이나 웹사이트에 페이스북의 메신저 같은 메시징 기능이나 채팅 기능을 넣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기업이 큰 돈을 들여 자체 개발할 필요 없이 이용료만 내고 사용할 수 있는, 이른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Software as a Service) 회사다.

이 회사는 2016년 세계 최고의 스타트업 육성지원 기관으로 꼽히는 와이콤비네이터(Y-Combinator)를 졸업했다. 업계에선 와이콤비네이터의 교육지원 프로그램에 선정돼 해당 교육을 마치는 걸 '졸업한다'고 표현한다. 에어비앤비, 드롭박스 등 잘 나가는 기업들이 바로 이 와이콤비네이터 교육을 받고 졸업하면서 급성장했다. 한국계 스타트업으로는 하형석 대표의 미미박스에 이어 두 번째였다.

실리콘밸리 벤쳐캐필탈로부터 170억원을 투자받은 '센드버드' 김동신 대표. 황장석 촬영

김 대표를 만난 건 지난 9월 5일 샌프란시스코 공항 근처 도시 산마테오(San Mateo)에 있는 센드버드 사무실에서였다. 한 달 전인 8월 초 같은 장소에서 처음으로 만난 뒤 두 번째였다. 처음 봤을 때 그는 한국계 창업가와 투자자, 창업이나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소통하는 '밸리직구(Valley 直口)' 모임에 초빙 연사로 나왔다. 밸리직구는 김범수 세마트랜스링크캐피털 파트너와 여상호 시애틀 한인 엔지니어 모임 운영자, 김창원 타파스미디어 대표, 안정훈 구글 엔지니어 등이 중심이 돼 최근 결성한 모임이다.

그에게 별도의 인터뷰 요청을 한 건 실리콘밸리에 건너와 170억원이라는 금액을 투자 받으면서 경험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한국계 스타트업이 실리콘밸리에서 현지의 상위 VC들에게서만 그런 거액을 투자 받는 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①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과 대화하는 방법

 

가장 궁금한 것부터 물었다. 바로 '실리콘밸리에서 VC와 대화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처음 만났을 때 “처음엔 그들의 언어를 몰라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던 터였다. 그가 경험한 “그들의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직접 경험하며 배운 '실리콘밸리 VC와 소통하는 언어'는 무엇이었나요.

=일단 한국과 가장 큰 차이가 이 대화를 왜 하느냐, 이 대화의 목적이 뭐냐, 이걸 명확히 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한국에선 많은 부분이 관계 형성에 초점을 맞춰요. 영업 뿐만 아니라 투자유치에서도 그렇죠. 그러니까 '언제 인사 드리겠습니다', '차 한잔 하시죠', 이런 멘트가 먹힙니다. 미국 같은 경우 (VC 입장에서) '내가 너를 왜 만나야 하는데?',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상관이 있어?', 이런 식으로 비즈니스 관점에서 '왜'라는 게 명확하고 빠르게 전달되지 않으면 많은 경우 관계 형성으로 넘어가지 않았어요. '이게 당신이 나를 만나야 하는 이유다. 당신이 투자했던 회사를 보니 이런 면에서 우리 회사와 유사한 것 같다. 우리가 이런 성과를 내고 있으니 한번 만나보자'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게 상당히 낯설었다고 했었는데요.

=처음엔 '인간미가 없다', '사람들이 거래 중심적이다', 이렇게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미국이란 시장이 인구도 많고 스타트업도 많다 보니 시장에 노이즈(noise)가 많은 거죠. (VC들의 생각은) '한번 거르고 만나겠다'는 것이죠. 그걸 감안하지 않으면 초반에 커뮤니케이션과 관계 형성하는데 좀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 것 같아요. 아는 사람 통해서 소개 받고 가야 하고요. 소개 받을 때도 소개한 사람이 나를 굉장히 쉽게 소개할 수 있도록 한 문단으로 정리해줘야 해요. 내가 왜 (그 VC와) 상관 있는지 정리해서 보내줘야 하고 그렇게 해서 호의적인 소개(warm intro)를 받아야 만남으로 이어져요.”

 

-호의적인 소개라는 게 일종의 과제군요.

