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불주사’ 맞으면 코로나19 사망 덜한다?

  • 기자명 권성진 기자
  • 기사승인 2020.04.0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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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불주사’라고 불리는 폐결핵 예방백신(BCG)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사망자 수를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논문이 발표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러나 뉴스톱 확인 결과 해당 논문은 신뢰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국내외 언론들이 또 다시 팩트체크없이 무분별한 보도를 한 것이다.  

국내에서는 <뉴스1>이 30일 오전 해당 내용을 최초 보도했다. 결핵 예방을 위한 유아 BCG 백신 접종이 코로나19 사망률의 차이를 만들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서울신문>, <국제뉴스> 등 주요 언론은 ‘불주사’와 코로나19 사망률 차이를 뒤따라 보도했다. 심지어 <동아일보>는 논설위원이 이 연구 결과를 주요 근거로 삼아 칼럼을 쓰기도 했다. 그 외에 <문화일보>, <머니투데이> 등은 유보적으로 썼지만 해당 논문을 소개했다. 

기사에서 다룬 연구는 미국의 의학논문 사전공개 사이트인 ‘매드아카이브’(MedRxiv)'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해당 논문의 제목은 “보편적인 BCG 백신 정책과 코로나19로 인한 치사율 사이 상관관계”이었다. 논문 작성자는 애런 밀러 Aaron Miller외 5명으로 모두 뉴욕공과대학교 (NYIT) 소속이었다. 문화일보는 논문을 직접 소개한 것이 아니라 블룸버그 통신의 보도를 인용했다. 블룸버그의 기사는 1일 현재 찾을 수가 없었다. 

의학 논문을 사전 공개하는 사이트 MedRxiv. 사이트 소개에 '동료들의 검증이 안 된 상태'라고 표기돼 있다.
의학 논문을 사전 공개하는 사이트 MedRxiv. 사이트 소개에 '동료들의 검증이 안 된 상태'라고 표기돼 있다.

 

그런데 이 논문 소개글에는 “이 논문은 출간되지 않았고 동료들에게 검증(피어리뷰)되지 않았다. 새로운 의학 연구를 다루고 있지만 평가되지 않았으니 임상 실험의 가이드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라고 표기되어 있다. 학계에서 논문이 피어리뷰 전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전혀 검증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논문은 피어리뷰 뒤 심사를 거쳐 학술지에 게재되는 절차를 걸친다. 

 

해당 논문을 볼 수 있는 상태. '동료들의 검증을 받지 않았다'는 말이 표기 돼 있다.
해당 논문을 볼 수 있는 상태. '동료들의 검증을 받지 않았다'는 말이 표기 돼 있다.

그럼 논문 내용을 살펴보자. 이 논문은 BCG 백신이 염증 반응을 하도록 하는 사이토카인인 ‘1L-1B’의 분비를 촉진시킨다고 했다. 1L-1B는 항바이러스 면역 체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논문은 BCG 백신의 불특정 면역 체계에 대한 이해와 현재 전염병 연구 결과를 고려해 둘 사이에 상관관계를 파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했다. 

연구진은 인구 1백만이 넘는 BCG 백신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국가와 시행하는 국가를 비교했다. BCG 백신 정책을 시행하지 않는 국가로 언급된 곳은 이탈리아, 미국, 레바논, 네덜란드, 벨기에였다. 3월 21일까지 해당 국가의 코로나19 치사율은 16.39였다. 반면 BCG 백신 정책을 시행하는 55곳의 코로나19 치사율은 0.78이었다. 

접종 시행이 오래될수록 코로나19로 인한 치사율이 낮아진다는 말도 했다. 1947년부터 BCG 백신 정책을 시행한 일본의 코로나19 치사율은 0.28이고 1920년부터 BCG 정책을 시행한 브라질의 치사율이 0.0573이라는 것이었다. 다만, 논문은 중국과 이란의 경우는 백신 정책을 시행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고 했다. 중국은 1966년부터 1976년 문화대혁명 시기에 백신 접종을 안 했고 이란은 1984년에서야 시행해 36세 미만의 시민은 접종 대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해당 논문은 1일 시점으로 보면 기본적인 사실 관계에서부터 오류가 많아 설득력이 떨어진다. 논문에서 사망률이 낮다고 주장한 브라질과 일본에서 사망률이 급격히 증가했다. 먼저, 브라질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기준 브라질 내 코로나19 확진자는 5717명이고 사망자는 201명이다. 브라질 치사율은 3.5% 수준이다. 일본은 1일 기준으로 확진자 2235명(크루즈 제외)이고 사망자 66명. 일본 치사율은 3%다. 전 세계 평균의 치사율이 4.93%인 것과 비교해 브라질과 일본의 치사율이 약간 낮다고 볼 수는 있지만, 치켜세울 정도는 아니다. 그뿐만 아니라 1950년대부터 2007년까지 BCG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 프랑스 역시 코로나19 치사율이 6.8%로 높고 1953년부터 2005년까지 BCG 백신 접종을 의무화한 영국 역시 코로나19 치사율이 7.1%에 달한다. 

각 나라의 코로나 19 환자 상태를 알 수 있는 COVID-19 Dashboard. 논문에서 제시한 주요 근거인 브라질과 일본의 사례를 보면 '치사율이 매우 낮다'고 보기는 어렵다.
각 나라의 코로나 19 환자 상태를 알 수 있는 COVID-19 Dashboard. 논문에서 제시한 주요 근거인 브라질과 일본의 사례를 보면 '치사율이 매우 낮다'고 보기는 어렵다.

<뉴스톱>은 해당 논문을 전문가를 통해 추가적으로 검증했다. 대한의사협회 과학 검증 위원장인 최재욱 고려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과 교수는 “아직은 부정확한 사실이 많다. 치사율은 BCG 접종 이외에, 방역 정책 수준, 급격한 전파 증가 유무, 의료체계 역량, 고령화 등 인구학적 특성이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을 모두 통제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그 이후에나 의미 있는 결론을 낼 수 있다. 아직은 가설일 뿐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논문에 대해서 신뢰할 수 없다는 의견을 견지했다. 대한의사협회 코로나19 대책본부 전문위원회 위원인 염호기 인제대의대 호흡기 내과 교수는 “현상과 원인이 맞아 떨어지지 않는다. 마치 ‘결핵 환자가 천식에 잘 걸린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두 가지는 완전 별개의 문제”라고 했다. 그는 “논문 게시 사이트에서 ‘동료의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고 했는데, 이는 논문으로서 신뢰가 없는 상태다”라고 했다. 이어서 염 교수는 “논문은 이란과 중국에 관한 data를 근거로도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해당 국가의 발표를 믿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일본의 사례를 주요 근거로 사용하고 있는데, 일본에는 확인되지 않은 감염자가 상당수 존재할 것으로 보기에 신뢰하기 어렵다”라고 했다.

뉴스톱의 결론은 소위 불주사와 코로나19 치사율은 거의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잘못된 가설에서 출발했다. 과학계가 검증에 나선다니 지켜볼 일이다. 

 

<수정>
2020-04-02 18:30  <국제신문> → <국제뉴스> 착오로 인한 수정 (국제신문과 국제뉴스는 다른 언론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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