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에게 - 젠트리피케이션 공약 실패를 인정하십시오

  • 기자명 뉴스톱
  • 기사승인 2020.05.12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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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의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젠트리피케이션’ 은 현재 한국에서 ‘기존의 임차인들이 쫓겨나는 현상’을 이야기하는데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젠트리피케이션은 단순하게 정의하기에는 복잡하고 다양한 논의들이 내재된 단어입니다. 그래서 본 글에서는 특정되어 사용되는 경우를 제외하고 ‘내몰림 현상’ 이라는 단어로 대체합니다.

필자가 활동가로서 몸담았던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 는 한국의 상인들이 겪는 임대차 이슈에서는 최전선에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필자가 활동가로 재직할 당시에도 전국에서 숱한 임대차 갈등들을 마주했는데, 그래도 가장 큰 사건을 꼽으라면 ‘궁중족발 사건’을 빼놓을 수 없다.

기존 보증금 3천만원에 297만원 하던 월세를 보증금 1억, 월세 1200만원으로 올릴 것을 요구했던 건물주, 그리고 장사한지 5년이 넘었다는 이유로 이 터무니없는 인상안을 받아들여야만 합법적으로 장사할 수 있게끔 짜여진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현실은 건물주와 세입자 간의 극한의 갈등을 만들어냈고, 급기야는 세입자가 망치를 드는 사태까지 발생하게 되었다.

이 사태 이후 2018년 9월 정기국회에서는, 문제가 된 계약갱신요구권 기한 5년을 10년으로 바꾸는 내용 등을 담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하 상가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2019년 4월 2일에는 정부 차원에서 환산보증금 증액 등의 내용을 담은 개정 상가법 시행령을 통과시켰다. 이것을 보면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캠프에서 공약으로 내걸었던 “임차인 보호를 위한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메인약속 118번 내 세부약속 523번)은 일부 이행했다고 볼 수 있다.

문재인 정부는 이외에도 자영업자, 소상공인들을 위한 다양한 공약을 내건바 있다. 그 중 필자가 주목했던 세부공약은 문재인미터 519번 “과도한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지역상권 내몰림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였다.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던 영역이었고, 지자체에서는 이 이슈에 대해 명쾌한 해결책을 현재까지도 못 내고 있기에, 획기적이지는 못해도 나름대로의 지론이 담긴 공약이 담겨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언급한 문재인 후보 대선 공약.
젠트리피케이션 방지를 언급한 문재인 후보 대선 공약.

 

그러나 세부 사항에는 이 한 줄만이 들어가있다. “상가 임대인 상가 임차인 간의 상생 협력이 이뤄지는 지역부터 개발을 우선 지원”. 너무나도 뜬구름 잡는 공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 공약을 이행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2017년 5월 26일자 국정기획자문위원회 업무보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토교통부에 도시재생사업에 따른 젠트리피케이션 방지책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한 기록이 보인다. 그리고 국토교통부가 2018년 3월 27일자로 발표한 「내 삶을 바꾸는 도시재생 뉴딜 로드맵」 은 이 주문에 대한 결과로 보인다. 이 문서에는 주민과 영세상인이 내몰리지 않는 방침으로 ① 뉴딜사업 선정 시부터 둥지 내몰림 현상이 예상되는 지역은 재생 지역 내 상생협의체 구축 및 상생계획 수립, 의무화 ② 100곳 이상의 구도심에 시세 80% 이하로 저렴하게 임대할 수 있는 공공임대상가 조성 ③ 계약갱신청구권 기간 연장 등의 내용이 담긴 상가법 개정 연내 추진 등이 명시되어 있다.

③번은 일부 진행이 되기는 하였다. 하지만 나머지 ①,②는 실제 현장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않은, 무엇보다 세입자들이 내몰리는 ‘둥지 내몰림 현상’의 핵심을 ‘전혀 보지 않고’ 만든 전략으로 보인다. 그래서 임기 3년차인 현재, 그 부작용이 나타나는 듯 하다.

 

내몰림 현상의 핵심

앞서 언급한 궁중족발의 사태는 내몰림 현상의 핵심을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다. 궁중족발 건물주는 서울의 소위 뜨고 있는 지역 중 하나인 종로 일대의 건물들을 2010년 초중반부터 사들이기 시작했다. 궁중족발이 있던 서촌의 건물은 2015년 10월에 48억 3천만원을 들여 매입하였다. 이 중 대출금이 45억 6천만 원이다. 건물로 수익을 내기위해, 아니, 최소한 매입 과정에서 발생한 대출금과 이자까지 갚으려면, 매월 발생하는 임대소득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갚거나, 가치를 상승시킨 후에 매각하는 방식을 택해야 한다. 그러나 매입 당시 건물 전체 월 임대수익은 850만원대. 연 1억이 약간 넘는 금액만으로는 재매각하기에는 투자가치가 떨어진다. 게다가 해당 건물이 있던 지역은, 임대인이 매입한 시기로부터 약 5개월 전인 2015년 5월에 구 차원에서 중소기업청의 예산 지원을 받아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로 조성된 지역. 부동산 가치는 이미 오르고 있던 지역이었다.