=그런 소개를 의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실제 소개 받을 수 있도록 피칭(pitching, 사업 설명)을 할 수 있느냐, 이걸 첫 관문으로 보는 것 같아요. 시간을 아끼는 형태로 내용을 짧게 보내는 것도 중요해요. 한 문단에 사업을 다 설명하는 건데, 처음엔 뭘 써야 할지도 몰랐어요. 하여튼 그래서 일단 만났다고 쳐요. 그럼 30초 피치 해야 하죠, 2분 피치, 10분 피치 준비해야 하죠. '이 사람이 나랑 상관 있는지 좀 더 들어볼까', '재미있는데 좀 더 들어볼까', 이렇게 해서 15분 미팅이 되고, 30분 미팅이 되고, 1시간 미팅이 되는 식으로 가야 하는 것이더라고요. 처음 한국에서 왔을 때는 (그런 게 익숙하지 않아) 서럽고 생소했어요.”

 

② 투자를 받는 프로세스

 

김 대표는 투자를 받을 때도 창업가(기업가)가 프로세스(과정)를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투자를 받을 때 프로세스라는 게 어떤 건가요.

=처음 미팅(투자 관련 회의) 약속을 잡을 때도 일단 그냥 만나보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우리 펀드레이징 하려(투자 받으려) 한다'고 미리 말을 해야 해요. 투자자(투자사) 10~30곳 정도를 선정해서 3, 4주 후에 처음 회의 약속을 다 잡아야 해요. 투자자에게 얘기할 때도 '이번 주, 그리고 다음 주, 투자자들과 첫 회의를 하고 그 다음에 추가 회의를 한다. 지금부터 한 달 안에 투자 조건을 담은 계약서(term sheet)'를 받은 다음 의사 결정을 할 계획이다', 이렇게 타임라인을 제시해야죠. 그런 과정을 창업가(기업가)가 주도해야 해요. 그렇게 해서 모든 투자자들이 비슷한 시기에 접근하고, 비슷한 데이터를 요청하고, 비슷한 정보를 갖고, 비슷한 시기에 판단해서 투자 여부를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해요. 그렇지 않고 투자자들이 '언제 펀드레이징 할 거냐'고 물어올 때 '최대한 빨리 하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아마추어라고 생각해버리거든요.

 

-처음엔 그런 게 힘들었다고 했는데요.

=처음엔 저도 잘 못했어요. 엄청 삽질하고요. 이렇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안 됐어요. '이렇게 하면 건방지다고 생각하고 투자 안 한다고 하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컸어요. 그래서 두 번째 (펀드레이징) 할 때는 와이콤비네이터 등에서 교육 받은 대로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그런 프로세스대로 했더니 정말 제대로 됐어요. 투자자들도 오히려 신뢰하더라고요. 건방지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프로세스에 대해 숙지하고 그대로 진행하는 것 자체가 기업가의 실력으로 평가 받는 것 같아요.

2018년 8월 8일 실리콘밸리 산마테오(San Mateo) 센드버드 사무실에서 열린 밸리직구 모임에서 김동신 대표가 청중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황장석 촬영

③3할타자도 세 번은 기회를 잡아야

 

김 대표는 투자 받은 자금이 같아도 씀씀이가 다르면 런웨이(runway, 자금 상황으로 볼 때 운영 가능한 기간)에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고, 이는 투자를 받을 때도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돈을 적게 쓰면 좀 더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아끼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는데요, 회사에서 돈을 쓰는 부문과 거의 안 쓰는 부문은 어디인가요.

=단계마다 달라지긴 하는데요. 초기에는 모든 부분에서 아껴야죠. 간식비도 아껴야 하고, 기분 내려고 워크숍 같은 걸 가도 아껴야 하고요. 결국 스타트업 초기의 모든 레버리지는 '런웨이가 얼마나 있느냐', '(현재 갖고 있는) 매력적인 투자 제안이나 투자 조건 계약서가 있느냐' 이 두 개 밖에 없거든요. 돈을 적게 쓰면 그에 비례해 런웨이가 무조건 늘어나잖아요? 똑 같이 100억원씩 투자 받았는데 한 회사는 월 10억원씩 쓰면 1년도 못 가서 문 닫는 것이고, 다른 회사는 5억원씩 쓰고 있으면 두 배는 가는 거잖아요. 런웨이가 2년인 회사와 1년인 회사는 펀드레이징 할 때 레버리지가 어마어마하게 차이 나요. (예를 들어) 2년 치 돈 있는 회사에는 돈 더 주고 싶어해도, 1년도 못 남은 회사에는 불안해서 주기 싫어 하거든요.

