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유치원의 ‘폐원협박’은 유효할까?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18.10.21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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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방송화면 캡처

박용진 의원 비리자료공개에 일부에서 '폐원하겠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지난 11일, 2013년부터 올해까지 17개 시·도교육청 감사에 적발된 유치원 명단을 공개했다. 박 의원에 따르면 이들 유치원이 저지른 비리는 총 5951건, 269억 원에 달했고 적발된 유치원은 전국적으로 1800개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MBC가 공개한 유치원감사보고서)

이에 대해 국민들의 공분과 질타가 이어지자 전국 사립유치원의 77%가 회원으로 가입한 한국유치원총연합회(한유총)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대응에 나섰지만 비리로 적발된 일부 유치원에서 폐원하겠다는 통보를 학부모에게 일방적으로 보내 또다른 논란이 되고 있다.

한 페이스북 이용자는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이 비리유치원으로 언론에 보도됐고, 해명의 글이 아이를 통해 전달되더니 다음 날에는 폐원을 한다고 알려왔다. 심지어 같은 이사장이 운영하는 6개 유치원이 모두 내년 신입생을 받지 않기고 결정해 이 동네 내년 유치원 입학이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는 내용의 게시물을 올리기도 했다.

매일경제는 <비리의혹 유치원 “문 닫겠다”" 일방통보…학부모 날벼락>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사립유치원들 비리에 대한 사회적 공분이 점점 커지고 정부가 본격적인 감사를 실시할 계획을 내비치면서 이처럼 갑작스럽게 폐원을 결정하는 곳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고 보도했다.

설립에 비해 폐원은 상대적으로 쉬워 

유아교육법 8조 4항에 따르면, 사립유치원을 설립·경영하는 자가 유치원을 폐쇄하려는 경우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중요사항을 변경하려는 경우에는 교육감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

또 유아교육법 시행령 9조 2항에는 “법 제8조 제4항에 따라 유치원의 폐쇄인가를 받으려는 사립유치원의 설립·경영자는 교육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폐쇄사유, 폐쇄 연월일을 기재한 학교폐쇄 인가신청서에 다음 각 호의 서류(전자문서를 포함한다)를 첨부하여 교육감에게 신청하여야 한다”고 되어있다.

지역별 교육지원청에 안내되어 있는 유치원인가관련 안내에 따르면 구비서류만 26개가 필요할 정도로 까다로운 설립인가에 비해 폐지인가는 3항목(폐지사유, 원아처리방법, 시설·설비처리방법) ‘타당성 여부 확인’이라는 구체적이지 않은 심사기준을 적용해 5일안에 처리하도록 되어 있다. 구비서류도 7종으로 상대적으로 간단한 편이다.

교육지원청 홈페이지 캡처

절차만 밟으면 대체적으로 폐원이 진행된다. 보통 교육청 권고로 해당연도가 아닌 이듬해 문을 닫게 된다. 폐원을 추진 중인 유치원에 아이가 다니고 있다면 당장 내년에 다닐 유치원을 알아봐야 하고, 해당 유치원을 희망했던 입학 예정 아이의 부모도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진다. 한겨레신문의 지난 7월 18일 보도에 따르면, 서울 용산구에 있는 유성유치원은 2018년 신입생을 받은 4개월 후 재건축을 사유로 폐원을 통보해 학부모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폐원을 막을 방법이 없는 상태다.

경기도 하남에 위치한 한 유치원은 지난 11일 온라인 카페에 유치원원장을 비롯한 교직원들과의 협의도 없이 이사장이 일방적으로 폐원을 통보했다는 원장의 게시물이 올라오기도 했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유치원이 가장 많은 경기도의 경우 지난 3년간 48건의 폐원 신청이 모두 인가됐다. 또 인천일보 보도에 따르면 문을 닫는 사립유치원은 2016년 2곳, 2017년 1곳이었지만 올해 14개 곳이 폐원예정이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에 따르면 2018년 4월 1일 현재 휴원 유치원은 61개소, 폐원은 157개소로 총 218개의 유치원이 문을 닫거나 쉬고 있는 상황이다. 

전체 유치원 수는 큰 차이 없어

하지만 국내 유치원 상황을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양상이 보인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제공하는 국가교육통계에 따르면, 2018년 전국의 유치원수는 국공립을 통틀어 9021개이다. 최근 10년간 증감추이를 보면 2007년부터 2017년까지 계속 늘어나다가 올해 처음 감소했다.

사립유치원이 꾸준한 증가세를 유지하다 작년과 올해 감소세를 기록한 반면, 공립유치원은 꾸준한 증가세를 기록한 것이 특징이다. 사립유치원 폐원으로 생기는 공백을 공립유치원이 메꿔가고 있는 상황이다.

