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동아 100년] 일제 정책에 '순응'해서 자진 폐간한 조선일보

  • 기자명 자유언론실천재단
  • 기사승인 2020.03.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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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언론실천재단은 2020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창간 100년에 맞춰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최악 보도 100선> 책을 발간했습니다. 책 내용을 뉴스톱에 칼럼으로 기고합니다.

 

 

21 조선의 젊은이를 죽음의 전쟁터로 내몬 조선일보

조선 지원병제도 실시를 적극 지지하면서 감격

조선일보는 1938118일자 조간 1면 머리에 <<조선에 지원병제도 실시/획기적 중대 사실>>이란 제목의 사설을 싣고, 지원병제도를 내선일체內蘚一體가 실현된 것으로 환영하면서 이를 영광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이렇게 썼다.

“15일 육군성 발표에 의하면 조선인에게도 금년 4월부터 지원병제도를 실행할 터인데 우선 4백 명 정도를 보병에 한하여 연령 15세 이상 심신 건전한 자를 선발하여 6개월간 훈련하여 배속시키기로 한다는 바 재영在營 기간은 2년이라 한다. 병역제도는 일본 내지와 화태樺太에 본적을 둔 사람에게만 한하던 것인데 이제 조선인에게도 지원병제도를 실시한다는 것은 획기적 중대사실로 내선일체의 일현현顯現이라 볼 수 있다.

무릇 국민에게는 납세, 교육, 병역 3종의 의무가 있는데 종래 조선인에게는 납세의 의무만 있었고 교육 병역의 의무는 없었다 듣건대 초등교육 10개년 계획을 5개년으로 단축하고 이후 8년을 기하여 의무교육 실시의 기초를 삼는다 하니 금차 발표된 지원병제도와 아울러 조선인도 점차 3대 의무를 다하게 될 터이다.”

요컨대 조선인 지원병제도가 내선일체를 실현한 것이라 칭송하면서, 일제가 벌인 침략전쟁에 조선의 젊은이들이 총알받이로 나가게 된 것을 영광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었다.

 

지원병제도 실시에 누가 감격치 아니하며 감사치 아니하랴

조선일보는 1938615일자 조간 1면 머리에 사설 <<지원병훈련소 개소식에 제하여>>를 싣고 황국에 갈충진성하면서 신민의 의무 다하자고 외쳤다.

조선일보는 이 사설에서 조선통치사상에 한 에포크 메이킹이요 미나미 총독의 일대 영단 정책 하에 조선에 육군특별지원병제도가 실시되게 된다는 데 대하여 이미 본란에 누차 우리의 찬의를 표한 바 있다고 말하고, “요컨대 금번 지원병제도의 실시는 반도민중의 애국 열성을 보아서 내선일체의 대정신으로 종래 조선민중이 국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던 병역의무의 제1단계를 실현케 하는 것이다. 황국신민 된 사람으로 그 누가 감격치 아니하며 그 누가 감사치 아니하랴고 썼다. 그리고 장래 국가의 간성으로 황국에 대하여 갈충진성竭忠盡誠을 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 그리하여서 국방상 완전히 신민의 의무를 다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결론지었다. 당시 우리 젊은이들을 일제의 총알받이로 내보내는 지원병제도를 반대하다가 투옥된 인사가 40여 명이나 되었는데도 조선일보는 이 사실을 한 줄도 보도하지 않고 일제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고 외쳤다.

 

일제의 침략전쟁 뒷받침하기 위해 조선 민중의 내핍생할 요구.

조선일보는 193915일 신년호 기십이其十二에서 <<대중생활 전시개편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아가자!>> 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때가 전시인지라 국민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아야 하겠고 또한 부과하는 세금도 또박또박 물어야 할 일이나 각종 물건 값이 자꾸 비싸져 가는 관계로 개인이 부담하는 세액은 이중으로 무겁게 될 것을 잘 인식하야 생활정도를 종래보다 훨씬 낮추어야만 장기전에 견디어 갈 수 있게 될 터이다라며 내핍생활을 종용했다.

 

동아 영원의 평화를 위해 황군의 위력 발휘

조선일보는 1939310일 조간 1면 머리에 <<육군 기념일에 제하여>>라는 사설을 싣고 황군이 위력을 발휘하여 도처에서 적군을 여지없이 무찌르고 상해, 북경, 남경, 한구, 광동, 등 지나 중원의 대부분을 석권한 후 동아신질서 건설의 국시를 확립하고 그 제일보를 내딛은 흥아의 봄에 이 육군 기념일을 맞이했다고 쓰고, “국민 일반은 거국일치만이 승리를 좌우한다는 생생한 교훈을 주는 이런 기념일을 계기로 더욱 혼연일치가 되어 사변목적에 매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육군기념일에 제하여 황군의 무운장구를 축함>>

조선일보는 1940310일 조간 1면에 사설을 싣고 러일전쟁을 가리켜 로군을 극동으로부터 완전히 구축하고 전 동양을 백인의 마수로부터 해방케 한 전쟁, 러시아의 제국주의 정책에 반대하여 동양을 해방한 전쟁이라 미화했다. 그리고 동양에는 동양인의 동양이 건설될 날이 가까운 것을 확신한다면서 의의 깊은 육군기념일에 제회하여 동아신질서의 건설이 앙양 진행될 것을 확신하는 동시에 광휘 있는 황군의 무운이 장구하기를 기원하는 바라고 일본군의 무운을 빌었다.

조선일보는 조선의 젊은이들을 침략전쟁에 내모는 선전 선동 기사를 잇달아 내보냈다. 이 신문은 194015일자 <<어머니에 이 아들>>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부모들이 아들을 침략전쟁에 내보낼 것을 종용했으며, 1940128일자 소년조선일보 보도에서는 어린이들이 학교가 끝난 후 노동을 하여 모은 돈으로 병기를 사서 헌납했다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22. 강제 폐간이 아닌 일본 국책에 순응한 폐간

194011일 조선일보는 천황 히로히토부부에 대한 기사를 화려하게 실었다. ‘황기 2600이라는 컷 옆에는 일장기를 배치하고 사진 아래에는 상자 기사를 실었다. 욱광, 서기, 만세일계, 보조유영, 국초익견, 윤문윤무, 팔굉일우, 억조일심 등 히로히토를 찬양하며 대일본제국의 웅대한 포부와 단합을 상징하는 단어들을 모조리 동원한 헌사獻辭를 바쳤다. 그러나 이런 헌사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7달 뒤 1940810일 조선일보는 폐간되었다.

조선일보는 19408101면 머리에 사설로 일본의 국책에 순응하여 신문을 폐간한다는 <폐간사>를 실었다. 그 사설의 일부는 이렇다. “지나사변 발발 이래 본보는 보도보국의 사명과 임무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였고 더욱이 동아신질서 건설의 위업을 성취하는 데 만의 일이라도 협력하고자 숙야분려夙夜奮勵한 것은 사회일반이 주지하는 사실이다. 작년 9월에 발발한 구주대전과 독이의 대승을 계기로 하여서 신체제가 건설되려고 하는 이때에 신문 통제가 국책으로 수행되는 이상 우리는 이에 순응하는 이외에 다른 사정私情을 운위할 바가 아니다. 본보의 폐간도 이 점에 근거가 있다

요컨대 조선일보의 폐간 이유는 신문통제라는 국책에 순응해서라는 것이었다. 총독부에 저항하거나 항의하는 말은 한 마디도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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