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류호정의 롤 대리랭크, '그깟 게임'이 아닌 이유

  • 기자명 이경혁
  • 기사승인 2020.03.1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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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비례후보 1번 류호정 후보에게 일어난 '대리게임' 혹은 '대리랭(크)' 논란은 조금 나이든 세대에게는 영 낯선 모양이다. '대리랭'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사람이 적지 않으며, 게임 대신 해준 게 그렇게 큰일인건지 반문하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 이슈에는 대리랭 논란만 들어있는 것은 아니라 사안 전체를 이 글에서 조망하기는 어렵다. 여기서는 게임 트렌드에 익숙지 않은 이들에게 대리 랭크 문제가 게이머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설명하는 데 집중하고자 한다.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깊다. 한국에서 정치인의 게임 관련 이력이 후보자격 논란으로 이어진 경우는 이번 건이 처음이니까 말이다.

정의당 비례대표 1번에 선정된 류호정 후보.
정의당 비례대표 1번에 선정된 류호정 후보.

 

대리랭크란 무엇인가

류호정 후보는 과거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롤’)에서 대리 랭크를 돌렸다는 의혹을 받았고, 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대리랭크 게임이라는 것은 랭킹이 존재하는 게임에서 자기가 플레이하지 않고 실력이 더 뛰어난 누군가에게 게임을 대신 플레이하게 시켜 자신의 랭킹을 상승시키는 일종의 어뷰징을 가리킨다.

대전 방식의 온라인 게임에서 랭킹은 단지 플레이어의 순위를 매기는 기능으로 머물지 않는다. 누구를 누구와 대전시킬 것인가? 를 판단하기 위한 수단이다. 바둑을 예로 들자면, 아마 5단이 아마 9급과 대전한다면 5단은 시시한 게임에, 9급은 넘사벽의 실력차이에 실망하며 재미없는 게임을 벌이게 될 것이다.

이를 조정하기 위해 체스에서 처음 도입된 elo랭킹은 게임의 승패결과를 토대로 각 플레이어에게 점수를 부여하고, 비슷한 점수의 플레이어끼리 대전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이는 온라인 대전형 디지털게임에 들어와서는 게임의 재미와 수익이라는 좀더 중대한 이유로 변화한다. 게임 플레이어들이 계속 손에 땀을 쥐는 흥미진진한 대결을 벌이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매칭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민속게임의 경지에 오른 ‘스타크래프트’도 래더 랭킹이라는 방식으로 점수를 매긴 바 있었듯 당대의 인기 게임 ‘롤’도 랭크 게임을 제공하며, 랭킹을 매기지 않는 일반 게임 모드도 제공하지만 일반게임의 팀 매칭에도 보이지 않을 뿐 숨어있는 랭크 시스템에 의한 매칭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반 게임을 연습모드 정도로 여기고, 랭크 게임에서의 승패 결과가 일종의 성취도로 나타나는 점에 집중하며 랭크 게임을 ‘롤’의 기본 모드로 받아들인다. ‘롤’에서의 랭크 게임은 적정 상대와의 대전 매칭이라는 기능과 함께 승패결과를 기초로 한 게임 실력 기반의 순위 싸움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롤’의 랭크는 꽤나 세분화되어 있다. 챌린저 – 그랜드마스터 – 마스터 – 다이아몬드(1~4) – 플래티넘(1~4) – 골드(1~4) – 실버(1~4) – 브론즈(1~4) – 아이언(1~4), 언랭(언랭크드)로 이어지는 랭킹은 승패결과에 따라 나온 점수를 각 구간별로 나누어 매 시즌이 끝날 때마다 랭크별로 차등을 둔 보상으로 캐릭터 스킨(게임 캐릭터의 외양을 바꿔주는 기능), 아이콘 등을 지급하며 경쟁심을 북돋운다.

대리 랭크가 문제가 되는 첫 번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과에 따른 보상 체계가 존재하는 ‘롤’ 안에서 타인의 플레이를 통해 랭크를 올리는 것은 부당한 보상을 챙겨가는 행위가 되기 때문이다. 정해진 룰 안에서 승부를 가려야 하는 대전형 게임의 경우 룰의 공정성은 플레이어들에게 매우 중요한 요소로 다가온다. 자신의 플레이가 아닌 결과로 시즌 보상을 챙겨가는 것은 게임이 제공하는 공정한 경쟁이라는 환경을 깡그리 무시하는 어뷰징 행위다.