 

그는 이를 야구경기에 비유했다. 3할타자도 타석에 세 번은 설 기회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스타트업도 (야구와) 비슷한 것 같아요. 예컨대 3할타자가 있어요. 30% 타율로 홈런이든 안타든 쳐낼 수 있으면 엄청난 것이거든요. 그런데 실력이 좋은 선수라 해도 적어도 세 번은 때릴 기회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런웨이가 짧아지면, 한번 (기회를 잡아) 휘둘렀는데 못 맞히면 그냥 아웃이에요. 두 번째 (타석에 서서) 공이 올 때까지 못 버티는 것이죠. 런웨이가 길어지면 다르죠. 두 번째까지 실수하고 세 번째에서 쳐내면 3할 타자가 되죠. 똑똑한 사람들이 일 잘 하면 세 번 기회 중에 한번은 (3할타자처럼 기회를) 잡거든요. 돈 떨어져서 기회를 못 갖게 되면 그렇게 억울할 수 없어요. 최대한 그 기회를 한번이라도 더 잡아보자는 취지에서 아껴 써야 되는 거죠. 이 사무실 번듯해 보이죠? 하지만 (저희가 따로 돈을 들인 게 아니고 입주 전에) 인테리어가 다 돼 있었어요. 책상, 의자, 화이트보드, 심지어 벽에 설치돼 있는 애플TV, 모두 다 전에 이 사무실 쓰던 회사가 투자자 돈으로 사 놓고 간 것이에요. 그 회사는 다운사이징해서(규모를 줄여서) 이 사무실을 나갔고요. 결과적으로 (그렇게 사 놓은 시설을) 저희가 누리고 있죠.

 

④ 필요한 것은 긍정, 집요함, 그리고 나에 대한 이해

 

센드버드는 이미 성과를 바탕으로 거액을 투자 받았기에 당분간 돈 걱정할 일은 없는 상황이다. 인력도 계속 충원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20명 가량이었던 직원 숫자는 벌써 60명이 넘었다. 올해 말까지 90명 수준까지 늘릴 계획이다. 그는 창업을 꿈꾸는 실리콘밸리의 예비 창업가들에겐 선망의 대상이다. 그가 연사로 나선 8월 초 밸리직구 모임에 비교적 최근 창업한 기업가들과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많은 질문을 던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예비 창업가에게 건네고 싶은 조언은 무엇인가요.

=세 가지가 있어요. 저 스스로에게 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제 만트라(mantra)가 긍정적 집요함(positive tenacity)이에요. 긍정적이라는 건 무작정 '잘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이거, 되지 않을까'라는 호기심,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문제해결로 봐야 하거든요. 그리고 그게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요함이 중요한 것 같아요. 사업하다 보면 좌절의 순간이 많이 오거든요. 계속 오거든요. 포기하고 싶고. 저도 그렇거든요. 마음을 다잡고 '한번 더 가보자. 그럼 기회 한번 더 오지 않겠나', 그러다 보면 얼핏 (기대와 예상이) 맞아요. (야구로 치면) 1루 더 진출하는 것이고요. 긍정적으로 집요하게 해야죠. 마지막은 셀프 어웨어니스(self awareness, 자신에 대한 이해)에요. 스스로에 대한 객관화와 자신을 이해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세상과 동떨어져 (자기 혼자) '난 이게 좋아' 이러는 게 아니라, 세상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에 대해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죠. '내가 이것밖에 안되는구나'가 아니라 '내가 이런 걸 잘 하는구나, 못하는구나', '이런 게 충족되지 않으면 번아웃(burnout, 탈진)이 오는구나', '이런 걸 하면 동기부여가 되고 신이 나는구나'. 그런 걸 잘 이해해서 스스로 스트레스 관리하는 법이나 자기자신의 동기부여를 관리하는 법, 남들과 대화할 때 어떻게 해야 좀 더 성숙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지는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죠). 다 학습할 수 있는 스킬 같거든요. 연습하면 되는 것들이죠. 이런 걸 잘하게 되면 버티기에 더 유리해지는 것 같아요. 자신에 대해서도 더 잘 알게 되고요.

센드버드는 2016년 사명이 자이버에서 변경된 바 있다. 센드버드 블로그에서 밝힌 새 로고 디자인 과정.

 

*인터뷰 후기

-키워드는 프로게이머게임폐인영어일 중독스포츠카

김동신 대표와 만나면서 개인적으로 호기심을 느꼈던 것 중 하나가 그가 프로게이머였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서울대 재학 시절 '삼성 칸' 소속으로 대회에 나갔다. “1만 시간 넘게 1인칭 슈팅게임을 했다”는 그는 어떻게 게임에 빠져들었을까.

