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욱일기는 전범기? '전범기'는 없다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8.10.06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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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국가에서 욱일기는 일본제국주의 침략 전쟁의 상징이다. '욱일기는 전범기'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욱일기(욱일문양)에 대한 논란조차 거의 없으며 해외에서도 대체적으로 관심이 없다. 나찌의 상징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가)가 전세계적으로 금기시되는 것과 비교할 만한 일이다. 

이 글에서는 전범기가 무엇인지, 전범기 논란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그리고 욱일기와 욱광문양의 역사적 기원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이에 더해 전쟁이나 인종차별과 관련된 깃발과 욱일기를 비교해 보고 욱일기와 욱일문양 논란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논의한다.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글은 욱일기를 옹호하는 글이 아니다. 정확하게 알고서 비판하자는 취지의 글이며, 어떤 방식으로 비판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고찰해보는 글이다. 욱일기를 반대하면 독립지사가 되고 욱일기를 반대하지 않으면 친일 반민족세력이 되는 극단적 논리는 경계할 필요가 있다.

국제관함식 자위함 욱일기 게양 논란의 경과

10월 5일 일본 자위대가 대한민국 국제관함식 불참을 통보했다. 자위대함기(욱일기)를 게양할 수 없다면 참석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정부가 좌승함(사열을 받는 주최측의 선봉 함정)을 독도함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하는 강수를 두자 포기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초 일본 자위대함은 10~14일 제주도에서 열리는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에 참석하며 '욱일기'를 게양할 방침이었다.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이 들끓자 한국 해군은 관함식 참여 15개국에 공문을 보내 사열 참가시 자국 국기와 태극기만 달아 달라고 요청했다. 일본 오노데라 방위성은 "욱일기 디자인은 일본 국내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며 사실상 거절했다. 유엔 해양법 조약은 군대 소속 선박은 국적을 표시하는 깃발을 달게 되어 있으며 자위함기(욱일기) 게양은 일본 법령상 의무라는 것이 거절의 이유다. 외교부는 "욱일기에 대한 국민감정을 적극 감안해 달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5일 보도된 일본 NHK 캡쳐. 미디어 오늘 인용.

이와 관련 보수ㆍ진보 할 것 없이 한 목소리로 일본을 비판해왔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월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욱일기는 일제 강점 피해국엔 전쟁범죄의 상징"이라며 일본 군함의 욱일기 게양을 반대했다. 황영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같은날 "제주관함식 때 일본 욱일기 함정 오면 참석을 안하겠다"고 밝혔다. 대한민국3.1회(회장 안모세), 나라사랑태극기달기운동본부(대표 문영권 목사), 선민네트워크(대표 김규호 목사) 등 3개 단체는 9월 27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욱일기 반대' 기자회견을 가졌다. 전쟁반대 평화실현 국민행동도 일본 대사관 앞에서 전범기 단 일본군함의 국제관함식 참석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부산 시민·노동단체가 같이하는 ‘적폐청산·사회 대개혁 부산운동본부’의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특별위원회는 10월 2일 "국제 관함식 때 일본 함정 입항 저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발표했고 경남 창원에서는 진돗개가 욱일기를 밟는 퍼포먼스가 열리기도 했다.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0월 4일 군국주의 상징물은 물론 이를 연상케 하는 것을 국내에서 공연할 수 없게 하는 '군국주의 차단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럼 본격적으로 욱일기와 전범기 개념과 기원에 대해 살펴본다.

1. 전범기는 한국에서만 쓰는 개념이다

전범기(戰犯旗)란 전쟁범죄에 사용된 깃발이라는 의미다. 한국어 사전에 등록되어 있지 않은 단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언론은 '전범기'라는 표현이 표준어인 것처럼 사용한다. 한국에서는 전범기는 욱일기(旭日旗ㆍRising sun flag)와 사실상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영어로는 war crime flag로 번역되는데,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 단어다. war crime flag로 구글에서 검색하면 주로 욱일기 논란이 나온다. 주로 한국인들이 작성한 문건이다. 전범기는 사실상 한국에서만 쓰이는 개념이다. 

