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문재인 정부 노동법 개정안, 왜 '개악'인가

  • 기자명 뉴스톱
  • 기사승인 2019.11.07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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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민규의 오피니언] '결사의 자유' 저해하는 문재인 정부 노동법 개정안

문재인 정부는 지난 10월 1일, ILO 핵심협약인 ‘결사의 자유 협약’ 비준을 추진하면서 해당 협약에 부합하는 내용으로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며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관련 법안들(노동조합법·교원노조법·공무원노조법 개정안)은 10월 4일에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등록되었다.

정부 주장에 따르면 이들 법안은 ‘ILO 협약과 국내법을 일치시키기 위한 개정안’들이다. 하지만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조합운동진영은 관련 법안들을 ‘노동개악’으로 규정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총력투쟁을 선언했다.

과연 무엇이 진실일까. 이를 따져보기 위해 문재인 정부 노동법 개정안의 내용, ILO 협약과 부합 또는 충돌 여부, 한국의 노동법 개정 문제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각 등을 차례대로 살펴보기로 한다.

출처: 청와대
출처: 청와대

 

정부 노동법 개정안엔 뭐가 담겼나

국무회의에서 의결해 국회로 보낸 정부 노동법 개정안 핵심내용을 아래와 같이 표로 정리해 보았다. 단, 부당노동행위 양벌규정의 예외를 둔 노동조합법 94조 개정안, 고등교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한 교원노조법 개정안 등은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에 따른 것으로 ILO 협약과는 관련 없는 내용이어서 포함시키지 않았다.

개정 법률·조항

개정안 내용 요약

노동조합법 2 4 라목, 5, 17, 23

- 실업자·해고자 등의 기업별노조 가입 허용

- 실업자·해고자 등의 사업장 노조활동은 사용자의 사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 사업주 허락 있어야만 노조활동 가능.

- 실업자·해고자 등은 기업별노조의 임원 대의원으로 선출될 없음

노동조합법 24

- 노동조합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 삭제하되, 타임오프 시간 내에서만 임금지급 가능. (타임오프제는 그대로 유지)

노동조합법 32

- 단체협약 유효기간 상한을 기존 2년에서 3년으로 연장

노동조합법 42

- 사업장 점거를 수반하는 쟁의행위의 경우 전부 점거는 물론이고 일부 점거까지 모조리 금지

교원노조법

- 퇴직 교원의 노조 가입 허용, 조합원 범위는 규약으로 정하도록

-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조항 신설

공무원노조법

- 퇴직 공무원의 노조 가입 허용, 조합원 범위는 규약으로 정하도록

- 공무원노조 가입범위 직급제한은 삭제, 직무제한은 그대로 유지

 

위 표의 내용을 살짝 훑어보기만 해도 노동조합 가입과 활동에 ‘자유’를 주기보다 뭔가 ‘제약’을 가하려는 목적임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ILO 결사의 자유 협약은 누구의 허락·인가를 받을 필요 없이 쉽게 노조에 가입하고 활동하고 임원을 선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인데, 어떤 노동자만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지 혹은 임원·대의원에 선출될 수 있는지를 규정하고 있다.

 

과거보다 개선되는 내용은 뭘까

정부 노동법 개정안의 긍정적인 부분은, 웬만한 집중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인내심을 가지고 분석한 결과 딱 한 가지 부문, 즉 ‘실업자·해고자 등의 노동조합 가입자격’에 대해서는 미약하나마 나아지는 지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가 너무 미미해서 과연 이걸 ‘개선’이라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선 실업자·해고자 등 특정 사업장에 종사하지 않는 노동자들이라 할지라도 기업별노조에 가입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이미 실업자·해고자 등은 산별노조에 자유롭게 가입이 가능하다. 현재 한국 노동조합의 2/3 이상이 기업별노조가 아니라 산별노조로 재편된 상태이며, 노조에 가입하고자 하는 실업자·해고자들은 대부분 산별노조에 가입한 상태이다.

