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김순덕의 '연동형'과 '다당제'에 대한 몰이해

  • 기자명 김수민
  • 기사승인 2019.11.29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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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패스트트랙 법안을 반대하며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선거법 개정안의 경우, 지역구 대 비례대표 의석 비중을 어떻게 조정할지, 비례대표 의석은 어떤 식으로 배분할지 관건이 남아 있다. 그럼에도 한국당이 극한투쟁으로 가는 것은 선거제도 개편을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겠다는 신호다. 실제로 지금까지 한국당은 이에 맞춰 비례성을 확대하자는 선거제 개혁의 근본 취지를 외면하며 전면적인 반대 논리를 전개해왔다.

동아일보 [심상정과 좌파 독재를 위한 ‘야만의 트랙'] 김순덕 칼럼 화면 캡처.
동아일보 [심상정과 좌파 독재를 위한 ‘야만의 트랙'] 김순덕 칼럼 화면 캡처.

 

보수언론도 반대 논리를 받아 안거나 적극 생산하는 태세다. 11월 28일 <동아일보>는 「심상정과 좌파 독재를 위한 '야만의 트랙'」이라는 제목의 김순덕 대기자 칼럼을 게재했다. 그는 자유한국당 일각에서 나오는 “공수처를 주고 선거법을 막자”는 제안을 소개하면서,  공수처는 정권을 교체해서 폐지하면 되지만 그 전에 선거제가 개편되어 총선에서 패배하면 돌이킬 방법이 없다는 논리에 대해 "일리가 없진 않다"고 논평했다. 김순덕 대기자는 선거제도 개편안을 두고 이렇게 주장했다.

 

"독일식 연동형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고 해서 내각책임제 아닌 우리나라에서 독일처럼 협치와 연정(聯政)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그렇게 좋은 제도라면 많은 나라가 도입하지 달랑 독일만 할 리도 없다. ‘초과 의석이 발생해 정치적 불안정성을 높이고 여소야대가 일상화돼 입법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고 민주연구원 이슈브리핑에서 지적됐을 정도다.

세계에서도 유례없는 50% 연동률이어서 비례성이 높지도 않다. 심상정 같은 정의당 실세는 지역구에서 낙선해도 비례대표가 될 수 있게 석패율제까지 집어넣었다. 정당 민주화나 정치개혁과는 거꾸로 갈 판이다. (후략)"

 

1.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독일만 실시하는가?
☞ 지역구 선거 방식만 다를 뿐 숱한 선진국이 지지율-의석률 일치 추구

독일에서 실시하는 선거제도는 Mixed Member Propotional(MMP)라고 부른다. 번역하면 '혼합형 비례대표제'이다. 지역구 의원은 소선거구-단순다수제로 뽑되, 전체 의석은 정당별로 지지율에 따라 비례해서 배분한다. 지역구 의석에서 나오는 지지율-의석률 사이의 저비례성을, 비례대표 보정의석을 통해 만회함으로써 비례성을 최대치로 높이는 제도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의역하는 이유는 '이렇게 해서라도 지지율과 의석률을 맞춰준다'는 의미이다. 혼합형 비례대표제의 또다른 일종인 '병립형 비례대표제(지역구 의석을 뺀 나머지만 정당 지지율에 따라 각당에 배분하는 제도'와 분리할 목적도 있다.

그러나 전체 의석수를 지지율에 따라 배분하는 제도에 독일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독일과 뉴질랜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국가이면서 지역구 의원은 소선거구에서 뽑는 특징이 있다. 이 밖에 숱한 나라들은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을 뽑는 다인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그리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마케도니아, 몰도바, 몰타, 루마니아,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벨기에, 보스니아, 불가리아,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 산마리노, 스페인, 스웨덴,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체코, 포르투갈, 폴란드, 핀란드가 그러한데 민주주의 선진국이라고 할 만한 국가가 다수 발견된다. 남미에서도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 코스타리카, 페루를 포함해  다인선거구제가 흔히 발견되고, 중동에서는 이스라엘, 키프로스, 터키가 한 선거구에서 여럿을 뽑는다.