그래서 욱일기 문제를 해외에 알릴 때 '전범기(war crime flag)'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효율적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다. 개념 자체가 생소하기 때문에 설득하기가 힘든 것이다. 하켄크로이츠는 주로 나치 상징 혹은 파시스트 상징(fascist symbol)이라고 지칭된다. 그런데 '파시스트 상징'이란 단어는 전쟁보다는 파시즘과 인종청소에 초점이 맞혀져 있다. 인류 역사상 전쟁범죄를 저지른 집단은 수두룩한데 그들의 국기나 군기가 모두 금지되지 않았다. 전쟁범죄 깃발이라고 해서 금지해야한다는 논리가 빈약한 것은 이 때문이다.

 

전범기, war crim flag라는 단어는 한국에서만 사용된다. 사진은 구글 트렌드에서 '전범기'를 검색한 화면.

 

특정 단어가 언제 어느 나라에서 사용됐는지 알 수 있는 구글 트렌드에서 <전범기> <戰犯旗> <war crime flag>를 키워드로 검색하면, 전범기는 오직 한국에서만(한글이라서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戰犯旗는 대만에서만 사용됐다(반일감정이 한국보다 강한 중국에서도 간자체 战犯旗를 사용하지 않는다). war crime flag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 아예 검색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위 사진을 보면 전범기라는 단어가 한국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2012년 8월이다. 

 

2. 한국에서 '전범기'란 단어는 2012년 뉴데일리가 처음 사용했다

2012년 8월에 '전범기'라는 단어가 언론에서 처음 사용됐다.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밀실합의와 측근 비리로 인해 지지율이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8월 10일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이었다. 당시에도 대통령 방문이 '독도 분쟁지역화'를 노리는 일본의 의도에 말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반일 감정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런던올림픽 3-4위 한일전 축구 경기에서의 '독도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박종우 선수가 경기 뒤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종이를 드고 운동장을 돌았다. 정치적 메시지 표현을 금지한 국제올림픽위위원회는 대한체육회에 진상조사를 요청했다. 한국 국민이 들끓었다. 일본 응원단이 대형 욱일기를 사용한 것을 지적하며 불공정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욱일기를 지칭하며 '전범기'라는 표현을 처음 쓴 곳은 보수우익 성향의 뉴데일리였다. 이후 다른 언론들이 '전범기'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8월 24일 미국 뉴욕에서 '욱일승천기 퇴출' 시민단체가 출범했고, 27일에는 한 미국인이 일본 욱일기는 나치 상징과 동일하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IOC 위원장에게 보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이후 '전범기'라는 단어가 언론에서 쏟아졌다. 경향신문은 국내에서 욱일기를 소지한 사람을 엄벌하는 법안을 제정하자고 주장했다. 그해 11월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는 유엔 본부앞에서 일본 전범기 퇴출 등 군국주의 부활 경고 시위를 가졌다. 

반일과 한국홍보를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우는 서경덕 교수는 욱일기 문제를 다룬 2013년 '한국인이 알아야 할 역사이야기'란 동영상을 공개했다. 하켄크로이츠를 비교하며 욱일기를 세계적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내용의 유튜브를 영어로 제작했다. 욱일기 반대 운동 이후 서경덕 교수는 대중적으로 큰 이름을 알리게 된다. 서 교수는 2014년에는 뉴욕타임스에 불고기와 비빔밥 등 한식 광고를 냈는데 '괴상한 광고'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 돈을 받아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서 교수는 여전히 반일 민족주의자로 활동하며 욱일기 반대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 1일 서경덕 교수가 45개국 해군에 "일본 해상자위대 깃발은 전범기"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정리하면, '전범기(욱일기)' 논란이 본격적으로 분출된 것은 2012년이다. 정치적 곤경에 빠진 이명박 대통령이 탈출구로 선택한 독도 방문이 반일 감정을 고조시켰으며 올림픽 '독도 세레머니'로 인해 폭발했다. '전범기'라는 단어를 언론에서 처음 쓴 것은 뉴데일리였다. 과거에도 욱일기가 문제가 되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1998년과 2008년 부산에서 열린 국제 관함식에 참석한 일본 자위대 함정이 욱일기를 게양했지만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다.

