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치→휴일→기념일→국경일→다시 휴일, 험난했던 한글날 역사

  • 기자명 정재환
  • 기사승인 2018.10.02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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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11월 4일(음력 9월 29일), 종로에 있는 요릿집 식도원에서 훈민정음 반포 8회갑(480년)을 기해 첫 번째 가갸날 기념식이 열렸다. 주최는 조선어연구회와 잡지 『신민』을 발행하던 신민사였다. 기념식에 관한 기사는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널리 보도하였고, 그 날 이후 곳곳에서 한글강연회와 강습회 또는 축하회가 열렸다.

언론, 출판, 종교, 문예, 학계 등 각계 인사 400여 명이 참석한 가갸날잔치. 동아일보 1926.11.6.

 

가갸날에 대한 관심은 일제에 억눌려 지내던 조선인들의 언어와 민족의 앞날에 대한 희망의 표현이었다. 다음은 12월 7일자 동아일보(5면 '가갸날에 대하여')에 실린 만해 한용운의 가갸날 축시다(시어는 현대어로 바꿈).

아아 가갸날 

참되고 어질고 아름다워요 

「축일(祝日)」 「제일(祭日)」 「데이」 「씨즌」 이 위에 가갸날이 났어요 가갸날 

끝없는 바다에 쑥 솟아오르는 해처럼 

힘 있고 빛나고 뚜렷한 가갸날

「데이」보다 좋고 「씨즌」보다 알기 쉬워요 

입으로 젖꼭지를 물고 손으로 다른 젖꼭지를 만지는 어여쁜 아기도 일러줄 수 있어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 계집 사내도 알려 줄 수 있어요 

가갸로 말을 하고 글을 쓰세요 

혀끝에서 물결이 솟고 붓 아래에 꽃이 피어요

그 속에 우리의 향기로운 목숨이 살아 움직입니다 

그 속엔 낯익은 사랑의 실마리가 풀리면서 감겨 있어요 

굳세게 생각하고 아름답게 노래해요 

검이여 우리는 서슴지 않고 소리쳐 「가갸날」을 자랑하겠습니다 

검이여 가갸날로 검의 가장 좋은 날로 삼아 주세요 

온 누리의 모든 사람으로 「가갸날」을 노래하게 해 주세요 

가갸날 오오 가갸날이여

 

축시를 지은 한용운은 “가갸날에 대한 인상을 구태여 말하자면 오래간만에 문득 만난 님처럼 익숙하면서도 새롭고 기쁘면서도 슬프고자 하여 그 충동은 아름답고 그 감격은 곱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바야흐로 쟁여놓은 포대처럼 무서운 힘이 있어 보입니다.”라고 했다. ‘쟁여 놓은 포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분명 침략자를 물리칠 강력한 무기로서 한글과 우리말을 암시했을 것이다.

1928년 세 번째 맞이하는 기념식부터 조선어연구회는 명칭을 ‘한글날’로 바꾸었다. 1910년 8월 29일 국권 상실 이후 국문을 국문이라고 부를 수 없는 일제 치하에서 탄생한 이름이 ‘한글’이니, 한글은 진흙 속에서 피어난 연꽃 같이 아름답고 소중한 이름이다.

1908년 주시경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국어연구학회’는 1911년 ‘배달말글몯음’으로, 1913년에는 ‘한글모’로 바뀌었다. 새 이름 ‘한글’이 언론 보도와 함께 차츰차츰 민간에 보급되고 있었다. 처음 가갸날을 기념하던 1926년에 이미 권덕규가 ‘한글날’이 좋다는 제안을 했었고, 1927년 2월 조선어연구회가 발간한 동인지 이름이 『한글』이었다.

1930년에는 양력이 일반화되는 추세에 맞추어 1446년 음력 9월 29일을 율리우스력에 따라 양력 10월 29일로 환산해 기념식을 가졌으나, 이후 양력 환산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1931년에는 그레고리오력에 따라 10월 28일로 날짜를 고쳐 잡고, 해마다 양력 10월 28일을 한글날로 기념했다.

이것이 오늘날 10월 9일로 바뀐 것은 1940년 안동에서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된 때문이었다. 책 끄트머리에 적힌 ‘정통 11년 9월 상순’을 1446년 9월 1~10일(상순)로 확인하고, 그때까지 음력 9월의 끝 날인 29일을 기념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1~10일의 끝 날인 9월 10일을 반포일로 잡고, 양력으로 환산해 10월 9일이 한글날이 된 것이다.

'국군의날ㆍ한글날 공휴일서 제외'. 경향신문 1990.11.2

한글날이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훈민정음 반포 500돌이 되는 1946년이었다. 미군정청에서 한글날을 공휴일로 지정하였으며, 조선어학회와 진단학회가 공동으로 ‘한글 반포 500주년 기념사업’을 추진하여 덕수궁 중화전 넓은 뜰에서 각계 인사와 시민, 학생 2만여 명이 모여 성대한 기념식을 치렀다.

1946년 이후 한글날은 공휴일이었지만, 명문화된 규정은 없었고, 때가 되면 정부가 공휴일로 지정하는 식으로 해를 거듭하다가 1949년 6월 4일에 대통령령 제124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을 제정·공포하면서 일요일·국경일·식목일·추석·기독탄생일 등과 함께 공휴일로 지정되었다.

1945부터 1980년까지 한글날은 한글학회(국어연구학회→배달말글몯음→한글모→조선어연구회→조선어학회→한글학회)가 중심이 되어 기념행사를 거행하다가 1981년 서울특별시가 주관하게 되었고, 1982년 5월 15일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대통령령 제10824호) 일부가 개정되면서 기념일의 목록에 한글날이 추가되었다. 이로써 정부 지정 기념일이 되었고, 그해부터 기념식은 문화공보부가 주최하였다. 

1990년 노태우 정부는 노는 날이 많아 경제 활동에 지장이 많다는 경제 단체의 건의를 받아 들여 11월 5일자로 공포한 대통령령 제13155호를 통해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제외(경향신문 1990년 11월 2일자)하였고, 이후 한글날은 법정 기념일의 성격만 유지하였다.

한글날의 지위가 심각하게 격하(?)되자, 한글학회를 비롯한 한글 단체를 중심으로 한글날 공휴일 복원은 물론이고, ‘한글날 국경일 제정 운동’에 돌입하여, 2005년 12월 29일 법률 제7771호 「국경일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이 제정·공포됨으로써 한글날은 국경일로 지정되었다.

 

'한글날, 올해부터 쉰다.. 22년만에 법정공휴일 재지정'. 파이낸셜뉴스 2013.9.23.

 

그 결과 2006년 국경일 한글날 행사는 행정자치부가 주관하여 기념식이 아닌 ‘경축식’으로 치렀다. 문제는 국경일로 지정이 되었음에도 공휴일이 아닌 평일이라는 점이었다. 국경일이지만 쉬지 않는 평일에 한글날 경축식을 갖다 보니, 국민들이 함께 축하하고 즐길 수 없었고, 한글 단체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글날 공휴일 재지정 운동’을 전개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2012년 12월 28일 대통령령 제24273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이 이루어지면서 2013년 10월 9일 한글날은 명실상부한 국경일이자 공휴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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