 

“중학교 2학년 때 게임월드라는 잡지의 3월호 별책부록이었던 것 같아요. 듀크 뉴켐 3D(Duke Nukem 3D)라는 온라인게임 공략집이 나왔어요. (다른 사람과 함께 게임하는 방식이 아니라) 혼자 싱글플레이어로 게임할 때는 제가 좀 잘했거든요. '(다른 사람과 같이 하는) 온라인게임이란 게 있네, 해봐야지' 했는데, 처참하게 졌어요(그는 '발렸다'고 표현했다).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저 사람을 이겨야겠다(생각했죠). 그 사람 아이디가 '울프164'였던가 그랬어요. 당시엔 한국랭킹이라는 게 있었는데 그 사람 랭킹이 계속 올라가더라고요. 그 사람 잡기 위해 자꾸 올라갔죠. 어느 순간 그 사람은 십 몇 위인지 이십 몇 위에 멈춰 있더라고요. 이기고 올라가니 저보다 위에 몇 명 없었어요. '더 위까지 가봐야겠다', 그래서 듀크 뉴켐 3D로 한국랭킹 1등 한 번 하고, 둠, 퀘이크 이런 게임으로 옮겨갔죠. 그러고 나서 폐인 됐죠. 부모님 속 썩이고.”

 

전화모뎀으로 인터넷에 연결해 게임을 하던 시절, 게임에 빠진 아들 덕분에 전화요금은 16만원이나 나왔다고 한다. 학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곤 게임에 빠져 살았던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 때 게임 대신 공부에 전념한 건 늘 아들을 믿어준 어머니 덕분이었다.

“제 이름에도 믿을 신(信)이 있어요. 어릴 때 나를 무조건 믿어주는 사람이 있느냐 없느냐, 그게 사람의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는데요. 어머니께선 제게 과분할 정도로 믿음을 주셨어요. 게임만 하던 시절에도 '(우리 아들은) 언제든 공부 잘 할 수 있어' 이렇게 믿어주셨죠. 그래서 고3 때 정신 차리고 공부했어요.”

그는 수능시험 전날 “컨디션 조절을 위해, 릴렉스 하려고” 게임을 했다. 대학에 가면서 본격적으로 다시 게임에 빠져들었다. “부모님께도 '이제 대학도 갔으니 게임 하게 그냥 두시라'고 말씀드렸죠. 대회 나가서 상금 받고, 받으면 친구들에게 술 샀어요. 게임 정말 많이 했어요. 마우스만 1000만원어치 샀으니까요.

프로게이머로 사는 것도 잠시 고민했다.

“결정적인 건 그때 세계대회 나갔을 때였어요. 저보다 상위에 있는 2명을 봤는데, 2등 하는 친구를 보니 '이 친구는 내가 열심히 하면 이기겠다' 싶었는데, 1등 하는 친구를 보니 인생을 걸었더라고요. 코치가 붙어 있고, 아버지가 해외에서 열린 대회에 날아오고. 옆에 스폰서까지 두고 게임을 하는데, 제가 그렇게 사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았어요. 그때 '이건 결국 남들이 짜 놓은 판에서 내가 한 명의 플레이어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이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저한테 게임은 자기 수련의 즐거움이 컸거든요. 연습하고 그만큼 더 잘하게 되고. 그런데 큰 판에서 보면 결국 기업과 환경이라는 게 있잖아요. 남들이 짜 놓은 판이고 내가 거기서 놀고 있는 (장기판의) 말이구나. 허망했어요. 그럼 더 이상 소비만 하고 살지 말아야겠다 (뭔가를 만들면서 살아야겠다생각했어요그때 게임 끊었어요. 물론 그 뒤로 아예 안 한 건 아니지만요. 대회 끝나고 '정신 차리려면 뭘 해야 하지?', '군대를 가야겠다' 해서 입대하려고 했는데 누가 병역특례를 권유했어요. 사실 그때까지 그런 제도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너 엔지니어야? 그럼 해보지 않을래?', 그래서 하게 됐는데 정말 좋은 프로그램이더라고요. 경력도 쌓고 배우고.”

김 대표는 지금도 생산자의 삶을 중시한다. 자신의 영문 블로그에 자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을 쓰기도 했다. '문제 해결과 포기하지 않는 것에 대해'라는 글이다. 그는 남이 만든 것을 소비하는 인생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 가치를 창출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썼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2001년 여름부터 3년 동안 병역특례요원으로 근무했다. 처음 입사했던 회사는 1년 반만에 문을 닫았다. 입사할 때 인원이 100명이었는데 10명 정도 남았을 때, 조금 있으면 문을 닫아야 할 시점에 회사를 나왔다. 그 때 느낀 게 반드시 월급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는 딸린 식구가 없으니 김밥 사 먹으면서도 살 수 있었지만 처자식 있는 분들은 정말 힘들어하셨어요. 벤처기업, 닷컴 거품이 꺼질 때였어요.”