 

3. 욱일기는 하켄크로이츠, 철십자, 남부연합기 중 어느 것과 비슷한가 

욱일기는 보통 나찌 상징인 하켄크로이츠와 비교된다. 한국에서는 둘은 차이점이 없으며 하켄크로이츠가 금지된만큼 욱일기도 금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사안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둘의 공통점만큼 차이점도 크기 때문이다. 우선 논란이 되는 4개 깃발(문양)의 역사적 기원을 살펴보자. 

욱일승천기는 공식 명칭이 아니다. 일본에서는 욱일기(旭日旗ㆍきょくじつきㆍ쿄쿠지쓰키)로 불린다. 일본어 위키피디아에도 욱일기로 적혀 있다. 일본 중심의 서술이지만 일본어 위키피디아에는 욱일기의 역사에 대해 자세히 쓰여 있다. 욱일기가 최초로 공식적으로 쓰인 것은 메이지 3년인 1870년으로 일본 육군의 군기로 사용됐으며 1889년에 일본 해군깃발로 채택되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의 상징으로 자주 등장하면서 제국주의 깃발로 인식됐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말레이시아 페낭 일본 해군기지에 입항한 독일 U보트 승무원들을 위한 일본 해군의 환영식 사진.

욱일기는 국가가 아니라 군대를 대표하는 깃발이다. 국기는 일장기(히노마루)다.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말레이시아 페낭 일본 해군기지에 입항한 독일 U보트 승조원들을 위해 일본 해군이 환영식을 열었는데 좌측에는 욱일기 우측에는 작은 철십자 문양이 들어간 하켄크로이츠기가 걸린다. 둘다 해군의 상징이다. 이 사진은 하켄크로이츠와 욱일기가 같은 전쟁범죄기라는 증거로 사용된다. 패전 이후 군대가 해산되면서 자연히 사용이 중단됐지만 1954년 자위대가 창설되면서 욱일기가 다시 자위대 깃발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본의 정상국가화를 주장하는 우익들이 종종 사용하면서 일본 극우의 상징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하켄크로이츠(갈고리 십자가)기가 나치 상징으로 등장한 것은 1920년이다. 처음에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의 당기였지만 히틀러가 집권한 뒤 1935년 국기로 제정됐다. 갈고리 십자가 문양은 유럽의 룬문자에서 비롯됐으며 행운을 의미했다. 19세기 고고학자 하인리힌 슐리만이 트로이 유적에서 이 문양을 발견했는데 스와스티카로 불렸으며 유럽의 공통되는 종교 기호라고 생각했다. 그는 유럽민족의 기원은 아리아인이라 봤는데 이 기호가 아리아족의 공유된 문화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이후 아리아민족의 순수성을 강조했던 나치가 이 문양을 당기로 삼게 된 것이다. 

하켄크로이츠는 제 2차세계대전 이후 사용이 사실상 금지됐다. 패전국 군대의 상징이어서가 아니라 인종차별 및 유대인 학살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반나치법안에 의해 독일에서는 공식적으로 사용이 금지됐다. 하켄크로이츠 뿐 아니라 독수리 문양이 들어가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 인종주의를 상징하는 켈트 십자문양, 히틀러 친위대 단기 등도 금지됐다. 모두 인종차별과 관련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독일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금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극우단체 집회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다. 

