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멸망시키는 가장 빠른 방법은?

  • 기자명 박재용
  • 기사승인 2020.02.27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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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만약 인류멸망을 바란다면 지구와 태양계에 맡겨 두면 됩니다. 아무리 길어봤자 약 30억년 정도면 무조건 지구의 인류는 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노랗게 빛나는 귀여운 태양은 수소를 연료로 열심히 자신을 불태우는 중이죠. 하지만 30억 년쯤 지나면 태양의 핵에는 탈만한 수소가 거덜납니다. 그때부터 태양은 헬륨을 태우기 시작하지요. 헬륨을 태우는 과정은 더 높은 온도를 요구합니다. 태양이 더 뜨거워지는 거죠. 그러면 태양 핵 밖의 대류층이나 복사층 일부가 그 열기로 부풀어 오릅니다. 뻘건 색으로 말이지요. 이를 적색거성이라 하는데 그 부푸는 크기가 상상을 초월해서 처음에는 수성을 집어 삼키고 연이어 금성, 그리고 마침내 지구까지 홀라당 먹어버립니다. 그때의 적색거성은 워낙 커서 지구 정도는 그야말로 타오르는 모닥불에 거슬리는 하루살이보다 못한 존재가 됩니다. 지구를 구성하던 모든 물질은 녹아버리다 기체가 되고 다시 원자핵과 전자가 서로 분리되는 플라즈마 상태가 되지요. 지구에 살던 인류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때까지 존재한다면 말이지요.

 

하지만 그렇게나 오래 기다리기 힘들다는 당신을 위해 지구와 태양은 또 다른 계획이 있습니다. 매일 뜨는 태양은 사실 매일 조금씩 뜨거워지고, 조금씩 부풀고 있습니다. 워낙 천천히 일어나는 일이라 잘 모르는 거지요. 하지만 약 6억년 정도가 지나면 그 매일의 일들이 엄청나게 축적되어 지구를 향하는 태양 에너지의 양이 확실하게 커지게 됩니다. 그 태양에너지는 먼저 바닷물을 증발시켜 수증기로 만듭니다. 아시나요? 수증기도 이산화탄소 못지않은 온실가스입니다. 늘어나는 수증기로 인해 지구 전체 온도도 훨씬 올라가지요. 마침내 바다는 그 바닥을 드러내버립니다. 지구 전체는 가득 찬 수증기로 숨이 막힐 지경이 되겠지요. 물론 바다가 사라지니 그 곳에 사는 생물들은 모두 죽고 맙니다. 그리고 수증기의 온실효과로 지구는 지금의 금성과 비슷한 상태가 될 것입니다. 금성이 어떠냐고요? 금성 지표의 평균 온도는 약 400도 정도이죠. 이산화탄소와 수증기로 가득 찬 대기가 열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고 있어서요. 하늘에는 황산 구름이 떠있고 수시로 황산비가 내립니다. 지표에는 납이 녹아 흐르는 강이 보이기도 하고요.

6500만년전 멕시코 유카탄반도 칙슬루브에 거대한 운석이 떨어졌다. 지구와 운석의 충돌 상상도. 출처: BBC
6500만년전 멕시코 유카탄반도 칙슬루브에 거대한 운석이 떨어졌다. 지구와 운석의 충돌 상상도. 출처: BBC

 

6억년도 너무 길다는 당신을 위해 지구가 확률적으로 준비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500만년 전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칙슬루브에 거대한 운석이 떨어졌습니다. 운석이 떨어지고 1분 정도 만에 그 충격파로 주변 수천 킬로미터의 생물이 몰살당합니다. 그리고 연이어 하루가 지나지 않아 대서양을 면한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로 수 킬로미터 높이의 쓰나미가 덮쳐 해안으로부터 수십 킬로미터까지의 생물들을 쓸어버리지요. 뒤이어 폭발로 비산한 먼지들이 성층권을 덮어 몇 년 간의 태양빛을 차단합니다. 이 사건으로 공룡과 익룡, 바다 파충류와 다른 생물들이 모두 멸종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정도의 운석이 떨어지는 것은 확률적으로 1억 년에 한 번 정도라고 합니다. 저번 운석이 떨어지고 6500만 년 정도가 지났으니 대략 3500만년 정도 사이에 한 번 떨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은 거지요. 뭐 이는 확률적인 것이니 더 지체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앞으로 1억 년 정도면 한 번은 떨어질 듯합니다.

 

운석만 기다리기에 너무 지루하다면 화산 분출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고생대 말 페름기에 터진 시베리안 트랩이 대표적인 사건입니다. 지금 시베리아 면적의 1/3 정도가 수 km 두께의 용암으로 덮여버릴 정도로 거대한 분출이었지요. 당시 살던 생명의 90% 이상이 절멸해버린 대멸종 사건이었습니다. 그 뒤 중생대 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 사이에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합니다. 지금의 대서양 중앙해령이 생기면서 북극에서 남극까지 이어진 화산 폭발이 일어났지요. 이때도 전체 생물의 약 80% 정도가 사라집니다. 그 정도까지의 규모는 아니더라도 74천년 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토바화산 분출도 인류를 멸종 직전까지 몰아넣었습니다. 당시 토바화산에서 분출된 화산쇄설물의 양은 1980년 미국 세인트 헬레나 화산 분출의 1만 배 규모였지요. 5만 명에 가까운 사상자를 낸 1815년의 탐보라 화산도 토바에 비하면 5% 규모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화산을 슈퍼화산이라고 하지요.

고생대 페름기 화산 폭발로 시베리아 대부분이 용암으로 덮혔고 90%의 생물이 멸종했다. 사진은 용암으로 덮인 시베리아 트랩.
고생대 페름기 화산 폭발로 시베리아 대부분이 용암으로 덮혔고 90%의 생물이 멸종했다. 사진은 용암으로 덮인 시베리아 트랩.

