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테러가 가능한 시대...이중용도 기술의 '이중성'

  • 기자명 박재용
  • 기사승인 2018.10.1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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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용도기술 (dual-use technology)라는 말이 있습니다. 평화적인 목적이나 군사적인 목적에 모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이란 뜻입니다. 그간 가장 많이 거론된 것은 핵분열 기술입니다. 애초의 목적이 군사적 용도였죠. 독일이 먼저 핵무기를 개발할까 겁먹었던 미국이 핵폭탄을 개발했고, 사용했습니다. 그 뒤 핵의 평화적 이용에 대해 고민하던 일군의 사람들이 핵에너지를 기반으로 핵발전소를 만듭니다. 사실 핵발전소와 핵무기를 이중용도기술의 대표적인 예로 거론하는 것은 조금 어폐가 있긴 합니다. 핵발전 자체가 문제가 많은데다 현재의 추세가 점차 핵발전을 줄이거나 폐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외 핵으로 운용하는 핵잠수함이나 핵항모의 경우도 평화적 운용과는 거리가 멀죠. 그리고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의 경우처럼 좋은 목적이라 여겼던 것도, 사고에 의해 엄청난 참극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점도 이중용도기술이 거론되는 한 지점입니다. 사실 이중용도기술의 시작은 암모니아의 합성입니다. 암모니아의 합성은 그 시작 자체가 비료와 화약이란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있었지요. 실제로 비료를 가지고 폭탄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20세기 이후 새롭게 등장한 기술로 만들어낸 다양한 물건들도 이런 이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탄소섬유는 가볍고 튼튼합니다. 이는 비행기나 자동차의 동체를 만드는데 사용하기도 하지만 미사일의 동체를 만드는데도 사용되지요. 동결건조기는 인스턴트 커피를 만드는데 사용되지만 한편으로 생물학무기를 만드는데도 사용됩니다. 트리에탄올아민이라는 생소한 화학제품은 샴푸나 비누, 농약을 만드는데 사용되지만 또 한편으로 화학무기를 만드는데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은 대량살상무기(WMD Weapons of Mass Destruction)를 만들 수 있는 전략물자로 분류되어 수출입에 규제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중용도품목으로 국가에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1947년 펜실베니아 대학에 설치된 컴퓨터 에니악. 세계 최초 컴퓨터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영국의 군사용 컴퓨터 콜로서스가 최초다. 당시에는 혁신적인 성능이었지만 지금은 개인용 컴퓨터만도 못하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이중용도에 해당하는 제품이나 기술들은 점점 늘어만 가고, 이를 통제하기는 점점 힘들어집니다. 또한 냉전시대처럼 서로 적대적인 국가나 진영에만 신경을 쓰면 되는 것이 아니라 원리주의 테러집단이나 개인적인 공격에 대해서도 신경 쓸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슈퍼컴퓨터는 대표적인 이중용도에 해당합니다. 그래서 수출입에 커다란 제약이 따릅니다. 그러나 현재 컴퓨터 기술의 발달은 초기 슈퍼컴퓨터가 수행했던 역할 정도는 개인용 컴퓨터 몇 대를 병렬 연결하면 가능할 정도로 발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개인용 컴퓨터를 전략자산으로 묶어둘 순 없는 거지요.

 

2011년 12월 H5N1 바이러스에 관한 논문 2편이 투고되었습니다. H5N1 바이러스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바이러스입니다. 21세기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끊임없이 나타나며 커다란 손실을 불러일으키는 녀석이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류에서 사람으로의 감염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두 논문은 이 바이러스를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도록 변형하여 제조하는데 성공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어떻게 제조했는지의 방법도 논문에 다 기재되어 있었죠. 당시 미국의 ‘국가과학자문위원회NSABB는 이 두 논문의 내용 중 일부, 즉 제조 방법을 삭제하고 출간해줄 것을 논문이 투고된 사이언스Science지와 네이처Nature지에 요청했습니다. 세계의 여러 과학자들이 이에 대해 논쟁을 벌였고, 결국 논의가 지지부진해지면서 논문은 출간되었습니다.