 

1813년부터 1870년까지의 철십자 종류. 출처: 나무위키

철십자(아이제르네 크로이츠)는 프로이센 시절부터 쓰인 독일 군대 고유의 상징이다. 훈장으로도 사용됐으며 1813년 나폴레옹 전쟁에 참여한 프로이센 병사의 무공을 치하하기 위해 철십자장으로 제작된 것이 기원이다. 철십자장은 여러 이유 때문에 욱일기와 비교된다. 둘다 당이나 국가의 상징이 아닌 군대의 상징이라는 점이 공통점이다. 차이점은 철십자장은 기본적으로 훈장이지만 욱일기는 깃발이라는 점이다. 물론 철십자 문양도 독일 군대에서 깃발로 사용하기도 했다. 전쟁 이후 사용이 금지되지 않았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직접적으로 인종청소를 연상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하켄크로이츠와 같이 쓰인 철십자는 현대에 금기시된다. 위 환영식 사진에도 나오지만 독일제국은 전쟁 당시 하켄크로이츠과 철십자를 같이 쓴 깃발을 3군 공통 깃발로 사용했다. 당(국가)과 군대를 상징하는 문양을 합친 깃발이다. 왼쪽 사진은 1939년 1급 철십자상인데, 철십자 가운데 하켄크로이츠가 들어가 있기 때문에 나치 상징으로도 쓰인다. 실제 극우들은 하켄크로이츠 대신 철십자를 모임이나 집회에서 사용하기도 하며 미국의 무법 오토바이 운전자들의 상징처럼 쓰였다. 

 

 

 

미국 남부연합기는 노예제 갈등으로 미 연방에서 탈퇴한 남부연합이 1861년 처음 사용했다. 현재 쓰이는 디자인은 1863년 채택된 남부연합 해군기와 동일하다. 당시 로버트 리 장군이 이끌던 북버지니아군이 사용하던 전투 깃발과 유사하다. 남부연합기가 처음부터 논란이 된 것은 아니다. 남부지역의 자존심으로 이 깃발이 사용됐고 주청사에도 게양되기도 했다. 문제는 쿠 클라스 클랜 같은 극우단체들이 이 깃발을 사용하며 노예제를 옹호하면서다. 인종차별과 백인우월주의를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금기시됐다. 2015년 미국 흑인 교회 난사사건 이후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한 흑인 여성은 주의회 의사당에 걸린 남부연합기를 내리기 위해 직접 철봉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남부연합기를 문화유산으로 생각하는 사람 특히 백인이 많다. 흑인 래퍼들은 인종차별적 성격을 중화시키기 위해 남부연합기 옷을 입기도 한다. 2014년 윈스롭대학 조사에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민 62%가 긍정적 또는 중립적 견해를 보였다. 퇴출논란이 불거지자 아마존에서는 남부연합기 매출이 급증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뉴욕주에서 남부연합기를 연상시키는 지하철 타일까지 교체하는 등 여전히 민감한 주제다. 

 

 4가지 깃발(상징)의 공통점을 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욱일기는 금지된 하켄크로이츠보다  금지되지 않은 철십자, 남부연합기와 공통점이 많다. 현재 일본 자위대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인종차별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동아시아를 제외한 다른 국가에서는 반감이 거의 없다. 특히 남부연합기와 매우 유사하다. 사용금지 여부, 대중적 인식, 피해자들의 반발, 극우들의 사용, 갈수록 사회이슈가 되고 있다는 점까지 닮아있다.

 

4. 욱광(햇살)문양도 금지해야 하나

욱광(旭光ㆍrising sun) 문양은 일본을 상징할 때가 많지만 일본에서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햇살이 사방으로 뻗치는 이미지는 전 세계가 사용하는 보편적 이미지다. 욱일기에 대한 한국의 반감은 '욱광문양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는 때가 많은데 지나칠 때가 많다. 이는 주로 연예인들에게 집중된다. 대중문화에서 욱광문양을 쉽게 발견할 수 있어서기도 하지만 인기에 민감한 연예인들이 이런 공격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2018년 7월 배우 하연수는 러시아 여행중 서커스장 앞에서 사진을 한장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네티즌들의 공격을 받았다. 포스터에 욱광문양이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연수는 해명을 하다 결국 사진을 내렸다. 

MBC '컬투의 베란다쇼' 정찬우(왼쪽).

