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별의 수렁'에 빠진 재난지원금, '선별환수'에 답이 있다

  • 기자명 윤형중
  • 기사승인 2020.04.03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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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과 ‘선별’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 3월 30일 소득 하위 70% 가구에 긴급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겠다고 발표하자,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복지로' 홈페이지로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이튿날인 31일까진 이 홈페이지에 들어가기 위한 예상 대기시간이 10시간을 훌쩍 넘기기도 했다. 복지로가 관심을 받은 이유는 단순하다. 사람들이 '나도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복지로는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인 소득 하위 70% 계층에 자신이 해당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3월 건강보험료 기준으로 소득하위 70% 선정

정부는 4월 3일 긴급재난지원급 기준을 올해 3월 건강보험료 기준 소득하위 70%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4인가족 기준으로 직장 건강보험료 본인부담금이 23만7652원 이하라면 100만원을 지원받는다. 

정부가 재난 지원금을 발표한 뒤에 이를 비판적으로 다룬 보도들을 보면 크게 다섯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재정건전성이 우려된다는 보도들이고, 둘째는 가계에 지급하는 현금의 소비 효과가 크지 않아 경제 대책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다. 셋째는 지자체가 지급하는 재난수당과 중복되고, 이 수당의 금액 수준에 차이가 있어 형평성이 떨어진다는 점이고, 넷째는 못 받는 사람들이 역차별을 느낀다는 것이며, 다섯 번째는 누구에게 줄지도 명확히 정하지 않아 혼란을 자초했다는 점이다.(선거를 의식한 매표 행위란 비판은 제외했다)

이 중 첫째부터 넷째까지는 선별적인 재난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정했으면 감수해야 하는 비판이고, 또 나름의 논리로 반박할 수 있는 주장들이다. 하지만 지급 기준을 정하지 못해 야기한 혼란은 사전에 준비만 잘 했어도 피할 수 있는 비판이었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사전에 지급 기준을 명확히 하지 못한 것일까.

정부의 재난 지원금 지급 결정이 급박하게 이뤄지기도 했지만, 소득 하위 70%를 정하는 기준 자체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기존에 소득계층 선별에 사용하는 방식들이 있지만, 이들 방식이 전례 없는 대책인 재난 지원금처럼 광범위한 계층에게 복지나 수당을 지급하는 기준으로 사용된 적은 없었다. 정부는 다소 혼란을 감수하더라도 의견을 수렴해가면서 합리적인 기준을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소득인정액과 건강보험료 납부액이 일반적 선별 기준

그렇다면 기존에 정부가 복지 수혜자를 선별할 때 사용하는 수단은 무엇이었을까. 주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기초생활보장대상자, 기초연금 등 대표적 선별 복지에 사용되는 '소득인정액'이고, 다른 하나는 청년수당 등 지자체가 주도하는 수당 지급시에 활용되는 '건강보험료 납부액'이다. 정부가 하위 70% 소득계층에게 지급한다고 발표한 직후엔 주로 이 지급 기준이 건강보험료가 될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 상당수 언론들도 건강보험료 기준으로 이 금액이 얼마가 될지를 보도했다. 편리성, 신속성 등을 고려하면 소득인정액보다 건강보험료가 더 나은 방안이라 많은 지자체들이 이를 기준으로 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건강보험료 납부액은 가입 유형에 따라 산정 기준이 다르다. 직장가입자는 월 소득의 3.335%가 납부액이 된다.(같은 금액을 사업주가 함께 부담해 전체 건강보험료율은 소득의 6.67%임) 따라서 만일 월소득이 580만원이라면 이 금액의 3.335%인 19만5천원 가량이 건강보험료가 된다.

소득 하위 70% 계층 기준과 완벽히 일치하지 않지만,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기준은 기준중위소득의 150%의 소득이다. 이 기준이 적용되면 직장가입자가 건강보험료 8만8344원(1인 가구), 15만25원(2인 가구), 19만5200원(3인 가구) 보다 적게 납부할 경우 재난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직장가입자가 아닌 경우엔 소득 뿐 아니라 재산도 건강보험료의 납부 기준이 된다. 문제는 여기에 포함되는 재산이 부동산, 자동차, 전월세 보증금에 한정된다는 점이다. 은행 예금이나 주식과 채권 보유액 등의 금융자산 뿐 아니라 부채도 반영되지 않는다. 정부가 선뜻 건강보험료를 재난 지원금의 지급 기준이라고 발표하지 못한 이유는 수급자의 재산도 고려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처음 재난 지원금을 발표할 때부터 '재산'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 기준으로 선택하진 않았지만 소득인정액의 경우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다. 3월 30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한 관계부처 합동 브리핑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사회보장 제도에선 재산과 소득을 모두 감안한 '소득인정액'의 개념이 더욱 포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재산과 소득을 다 합해서 볼 때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분들에 혜택이 돌아가도록, 사회적 형평에 맞게 기준을 설정하고 대상자를 가려갈 것이다"고 말했다.