 

현재도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과 일본의 아소산 화산이 유력한 슈퍼화산 후보지요. 지질학자들에 따르면 10만년에 한 번 정도는 터진다고 하니 앞으로 몇 만 년 안에 일어날 가능성이 아주 높지요. 특히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경우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라고 하니 말이지요.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하지만 지구의 계획을 기다리기 보다는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인류 멸망을 생각한다면 당신이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아주 간단합니다. 기생충에서 송강호가 말하지요.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이 뭔지 아니? 그건 계획을 세우지 않는 거야. 무계획은 절대 실패하지 않지. 그렇습니다. 당신은 미국과 러시아의 핵전쟁을 계획할 필요도 없고, 치사율 100%의 세균을 풀어놓을 필요도 없습니다. 하물며 핵발전소 폭발 같은 쓸데없는 일을 할 필요도 없지요. 당신이 할 유일한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현재의 삶을 살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아 다른 사람들에게도 현재의 삶에 그저 충실하라고 충고할 순 있겠네요.

그래서 기업이 열심히 물건을 만들고 팔기 위해 노력하도록 그저 놓아두면 됩니다.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증가하건 말건 원가 절감을 위해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줄이는 노력 따윈 하지 않도록 기업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됩니다. 정부가 경제 성장을 위해 기후깡패국가 같은 악명이 붙더라도 상관없다고 왜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해 노력하지 않느냐고 힐난하는 일을 하지 않으면 됩니다. 내연 기관 차량이 열심히 이산화탄소를 내뿜고 다니지만 그 대책을 세우지 않는 지방 정부에 대해서도 뭐라 하지 않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약 20~30년 정도 아무런 계획도 행동도 발언도 없이 지내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지구가 그 무계획을 돕습니다. 20~30년 정도 이산화탄소가 계속 공장의 굴뚝에서 자동차의 배기구에서 화력 발전소에서 나오고 그 결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300ppm에서 400ppm으로 증가하고, 지구의 평균 온도가 산업 혁명 이전에 비해 1.5도에서 2도 정도 높아지면 됩니다.

먼저 시베리아와 캐나다의 영구 동토가 녹으면서 자연스레 메탄가스가 분출되고, 분출된 메탄은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나 이산화탄소가 되고 물이 됩니다. 자연스레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고 지구의 평균 기온이 더 높아지지요.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 이제 바다가 파업에 돌입합니다. 지금껏 바다가 삼킨 이산화탄소로 바다도 포화상태가 되기 때문이지요. 이제 바다는 이산화탄소를 더 이상 흡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더 급속히 높아지지요, 그래서 지구 평균 기온의 상승도 더 가팔라집니다. 그러면 바닷물의 온도도 올라가겠지요. 해수의 온도가 상승하면 북극과 남극의 해안을 중심으로 메탄하이드레이트가 녹아 대기중으로 분출됩니다. 메탄하이드레이트는 메탄이 물과 만나 얼음을 이룬 것으로 심해와 북극, 남극의 대륙붕에 엄청나게 많이 존재하는 물질이지요. 이 수중 메탄하이드레이트가 분출하면 다시 공기 중의 산소와 만나 이산화탄소와 물을 만들게 됩니다. 대기 중 산소 농도는 점차 줄어들고 이산화탄소 농도는 증가하니 지구 평균 기온은 더욱 높아집니다. 사실 이때가 되면 사람들이 더 이상 공장에서 발전소에서 자동차에서 이산화탄소를 내놓지 않아도 지구가 스스로 이산화탄소를 내놓게 되는 거지요.

 

남극과 그린란드의 얼음이 녹으면 해수면이 얼마나 상승할 진 과학자마다 다르지만 최소한 10m 정도는 올라가게 됩니다. 잘 사는 나라는 괜찮을 겁니다. 방파제를 새로 만들고, 이주도 시키고 하면 되지요. 고작 못사는 나라 방글라데시 같은 데가 국토의 1/3 쯤이 사라지는 정도입니다. 물론 섬나라들도 좀 사라지겠지요. 일본의 경우 현재 사람들이 밀집해서 사는 지역의 절반 정도가 잠길 수도 있다고 하네요. 우리나라도 부산과 군산, 김포, 인천 정도가 피해를 입을 겁니다.

더 당신의 구미를 땡기게 하는 건 바다의 해류가 마구 뒤엉키는 것입니다. 해류가 지금과 같은 일정한 패턴을 벗어나기 시작하면 이젠 더 이상 이전과 같은 기후가 아니게 됩니다. 어떤 기후가 나타날 진 모르지요. 그러나 동남아라든가 멕시코만 유역 등 섬과 해안가 쪽은 궤멸적 타격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과학자들에 따르면 빙하기가 올 수도 있다고 합니다. 북유럽과 중부 유럽, 캐나다와 미국의 동부지역이 빙하에 뒤덮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이 무계획에는 한 가지 당신을 실망시킬 요소가 있습니다. 인류 전체가 멸망하진 않을 거라는 점이지요. 잘사는 나라는 어떻게든 대책을 세울 것이고 주로 못사는 나라들이 망하겠지요. 같은 나라 안에서도 부자는 어떻게든 대책을 세우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죽어날 것입니다. 그래도 인류의 절반 정도가 사라지게 된다면 당신은 조금 만족하면서 다가올 슈퍼화산이나 운석충돌을 기대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314일이지요. 이런 무계획 대신 어떻게든 인류를 살려보자는 헛된 바람을 가진 이들이 시청 광장에서 기후 위기에 대한 비상 행동을 촉구하는 그래서 정의로운 전환을 하자는 집회를 가진다니 슬며시 가서 비웃어 주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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