2014년 개그맨 정찬우는 방송에 입고 나온 옷이 욱일기를 연상시킨다며 공격을 받자 사과를 했다. "녹화 당시에는 그런 느낌이 나는 옷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국민 한 분이라도 눈에 거슬렸다면 잘못한 거라 생각합니다"라는 사과문을 트위터에 올렸다. 

오버액션 토끼 신년인사 그림.

2017년 9월에는 캐릭터 오버액션토끼 제작진이 욱일기 논란에 대해 사과했다. 1월에 신년을 맞아 트위터에 올린 그림의 뒷 배경이 욱일기를 연상시킨다는 이유였다. 새해가 시작되는 1월 1일에 해가 떠오르는 이미지는 매우 보편적으로 사용된다.  

뉴욕시 관광홍보사이트에 올라온 욱일문양.

2013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작품 홍보배너와 뉴욕시 홍보포스터에 욱광문양이 들어가 한국인들이 반발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에서 서경덕 교수는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전시되는 일본 작가들 작품 대다수에 욱일승천기가 형상화됐다. 아~ 뭔가 또 조치를 취해야 할 것 같다"고 SNS에 올렸다. 

욱일문양이 사용된 나이키 에어조던 신발.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제품에 쓰이는 욱광문양에 대한 한국인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2013년에는 한국인 유학생이 영국의 도시락 회사가 rising sun 로고를 쓴 것에 대해 항의해 로고를 바꿀 것을 요청했다. 2018년 6월에는 일본항공이 기내식에 욱광문양을 사용한 것을 서경덕 교수가 문제삼고 항의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2018년 7월 영국 프리미어리그 리버풀 선수 나비 케이타는 욱광문양 문신을 왼팔에 새겼다가 한국인들의 항의를 받자 그 위에 트로피를 덮은 새로운 문신을 공개하기도 했다. 같은 시기 하이트 진로의 '하이트 엑스트라 콜드' 맥주 디자인이 욱일기와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자 제조사는 제품생산을 중단하고 회수조치를 했다. 비슷한 시기에 신발 브랜드 캔버스가 홍보영상에 욱일기를 사용해 네티즌이 항의를 했다. 이 밖에도 나이키 등 전 세계 수많은 브랜드가 제품에 욱광문양을 적용하고 있고, 한국인들이 이에 항의하고, 한국 언론은 이 내용을 기사로 쓰고 있다. 

 

욱광문양으로 논란이 된 위 사건을 보면 욱광문양을 어디까지 문제 삼아야 하는지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다. 일본 제국주의와 관계없는 단순 햇살문양까지 '전범기' 취급을 하고 공격하는 것이 정당하냐는 의문이다. 최근 욱일기 논란이 불거지면서 국회의원들이 '욱일기 금지 법안'을 발의했다. 이석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욱일기 사용을 금지하는 형법, 영해 및 접속수역법, 항공안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에는 "욱일기를 비롯한 제국주의 및 전쟁 범죄를 상징하는 옷·깃발·마스코트 그 밖의 소품을 제작·유포하거나, 대중교통수단·공연·집회 그 밖에 공중이 밀집하는 장소에 붙이거나 입거나 지닌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바른미래당 신용현 의원도 ‘일본 제국주의 또는 독일 나치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 휘장 또는 옷을 국내에서 제작, 유포하거나 대중교통수단, 공연·집회장소, 그 밖에 공중(公衆)이 밀집하는 장소에서 사용하는 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 담긴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독일의 반나치법안과 문구가 거의 비슷하다. 문제는 욱광문양을 어디까지 일본 제국주의 상징으로 볼 수 있느냐다. 위 법안대로라면 욱광문양이 담긴 나이키 신발을 신어도 처벌받을 수 있다. 

