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한국 '운세시장'이 '영화시장'보다 크다?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20.01.06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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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대통령 올 사주 환상적… 김정은 풍수적 기운 강해…> 서울신문이 1월 2일 발간한 기사의 제목입니다. ‘운세’, ‘사주’, ‘점성술’ 등은 신년 초에 자주 접할 수 있는 콘텐츠 가운데 하나입니다. 불황 등으로 인해 사회적인 불확실성이 커질 때면 관련 기사가 늘어나기도 합니다. 운세나 점술 관련 기사에 종종 등장하는 내용 가운데 하나가 “한국의 점술시장 규모 4조원”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한국의 대표적인 콘텐츠 산업 가운데 하나인 영화시장의 1.7배에 이르는 규모입니다. <뉴스톱>에서 ‘한국 점술시장 규모 4조원’의 출처와 팩트를 확인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한국 운세(점술)시장 4조원 출처는 영국 이코노미스트

포털검색을 통해 ‘한국 점술시장 규모 4조원’이라는 언론보도는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미신 아니에요’ SBS 개그맨도 뛰어든 4조 유망 시장> - jobsN 2019.11.24

<“온·오프 점술시장 4조원”… 운세시장 전성시대> - 한국일보 2019.1.29.

<점집찾는 1030세대…급성장하는 점술 시장> - 매일경제 2019.1.4.

<재미로 占 본다? 시장규모 4조, 영화산업보다 크네> - 부산일보 2018.12.30.

<우리가 몰랐던 한국, 점술 시장규모 무려 37억 달러> - 매일경제 2018.2.27

 

전체 매출액은 시장 규모를 측정하는 데 가장 많이 쓰입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2018년 한국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영화시장의 전체규모는 매출액 기준으로 2조3764억 원이었습니다.

이들 보도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운세시장이 영화시장의 약 1.7배 가까이 되는 셈입니다.

포털사이트 검색화면 갈무리
포털사이트 검색화면 갈무리

 

이 기사들이 ‘한국 점술시장 4조원’의 근거로 든 것은 모두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보도였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2018년 2월 24일 <In South Korea fortune-telling will soon be a $3.7bn business(37억 달러에 달하는 한국의 점술 시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한국의 점술시장 규모가 4조원에 이른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코노미스트 홈페이지 갈무리
이코노미스트 홈페이지 갈무리

 

그렇다면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점술시장 4조원’을 어떻게 추정했을까요?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The otherworldly in South Korea will soon be a 4trn won ($3.7bn) business, predicts the Korea Economic Daily, a local newspaper. Paik Woon-san, head of the Association of Korean Prophets, estimates that there are over 300,000 fortune-tellers in the country, and 150,000 shamans, many of whom provide clairvoyance.”

근거는 통계나 조사 자료가 아닌 한국경제신문(Korea Economic Daily)의 보도였습니다. 그리고 “한국에는 30만 명의 역술인과 15만 명의 무속인이 있다”는 백운산 한국역술인협회장의 발언을 덧붙였습니다.

 

이코노미스트가 인용한 한경보도는 관계자 주장과 추정

이코노미스트가 인용한 한국경제의 기사를 찾아보았습니다. 한국경제는 2007년 12월 7일 <[점술인 성인 80명달(당) 1명꼴… 4조원대 시장으로] “이번엔 金배지 달까요”>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아래와 같이 보도했습니다.

“한국역술인협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의 점술인(역술인+무속인) 수는 적게 잡아서 45만 명,많게는 55만 명에 달한다. 줄잡아 19세 이상 성인인구 70∼80명당 1명꼴이다. 관련 매출은 정확한 집계는 없지만 인터넷 등 온라인 점술산업을 포함할 경우 2조5000억 원에서 4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또, 한국경제신문의 자매지인 한경비즈니스는 한경보도보다 2년 정도 앞선 2006년 1월 16일자 <4조 시장 ‘부글부글’…역술인 50만>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아래와 같이 보도했습니다.