사립유치원 원장들의 속내도 폐원이 쉽지는 않다. 머니투데이의 보도에 따르면 사립유치원 운영자들은 사립유치원을 교육기관이 아닌 개인 사업체로 여기는 인식이 뚜렷했다. 사업체를 홧김에 혹은 비리혐의로 매도당했다고 닫아버리는 경영자는 쉽게 찾을 수 없다. 실제로 현재 경기도교육청에 폐원을 신청한 유치원은 없다.

폐원 후에 인근 혹은 다른 지역에서 재개원을 하는 경우가 생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시설과 설비를 갖추었다면 유치원 개원은 성범죄자만 아니면 누구나 가능하다. 의도적인 폐원과 재개원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현재 법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출생인구 감소에 따른 폐원 대책 마련해야

사립유치원과 관련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폐원하겠다'는 대응이 있었지만 실제 통계상으로 큰 변화가 보이지는 않았다. 현재까지는 공립유치원과 신설사립유치원이 폐원하는 사립유치원의 공백을 메꾸고 있지만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유치원에 입학하게 될 아이들이 줄어드는 것이다.

통계청이 제공하는 e-나라지표에 따르면 국내 출생아 수는 ▲2008년 46만5892명, ▲2009년 44만4849명, ▲2010년 47만171명, ▲2011년 47만1265명, ▲2012년 48만4550명, ▲2013년 43만6455명, ▲2014년 43만5435명, ▲2015년 43만8420명, ▲2016년 40만6243명, ▲2017년 35만7771명을 기록하고 있다.

<출처 : 통계청 e-나라지표>

최근 10년간 출생아 가운데 조기입학자인 만3세반을 포함해 유치원에 재학할 수 있는 연령대의 출생아는 2012년생 48만4550명, 2013년생 43만6455명, 2014년생 43만5435명이다. 2016년부터 급격히 감소한 출산율을 감안하면 현재 신입생 수 감소로 문 닫는 대학이 늘어나는 것처럼 어린이집 대신 유치원으로 대거 몰리지 않는 이상 유치원도 운영상의 이유 때문에 타의로 문을 닫는 곳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추세는 서울시 교육청의 서울교육통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서울시교육청 홈페이지>

같은 기간 전체 학령인구 추이에서도 전반적으로 뚜렷한 감소추이를 확인할 수 있다.

<출처 : 서울시 교육청 홈페이지>

최근 실제로 입학생 부족으로 문을 닫거나 운영상의 곤란을 호소하는 곳이 지방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충청북도는 저출산에 따른 원아 감소로 지난해 12월 이후 학교 통폐합에 따른 사례를 제외하고 3개 사립유치원이 폐원하고, 5개 공·사립 유치원이 휴원 중이다. 대전도 최근 5년 동안 2014년 1곳, 2015년 2곳, 2016년 3곳, 2017년 2곳, 올해는 4곳의 사립유치원이 원생 부족으로 문을 닫았다. 전남 광주에서도 올해 사립유치원 6곳이 폐업신청을 해 이중 5곳이 폐업했으며 1곳이 폐업절차를 밟고 있다. 6곳 모두 폐원사유는 '원아모집의 어려움'이었다.

출생아 감소에도 대비해야 하는 '골든 타임'

박용진 의원의 자료 공개로 시작된 이번 사립유치원 비리 사태는 국민들의 공분을 기반으로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수차례 사립유치원 문제들이 불거졌지만 대부분 사립유치원장들의 로비와 압력에 밀려 흐지부지되고는 했다.

박 의원은 지난 19일 “유치원 비리를 해결하라는 국민적 염원을 담아 투명한 회계 등 법적 근거 마련에 중점을 둔 사립유치원 근절 3법(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학교급식법 개정안)의 당론 발의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대체로 투명한 회계관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한유총을 비롯한 일부 사립유치원들은 정부가 자꾸 간섭하면 폐원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지만 실제 폐원보다는 ‘협박성 발언’으로 보인다. 또 신입생 모집중단 등의 집단행동도 여론을 감안하면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출생인구 감소에 따라 몇 년 안에 유치원 폐원은 선언이 아닌 현실이 될 확률이 높다. 정부의 관리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몇 년 후 일부 사립유치원들은 입학생 부족에 따른 경영난을 핑계로 국고지원 확대를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나설 수도 있다. 실제로 한유총은 지난 5월 사립유치원 무상교육 추진을 요구하기도 했다. 

사립유치원 비리로 국민들의 관심이 최고조인 지금이 유치원교육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로잡을 수 있는 놓칠 수 없는 ‘골든타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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