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 여성' 성추행 의사 복귀 방지, 해법은 고소·고발이다

  • 기자명 윤구현
  • 기사승인 2020.04.23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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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운동이 한참이던 3월 30일 KBS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 중 한 곳인 서울아산병원 인턴의 성추행 사실을 보도했다. 작년 9월 인턴 수련을 받던 의사가 산부인과 수술실에서 성추행을 했고 병원이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고 징계 기간이 끝나 복귀했다는 내용이다.  

수술실에서 마취된 환자를 상대로한 성추행은 언제나 충격적일 수 밖에 없지만 보도와 취재 후기에 언급된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징계를 받은 서울아산병원 수련의 발언. KBS 화면 캡처.
징계를 받은 서울아산병원 수련의 발언. KBS 화면 캡처.

 

A 씨는 수술을 받기 위해 마취를 하고 대기 중인 여성 환자의 신체를 반복적으로 만져 전공의에게 제지를 당했습니다.(여러차례 제지했으나 반복적으로 유사행동을 시행함)

"처녀막도 볼 수 있나요"

"(절제한) 자궁을 먹어봐도 되나요"

 

보도로 공개된 징계위원회의 보고서는 "여성 환자와 관련해 보인 행동은 성격 장애적 측면이 있어 교육으로 해결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적었고 복귀 후 환자를 대면하지 않는 비임상과에 배치하였다. 이후 공중파 9시 뉴스에까지 보도되어 여론에 떠밀려서인지 서울아산병원은 결국 4월 7일 해당 인턴의 수련을 취소했다.

이 사건이 보도된 후 수련 받는 의사들의 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자율징계권 강화를 주장했고 대한의사협회 역시 중앙윤리위원회 회부를 결정했으나 이 사건은 병원이나 의사단체의 징계로 끝낼 사안이 아니다. 대한의사협회 윤리위원회는 의사 면허 정지가 아닌 의사협회 회원 자격 정지, 과징금 등을 부과할 수 있을 뿐 징계 대상자가 의사로 일하는 것을 막을 권한이 없다. 의사로서 일하는 것을 제한하려면 형사처벌을 하거나 보건복지부가 행정처분을 내려야 한다.

워낙 충격적인 사건이라 의사면허를 취소하라는 국민청원이 바로 올라왔고 21일 현재 7만 여 명이 서명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의사면허 취소는 법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취소가 되었다고 해도 ‘면허 취소’에 기대하는 효과가 있지는 않다. 의료법에서 정한 의사의 결격사유는 의료 관련 범죄만 해당되고 살인이나 강간 같은 강력범죄는 해당되지 않는다. 또 의사 면허는 취소되더라도 3년이 지나면 재교부가 가능하다. 2018, 2019년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최근 5년간 55건의 재교부 신청이 있었고 한 건은 심의 중, 거부된 것은 한 건에 불과하다. 이 한 건은 2012년 수면 진정제인 프로포폴을 맞던 환자가 사망하자 한강 둔치에 시신을 유기해 1년 6월의 실형을 산 의사다.

이렇게 의사면허 취소라는 법적으로 불가능하고 생각만큼 실효성은 없는 요구를 하기 전에 현행법으로 할 수 있는 제재를 찾아야 한다.

아동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해 성범죄를 저지를 자는, 성인 대상 성범죄 포함하여 금고이상의 처벌을 받게 되면 아동 청소년 관련 기관에 취업할 수 없다. 이 법은 교사, 체육 강사, PC방, 아파트 경비원, 학습지 교사 등 여러 직종의 성범죄자의 업무를 제한하고 있고 그 중 의료인도 포함된다. 근무할 수 없는 기간은 판사가 처벌과 함께 10년 이내에서 선고한다. 또 진료 중에 성범죄를 저지르면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 의해 보건복지부는 자격정지 12개월의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다.

어떻게 하면 성범죄로 처벌받을 수 있나.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범죄 사실을 알게 된 제3자가 고발할 수 있다. 그런데 피해자는 마취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모른다. 이 의사에게 징계를 내린 서울아산병원은 구체적인 범죄 사실을 확인해 징계했으니 누구보다 내용을 잘 알고 있다. 범죄사실을 알고 있는 서울아산병원이 고발하지 않으면 누가 사법 처리를 요구할 수 있나.

 

 

보건복지부나 경찰도 마찬가지이다. 언론에 크게 보도된 내용을 직권으로 조사하거나 수사하지 않는 정당한 이유가 있는가? 산부인과 수술실에서 마취된 환자를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의료계에서 수년동안 논란이 있었던 두 가지 문제를 떠오르게 한다.

2010년 양승조 전 의원은 산부인과 진료과정에서 의대생이나 인턴 등 수련의가 참관하는 것을 제한하는 법안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의료계는 대학병원은 의료기관이자 교육기관이며 이를 제한할 경우 미래의 의사를 양성하는데 어려움이 생긴다며 반발했다. 이후에도 의대생이나 인턴의 산부인과 진료 참관, 참여는 꾸준이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런데 대학병원이 수술실에서 성추행한 인턴의 형사처벌을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는다면 의료계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을까.

수년 전부터 성형외과를 중심으로 유령의사, 대리수술 논란이 있었다. 2015년 대한성형외과의사회는 일부  성형외과들에서 예정된 의사가 아닌 다른 의사가 환자 몰래 수술을 한다고 폭로하며 자발적으로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겠다고 했다. 2018년에는 수술실에서 비의료인이 수술에 참여하다 환자가 사망하는 등의 사고들이 밝혀졌고 2016년에는 역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 중 하나인 삼성서울병원에서 학회 참석한 의사 대신 후배 의사가 수술한 것이 밝혀져 논란이 되었다. 2018년 말에는 이재명 경기도지사, 경기도의사회장, 환자단체대표가 온라인 토론을 했고 경기도  산하 의료원들은 자발적으로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해 환자가 원할 경우 수술과정을 녹화하고 있다. 의료계는 수술하는 의사가 위축될 수 있고 이는 환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산부인과 수술 동영상이 혹시 유출이라도 되면 그 피해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느냐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으나 수술실에서 환자 모르게 의사가 성추행하는 것을 알고도 적극적으로 처벌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병원이 있다면 수술실 CCTV를 어떤 논리로 막을 수 있을까. 수술실에 CCTV가 있다면 최소한 성추행은 안 당할 것이고 혹시 피해를 입어도 피해자가 알 수 있어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생각해보자. 어떤 금융기관에서 직원이 고객돈을 몰래 빼돌린 것을 알게 되었다. 피해자에게 사실을 알리지 않고, 피해배상도 하지 않고 해당 직원을 징계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면 정상적인 회사라고 할 수 있나? 금융감독당국이 그런 금융회사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

이 사건은 해결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병원은 피해자에게 피해사실을 알려주고, 고소나 고발을 통해 언론에 보도된 것과 같은 성범죄가 수술실에서 벌어졌는지 확인하면 된다. 처벌, 면허 취소, 자격 정지 등등은 이미 있는 기준에 따라 내리면 된다. 사건의 열쇠는 사건 내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서울아산병원이 쥐고 있다. 현행 법과 제도에서의 처벌 수준이 미흡하다면 사회적인 논의를 시작하면 된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일단 현재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피해자에게 통보, 고소, 고발.

*필자 윤구현은 사회복지사며 간사랑동우회 대표다. 질병관리본부 혈액관리위원회 수혈부작용소위원회 위원, 대한의사협회 국민건강보호위원회 건강정보분과 위원, 대한종양내과학회 한국암치료보장성확대협력단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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