정부가 사용하는 '소득인정액'은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서 산정 방식을 안내하고 있고, 접속자가 폭증한 ‘복지로’는 소득인정액을 모의 계산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소득인정액은 소득평가액과 재산의 소득환산액을 합친 금액이다. 쉽게 말해 정부가 개인의 소득액이라고 인정하는 금액으로 이를 기준으로 복지 수혜자가 선별된다. 계산식을 살짝만 봐도 이 소득인정액을 파악하려면 각종 소득과 재산내역 등이 필요하다. 만일 재난 지원금의 선별 기준이 소득인정액이 된다면 신청자는 자신의 소득, 재산 내역을 읍면동 주민센터에 제출해야 하고, 담당 공무원은 모든 자료가 적절한지, 자료를 통해 취합한 결과 신청자가 지급 자격에 부합하는지 등을 판별해야 한다. 해당 선별 작업은 당연히 감사의 대상이기도 하다. 벌써부터 3만여 주민센터 사회복지 공무원들을 회원으로 둔 한국사회복지행정연구회는 정부의 선별 지원을 우려한다는 성명을 3월 30일에 발표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기존 업무에 긴급생활비 지원, 후원물품 배부 등이 더해진 상황에서 신청자의 재산과 소득에 따라 선별 지원하는 재난지원금까지 시행되면 그 업무가 고스란히 주민센터의 일선 공무원들에게 온다는 것이다.

선별의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일단 소득 상위 30% 계층이 역차별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복지가 선별적으로 이뤄지니, 이 주장이 그리 타당하다고 보이진 않는다. 세금 많이 내는 부자를 왜 차별하느냐는 비판도 나오지만, 한국은 OECD 국가들 사이에서 GDP 대비 조세가 차지하는 비중인 조세부담률이 2017년 기준 18.8%로 OECD 평균인 24.9%에 훨씬 못 미치고, 고소득자의 실효세율도 높은 편이 아니다. 그나마 합리적인 비판이 살짝 기준에 못 미쳐 지원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불만을 갖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약간의 소득 차이로 지급 기준에서 탈락한 사람들이 간신히 지급 기준을 충족한 사람들에 비해 소득이 적어지는 현상을 지적하는 보도들이 나온다.

 

가장 최근 자료인 건강보험료가 기준으로 채택

선별 기준이 되는 소득 시점이 과거라는 점도 문제다. 국세청이 보유한 소득자료는 작년 혹은 재작년 기준이다. 근로소득자의 경우엔 지난해 연말 기준의 소득자료를 국세청이 가지고 있고, 5월말까지 납부하는 종합소득세 신고자의 경우 재작년 소득통계 밖에 없다. 그나마 최근의 자료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한 건강보험료 납부액이다.  정부가 건강보험료를 선택한 이유도 역시 최근 자료여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건강보험료는 재산 등을 따지기엔 한계가 있는 자료다.

이처럼 재난 지원금은 선별 기준을 정하기 어렵고, 일선 공무원들에게 막대한 업무 부담을 주는데다 지원 기준에 살짝 못 미쳐 탈락하는 이들의 총소득이 지원 대상자의 소득보다 적어지는 '소득역전' 현상이 발생하고, 과거 소득을 기준으로 지원해 코로나 19로 인한 최근의 소득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이른바 '선별의 수렁'에 빠진 것이다.

이런 선별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은 이미 여러 차례 제시됐고, 구체적인 대안들마저 모색되고 있다. 해결책은 바로 선별환수다. 구체적인 방법론은 나라살림연구소가 3월 17일에 발표한 '재정개혁형 재난기본소득'(인적 공제 등을 폐지해 소득세수를 늘리는 방안), 유종일 KDI 국제정책대학원장이 3월 30일에 프레시안에 기고한 '특별부가세 방안'(기존 소득세 체계에서 한시적으로 소득계층별로 다른 세율을 더하는 방안), MBC 라디오 방송 '손에 잡히는 경제'의 진행자인 이진우 기자와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의 홍순탁 회계사가 제안한 재난지원금 환수 방안(재난지원금의 2배 혹은 2.5배를 과세하는 소득으로 계산해 기존보다 높은 세율로 환수하는 방안) 등이 제시됐다. 필자는 한시적 방안으론 유종일 교수, 홍순탁 회계사, 이진우 기자의 아이디어 모두 타당하다는 입장이고, 재난지원금을 넘어 재분배를 조정하는 보편적 기본소득으로 나아가려면 기존의 공제 항목들을 단순화하는 세법 개정이 필요하단 입장이다.