현재 멸종되고 있는 기업별노조에 실업자·해고자 등이 가입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인데, 이거 하나 열어주면서 이들의 노조 활동에 엄청난 제약을 가한다. 실업자·해고자 등이 사업장 내에서 노조활동을 하려면 ‘사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만 허용된다. 도대체 어느 정도가 사업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일까? 이 내용은 매우 자의적인 판단이 될 수밖에 없으며, 결국 노조활동 일체에 대해 사용자 허락을 받으라는 얘기에 다름 아니다.

그뿐이 아니다. 실업자·해고자 등은 기업별노조의 임원 및 대의원으로 출마하는 것 자체가 금지된다. 이 내용은 현행법을 오히려 후퇴시킨 것이다. 실업자·해고자의 조합원자격은 물론이고 임원·대의원으로 선출될 수 있도록 단체협약을 체결한 사업장들이 꽤 존재한다. 현행법에는 명문의 규정이 없어서 이들의 노조활동에 제약이 없는 반면, 정부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들의 임원·대의원 피선거권은 전면 금지되고 사업장 내 노조활동에도 제약이 따르게 된다.

교원노조법·공무원노조법의 개정으로 퇴직 교원·공무원 등의 노조 가입문제를 규약으로 정하도록 한 것도 개선으로 볼 수 있다. 해고자를 조합원으로 두고 있다는 이유로 전교조·공무원노조를 법외노조로 만든 상황이 재발하지 않도록 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법 개정 없이 문재인 대통령 결단만으로도 가능한 전교조 합법화는 아직도 안 되고 있다. 개선 여부를 떠나 진정성이 의심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 삭제는 진일보한 것이 아닐까? 아니다. 저 조항만 삭제한 채 타임오프제(근로시간면제제도)는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근로시간면제 한도를 초과한 임금지급도 금지되며, 노사가 이를 합의한다 해도 무효가 된다. 다시말해 해당 조항만 삭제될 뿐 현재와 달라지는 내용이 단 하나도 없다.

 

ILO 협약에 부합하는 법 개정인가

이 대목은 굉장히 쉽다. 역설적이게도 ILO 협약에 부합하는 조항을 찾는 것은 어려운 반면, 부합하지 않는 대목은 엄청나게 많다. 정부 노동법 개정안의 거의 모든 조항이 ILO 협약에 부합하지 않거나, 심지어 협약 내용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야말로 ‘곳곳이 지뢰밭’이다.

정부 개정안이 어느 대목에서 ILO 협약과 충돌하는지에 대해서는 몇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한다. 다만, 이를 살펴보기 전에 ILO 87호 결사의 자유 협약의 제2조와 3조를 먼저 소개하는 것이 옳겠다. 어려운 조항도 아니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조항이니.

 

ILO 87(결사의 자유) 협약

(2) 노동자 및 사용자는 어떠한 차별도 없이 사전 인가를 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여 단체를 설립하고 그 단체의 규약에 따를 것만을 조건으로 하여 그 단체에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

(3) 1. 노동자단체 및 사용자단체는 그들의 규약과 규칙을 작성하고, 완전히 자유롭게 대표자를 선출하며, 관리 및 활동을 조직하고, 계획을 수립할 권리를 가진다.

2. 공공기관은 이 권리를 제한하거나 이 권리의 합법적인 행사를 방해하는 어떠한 간섭도 삼가하여야 한다.

