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치팅', 버그 활용과 단순 재미를 지나 산업화로

  • 기자명 이경혁
  • 기사승인 2018.10.10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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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규칙으로 구성된 세계 안에서 해법을 찾아 움직여야 하는 게임의 세계는 사실 정석대로만 돌아가는 공간은 아니다. 규칙에 대응하는 플레이어들의 행동은 때로는 기발하고 때로는 성실하며, 때로는 규칙의 바깥에서 규칙을 흔들거나 넘어서기도 한다.

규칙을 넘어서는 순간들은 경이롭고 창의력 넘치는 재기발랄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따금씩은 다분히 문제적인 방식으로 규칙을 넘어서려는 플레이어들도 존재한다. 이른바 치팅cheating이라는 방식이다. 게임 속의 자잘한 버그를 활용해 원래대로라면 안 될 일을 해내기도 하고, 이른바 꼼수로 불릴 만한 방식을 찾아내 목표를 달성하기도 한다.

디지털 게임의 등장 초반부터 목표달성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자 하는 이들에 의해 게임과 함께 성장해 온 치팅의 방식들은 오늘날까지도 다채로운 형태로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어디까지가 치팅인지를 규정하기 애매한 방식들부터 윤리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얼굴을 보여주는 치팅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좀더 산업적이고 윤리적인 이슈를 우리 앞에 던지는 개념으로 다가오고 있다.

간단한 꼼수, 윤리를 거쳐 산업에 이르기까지

초창기 디지털게임의 치팅은 버그를 활용한 간단한 꼼수, 팁 정도로 생각해볼 수 있겠는데, 이는 점차 기술이 발전하면서 일종의 데이터 에디트와 같은 방식을 낳는다. PC게임의 경우 데이터 접근이 상대적으로 쉬웠던 덕택에 세이브 데이터를 직접 수정해 편리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 방법들이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공유되곤 했다. 세이브가 지원되지 않는 게임들에 세이브 기능을 추가로 제공하는 기기가 만들어져 팔리기도 했고, 콘솔게임의 에디트를 지원하는 장비들도 시중에 등장하곤 하면서 치팅은 좀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게임 연구자인 미아 콘살보와 저서 '치팅'.

게임연구자 미아 콘살보는 치팅의 개념을 좀더 적극적으로 확장하기 위한 질문들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게임 안에 숨겨진 비밀의 보물 방을 발견하는 방식에 있어, 플레이어가 직접 찾아 헤매어 발견하는 과정과 일종의 공략집, 가이드를 통해 비밀방의 위치를 미리 알고 찾아가는 과정은 같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퍼즐형 어드벤처 게임의 퍼즐 힌트를 미리 보고 푼다거나 미로형 던전의 지도를 보고 플레이하는 것 또한 일종의 치팅일 수 있다는 점을 콘살보는 지적하면서 치팅의 개념은 좀더 넓은 의미로 확장된다.

이후 알고리즘을 상대하는 싱글플레이에서 사람과 직접 대전을 벌이는 멀티플레이가 활성화되며 치팅은 또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사람 대 사람의 대전에서 의도되지 않은 방식의 플레이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널리 알려졌던 오락실 격투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 2’ 의 흥행 시기에 나타났던 버그성 플레이들, 가일의 그림자 던지기 같은 플레이들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때부터 치팅은 사람간의 윤리 문제, 오락실에 대전에서 자칫 버그 플레이로 치팅을 걸었다간 험악한 꼴을 볼 수도 있었던 이슈로 등극한다.

 

온라인 네트워크가 활성화되고 그 위에 게임이 얹혀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치팅의 문제는 윤리적 이슈로서의 의미를 강하게 띠기 시작한다. 프로그래밍된 규칙을 넘어서던 문제는 이제 타인의 플레이에 대한 침해가 과연 올바른 플레이인가에 대한 논의로 변화했다.