 

“실제로 역술, 무속에 종사하는 사람은 전국적으로 45만 명에 이른다는 게 한국역술인협회의 추정이다. 철학관 등을 운영하는 역술인이 30만 명, 신을 모시는 무속인이 15만 명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밖에 단기 학원이나 문화센터 과정을 마치고 활동하는 초보 역술인들까지 감안하면 그 수가 50만 명은 족히 넘을 것이란 예상이다. 이를 기반으로 추정하는 운세산업 규모는 2조원에 달한다. 일부에서는 부적, 굿 등 고액의 서비스 거래와 신종 창업아이템인 사주카페의 증가를 감안하면 이보다 2배 많은 4조원에 육박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 4조원 시장이라면 이는 애완동물 시장, 로또복권 시장을 능가하는 규모다”

 

한경비즈니스 기사에서는 “4조원에 육박한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한다”였는데, 23개월 후의 한국경제 기사에서는 “4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로 바뀌었습니다.

 

다른 언론들도 추정치를 근거로 보도

그런데, 한경비즈니스 보도가 있기 불과 보름 전에는 다른 수치의 보도가 나왔습니다.

시사저널은 2005년 12월 30일 기사, <‘운세 산업’을 우습게 보지 말라>에서,

“전국의 역술인을 포괄하고 있는 대표 단체인 한국역술인협회에 따르면, 협회에 등록한 역술인은 30만 명 정도. 여기다 등록하지 않고 활동하고 있는 역술인까지 포함하면 족히 50만 명은 될 것으로 추산한다. 일부에서는 운명 산업의 규모가 족히 2조원은 될 것이라고 추산한다. 영화 산업과 맞먹는 수준이다.”

고 보도했습니다.

한경비즈니스와 시사저널의 보도를 그대로 따르면, 한국의 운세 산업은 2005년 12월 족히 2조원 규모였는데, 불과 보름 만에 4조원 대에 육박하게 성장한 셈입니다.

2010년 중앙일보의 일요판 신문인 중앙선데이는 이 수치를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한국역술인협회는 한국의 운세 산업 규모를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백운산 중앙협회장은 “철학관 등을 운영하는 역술인 30만 명에 무속인이 15만 명에 달하며 초보 역술인들까지 감안하면 50만 명을 넘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이 평균 연 400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면 운세 산업 규모는 2조원에 달한다. 부적·굿 등이나 사주카페·온라인사이트 등을 감안하면 4조원에 육박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로또 시장과 맞먹는 수준이다.”

시장 규모를 더 크게 보도한 경우도 있습니다. 한겨레신문은 2016년 2월 9일 명리학 입문서를 낸 강헌 작가를 인터뷰한 <나의 운명은 내가 읽는 것> 기사에서 “국내 점술시장 규모가 6조~7조원”이라는 강 작가의 발언을 보도했습니다.

심지어 개신교 계열의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창간한 국민일보도 2018년 6월 22일 미션라이프 섹션의 <운세에 기대셨나요? 믿음의 기둥을 세우세요>라는 기사에서,

“무속신앙 보존단체인 대한경신연합회, 한국역술인협회 등에 따르면 현재 두 단체에 가입된 회원 수는 각각 30만 명이고 비회원까지 추산하면 무당과 역술인은 약 100만 명에 달한다. 우리나라 역술시장의 규모는 최소 4조원에서 최대 6조원대로 보고 있다.”

고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도 2017년 11월 25일 <100만명 넘어섰다는 무당과 역술인, 10년 새 倍로 늘었다는데…> 기사를 통해,

“회원 수가 가장 많은 두 단체인 대한경신연합회(무당 단체)와 한국역술인협회(역술인 단체)에 따르면 두 단체 각각 현재 가입회원이 약 30만 명, 비회원까지 추산하면 5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11년 전인 2006년 대한경신연합회에 가입한 무당은 약 14만 명, 역술인연합회에 가입한 역술인은 20만 명으로 회원 수만 지난 10년 새 1.5~2배 늘었다. 협회들의 비회원 추산치까지 더하면 무당과 역술인은 100만 명 가량으로 짐작된다”

고 보도했습니다.