인간게놈프로젝트도 비슷한 경우입니다. 21세기 초에 인간 게놈을 구성하는 모든 유전자 서열을 밝혀 유전자지도를 완성합니다. 수십억 달러가 소모되었고, 수천 명의 과학자가 동원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십년 조금 더 지난 지금, 이젠 누구나 몇 천 달러만 내면 직접 염기서열 분석 장비를 구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염기서열 분석 비용이 엄청나게 싸진 것이죠. 현재 소위 선진국의 많은 연구실이 염기서열 분석을 직접 하지 않고 중국의 하청업체에 아웃소싱을 주고 있는 실정입니다.

특정 DNA를 잘라낼 수 있게 만든 크리스퍼(유전자 가위)의 등장으로 각종 유전자 변형이 쉬워졌다.

여기에 유전자가위기술이 등장합니다. 특정 영역의 DNA를 잘라내고 삽입하는 신기술입니다. 크리스퍼CRISPR는 원래 1987년 일본에서 처음 발견된 유전자 서열인데 이 유전자 서열을 이용하면 이전보다 DNA의 원하는 특정부위를 잘라내는 것이 아주 손쉬워집니다. 이를 본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 것은 2012년부터입니다. 생물학계, 특히 유전학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기존의 방식과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큼 쉽고, 정확하게 원하는 유전자만 잘라내고, 다시 붙일 수 있게 된 겁니다.

이에 기초하여 합성생물학이 장족의 발전을 합니다. 하버드대의 조지 처치 교수팀은 이를 이용하여 매머드의 유전적 특징을 현생 코끼리에 붙여 넣어 매머드를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또한 유전자조작식품GMO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이전보다 더 안전하게( 최소한 과학자들이 생각하는 한에서는) 만들 수 있게 되는데, 이전에는 필요한 유전자만이 아니라 그 외 수백, 수천 개의 다른 유전자도 삽입되어 문제가 생길 수 있었지만, 이젠 딱 필요한 부분만 넣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기초과학연구원의 김진수 유전체교정연구단이 이 방법으로 식물개량에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유전학 연구에 필요한 유전자 조작 생쥐를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전에는 이런 쥐를 만들려면 1년 정도 거치고, 성공률도 낮았습니다만 크리스퍼를 이용하면 기간도 절반 이하로 줄어들고, 성공률도 배 이상 높아집니다. 각종 유전질환에 대해서도 이를 활용하면 엄청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것도 상상할 수 있습니다. 어느 대학의 연구팀이 앞서 말한 염기서열 분석 기기로 특정 병원체, 예를 들면 에볼라 바이러스의 염기서열을 분석합니다. 그리고 특정 질환을 일으키는 유전정보를 확보합니다. 현재 많은 연구소에서 실제로 하고 있는 일입니다. 질병에 대한 연구를 하려면 어떤 유전자가 질병의 핵심적 역할을 하는지 알아야 하니까요. 이 데이터가 인터넷에 유출되었다고 생각해봅시다. 누군가가 이 데이터를 가지고 크리스퍼를 이용해서 기존의 바이러스에 이 유전자정보를 삽입해서 신종 바이러스를 만드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 에볼라 바이러스와 유사한 질병을 일으키는 병원체가 탄생합니다.

현재 크리스퍼 기술을 활용하는 곳은 몇 몇 연구소뿐만이 아닙니다. GMO를 개발하는 몬산토 등의 곡물종자회사, 대규모 축산기업, 제약회사 등 생물학과 관련된 다양한 회사의 연구소들이 이를 활용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크리스퍼의 가능성을 처음 확인한 것도 덴마크 요구르트 제조 회사의 연구팀이니까요. 거기에 크리스퍼를 이용한 벤처 혹은 스타트업도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마다 크리스퍼를 이용한 연구를 하는 곳도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Photo by Jayson Hinrichsen on Unsplash

과연 이런 기술까지 국가적 통제가 가능할까요? 이제 유전자 조작은 대학 실험실에서도 가능한 수준으로 내려오고 있는데 말입니다. 예전에 흔히 말하길 대학교 물리학과만 졸업하면 누구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정제된 우라늄이 있기만 하다면요. 또는 화학과만 졸업하면 누구나 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재료만 충분하다면, 이제 누구나 생물학과만 졸업하면 전염병 바이러스를 만들 수 있다고 할 만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물론 DNA합성 키트만 있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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