네덜란드의 경우 사실상 하나의 선거구에서 모든 국회의원을 선출한다. 유권자는 정당을 지지하거나 어느 후보에게 투표할 수 있으며, 정당 지지표만이 아니라 후보에게 투표한 표도 그 후보의 소속 정당을 지지한 것으로 본다. 그리고 후보 득표를 따지기 이전에 정당 지지율을 놓고 의석을 배분한다. 비례성이 세계 최고로 높은 선거제도다. 스웨덴은 전국 단일선거구는 아니지만 선거구당 평균 10~11명 정도를 선출한다. 정당별 득표율에 맞춰 각 정당 의석수를 정하는 점은 마찬가지다. 독일식 소선거구제에 비해 지역구에서의 지지율-의석률 격차가 현저하게 줄지만, 전국단일선거구에 비해서는 지지율-의석률간 괴리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보정의석을 따로 둬서 지지율 대비 지역구 의석수가 적은 정당에게 배분하게 되어 있다. 독일식과 차이를 보이지만 이 역시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민주주의 선진국은 소선거구다"라는 잘못된 소문에 가려져 다인선거구-비례대표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여기에 김순덕 대기자 같은 이들이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독일만 실시한다"는 거짓말 또는 말장난을 얹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독일식은 굉장히 먼 곳에 위치한 제도 같지만, 독일식으로의 선거제 개혁은 네덜란드식이나 스웨덴식을 지향하는 것보다 온건하고 점진적이다. '지역구는 소선거구-단순다수제'라는 틀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식으로의 선거제 개편은 이미 뉴질랜드가 1996년에 시행하기도 했거니와, 한국뿐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소선거구에서 지역 의원을 뽑는 나라들에게 두고두고 참고사항이 될 수도 있다.

 

2. 내각책임제가 아닌 이상 연정은 불가능한가?
☞대통령제에서도 가능하며, 연정이 되지 않은 여소야대라도 양당제보다 다당제가 나아

비례성이 높은 선거제도는 다당제를 낳기 마련이고, 다당제는 어느 특정정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당이 집권여당이라도 그럴 공산이 높다. '해보나마나 여소야대가 될 것이다.' 선거제 개혁 반대론자들은 자주 이 지점을 자극한다. 정치체제가 불안해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다당제의 이런 상황에서는 안정적 다수를 이루도록 복수의 정당이 손을 잡을 필요성이 커진다.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정권을 잡는 대통령중심제보다 국회가 정부를 구성하는 의회중심제가 정당간 연합과 연립정부 구성을 적극적으로 추동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통령중심제라고 해서 연정이 불가능한 것은 전혀 아니다. 대통령의 소속정당이라도 의회 다수파를 이루지 못하면 국정과제를 입법화하는 데 무리가 따른다. '여소야대라서 어쩔 수 없다'는 항변도 유권자들 사이에서 점점 거부당한다. 당장에 집권당에 책임을 묻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의 소속정당이 의회 다수파 형성을 위해 일부 타정당과 정책 조율 및 권력 배분을 꾀해야 할 개연성이 커진다.

대통령제에서 연정이 불가능한 나라라면 의회중심제로 전환해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공산이 높다. 대통령제이면서 다당제인 여러 나라들(특히 남미 지역)이 고질적 여소야대와 정당 난립에 시달리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정치체제를 대통령제에서 의회중심제로 바꾼다고 사정이 달라질까? 현재의 영국을 포함해서 의회중심제에서도 의회 의석 과반에 못 미치는 집권세력이 등장하는, 그러니까 여소야대가 되는 사례는 있었다.

아니면, 대통령제-다당제면서 정치가 혼란스러운 체제를 어떻게 해서든 대통령제-양당제로 바꾸는 데 성공한다고 해서 정치가 나아질 것인가? 대통령제이고 또 양당제인 정치체제에서도 '여소야대'가 되는 길은 열려 있다. 양당제의 여소야대는 다당제의 여소야대보다 훨씬 더 나쁘다. 후자에서는 여당이든 제1야당이든 제3당 이하의 정당을 설득해서 다수파가 될 여지가 있다. 연정은 못 꾸려도 사안별 협력은 가능하다. 하지만 양당제-여소야대에서 여당은 힘겨루기에서 판판이 패배하거나, 대폭 양보 내지는 굴욕에 가까운 타협을 감수해야 한다.