 

시장 규모 추산 근거인 관련종사자 수도 추정치

이들 보도를 종합하면, 한국의 운세산업 규모는 2005년부터 2조원~4조원이었고, 2019년 보도에서는 4조원~7조원까지 추산됩니다. 추산 근거는 관련종사자 수였는데, 역술인이 30만 명, 무속인은 15만 명이고 초보역술인이나 비회원, 사주카페 등까지 포함하면 50만~100만 명에 달합니다.

그런데, 산업 규모의 근거라는 종사자 수는 협회나 협회관계자의 발언이 출처이거나 구체적인 근거가 없습니다. 역시 추산(推算: 짐작으로 미루어 계산함)입니다.

또 무속인은 15만 명에 달한다고 했는데, 한국무속인 단체인 대한경신연합회는 홈페이지에서 30만 무속인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일종교신문의 2018년 11월 5일 보도에 따르면, “경신회(대한경신연합회)에서 공식적으로 회원들에게 발급해주는 등록증은 지난 1971년부터 현재까지 약 8만 장에 이르고 매년 발행되는 수첩과 신분증을 받아가는 무속인은 1만 5000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한국역술인협회도 30만 회원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협회에 회원가입 방법을 문의했더니, 협회에서 발급하는 역학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역학상담사 자격은 협회에서 개설한 5개월 과정의 강의를 들으면 90~95%정도 합격할 수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통계청 공식통계로는 2016년 기준 2043억원 규모

언론의 추정과 별도로, 운세산업과 관련한 공식 통계가 있습니다. 통계청이 제공하는 시도 · 산업 · 사업체구분별 사업체수, 종사자수 통계에 따르면, 가장 최근 통계인 2016년 ‘점술 및 유사 서비스업’ 사업체수는 1만239개, 종사자 수는 1만1585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점술 및 유사 서비스업’은 예언술, 구상술, 관상 및 골상학, 점성술 등에 의한 점술 및 유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산업활동을 말합니다. ‘점집’, ‘무당’, ‘심령술업’, ‘풍수서비스업’, ‘토정비결 서비스업’ 등이 해당됩니다.

점술인 숫자는 2006년 1만5690명에서 2008년 1만5777명으로 소폭 증가했지만 이후 꾸준한 감소세를 보이며 2016년에는 1만1585명을 기록했습니다.

점술업 매출액도 2006년 2503억 원에서 2008년에 2789억 원으로 정점을 기록한 이후, 감소세를 보이며, 2016년에는 2043억6천7백만 원을 기록했습니다.

출처: 통계청 국가통계포털
출처: 통계청 국가통계포털

앞서 여러 언론보도에서 한국의 운세시장은 영화시장, 복권시장, 애완(반려)동물시장보다 규모가 크다고 보도했는데, 같은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16년 국내 반려동물 산업 시장규모는 2조 2900억 원이었습니다. 결국 통계청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운세시장은 반려동물 시장의 10%가 채 안 됩니다.

 

관련종사자수, 매출액 모두 공식통계와 차이 커

정리하면, 여러 언론들이 4조원 규모라고 보도한 운세시장은 근거가 관련종사자 수였습니다. 또한 종사자 수치는 관련 협회 등이 주장하는 회원 수와 추정치일 뿐입니다. 통계청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공식적인 종사자와 매출액은 가장 최근통계인 2016년 기준으로 1만1585명과 2043억6700만 원이었습니다. 정식으로 사업등록을 하지 않은 종사자를 감안하더라도 50만~100만 명과 1만1585명, 4조원과 2043억 원은 수십배의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한 추세를 살펴보면 여러 언론들이 점술 관련 종사자 수와 매출이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했지만, 실제 통계상으로는 2008년 종사자 수 1만5777명, 매출액 2789억 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최근까지 종사자수와 매출액 모두 하락세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같은 내용들을 근거로 “한국 운세산업 시장 4조원 규모”는 거짓으로 판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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