 

매칭이라는 기본규칙을 어길 때: 팀 매칭은 더더욱

문제가 단지 성과보상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이러한 랭크 어뷰징이 결국 랭크 시스템이 시작된 이유인 ‘적정 상대와의 매칭’이라는 기준을 흔들어버린다는 점에서 나온다.

롤’은 바둑과 다르게 팀 게임이다. 5:5의 대전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혼자 게임을 하더라도 5인조 팀 안에 속하게 되며, 네 명의 익명 온라인 사용자와 같이 움직여야 한다. 문제는 이 익명의 1회성 팀 생성이 개개인의 랭크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반면, 랭크점수에 영향을 주는 경기의 승패는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팀의 역량에 의해 결정된다는 점에 있다.

다섯 명의 팀원 중 누구 하나가 정말 못하는 사람일 경우, 내가 아무리 훌륭한 플레이를 펼쳤다 해도 그 한 사람의 구멍이 패배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다섯 명이 손발을 맞출 때 전략적 시너지가 나오는 게임이다보니 아군 한 명이 심각하게 게임을 망쳐버리면 페이커가 참전해도 구제불가능한 구렁텅이로 끌려들어가는 일이 다반사다.

이를테면 대리 랭크게임으로 어뷰징을 한 플레이어가 나머지 네 사람과 한 팀을 이뤘다고 해 보자. 네 사람의 랭크는 대략 골드 1~4 범위에 있다. 그러나 어뷰징 플레이어의 실제 실력은 브론즈 – 아이언 구간으로 다른 팀원에 비해 무척 실력이 떨어지는 상황이다. 이 팀이 만나게 될 적 팀 다섯명 또한 어뷰징이 없다면 대략 비슷한 골드 랭크 구간의 플레이어들일 것이다. 골드 9명 속에 브론즈 한 명이 섞인 5:5의 팀 구성이 된다.

아무래도 기본 실력차가 나다 보니 대리랭크 플레이어는 이 게임에서 ‘똥쟁이’(게임에서 유독 실수가 잦아 패배의 원흉이 되는 플레이어를 가리켜 ‘똥쟁이’라고도 부른다)가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문제는 그 한 사람 때문에 나머지 네 사람은 졸지에 부당한 패배를 맞게 된다는 데 있다. 규정대로라면 비슷한 수준의 플레이어들끼리 벌여야 하는 판에 부당한 방식으로 끼어든 한 명은 그저 한 판의 팀게임 패배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개인 랭크 점수에 부당하게 마이너스를 부여하는 경우를 만드는 것이다.

애초에 팀 단위로 승패가 결정되는 게임에서 개인에게 랭크를 부여하는 방식 자체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제점은 랭크 점수의 산정을 통한 비슷한 실력의 매칭이라는 장치를 통해 보완되고 있었다. 나보다 높은 실력의 사람을 동원해 내 계정의 랭크를 끌어올리는 것은 이 지점에서 다른 플레이어들의 게임 환경을 방해하는 중대한 어뷰징이 된다.

 

대리랭: 성과에 보상이 이뤄지는 온라인 사회관계에서의 규범 위반

규칙으로부터 세계가 완성되는 게임과 게이밍 문화 전반에서 규칙을 어기는 문제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싱글 플레이(타인과 얽히지 않는 혼자 컴퓨터를 상대하는 게임)에서야 세이브 데이터를 수정하거나 치트를 쓰는 게 문제될 일은 없다. ‘스타크래프트’ 에서 미션을 플레이할 때 ‘show me the money’(‘스타크래프트’의 치트키로, 입력하면 자원이 확 늘어난다)를 입력하는 걸 두고 어뷰징이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스타크래프트’ 초창기에 이름을 날렸던 ‘쌈장’ 이기석은 세계 대회 출전을 위해 다른 여러 계정을 만들어 본인의 계정에 승수를 쌓는 어뷰징을 저질러 비난받은 바 있었다. 온라인게임의 등장 이후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는 게임 플레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사회이며, 에티켓과 매너, 지켜야 할 윤리와 규범이 존재하는 공간이다.