 

욱광문양을 적용한 전 세계 깃발들. 출처:위키피디아

욱광문양은 욱일기만 쓰지 않는다. 욱광문양을 적용한 깃발은 세계 공통으로 발견된다. 통일교도 욱광문양 때문에 한때 일본 우익과 연관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일본 대중문화에서도 욱광문양이 자주 나오는데 모두가 일본제국주의를 상징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욱광문양이 풍요를 상징하기 때문에 대어기나 축제에 등장했다. 상대적으로 진보 언론인 아사히(朝日) 신문도 욱광문양을 쓰고 있다. 조일이란 한자 자체가 아침해, 즉 욱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미국 해군과 공군은 엠블렘에 욱광문양을 종종 사용한다. 우선 주일미군의 경우 대다수가 욱광문양을 사용하고 있으며 미국 본토 부대조차 욱광문양을 종종 사용한다. 일본과 전쟁은 했지만 지배를 당해본 적 없는 미국 입장에서는 욱일기와 욱광문양에 대한 반감이 적다. 

이처럼 제국주의 성격을 띄는 욱일기와 욱광문양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욱일기 처벌법안'이 통과된다면, 지금보다 더 큰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욱광문양을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 처벌받는 사람이 생길 것이고 이를 고발한 뒤 애국지사로 행세하는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5. 해외에서는 욱일기 논란을 어떻게 보나

서양 국가에선 욱일기의 역사적 기원에 대해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런 논란이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한다. 다만 최근 한국인이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서 일부 언론에서 이를 기사화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것이 워싱턴포스트의 'Japan has a flag problem, too'라는 기사다. 일제 식민지 지배를 받은 한국인 욱일기에 반대하는 것은 이해가 된다는 논지지만 욱일기 사용을 금지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것 같지는 않다고 전망하고 있다. The conversation은 일본 욱일기 사용 역사를 짚으며 최근 민족주의 정서가 강화되고 우익에서 욱일기를 사용하면서 동아시아국가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에서도 대체적으로 욱일기 문제에 대해 관심이 없었지만 최근 자위대 욱일기 게양 갈등이 불거지면서 이를 자각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수년전부터 우파성향 네티즌을 중심으로 한국의 욱일기 반대에 대해 조직적 대응을 할 것을 주문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6. 결론: 욱일기를 어떻게 봐야 하나

욱일기 반대 사이트와 많은 네티즌들은 욱일기는 전범기라고 주장한다. 위에서 봤듯이 욱일기를 둘러싼 문제는 많은 오해와 잘못된 상식에 기반하고 있다. 결론을 짓자면 욱일기는 전범기가 아니다. 전범기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자위대가 쓰는 욱일기는 일본 파시즘의 상징(Japan facist symbol)을 계승한 것이다. 그렇다고 욱일기가 하켄크로이츠와 완전히 동일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일본이 많은 학살과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욱일기가 이런 인종청소를 상징한다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독일의 반나치법안은 하켄크로이츠만 금지한 것이 아니라 인종청소와 관련된 광범위한 문양(예를 들면 나치친위대 문양, 백인우월주의를 상징하는 켈트 십자가 등)을 포괄적으로 금지했다. 반인륜적 인종차별을 금지한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욱일기 반대는 그 목표가 모호하다. 전쟁범죄는 히틀러와 천황만 저지른 것이 아니다. 전 세계적인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치의 상징. 출처: 위키피디아

욱일기와 욱광문양을 동일시하는 것도 문제다. 경과가 어찌됐든 욱광문양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를 모두 금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서경덕 교수 같은 일부 민족주의자들은 욱광문양에 항의하는 방식으로 욱일기 문제를 세계에 알렸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오히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그래서 욱일기 비판은 매우 전략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잘못 건드리면 역공받을 가능성도 있다. 굳이 욱일기 문제를 거론해야 한다면 두루뭉술하게 '전범기'라는 표현을 쓸 것이 아니라 '일본 파시즘의 상징'이라는 것을 명확히 밝히고 현 육상 해상 자위대 깃발이 '일본제국 군기'를 계승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법적으로 일본은 군대를 가질 수 없는데 자위대가 일제 황군의 깃발을 계승해 제국주의적 야욕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 지적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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