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동아 100년] '일장기 말소 사건' 관련 13명 해고한 동아일보

  • 기자명 자유언론실천재단
  • 기사승인 2020.03.04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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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언론실천재단은 2020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창간 100년에 맞춰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최악 보도 100선>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 내용을 뉴스톱에 칼럼으로 기고합니다

1936년 8월 24일 동아일보는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 소식을 전하며 일장기가 없는 사진을 내보냈다. 하지만 이는 동아일보가 아닌 기자 몇몇의 판단이었으며 동아일보는 이 사태의 책임을 물어 사장부터 평기자까지 13명을 해고했다.
1936년 8월 24일 동아일보는 손기정 선수의 금메달 소식을 전하며 일장기가 없는 사진을 내보냈다. 하지만 이는 동아일보가 아닌 기자 몇몇의 판단이었으며 동아일보는 이 사태의 책임을 물어 사장부터 평기자까지 13명을 해고했다.

 

07. ‘'일장기 말소 사건의 진상

동아일보는 스스로 민족지임을 자랑할 때마다 항일투쟁의 상징적 사건으로 일장기 말소 사건을 내세운다. 그러나 그 진상을 알고 보면 헛웃음만 나온다.

동아일보는 1936824일 석간 2면에 가슴에 붙어 있던 일장기가 지워진 베를린올림픽 영웅 손기정 선수의 사진을 게재했다. 그런데 그것은 회사의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이길용 등 세 명의 기자들이 회사 측에 전혀 알리지 않은 채 은밀히 해낸 쾌거였다. 하지만 일제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아첨과 굴종을 마다하지 않던 경영진에겐 실로 청천벽력 같은 사건이었다. 사주 김성수는 몰지각한 행동이라고 개탄했고, 사장 송진우는 성냥개비로 고루거각을 태웠다며 분개했다. 회사는 사장부터 평기자까지 13명을 해고했다.

사건의 진상이 이러함에도 동아는 사사(社史)에서 민족의 아픈 가슴을 달래기 위하여 민족의 대변지를 자임해온 동아일보가 그냥 무심히 넘길 수 없었던 것은 거의 자연발생적인 본보의 체질에서 우러난 것이었다고 구역질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동아는 이 사건으로 정간처분을 받은 지 279일 만에 정간이 풀리자 사고를 통해 금후부터 일층 근신하여 대일본 제국의 언론기관으로서 공정한 사명을 다하여 조선 통치의 익찬을 기하려 한다고 총독부 처분에 감읍했다. 동아일보에 앞서 일장기말소 사건을 일으킨 여운형의 조선중앙일보는 폐간되었지만 동아일보는 속간했고 일장기말소사건은 동아일보의 전유물이 됐다.

 

08. 독립투사 의거를 ‘'대불경(大不敬)’ 사건으로 매도

1932110일 동아일보는 2면 머리에 대불경(大不敬) 사건 돌발/어로부에 폭탄 투척/폐하께선 무사어환행제하의 기사를 실었다. 이는 우리 민족의 항일의지를 한껏 드높인 이봉창 의사의 일왕 폭살 기도사건에 대한 기사였다. 입만 벌리면 조선인을 위한, 조선인이 만드는 민족지라고 떠벌이는 신문이, 일왕을 향해 폭탄을 던진 항일투사의 쾌거를 두고 대불경사건이라고 대서특필한 것이다. 이날 모든 신문이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지만 대불경이라는 표현을 한 것은 동아일보가 유일했다.

 

항일무장투쟁을 폭동반이라고 폄하한 내용.
항일무장투쟁을 폭동반이라고 폄하한 내용.

 

이 무렵은 한만(韓滿) 국경지방에선 항일무장투쟁이 활발해지고, 국내에선 소작쟁의나 노동쟁의가 빈번하게 일어나던 시기였다. 그러나 동아는 일제의 식민지 정책을 변호하거나 지지하는 기사량은 늘리면서, 이런 사건들에 대해선 아예 보도하지 않거나, 혹시 보도하더라도 비적이나 불령집단의 소행으로 인식되도록 축소 또는 왜곡 보도하기에 바빴다. 특히 한만국경지방의 항일무장투쟁에 대해서는 독립군을 시가지나 습격하고 인명을 마구 살상하며 돈을 갈취하는 비적집단으로 오해하도록 왜곡 보도하여 독립군과 민간을 이간시키려 애썼다. 이 무렵 동아일보는 이미 한국어를 쓰는 일본제국 신문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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