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수사관이 윤석열에 보낸 메시지” 보배드림발 가짜유서

  • 기자명 박강수 기자
  • 기사승인 2019.12.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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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지난 1일 숨진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원으로 근무했던 검찰 수사관 A씨의 유서 내용에 대한 유언비어가 돌고 있다. ‘자살한 수사관이 검찰청이 보이는 서초동에서 자살한 이유’라는 제목의 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자살한 수사관이 윤석열에게 보낸 메시지

나 서초동 윤석열 검찰청 있는 곳에 내 묘를 만든다.......죽어서도 니가 내 가족을 괴롭히는지 지켜볼거다

가족 배려해 달라.....가족 별건 수사로 조국 장관 아들 딸 죽이듯이 죽이지 말아달라 서초동 이 사무실에서 너를 지켜보겠다

윤석열 미안하다.......윤석열 니가 원하는 진술이 뭔지는 알겠는데 위증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

핸드폰을 초기화하지 마라.......핸드폰에는 검찰 니들의 죄악이 다 들어 있다 모든 걸 죽은 나에게 덮어씌우지 마라

보배드림 유머게시판 글에 대한 구글에 저장된 페이지 캡처.
보배드림 유머게시판 글에 대한 구글에 저장된 페이지 캡처.

해당 내용은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소셜 미디어 상으로 퍼졌다. 원본은 지난 8일 오전 9시 14분 보배드림 유머게시판에 올라온 게시물이다. 이후 같은 날 오후 8시 3분에 동일한 내용의 글이 같은 게시판에 다시 올라와 192개의 추천을 받고 베스트글이 되었다. 이 게시물은 현재 삭제되어 구글에 저장된 페이지에서만 확인된다. 시간 차를 두고 올라온 두 게시물의 글쓴이는 하나의 계정으로 ‘나라를나라답게’라는 닉네임을 쓴다.

이 글은 언론 기사와 칼럼, 유튜브 방송을 짜깁기해 만들어진 자의적 정치 해석을 담은 추측성 글로 실제 A수사관의 유서 내용과는 관련이 없다. 글의 형식을 봐도 A수사관의 유서에 포함된 내용이라고 보도된 바 있는 “가족을 배려해 달라”, “윤석열에 미안하다”, “휴대전화 초기화하지 마라” 등 문장을 하나씩 적고 말줄임표를 넣은 뒤 앞선 문장의 의미를 부기하는 방식으로 쓰여 있다. 다만 글의 제목이 ‘자살한 수사관이 윤석열에게 보낸 메시지’라고 되어 있고 첫 줄이 ‘나’를 주어로 시작해 실제 유서 내용을 옮긴 것 같은 오해를 부른다. 글쓴이가 실제 유서 내용처럼 읽히기를 의도했는지, 유서의 내용을 해설해 주고 싶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보배드림에 올라왔던 게시물이 본래 글쓴이의 의도 여하와 무관하게 실제인 것처럼 유통되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보배드림에 올라왔던 게시물이 본래 글쓴이의 의도 여하와 무관하게 실제인 것처럼 유통되고 있다.

해당 게시물의 뿌리가 된 것으로 보이는 출처들도 실제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우선 첫 줄의 “나 서초동 윤석열 검찰청 있는 곳에 내 묘를 만든다”라는 내용은 한 유튜브 방송에서 유래한 것이다. 해당 방송에는 A수사관이 마지막 장소로 선택한 서초동 지인의 사무실이 “윤 총장 사무실 창문에서 보이는 위치일 것이며 그들(검찰)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위해 일부러 선택한 장소”라는 주장이 나온다. 글쓴이는 최초로 올린 게시물 댓글에 이 유튜브 방송 링크를 써놓았다. 이 외에도 게시물 내용은 대부분 이 유튜브 방송의 주장과 맥을 같이 한다.

보배드림 유머게시판 캡처. 글쓴이가 댓글에 써놓은 주소는 출처가 된 유튜브 방송의 링크다.
보배드림 유머게시판 캡처. 글쓴이가 댓글에 써놓은 주소는 출처가 된 유튜브 방송의 링크다.

또한 글쓴이는 위 게시물을 올리기 하루 전인 12월 7일 ‘자살하면서 내 핸드폰 초기화하지 마라고 유언한 이유’라는 글을 올려 12월 6일 법률신문에 실렸던 오시영 숭실대 법대 교수의 칼럼 ‘윤석열 검찰총장은 이제 진퇴를 결정해야’를 인용했다. 해당 칼럼에는 A수사관이 “자신의 핸드폰을 초기화하지 말라는 무서운 경고를 검찰에 남겼고 그의 핸드폰에는 검찰 비리 관련 모든 내용이 저장되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 앞선 유튜브 방송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해당 칼럼의 주장 역시 이 게시물의 자양분이 된 것으로 보인다.

글쓴이가 차용한 일련의 주장들은 ‘A수사관은 검찰 수사의 희생양’이라는 테마 아래 짜맞추어진 일부 친 여권 지지자의 시각을 대변한다. 다만 세계일보 단독 보도를 통해 알려진 “휴대전화 초기화하지 마라” 기사의 경우 지난 3일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유서에 있지도 않은 내용을 거짓으로 흘렸다”는 반박이 제기된 바 있다. 따라서 해당 내용을 검찰의 음모에 대한 근거로 사용하는 일은 글쓴이가 지지하는 청와대의 해명과 이율배반의 관계에 있다. 세계일보 기사가 난 지난 2일 당일에 서울중앙지검 전문공보관은 “휴대전화 초기화 관련 유서 내용 보도는 오보”라고 기자들에 공지했다.

보배드림 글쓴이의 본 의도가 실제 유서 내용을 참칭하는 데 있는지 알려진 유서 내용을 바탕으로 해설을 제공하는 데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다. 다만 교묘한 구성 방식 탓에 유통 과정에서 글 내용이 실제 메시지인양 오해할 소지가 다분하다. 앞선 브리핑에서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언론인 여러분은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왜곡 보도로 고인을 욕되게 하고 또 관련자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하며 국민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 달라”고 말했다. 이 브리핑의 메시지는 비단 언론인뿐 아니라 온라인 커뮤니티와 유튜브, 소셜 미디어의 모든 정보 유통자들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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