 

첫째, 실업자·해고자 등에게 사업장 내 노조활동에 제약을 가하거나, 이들은 기업별노조의 임원·대의원으로 선출될 수 없다는 조항은 위 협약이 명시하고 있는 ‘자유롭게 대표자를 선출하고 관리 및 활동을 조직할 권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아울러 ‘공공기관은 이 권리를 제한해서도, 간섭해서도 안 된다’는 조항에도 위배된다. 조합원 범위나 임원·대의원 선출에 대한 것은 노동조합이 규약을 통해 스스로 결정하면 되는 일인데, 이건 안 된다 저건 금지된다며 법에 못을 박아버리는 짓을 정부가 앞장서서 한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단체협약 유효기간의 상한을 3년으로 연장하는 것 역시 ILO 협약의 정신에 위배된다. 단협의 유효기간을 너무 길게 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교섭권을 부당하게 축소하게 된다. 그럼 ILO는 어느 정도의 유효기간이 적당하다고 보고 있을까? 결사의 자유 협약 위배 사건을 다루는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아래와 같은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에 대해 3년간의 법령상 제한을 부과하는 것은 결사의 자유에 대한 상당한 제한임(Case No.2467, 결사의 자유 위원회 344차 보고서 제572)

 

3년의 기간은 상당한 제한이며 따라서 결사의 자유 협약에 반(反)한다고 보았다. “정부 개정안은 단협 유효기간 하한선이 아니라 상한선을 3년으로 하는 것”이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2년의 유효기간 상한선을 두고 있는 지금을 보라. 모든 노동조합에서 단체협약 유효기간은 상한선인 2년으로 하고 있다. 사용자들이 무조건 상한선을 고집하기 때문이다.

즉, 최저임금이 정해지면 그걸 최고임금으로 만들어 버리는 한국의 자본가들, 그리고 자본가의 편에 선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단체협약 유효기간 상한선이 정해지면 그게 바로 하한선이 되고 만다. 만일 3년으로 연장되면 당장 모든 사용자들은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3년으로 연장하자고 들고 나올 것이다. 이런 게 바로 ILO 결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셋째, 사업장 일부 점거까지 금지한 입법 역시 노조 활동과 파업권에 대한 심각한 제약이자 ILO 협약정신을 위반한 것이다. “아니, 그럼 점거를 합법적으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냐?” 오해해선 안 된다. 이미 현행 노조법 42조는 사업장 점거를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가 내놓은 개정안은 사업장 ‘일부 점거’까지 모조리 금지하는 것이다.

집회를 하기 위해서는 광장 또는 도로 일부를 점거·점유해야만 가능한 것처럼, 사업장 내에서 노조활동과 쟁의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사업장 일부의 점거·점유가 불가피하다. 하다못해 사내에서 집회 한번을 하려 해도 사내 광장이나 공터를 점거·점유해야 한다. 출퇴근 선전전과 식당 선전전, 피케팅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

ILO 기준적용 전문가위원회, 1994GENERAL SURVEY 148

파업할 권리의 본질은 평화적으로 압력을 가하는 데에 있으며, 위 권리에는 회사 부지를 점거하여 사용자를 압박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래서 ILO 역시 위의 내용처럼 “회사 부지를 점거하여 사용자를 압박하는 것”을 파업권의 본질에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뿐이 아니다. 한국의 대법원 역시 “점거 범위가 직장 또는 사업장시설의 일부분이고 사용자측의 출입이나 관리·지배를 배제하지 않는 병존적인 점거”의 경우에는 쟁의행위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판결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ILO 협약과 대법원 판례가 합법으로 보장해온 활동들이 모두 금지되고 불법으로 처벌되어 노조활동과 파업권에 심각한 제약이 되고 말 것이다. 사내 집회도, 출퇴근·식당 선전전도, 심지어 사내에서 피케팅하는 것조차 ‘일부 점거’가 되어 금지되면 노동조합은 손발을 꽁꽁 묶이게 된다.

출처: 청와대
출처: 청와대

 

국제사회의 수많은 권고는 무시

지금까지의 내용은 개정안에 포함된 내용만 분석한 것이다. 하지만 더 심각한 내용은 개정안에 포함되지 않은 내용들이다. “검사는 기소를 통해 명예를, 불기소를 통해 이익을 얻는다”는 말이 있듯이 국회 역시 “입법을 통해 개악을, 비(非)입법을 통해 노동기본권을 박탈한다”는 새로운 격언을 만들어야 할 상황이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와 UN 인권위원회 등 국제기구는 물론이고 자유무역협정의 당사자인 유럽연합(EU)도 한국 정부를 상대로 노동기본권을 국제 수준으로 보장하라고 여러 차례 촉구한 바 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그 수많은 권고들을 이번 입법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이를 통해 노동기본권을 보장받아야 할 수백만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권리가 박탈된다.