그래서 옮긴 회사가 엔씨소프트(NCSOFT). 그의 표현을 빌리면 “능력 있고 일 잘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많이 배운 시기”였다. 경력에도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한다. 

2007년 말 웹 서비스 회사를 창업하고 이제 막 서비스를 만들고 있을 때였다. 2008년 외환위기가 터졌다. 투자 환경은 그의 표현대로 '빙하기'가 온 듯 얼어붙었다. 투자자들은 그가 '엔씨소프트에 근무했고, 프로게이머였으며, 개발자'라는 점을 들어 웹 서비스가 아니라 게임을 만들면 투자하겠다고 했다. '굶어 죽으면 안 되겠다',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겠다'는 생각에 게임을 만들겠다며 투자를 받았다. 딱히 그가 원하던 사업은 아니었지만 열심히 게임을 만들고 성과를 내서 2012년 파프리카랩이라는 회사를 일본 게임회사 그리(GREE)에 매각했다. 버티다 보면 기회가 온다는 그의 믿음은 그 때 굳어졌을 것이다.

(*8월 초 실리콘밸리 '밸리직구' 모임에서 김범수 세마트랜스링크캐피털 파트너는 김 대표에게 “당시 100억 가까운 금액에 인수된 걸로 안다”고 했다. 계약 조건 때문인지 김 대표는 구체적인 금액을 확인해주진 않았다.)

김 대표는 유학파가 아닌 국내파지만 영어를 잘 한다. 실리콘밸리에서 사업을 하면서 언어 때문에 문제를 겪지 않을 만큼 영어를 구사한다. 국세청의 국제조세 담당 공무원이었던 아버지가 3년 동안 미국 파견 근무를 하게 되면서 가족이 함께 미국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까지 미국에서 살았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온 뒤엔 영어를 잊지 않기 위해 꾸준히 관심 있는 영어 웹사이트를 보고, 영어로 된 책을 읽었다.

“미국에 살았던 시기에 기반은 다졌던 것 같고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어요. 한국에 와서는 잊지 않기 위해서 노력한 것 같아요. 한국 콘텐츠, 드라마 안 보고, 영어로 된 웹사이트만 보고.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영어 환경을 만들어 두고 살았어요. 한국 책을 2권 읽으면 영어 책 1권은 읽었고요.”

그는 미국에 온 뒤엔 영어 책만 읽고, 미국 드라마, 영어 유튜브 영상만 본다. 미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어로 '에워싸는 환경(immersive environment)'이라고 표현했다.

“(한 언어 환경에 자신을) 계속 노출하면, 다 둘러봐도 그 언어로만 돼 있으면 빨리 익혀지니까요.”

김 대표는 재미 나게 말을 잘하는 엔지니어다. 하지만 스스로는 “일 하는 게 가장 즐겁고 다른 건 별로 할 줄 아는 게 없는 재미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느낀 건 '일 중독자'라는 것이었다. 다른 건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청바지에 회사 로고가 박힌 티셔츠, 점퍼를 교복처럼 입고 다닌다. 신발은 가볍고 편하다는 올버즈(allbirds)만 신는다. 가격이 100달러 정도인 신발이다.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엔 주로 책을 읽는다.

그 외에 신 나는 일은 스포츠카 운전이다. 구체적인 차 이름은 듣지 못했다. 제법 비싼 스포츠카이며 '럭셔리 계열'이 아니라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스포츠카, 그의 표현으로 '퓨어(pure) 스포츠카'다. 스포츠카 운전을 좋아하는 건 운전하면서 “온전히 내가 원하는 대로 갈 수 있고, 내 운명을 온전히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1인칭 슈팅게임에 빠졌던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고 한다. “원하는데로 정확하게 컨트롤 되고 뜻하는 대로 됐을 때 (무협지에서 몸과 검이 하나가 되는) 신검합일의 느낌”이 게임과 스포츠카의 공통점이라는 것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센드버드 사무실을 나왔다. 실리콘밸리 북부의 샌프란시스코에서 그 아래 산마테오를 지나 실리콘밸리 남부까지 이어진 이 지역의 통근열차(Caltrain)가 다니는 철로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이다. 열차가 다닐 때마다 소음이 심하긴 하지만 출퇴근이 편한 곳이다. 대중교통이 불편한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월세도 비싸다. 회사가 성장해 직원 수가 빠르게 늘고 있으니 조만간 더 넓은 사무실을 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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