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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년 버려져 입양된 두 아이, 34년만에 다시 남매가 되다[황장석의 인터뷰] 우연한 DNA 테스트로 동생 상봉, 르네 지영의 놀라운 이야기

지영 씨가 아버지에게 버려진 건 1984년 3월 24일이었다. 서울 중구 회현동의 한 시장골목에 어린 딸을 남겨둔 아버지는 1000원 한 장을 쥐어주며 과자를 사 먹으라고 했다. 곧 돌아오겠다며. 하지만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날은 어두운데 혼자 있는 어린 아이를 보고 심상치 않게 느꼈던 한 주민이 아이에게 다가가 자초지종을 물은 뒤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서로 옮겨진 아이는 자신의 이름이 이지영, 아버지는 이경국, 언니 이름은 이상연이라고 말했다. 술에 취해 폭행을 일삼았던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는 집을 나갔다고 했다. 경찰은 아이가 입고 있던 옷 주머니에서 “이 아이를 발견하는 분에게. 경찰을 통해서 아이를 고아원에 보내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이 아이는 현재 부모가 없습니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발견했다. 결국 아이는 입양기관을 거쳐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이름은 르네 알란코(Renee Alanko)가 됐다. 르네는 1980년 3월생. 발견 당시 4세 정도 돼 보였다는 이유에서 그냥 그렇게 정해준 것이었다.

입양 직전 어린 르네(당시 이름은 이지영)의 모습. 사진 제공: 르네 알란코

1984년 하루 차이로 남매가 버려졌다

그녀가 버려지기 하루 전 회현동 시장골목에서 2km도 떨어지지 않은 한 극장 계단에서 울고 있는 한 남자 아이가 발견됐다. 발견 당시 나이는 만 두 살 반 정도로 추정됐다. 이름, 생년월일 등 정보를 알 만한 단서는 없었다. 아이는 그를 발견한 극장 직원의 이름을 따 '홍기홍'이란 이름을 얻었다. 두 살 반 정도로 보였다는 이유로 1981년 9월생이 됐다. 그는 입양 준비기간을 거쳐 미국 오리건주 한 가정으로 입양됐다. 그에겐 저스틴 크래트(Justin Kragt)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는 르네의 남동생이었다. 심장질환을 갖고 태어난 저스틴은 미국에 와서 4세 때 심장 수술을 받았다.

하루 차이로 비슷한 동네에 각기 따로 버려지고 입양된 남매는 자라면서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둘은 자동차로 10시간 정도면 닿는 미국 서부의 캘리포니아 북부와 오리건 북부에서 그렇게 각기 다른 삶을 살았다. 30년 넘게.

2008년 누나 르네는 한국을 방문했다.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을 찾기 위해서였다. 사회복지기관과 경찰의 도움으로 아버지, 언니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게 200여 통의 편지를 보냈지만 소득은 없었다. 그 후론 혈육을 찾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그렇게 살아온 남매는 얼마 전 34년 만에 극적으로 상봉했다. 약혼자와 자녀를 계획하던 누나 르네가 올해 5월 23andMe라는 디앤에이(DNA) 분석회사의 검사를 받았는데, 검사 보고서에 '우리가 예측하기에 오리건주에 사는 저스틴이라는 남성이 당신의 친동생이다'는 뜻밖의 내용이 들어있었다. 동생 저스틴은 2014년 먼 친척이라도 찾아볼까 싶어 같은 회사의 디앤에이 검사를 받았다. 르네의 디앤에이 정보는 저스틴의 디앤에이 정보와 거의 절반 가량 일치했다. 형제자매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결과였다.

르네의 연락으로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확인했고 전화통화와 문자메시지를 주고 받다가 마침내 얼마 전 포틀랜드 공항에서 상봉했다. 동생 저스틴을 찾아 누나 르네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것이었다.

기적처럼 만난 남매의 사연은 오리건주 현지언론 The Oregonian 보도를 통해 알려졌고, ABC 뉴스에 비중 있게 소개되는 등 미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미국 캘리포니아 샌 라파엘 자택 정원에서 르네 알란코와 필자. 제공: 황장석

DNA 검사가 잃어버린 동생을 알려주다

르네를 만난 건 9월 30일 오전 10시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금문교를 건너 자동차로 15분 가량 북쪽에 있는 도시 샌 라파엘(San Rafael). 그곳의 한적한 주택가의 1층집에서였다. 르네는 함께 사는 약혼자와 아이슬란드로 2주일 가량 여행을 갔다가 막 돌아온 참이었다. 그녀는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프로포즈를 받았다. 오랜 친구이자 연인인 두 사람은 곧 부부가 된다.

동생과의 상봉을 축하하자 그건 기적 같은 일이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동생 저스틴을 만나게 된 구체적인 과정이 궁금했다. 어떻게 디앤에이 검사를 하게 됐을까.