류호정 후보는 3월 10일 본인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관련 문제에 대한 사과를 표명했다. 글은 ‘조심성 없이 주변 지인들에게 자신의 계정을 공유했다’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 표현은 대리 랭크라는 행위를 좀더 낮은 심급에서 ‘계정을 공유했다’로 풀어낸 것이라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대리 랭크 게임은 계정을 타인에게 공유함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여기서 그 타인이 자신보다 나은 게임실력으로 계정주의 랭크를 상향시켰을 때는 이를 대리 랭크 플레이로 불러야 보다 정확한 표현이 된다.

 

법률 위반? 커리어 스펙에 사용?

게임산업진흥에관한법률 제32조 1항 11조에에서는 “게임물 관련사업자가 승인하지 아니한 방법으로 게임물의 점수ㆍ성과 등을 대신 획득하여 주는 용역의 알선 또는 제공을 업으로 함으로써 게임물의 정상적인 운영을 방해하는 행위”를 게임물 유통질서 저해행위로 보고 금지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처벌을 동 법률 제45조 5의 2에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대리랭크 행위는 불법이다. 그러나 이 법은 2018년 12월에 공포되어 2019년 6월부터 시행되었으므로 류호정 후보의 행위가 소급되어 불법으로 규정될 수는 없다. 다만 온라인게임이라는 공간에서 대중적 규범을 어긴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만약 해당 법률이 공포된 2019년 6월 이후에 누군가가 비슷한 일을 벌였다 해도 이를 법적으로 다투는 일은 아주 명확한 사례만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후보 본인도 언급한 것처럼, 계정을 잠깐 가족이나 친구에게 빌려줬는데 랭크 게임을 플레이했고, 실력이 좋아 랭크가 올라간 경우에 대한 판단을 고의적 대리랭크로 보는 것은 좀더 구체적인 상황 판단을 요하는 일일 것이다.

류호정 후보가 그렇게 올린 랭크를 입사, 승진 등의 결과에 반영했다는 주장은 아직 사실확인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다. 관련한 언론의 보도에 후보는 3월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반론을 제기했으며, 상반되는 두 주장에 대한 검증은 추가로 이루어질 전망이다.

 

‘그깟 게임 가지고’는 결론이 되지 못한다

‘롤’이 연배 높은 이들에게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보니 이 게임에 익숙하지 않은, 혹은 온라인 대전 게임을 잘 안 겪어본 이들은 뜬금없이 국회의원 후보 자격논란으로 게임 어뷰징이 올라오는 사태 자체가 당혹스러울 것이다. 서두에 언급한 대로 정치인 자격논란에 온라인게임 플레이 이슈가 올라온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기 때문이다.

정치 전문가가 아니기에 나는 이 문제가 정당의 비례대표 후보 적격사유로 유의미한지에 대한 판단은 내리기 어렵다. 다만 디지털게임을 다루는 입장에서 아쉬운 것은 이미 온라인게임 공간도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는 사회의 일부로 편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논란이 대두되는 것 자체를 ‘그깟 게임 가지고’로 바라보는 시선이 적지 않다는 점이다.

그러나 가상공간에서 사람과 사람이 얽히는 일을 현실과 무관한 활동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현실을 정확히 보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늘날의 온라인게임은 그 참여하는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그리고 그들이 교류하는 횟수만큼이나 이미 문화현상의 일부분이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현실과 게임이 갖는 영향관계는 게임 속에서 칼을 휘두르는 캐릭터를 보며 폭력성을 키운다는, 이미 게임 참여자들이 모두 이것이 승패와 경쟁에 대한 일종의 환유임을 알고 플레이한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도외시한 결과가 아니라 수많은 익명의 무관한 사람들이 때로는 정해진 규칙 앞에서 한 팀이 되거나 맞상대가 되어 협력하고 도전한다는 상호작용의 결과로부터 나타난다.

그렇기에 대리랭크게임 논란이 일어난 비례후보 이슈는 좀더 풀어서 정리해봐야 한다. 온라인공간에서 규칙에 의해 진행되는 일련의 과정들을 일정부분 무시하며 게임을 플레이하며 공동체의 합의에 의해 만들어진 놀이교류에 해를 끼친 행위가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대표성을 갖는 국회의원 자격유무 판단에선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와 같은 질문이 될 것이다. 음주운전에 비하면 높은 영향력은 아닐 것이고, 차선변경위반보다는 사람에 따라 중하게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른 윤리규범과 동일한 잣대로 이슈를 바라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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