양당제에서는 '여대야소'도 큰 폐해를 만든다. 야당은 연패를 감내하다가 다음 선거 이전까지는 반대만 하는 처지에 머무를 개연성이 높다. 여당쪽도 문제다. 과반 의석은 굳혀 놓았지만 그 이전에 여러 부류를 껴안아가며 거대당을 형성한 까닭에 그만큼 소모적 내분의 가능성도 커지게 된다. 위의 이치를 종합하면, 요컨대 대통령제-고비례성 선거제-다당제-여소야대가 짝을 이루는 것 자체가 해악은 아니며, 대통령제-양당제-여대야소가 그보다 훨씬 더 나쁠 수 있다.

 

3. 다당제 반대론자가 '반쪽짜리 연동형'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것은 타당한가?
☞대통령제에서 다당제가 걱정된다는 사람이라면, 연동제에 비해 '50% 연동제'에는 찬성의 여지를 열어둘 수 있어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를 포함해 이번 선거제도 개편안에 반대하는 많은 이들이 "비례성이 높지도 않은, 반쪽짜리 연동형"이라는 야유를 보내고 있다. 한국당의 장제원 의원이 지난 4월 말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 들어와 신속처리안건 지정을 마지막까지 극렬히 반대하며 쏟아냈던 논리도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는 대통령제-다당제 결합을 우려하는 이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발언이다.

이번 선거제도 개혁안의 '준연동형 방식'은 독일식보다는 비례성이 낮다. 독일은 지지율과 의석률을 일치시키지만, 준연동형은 한 정당의 지역구 의석수가 그가 거둔 지지율만큼의 의석수에 모자라면, 그 절반만큼을 우선 보태준다. 지지율에 비해 지역구 의석수가 많은 거대정당은 기존 선거제보다는 특수이익을 내려놔야 하지만, 그래도 지지율을 웃도는 의석률을 기록할 수 있다. 심지어 과반 미만인 정당도 과반 의석을 차지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4. 2중대 정당을 활용한 좌파 장기집권?
☞연합할 줄 아는 우파라면 무엇이 걱정인가

김순덕 칼럼은 제목에서부터 정의당과 심상정 대표를 조준하고 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선거제 개편을 위해 정부여당에게 협조했다는 혐의를 보내고 있다. 이 지면에서 정의당에 대해 가타부타 따져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 보수논객이나 한국당이 말하는 '2중대 정당'은 어차피 뚜렷한 성공을 거둘 수 없으니까 말이다.

독자노선이 약한 정당은 다당제에서도 고정 지지층의 확산을 기대할 수 없다. 독일 자유민주당은 좌파 주류인 사회민주당 그리고 우파 주류인 기독민주연합과 번갈아가며 손잡는 동안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래디컬 정당으로서 이제 경륜을 갖춘 독일 녹색당도 사민당과의 연정을 거치면서 내내 군소정당으로 머물러 있다가, 연정의 자욱이 걷히면서 최근에 독자 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당장에 한국의 자유민주연합도 공동집권 이후 지지 기반을 대거 상실했다.

문제는 다른 정당을 설득하고 끌어들여서 과반을 만들지 못하는 자유한국당의 처지다. 정의당은 몰라도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과는 공동으로 정책이나 집권을 도모할 수 있어야 실력 있는 우파정당이다. 한국당은 그러나 연합정부는 둘째치고 여러 사안에서 번번이 고립되고는 했다. 2016년에 과반 의석을 상실한 순간부터 이 패턴은 굳어졌다. 다당제를 막겠다는 건, 다당제를 막지 못하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고백에 불과하다.

한국의 자칭 우파는 독일 우파정당 기민련에게 배워야 한다. 기민련은 다당제에서도 40% 이상의 지지율로 굳건한 리더십을 확보하고, 자주 다른 정당과 적극적으로 협상해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그 파트너 가운데는 이질적 라이벌인 좌파 사민당도 있었다. 연정이 반드시 옳고 언제나 적절하진 않더라도, 지지율을 웃도는 의석수와 그를 받치는 선거제도에 안주하는 정당은 저런 모색과 도전을 하는 정당보다 집권할 확률이 크게 떨어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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