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진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아닙니다

  • 기자명 이헌석
  • 기사승인 2018.10.3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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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에 대한 보고서를 쓴다고 가정해보자. 보고서 첫 부분에 넣을 사진을 인터넷에서 찾는다면, 십중팔구 이런 사진을 만날 것이다. 해안가에 위치한 시설이 불타오르고 있다. 화염과 불꽃까지 ‘폭발’이란 단어와 잘 어울리는 사진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검색하면 가장 앞에 나오는 사진 중 하나.

 

실제로 구글 이미지 검색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라는 키워드를 입력한다면, 최상위 9개 중 6개가 이와 연관된 사진이다. 이중에는 중앙일보나 KBS 같은 주요 언론사 기사도 포함되어 있다. 심지어 KBS의 기사에선 이 사진과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사진을 합성해서 만든 사진을 싣고 있다.

같은 방식으로 “fukushima accident”를 검색해 봐도 마찬가지이다. 굳이 차이를 찾자면 한 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만한 언론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화재를 다양한 각도에서 찍은 사진과 진화하는 장면, 진화가 끝난 장면이 가장 위에 나타난다.

 

 

이 사진은 이들 언론 이외에도 많은 방송사, 신문사 등에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사진으로 활용되고 있다. 개인 블로그나 유튜브 동영상 등에 사용된 예는 훨씬 더 많다. 심지어 한수원 홍보동영상이나 탈핵단체 유인물에도 사용될 정도이다.

 

한국수력원자력 홍보 동영상에 실린 후쿠시마 사진. 동영상 공개 이후 문제제기가 있자 해당 사진은 교체되었다.

 

이런 상황을 확인하고 이 사진을 당신의 보고서에 쓴다면 당신도 “낚인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사진은 후쿠시마의 사진도 핵발전소의 사진도 아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아사히신문이 항공 촬영한 석유정제공장 화재 사진이다.

코스모 석유회사 소유의 이 정유공장은 치바현 이치하라시에 있다. 도쿄 만에 인접한 이 정유공장은 동일본대지진 당시 대표적인 지진피해 현장으로 전 세계 언론에 소개되었던 곳이다. 화재 사고 이외에도 코스모 석유정제공장 화재는 일본 국민들의 걱정거리가 되기도 했다. 알수 없는 메일로 “코스모 2차 재해방지 정보”라는 글들이 계속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이 내용에 따르면 석유정제공장 폭발로 유해물질이 구름을 타고 비와 함께 내리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이다. 도쿄만을 사이에 두고 도쿄시내 반대편에 위치한 석유정제공장 화재였기에 이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코스모 석유회사측은 탱크에 저장되었던 것은 “LP가스”였기 때문에 연소로 인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적다며 보도 자료를 발송하기도 했다. 다양한 이유로 이 화재사고는 동일본 대지진 당시 가장 많이 언급된 사고였다. 하지만 이 사고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고였다.

먼저 후쿠시마 핵발전소는 위의 사진처럼 동그란 구 형태가 아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핵발전소 격납건물이 돔 모양으로 되어 있지만,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격납건물은 네모난 상자모양이다. IAEA가 공개한 후쿠시마 제1발전소 사진을 보면, 1~4호기 격납건물이 네모난 상자처럼 모여 있다. (국내에서는 후쿠시마 제1발전소와 제2발전소를 구분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사고가 난 곳은 후쿠시마 제1발전소 총 6기 중 1~4호기이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곳에 후쿠시마 제2발전소가 있는데, 여기도 4기의 핵발전소가 있다. 그냥 후쿠시마 1호기라고만 표기하면 제1발전소 1호기인지 제2발전소 1호기인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외신들은 대부분 Fukushima Daiichi Nuclear Power Plant 라고 정확한 명칭을 표기한다. 여기서 Daiichi는 제일(第一)의 일본어 발음이다.)

네모난 정육면체 모양의 건물이 격납건물이다. 격납건물을 중심으로 해안가쪽으로 터빈 등이 위치한 부속건물들이 위치해 있다. 앞서 언급한 석유정제공장과는 전혀 다른 모양이다.

 

2007년 촬영된 후쿠시마 핵발전소 전경. 출처: IAEA Imagebank

 

또한 동일본 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장면은 TV 카메라로 찍은 영상이 유일하다. 지진 발생 이후 후쿠시마 핵발전소의 상황이 전해지자, 방송사들은 줌렌즈를 통해 후쿠시마 핵발전소 상황을 24시간 생중계했다. 그 결과 핵발전소 폭발 장면을 영상으로 잡는데 성공했다. 폭발 당시 모습은 TV를 통해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라면 한 번쯤 폭발 당시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았을 것이다. 이렇게 유명한 사진을 두고 왜 엉뚱한 사진이 널리 확산된 것일까?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진은 워낙 먼 거리에서 찍은 것이라 화질이 선명하지 못하다. 폭발 장면은 그대로 보이지만 강력한 화염 또한 없다. 뿌연 사진에 폭발 구름만 피어오를 뿐이다. (KBS가 보도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장면)

 

후쿠시마 제1발전소 4호기 폭발 사진.

 

짐작컨대 편집자의 입장에선 흐릿한 후쿠시마 폭발 당시 사진보다 석유정제공장 사진이 더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누군가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장면”이라고 설명이 붙는 순간 뿌연 화면보다 선명한 화염 사진이 계속 “선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조금만 유심히 지켜본 사람이라면 이 사진이 잘못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발전소의 모양도 다르고, 주변 풍경도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 분별할 책임은 1차적으로 언론에 있다. 언론은 사실 유무를 두 번, 세 번 확인해야 한다. 국민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알려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론에서 조차 걸러지지 못한 사진은 이제 너무나 널리 확산되어 있다. 지금이라도 언론이 잘못된 기사를 찾아 수정해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바로잡지 않으면 사람들이 석유정제공장 화재 사진을 핵발전소 폭발 사진으로 알고 활용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지키는 것. 그것이 언론의 역할이지 않은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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