우선, 문재인 정부는 유럽연합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한-EU FTA)에서 약속한 ILO 협약 비준도 이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유럽연합이 한국 노동기본권 박탈의 핵심 요소로 지적한 ‘근로자’ 개념을 확장해 특수고용·플랫폼 노동자들의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하라는 요구도 담지 않았다.

 

유럽연합은 한국 정부에 지속적인 약속 이행을 요구해 왔으나 번번이 거부당하자 지난 7월에 무역분쟁절차의 하나인 ‘전문가 패널 소집’을 요청하고 나섰다. 위 문서는 EU가 전문가 패널 소집을 요청하면서 문제가 되는 한국의 노동관계법 4가지를 적시한 것이다. (위 문서는 유럽연합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는 자료임. 붉은 밑줄은 필자가 그은 것)

첫 번째 문단은 노조법 제2조 1호의 ‘근로자(worker)’ 개념이 너무 좁아서 화물트럭 기사 등의 노조 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두 번째 문단은 ‘근로자가 아닌 자의 가입을 금지’하고 있는 노조법 제2조 4호의 규정을 지적하고 있다. 결국 ‘근로자’ 개념이 너무 좁기 때문에 이 조항도 노동기본권 박탈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문단은 ‘조합원만 임원으로 선출할 수 있도록 한 조항’인데, 이 역시 ‘근로자’ 개념의 협소함으로 인해 조합원이 될 수 있는 노동자 범위가 너무 좁다는 지적이다. 즉, 유럽연합의 모든 지적은 결국 한국 노동법의 ‘근로자’ 개념이 너무 협소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노동법 개정안 어디를 보더라도 이런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조 결성권을 보장하라는 ILO 권고도 있었지만 경영계 요구로 공익위원안에 반영되지 않고 장기 과제가 됐다.”

 

지난 3월 18일, 경사노위 공익위원들이 개최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당시 공익위원 대표(간사) 역할을 맡은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밝힌 입장이다. ILO도 수 차례 권고했고, 유럽연합도 저 내용을 핵심적으로 제기하고 있음에도, 문재인 정부는 오로지 ‘경영계 요구’ 즉 자본가들이 반대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저 내용을 누락시킨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ILO 결사의 자유 위원회는 한국의 노동조합들이 여러 차례 제기한 진정·제소 사건에 대해 교원·공무원의 단체행동권(파업권)과 정치활동의 자유를 보장할 것을 한국 정부에 촉구해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교원노조법·공무원노조법 개정안에는 단체행동권은 물론이고 정치활동의 자유도 여전히 금지하고 있다.

ILO는 시종일관 (a) 법이 파업을 금지하고 있는 엄격한 의미에서의 필수서비스에서의 파업의 경우 (b) 파업이 중대한 국가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경우에만 파업권을 일부 제한할 수 있다는 원리를 선언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군인·경찰을 제외한 모든 교원·공무원에게 파업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국제사회의 권고나 촉구 그 어떤 내용도 이번 개정안에 담지 않았다. 노동조합의 파업에 ‘업무방해죄’를 적용해 형사처벌하는 나라는 전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이며, ILO는 여러 차례 한국 정부에 해당 조항을 폐지할 것을 권고해 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러한 권고에 눈을 감고 있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민주노조운동 진영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법 개정안을 ‘노동개악’으로 규정하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총력투쟁을 선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 노동법 개정안은 “ILO 협약 비준을 위한 법”이 아니라 “ILO 협약과 충돌하는 법”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 오민규는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정책위원, 노동자운동연구공동체 뿌리 연구위원을 역임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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