“직장 동료가 그 검사를 했어요. 아들을 입양했는데, 아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로 검사 키트(kit)를 사줬다고 하더군요. 검사 결과 입양한 아들이 유전적으로 45%가 아메리카 인디언(원주민 인디언)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아주 먼 친척들도 찾아볼 수 있었다고 했어요. 흥미로운 검사라는 생각에 한 번 해보기로 했죠. 앞으로 아이를 갖게 되면 혹시 아이에게 유전적인 질환을 전할 가능성은 없는지도 알고 싶었고요. 검사 결과 아주 건강하며, 유전 질환과 관련해서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어요.”

그런데 온라인 검사 보고서를 살펴보다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발견했다고 한다. 디앤에이 친척(DNA Relatives)이라는 항목을 클릭하게 됐는데, 오리건주 세일럼(Salem)이라는 곳에 사는 한 남성과 45.1% 유전적으로 일치하며 그가 남동생인 것으로 예측된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었다.

오리건주에 사는 저스틴이라는 이름의 남성이 르네 남동생이라고 예측한 DNA 분석회사 23andMe 검사 보고서. 제공: 르네 알란코

“처음엔 믿지 않았어요. 아니 믿을 수가 없었죠. 그래서 약혼자에게 “이거 좀 봐. 대체 이게 무슨 의미야?”라고 물었어요. 꼼꼼하게 읽어보더니 “45.1% 유전적으로 일치한다는 건 형제자매 관계라는 뜻인데, 자기한테 남동생 생긴 것 같다”고 했어요. 사실 황당했죠. 그런데 그때 어릴 적 일이 떠올랐어요. 어머니가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네가 남동생 얘기를 했었다”고 했던 게 기억났어요.”

미국에 왔을 때 영어를 한 마디도 하지 못했던 르네를 위해 어머니는 동네 근처의 한국 음식점에 종종 데려갔다고 한다. 음식점에서 일하는 한국인 아주머니를 통해 그녀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파악하려고 했던 것이었다. 그때 그녀는 한국인 아주머니에게 “남동생이 보고 싶어요”라고 말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그녀가 자라는 동안 '한국인 남동생' 얘기를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녀가 18세 정도 됐을 때 우연히 그 얘기를 꺼냈다. 그동안 왜 그 얘기를 하지 않았느냐고 화를 내자 “나는 얘기한 줄 알고 있었는데, 안 했었니?”라며 미안하다고 했다.

르네는 남동생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서 자동차로 10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살고 있다는 검사 보고서를 읽고 온라인 검색을 했다. 페이스북 계정에 들어가 사진도 봤지만 자신과 닮았는지는 알기는 어려웠다. 페이스북 메신저로 메시지를 보내볼까? 메시지를 보내면 뭐라고 보내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메시지를 보냈다.

“안녕 저스틴. 내가 네 친누나인 것 같아.”

메시지 창을 계속 확인했지만 그날 밤엔 답신을 받지 못했다. 안절부절 그렇게 시간이 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저스틴에게서 답신이 왔다.

“당신, 혹시 장난하는 거야?”

“아니야. 내가 디앤에이 검사를 했는데, 그 결과 나온 걸 너한테도 보내줄테니 보고 나서 얘기하면 어떨까?”

르네는 곧바로 검사 결과를 온라인으로 보내줬다. 그리고 20분 정도가 흐른 뒤 저스틴에게서 “나도 확인했다”는 메시지가 왔다.

“그리고 대화가 시작됐어요. 통화하고 문자 보내고, 그러다가 얼마 전에 저스틴이 사는 곳으로 가서 처음으로 만난 것이죠.”

오리건주 세일럼(Salem)의 한 주택 앞에서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는 저스틴, 르네 남매. 제공: 르네 알란코

피를 나눈 동생, 34년만에 만나다

처음 만났을 때 어색한 감정은 없었을까.

“전혀 없었어요. 아마도 나이가 비슷하고 둘 다 미국 서부 해안지역에서 살아왔고, 또 서로 전화통화하고 문자 주고 받으며 많은 얘기를 나눠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말 그대로 우리는 거의 하루 종일 문자를 주고 받고 그랬거든요. 차고에서 뭔가 일을 할 때면 스피커폰으로 통화하고, 그러면서 서로 웃고 얘기하고 거의 하루 종일 그렇게 얘기했으니까요. 사실 전화통화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동생에겐 아무 때나 전화하라고 하지만요.”

르네는 동생을 만나면서 삶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무조건적으로 나를 믿어주고 힘을 주는 사람들이 가족이잖아요. 나와 동생은 그런 가족이 없었어요. 물론 우리는 입양됐고 가족이 있었죠. 하지만 피를 나눈 형제, 가족과는 달라요. 지금 나는 저스틴이 있다는 걸 안 것 만으로도 아무 조건 없이 기댈 곳이 생겼다고 느껴요. 앞으로 동생과 함께 여행하고, 한국에도 다시 가보고, 그래서 다시 가족을 찾아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왜 버렸느냐고 탓하고 싶은 마음도 화를 내고 싶은 마음도, 비난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요. 그저 만나고 싶을 뿐. 아무런 걱정 하지 말고 그저 만나면 좋겠어요. 어쩌면 (버려지지 않은) 우리의 삶이 더 불행했을 수도 있지 않겠어요?”

