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민식이법’은 가해자 과잉처벌법?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9.12.05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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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보호구역에서의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이 대표발의한 ‘<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안’‘<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 일명 ‘민식이법’이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스쿨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숨진 고(故)김민식 군의 이름을 딴 ‘민식이법’은 발의 40일 만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지만, 자유한국당의 199개 법안 필리버스터에 이은 국회 파행으로 12월 5일 현재 통과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편에서 법안 자체가 문제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스쿨존에서 김민식군을 친 운전자는 규정속도를 지키며 운전중이었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 아니라 “운전자가 운이 없는 경우였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민식이법'이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 사망사고를 내면 무조건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는 운전자 과잉처벌법”이라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얼마나 사실에 부합하는지 <뉴스톱>에서 확인했습니다.

MBC 방송화면 갈무리
MBC 방송화면 갈무리
'민식이법' 초점은 부족한 어린이 보호 시설 확충

고(故)김민식 군은 지난 9월 11일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두 살 어린 동생과 함께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교통사고를 당해 9살의 나이로 숨졌습니다. 김 군이 건너던 횡단보도 맞은편에는 김 군의 부모가 운영하는 가게가 있었고, 김 군의 어머니는 사고 직후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이 사건의 배경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고를 낸 운전자의 과실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사고가 난 장소가 어린이 보호구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호등이나 과속 단속카메라가 없어 실제 어린이 보호의 기능을 수행하기에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주로 스쿨존(School Zone)으로 불리는 ‘어린이 보호구역’은 어린이 교통사고를 막기 위해 지난 1995년 도로교통법에 의거해 ‘어린이 보호구역 지정 관리에 관한 규칙’으로 제정됐습니다.어린이 보호구역은 학교나 유치원 정문에서 300m까지의 구역을 지정한 것으로, 주·정차를 해선 안 되고 속도도 30㎞/h 이내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신호등이나 과속 단속카메라를 의무로 설치해야 하는 건 아니라서, 단순한 표지판만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교육부와 경찰청의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2014~2018년)간 스쿨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 건수는 총 2458건으로 나타났습니다. 전국 스쿨존 1만6765여 곳 중 과속 단속 장비가 설치된 곳은 820곳, 약 5%에 불과합니다. 현행법상 과속 단속 카메라 설치는 필수가 아닙니다.

이 같은 배경에서 사고를 당한 김 군의 아버지는 지난 10월 1일 어린이보호구역 안에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 설치 의무화와 어린이보호구역 내 사망사고 시 가중 처벌해 달라는 내용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렸습니다. 이후 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 예산처에서 전국 스쿨존에 과속 단속 카메라를 설치할 경우 1조원 이상이 든다는 등의 문제로 큰 진척이 없었습니다.

법안 제정이 탄력을 받은 것은 지난 19일 열린 문재인 대통령의 ‘국민이 묻는다, 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였습니다. 첫 질문자로 뽑힌 김 군의 부모는 문 대통령에게 ‘민식이법’ 통과를 호소했습니다. 김 군의 어머니는 이날 “스쿨존에선 아이가 차량에 치여 사망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놀이공원 주차장에서도 차량이 미끄러져 사망하는 아이가 없어야 한다”며, “어린이가 안전한 나라가 이뤄지기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운이 없었다" "과잉처벌" 주장 나온 이유는?

하지만, 법안 제정에서 정치권의 논란과는 별도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고 운전자가 운이 없었다”, “민식이법은 과잉처벌”이라는 주장이 자동차 커뮤니티 등에서 일부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우선 운전자의 입장에서 나오는 불만은 “불법주정차 때문에 시야확보가 쉽지 않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어린이는 어쩔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김 군 사건 당시 상황에 대한 설명이 사실과 거짓이 섞여서 공유되고 있습니다.

우선 팩트부터 확인하면, 첫 번째 쟁점은 가해 차량의 속도입니다. 사건 발생 후 열린 첫 재판의 쟁점이기도 했는데, 도로교통공단은 주변 차량 블랙박스를 바탕으로 당시 차량 속도가 시속 23.6km였다고 분석했습니다. 스쿨존의 제한속도인 30km를 지킨 셈입니다.

두 번째는 옆에 불법주정차된 차량 때문에 시야가 확보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운전하다 보면 불법주정차된 차량 때문에 시야확보가 안 되는 경우는 자주 겪는 일입니다. 김 군 사건의 경우, 왕복 2차선 도로였고 반대편 차선에 차들이 밀려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김 군과 동생이 달려오는 쪽의 시야가 일부 막혀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전방주시의무도 어쩔 수 없었고, 결국 “사고운전자가 운이 없었다”는 주장입니다.

 

사고낸 도로교통법상 '안전운전 준수' 의무 어겨

하지만, 제한속도 외에 사고 운전자가 지키지 않은 법규는 세 가지를 꼽을 수 있습니다. 도로교통법 제27조(보행자의 보호), 제48조(안전운전 및 친환경 경제운전의 의무), 제49조(모든 운전자의 준수사항 등)입니다. 

모든 운전자에게는 안전주의 의무가 있고 스쿨존 및 횡단보도에서는 더 엄격해집니다. 이들 법률에 따라, 운전자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에는 보행자의 횡단을 방해하거나 위험을 주지 않도록 그 횡단보도 앞 혹은 앞 정지선에서 일시 정지하여야 합니다. 보행자에 대한 시야가 확보되지 않았다면 일단 정지 혹은 서행을 하는 게 안전운전 및 방어운전의 방법입니다.

이미지 출처 : 도로교통공단
이미지 출처 : 도로교통공단

매년 교통사고 1위를 차지하는 항목은 과속이나 신호위반이 아니라, 전방주시 태만 등의 안전운전 불이행 사고입니다. 최근에는 주행 중 스마트폰이나 네비게이션 등의 스마트 기기 조작 때문에 사례가 더욱 늘고 있습니다.

 

처벌 강화됐지만 '안전운전 미이행시'라는 전제조건 있어

또 다른 불만은 강화된 처벌에 대한 것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블로그 등에서 많이 공유되고 있습니다.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어린이를 사망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어린이를 상해에 이르게 한 경우에는 1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항목이 신설되는 것인데, 운전자가 법을 다 지켜도 스쿨존에서 어린이 사망사고가 나면 무조건 처벌된다는 것입니다.

국회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실제로 초기에 발의된 민주당 강훈식 의원과 자유한국당 이명수 의원의 발의안에서는 해당 내용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11월 29일 가결된 최종안에는 “도로교통법 제12조제3항에 따른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같은 조 제1항에 따른 조치를 준수하고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하여야 할 의무를 위반하여”라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출처 : 국회의안정보시스템
출처 : 국회의안정보시스템

즉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시속 30km이상 과속하지 않았고,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했다면 해당 조항은 적용이 되지 않습니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한국의 스쿨존에서 어린이 10만 명 당 사망자 수는 0.44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0.3명)보다 1.5배 높습니다. 도로교통공단은 스쿨존에서 지켜야 할 운전자 안전수칙으로 ①시속 30km 이내로 서행 운전할 것 ②스쿨존에선 자동차의 주·정차를 삼갈 것 ③스쿨존 내 횡단보도에서는 일시 정지할 것 ④급제동 및 급출발하지 말 것을 제안했습니다.

정리하면, "고(故)김민식 군 사고 때 운전자는 특별하게 위반한 것이 없었다. '민식이법'은 스쿨존 사망사고는 무조건 처벌하는 과잉처벌이다"는 주장은 모두 사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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