 

보편지급 선별환수가 가장 강력한 대안...법개정 필요

이 세 가지 방안으로 재난 지원금을 모두에게 지급하되, 고소득층에게 지원금을 과세의 형식으로 환수하면 앞서 제기한 '단점'의 요소들이 모두 사라진다. 정부가 연말에 환수하기 전까지 일부 부채를 안고 모두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보편 지급, 선별 환수방식이 선별 지급보다  총수요를 진작시켜 침체기 경기 대응의 효과도 있다그렇다면 왜 선별환수를 적극 고려하지 않은걸까. 선별환수도 나름의 단점이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단점은 선별환수는 '법 개정' 사항이라는 점이다. 국회에서 흔히 쓰이는 용어 중에 하나가 '쟁점 법안'이다. 비쟁점 법안들은 대부분 회기 중에 수십 건이 쉽게 통과되지만, 쟁점 법안은 하나 통과하기도 쉽지 않다. 특히 특정한 계층, 직종, 기업 등의 이해관계를 직접적으로 건드리는 법안일수록 통과가 쉽지 않다. 고소득층에게 더 과세하는 법안이 바로 그런 경우다. 정부가 고소득층이 받은 재난지원금을 환수하겠다고 발표해도, 세법 개정은 정부가 아닌 국회 권한이고, 정부의 뜻대로 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선별환수의 두 번째 단점은 '줬다 뺏는다'는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다. 선별환수가 각 개인에겐 선별지원과 동일한 효과가 있음에도 ‘애시당초 받지 못하는 것’과 ‘받았다가 다시 내야 하는 것’을 다르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이른바 조삼모사보다 조사모삼를 반기는 심리와 비슷하다. 특히 정부는 자산 증가액에 비하면 세부담이 적은 종합부동산세가 세금 폭탄이란 여론몰이에 크게 비판 받았던 기억이 있고, 최근에도 지급액에 비하면 환수액이 적은 아동 세액공제 제외에도 '줬다 뺏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중의 지지를 받아야 법 개정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선별환수의 두 가지 단점은 서로 관련되어 있다.

 

 

선별지급

보편 지급 선별 환수

장점

-기존의 위기 대책과 유사해 국회와 정치권의 동의를 얻기 쉬움.

-세법 개정 등이 불필요함. .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방식임.

-지급시에 선별할 필요가 없어 기준을 정할 필요가 없고, 공무원들의 업무 부담이 작고 행정비용도 적게 발생함.

-과거 고소득자였으나 코로나 19 인해 소득이 급감한 사람들에게도 지원 가능.

-코로나 19 타격을 받은 올해 소득을 기준으로 지원 가능.

단점

-선별의 기준을 정하기가 어려움.

-주민센터 사회복지 공무원의 업무 부담 과중.

-약간의 차이로 지원 기준 탈락하는 이들의 상실감, 이들의 소득이 지원 받는 이들보다 적어지는소득역전효과 발생

-작년 혹은 재작년 소득을 기준으로 지원자 선정해 사각지대 발생 우려

-세법 개정이 필요하고, 국회가 세법 개정에 동의하지 않을 불확실성이 있음.

-일부 상위 소득계층들은줬다가 뺏는다 불만을 가질 있음.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길을 가야할까. 줬다 뺏는다는 비판이 두렵고, 세법 개정이 쉽지 않아 더 비효율적이고, 더 문제가 많은 선별지원을 고집해야 할까. 아니면 선별수당과 동일한 효과가 있으면서 행정적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선별환수'라는 새로운 세계로 진입할 것인가.

끝으로 선별환수는 이번 재난 지원금에서 새롭게 등장한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경제의 활력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전문가들 뿐 아니라, 사회 안전망을 중시하는 진보적인 전문가들조차 상당수 기본소득에 반대했고, 이들 중 일부는 최근 "기본소득에 반대했지만 선별환수엔 찬성한다"는 언급을 하고 있다. 이 발언들은 '기본소득에 대한 오해'를 드러내고 있다. 기본소득에 원래 '보편 지급과 선별 환수'의 개념과 원리, 지급 방식 등이 담겨 있고, 전세계의 여러 기본소득 연구자들이 이를 여러 차례 제시한 바 있다. 선별환수의 방식을 구체화한 기본소득 재정 모형도 여러 차례 발표된 적이 있었다. 지난해 10월 LAB2050이 발표한 ‘국민기본소득제 제안’도 구체적인 ‘보편 지급, 선별 환수’ 방안이었다.

게다가 선별환수는 단순히 지급한 금액만 환수하는 것을 넘어 복지의 수준을 증진시키는 증세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다음 글에서는 기본소득이 담고 있는 선별환수의 개념과 재분배 수단으로서 선별환수의 가능성을 제시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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