이런 상황을 파악한 임대인은 건물을 매입한 이후, 모든 세입자들에게 차례로 최소 3~4배의 인상안을 요구했다. 한 군데 빼고 전부 그 요구를 거절했고 결과적으로는 내몰렸다. 만약 그의 요구안이 모두 관철되었다고 한다면 그는 월 3천의 임대수익을 얻게 되었을 것이다. 이 액수에 따른 예상 건물 가치를 환산하면 당시 매입가보다 150%, 많게는 375% 까지 불어난다. 현재 부동산사이트에 올라온 이 건물은 89억 매물, 직접 거래를 시도한 이에게는 100억까지 요구했다는 정보도 있다. 최초 매입가보다 최소 184%는 늘어난 것. 이렇듯 부동산 시장에서 ‘임대료’는 투자자 자신이 보유한 건물의 기대수익과 가치를 결정짓는 중요요소이다. 임대인 입장에서 임대료 인상은 본전을 찾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그리고 그것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헌법에 보장된 재산권을 행사하는 일이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임대료에 대한 가치 판단이 임대인과는 전혀 다르다. 세입자는 입주하기 위해 들어가는 보증금과 인테리어 등의 시설비를 목돈으로 지출한다. 대부분은 대출을 받아서 지출한다. 보증금은 계약 종료와 동시에 돌려받는다 하더라도, 시설비 등의 비용은 임차인이 벌어들인 만큼 채우는 구조이다. 때문에 세입자가 수익을 남기려면 많은 시간을 자영노동에 투자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여 수익을 남기기 위해선, 고정 지출비를 줄일 수 밖에 없다. 인건비 등의 고정 지출비 (업종에 따라서는 재료비 포함)는 세입자의 의지에 따라 조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또 다른 고정 지출비인 ‘임대료’는 세입자의 의지만으로는 조정이 불가능하다. 이렇다보니 임대료가 늘어난다는 것은 세입자가 취할 수 있는 수익의 폭이 줄어든다는 것이고, 경기가 어려워질수록 그 폭은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른 의미로, 임대료 인상이 세입자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지역상권 내몰림 현상, 더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의 임대료 갈등은 결국 임대차 당사자의 재산권 충돌로 귀결된다. 이 흐름은 현장의 목소리만 파악해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결코 나이브하게 접근해서는 안 되는 치밀한 이슈다. 그럼에도 중앙정부 차원에서 제시한 방안은 그 치밀함이 현저히 떨어져 보인다.

 

상생협약 제도: 나침반 없이 폭풍을 뚫고 가라?

각 지자체에서는 내몰림 현상 방지를 위해 자체적으로 여러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는데 행정력을 상당히 발휘하고 있지만, 그만큼의 결과 값을 내기 어려운 것이 현재 상황이다. 이 이슈에서 그나마 제일 행정력을 발휘하고 있는 서울 성동구는, 작년 10∼12월에 성수동 지속가능발전구역(성동구 성수1가제2동의 서울숲길, 방송대길, 상원길로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방지하고 지역공동체 생태계와 지역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구가 지정·고시한 구역) 내 상가업체 662개소의 상가임대차 실태조사를 실시하였고, 그 결과 평(3.3㎡)당 평균 임대료가 작년 대비 1.45% 올랐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지역은 2017년에 임대료 급등 현상이 있었을 때 구청 차원에서 상생협약을 주도 했던 지역이고, 현재 69.8%의 건물주가 임대료 인상을 자제하는 자율협약에 동참하고 있다. 이 역시 강제성이 없는 협약이어서, 성동구가 상당한 행정력을 동원했기에 가능했던 결과다.