초창기 온라인 멀티플레이 게임에서 이른바 PK(Player Killing)라 불리던 행위는 치트 플레이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의들이 오고갔다. 게임 규칙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의 PK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도 있었고, PK가 불가능하도록 만들거나 특정 장소에서만 PK가 허가되는 식, 혹은 게임 내 NPC(non-player character)나 참여플레이어로 하여금 일종의 자경단을 만드는 식으로 게임의 규칙을 수정하는 방향도 나타났다.

규칙 안에서의 치팅에 대한 논의는 부차적인 문제였고, 본격적인 이슈는 온라인 게임에서의 해킹 툴과 치트 툴로부터 불거지기 시작했다. 총기로 사격하는 FPS류의 게임에서 적의 머리를 자동으로 조준해주는 툴들이 나타났고, 멀티플레이 게임에서는 과거와 달리 그 자동조준의 희생자가 인공지능이 아닌 사람이 조종하는 캐릭터라는 것이 문제였다. 조작의 차원을 넘어 자원을 자동으로 수집하고 사냥하는 이른바 ‘노가다’ 행위를 전담해 주는 오토 프로그램도 치팅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기에 문제시되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스킬을 손쉽게 사용하도록 만들어주는 일명 '롤 헬퍼'는 한동안 라이엇 게임즈의 큰 골칫거리로 작용했고, 지금도 곳곳에서 판매광고가 넘쳐나고 있다.

 

앞서 언급했던 콘살보는 치팅 행위가 시기와 배경을 넘어 언제나 특정한 산업의 범주와 함께 해 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초창기 치팅 논의에서 주제가 되었던 공략집, 가이드는 별도의 제작사가 만들어 판매하는 형태로 유통되었고, 게임샤크 등의 에디팅 기기들도 별도의 업체에서 제작해 판매하는 방식으로 유통되었다. 오늘날 온라인 게임에서 늘 문제시되는 각종 핵 프로그램들 또한 언제나 판매하는 누군가가 있기에 문제가 된다는 점을 콘살보는 부르디외의 개념을 빌려와 게이밍 자산gaming capital의 산업화라는 틀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 논지는 게임 안의 플레이가 게임 밖의 소비행위와 연결되면서 점점 더 새로운 형태로 진화해 나간다.

예를 들면 모바일게임의 인앱결제 이슈를 이용한 환불 대행업체 같은 경우가 가능할 것이다.  인앱 결제를 실행하여 게임 내 재화를 획득한 다음 해당 결제를 앱 스토어 등을 통해 환불처리하는 일종의 악용이 늘 이슈로 거론되어 왔고, 이제는 이를 안전하게 대행해 준다는 환불대행 업체도 영업을 하는 시대가 되었다. 게임의 목표를 달성하고, 상대와 맞싸워 승리하고 한발 더 앞서나가고자 하는 의지들이라는 수요에 주목한 자본들은 이를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규칙 바깥의 새로운 기능들을 제안하고 수익화하고자 하는 흐름들 속에서 환불대행업체 또한 일종의 치트 산업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욕망을 산업화하는 과정으로서 치팅은 계속 이어질지도

게임에서의 치팅은 한편으로는 창의적이며 한편으로는 규칙을 무너뜨리는 파괴성을 갖는다. 이는 동시에 산업적 측면에서는 게임제작사의 수익과 치팅산업의 수익이 충돌하는 국면을 만들어내며, 윤리적으로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틀을 뒤흔들기도 하는 어디로 튈 지 쉽게 예견하기 어려운 작용들이다.

자본주의 콘텐츠산업의 지반을 딛고 선 게임이기에 보다 나은 결과를 향한 플레이어들의 욕망에 손쉽고 편리하게 도달할 수 있는 방식을 제안하는 또다른 기생산업으로서 치팅 툴의 제작과 유포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 많은 게임사들이 끝없이 핵과의 싸움을 벌이고,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이를 신고하더라도 쉽사리 핵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상당부분 씬 자체의 구조적인 특징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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