이지영씨의 발견 당시 기록을 담은 대한사회복지회의 문건. 제공: 르네 알란코.

르네는 2008년 서울에 갔다. 기록에 이름이 남아있는 아버지, 그리고 언니를 찾기 위해서였다. 당시엔 어릴 적 보고 싶어 했던 남동생의 기억은 없었다.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언젠가 한국에 가야겠다고. 시간이 점점 갈수록 그들(친아버지 등)에게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세계 곳곳에서 온 한국계 피입양인들이 참여하는 행사였죠. 매일 아침 일어나 부모를 찾으러 다녔는데 실패하고 돌아왔어요. 내가 버려진 장소에도 가봤죠. 텅 비어 있는 주차장이었어요. 아무 것도 없고, 사람도 없고, 그런 게 슬펐어요. 아무 소득 없이 결국 그냥 돌아왔죠.”

르네는 명문대로 손꼽히는 버클리 캘리포니아대(UC 버클리)를 졸업했다. 샌프란시스코주립대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도 마쳤다. 현재 UC 버클리에서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서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고교 시절엔 치어리더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래서 막연히 인터뷰를 하기 전까진 그녀가 입양 가정에서 행복하게 성장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치어리더로 활동하던 시절 모습. 사진 제공: 르네 알란코

양부의 '몹쓸 짓'으로 상처받은 학창기 르네

“고등학교 1학년 때 치어리더를 했었고, 수영팀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성적도 괜찮게 받았어요. 하지만 2학년 때 학교를 중퇴했죠. 더 이상 가지 않았어요. 14세 때, 그러니까 고등학교 1학년 때 양부와 크게 싸우고 어머니에게 집을 나가겠다고 했어요. 어머니가 왜 그러느냐고 묻다가 나중에 '혹시 아버지가 너에게 '몹쓸 짓'을 했느냐고 했어요. 입양된 다른 언니한테도 그런 짓을 했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양부를 집에서 쫓아냈지만 그 후로 학교에도 갈 수 없었고 친구도 만날 수 없었어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죠.”

학교를 그만 두고 한참을 방황하던 그녀는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열 여덟 즈음 마음을 다잡고 동네 주니어 칼리지(2년제 대학)에 등록해 공부를 시작했다. 학교에서 임시직 일자리도 구해 돈도 벌었다. 우수한 성적을 받자 학교의 진학상담 직원은 4년제 대학 편입을 권유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대(UC)의 여러 학교에 지원해서 모두 합격했고, 그 중에서 가장 가고 싶었던 UC 버클리에 입학했다.

르네는 동생 저스틴을 캘리포니아로 데려와 함께 살고 싶다고 말했다. 동생에겐 이미 제안했고, 계속해서 설득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처럼 불행하게 성장했고 지금도 정신적으로 힘겨워하고 있는 동생을 보살펴주고 싶어서다. 저스틴의 양부도 어린 시절 그에게 '몹쓸 짓'을 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지금도 정신적으로 고통 받고 있는 동생을 곁에 두고 보살피며 마음의 안정을 얻게 해주고 싶은 게 르네의 바람이다.

“누군가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불안감, 양부가 내게 했던 나쁜 일이 떠올라 늘 불안감 속에 살았어요. 그래서 심리치료를 받았어요. 정신과 치료를 4년 동안 매주 받았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면서도 한동안 일을 하기 힘들었고 무엇도 하기 어려웠어요. 처참하게 감정적으로 고통을 받았으니까요. 4년 치료를 받은 뒤에야 비로소 불안감에 휩싸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그 후에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만났어요. 동생을 곁에서 도와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예요. 겪어봤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어요. 동생이 언젠가 평온을 찾도록 도와줄 거에요.”

캘리포니아 샌 라파엘의 자택에서 만난 르네. 사진: 황장석

"둘다 춤을 잘 춘다, 아마도 코리안이라서"

르네는 12월 초를 기다린다. 동생 저스틴과 함께 연말을 보내며 함께 크리스마스 파티도 할 계획이다. 9월엔 르네가 저스틴에게 날아갔었고 이번엔 저스틴이 르네에게 날아온다.

“지난번에 저스틴 집에 갔을 때 저스틴 식구들과 함께 저녁도 먹고 소개도 받고 즐겁게 지냈어요. 정말 즐거웠죠. 12월에 저스틴이 오면 친구들을 다 초청해서 동생을 소개해 주고 싶어요. 저스틴이 파티의 주인공이 될 거에요. 다른 남매들이 하는 것처럼 파티에서 같이 춤 추고 노래하고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낼 거고요. 동생이 춤을 잘 춘다고 하는데 나도 잘 춰요. 둘 다 리듬감이 있어요. 아마도 코리안이라서.”

황장석 팩트체커    surono@naver.com  최근글보기
2002년부터 동아일보와 서울신문에서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 기자로 일했다. 2012년 스탠포드대학교 후버연구소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퇴사 이후 실리콘밸리 근처에 거주하며 한국 언론을 통해 실리콘밸리와 IT기업 소식을 전하고 있다. 2017년 실리콘밸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조명한 책 <실리콘밸리 스토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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