성동구뿐만 아니라 내몰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행정력을 동원하고 있는 지자체들도 상생협약 제도를 활용하고는 있다. 하지만 이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이 있다. 바로 ‘비협조적인 임대인’ 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비협조적인’ 이들 대부분은 ‘외지인 투자자’ 이다. 지역에 대한 애착이나 발전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이 투자만 바라보고 들어온 이 외지인들에게, 상생협약은 딱히 ‘메리트 없는 선택 옵션’ 이다. 월세를 많이 올리지 못하면 투자 수익도 증대하지 않는데, 이 선택지를 선택한 대가마저 분명치 않다보니 굳이 상생협약을 맺을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가를 제시하기에는 실정법 내에서 움직여야하기에 구 에서도 뚜렷한 무언가를 내밀지 못하고 있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위의 임대료 둔화 결과를 이야기하면서 중앙정부에 ‘이행강제나 (상생협약 체결 임대인에게 돌아가는) 인센티브 등의 제도를 마련해 달라’ 고 요청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성동구 외에도 내몰림 현상이라는 폭풍 속을 헤쳐 나가고 있는 지자체장들은, 상생협약 이행 강제 등의 제도가 뒷받침 되어야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목소리를 뒷받침해주던, 아니면 최소한 지자체가 방향은 잡을 수 있도록 나침반을 쥐어줄 책임은 결국 중앙정부에 있다. 하지만 나침반이 되어야 할 공약이나 로드맵은 그 역할을 못하고 있다.

 

공공임대상가: 실패의 역사를 반복하려는가?

로드맵이 제시한 또 하나의 방안인 ‘공공임대상가’ 제도는, 쉽게 말하면 구도심 내에 지정된 구역(내지 단일 건물)에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료로 장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럴싸한 정책이다. 하지만 이 제도는 사전조사가 충분치 않으면 안하느니만 못하는 제도이다. 비슷한 실패 사례가 서울 장지동에 위치한 가든파이브 이다. 이명박 서울시장 당시 청계천 복원사업 과정에서 내몰리게 된 청계천 일대의 상인들의 대체상가라고 지은 건물이지만, 결과적으로 청계천 상인들 중 그곳에 남아있는 이들은 하나도 없다. 공실률로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여전히 적자 운영 중이다. 가든파이브가 원래의 목적인 ‘대체 상가’의 역할도 달성하지 못하고 적자 운영이 된 이유는 여러 가지이지만, 핵심적인 이유는 ‘모호한 상권’ 과 ‘높은 분양가’ 때문이다. 만약 상권에 대한 사전 조사와 이를 바탕으로 한 대체 부지 조사가 선행되었다면, 이러한 실패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나마 가든파이브의 실패 사례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로드맵은 지역을 ‘특정’하였고, 서울시 같은 경우는 ‘장기안심상가’ 제도로 부지를 확보해 세입자를 모집하고 있다. 문제는 현재 실시되고 있는 방식이 장기화되면 가든파이브의 실패를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상권에 대한 실태조사 없이 단순하게 건물만 매입해서 ‘세입자를 받는 형태’로만 하게 되면, 임대료 문제는 없어지겠지만 ‘장사가 안 되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임대료 때문에 내몰린 명동의 임차상인들을 강제로 다른 지역에 대체상가에 입주시킨다고 이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요건이 형성되겠는가? 내몰린 신촌거리의 상인들이 다른 지역의 대체상가에 들어간들 제대로 장사가 되겠는가 말이다. 상권은 강제로 몰아넣는다고 형성되는 게 아니다. 인구 변화, 생태 변화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자연스럽게’ 작용하면서 형성되는 것이다. 이를 파악하고 대응했던 외국의 사례가 프랑스 파리이다. 파리는 2~3년 주기로 상권 실태조사를 진행하여 보호구역을 설정, 보호구역의 건물 전체를 민관협동공사 차원에서 매입하고, 세입자에게 임대료를 저렴하게 받는 방식으로 도시 계획을 수립 이행하고 있다. 그 결과 주변 지역 임대료 급등 사태를 막은 동시에 상권까지 보호했다.

공공임대상가 제도는 어쨌거나, 임대료 문제와 상권 활성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고안한 제도로 보인다. 그리고 현재의 운영 형태는 임대료 문제에만 몰두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장기화되면 상권의 문제는 해결하지 못한 채 ‘임차인들의 임시대피소’ 취급만 받게 된다. 이 이미지가 굳어지면 제도의 취지도 못 살리고 세금 축낸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가든파이브처럼 말이다.

 

모호하게 현상 유지하느니, 차라리 실패를 선언해라

임기 3년차는 어떤 정부이던 간에 쓴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는 시기이다. 집권을 위해 제시한 공약들의 윤곽이 나오는 시기이고, 빠르면 진행된 형태까지 파악할 수 있는 시기이다. 제시했던 공약이 실행되고 있으면 그것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따라 긍정적인지 부정적인 평가될 것이고, 시행이 되지 않았다면 왜 시행이 안 되고 있는지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것이다.

“과도한 임대료 상승으로 인한 지역상권 내몰림(젠트리피케이션) 방지” 공약에 있어서는, 지자체가 열심히 하고 있을 뿐, 중앙정부가 제대로 손 쓰고 있지 못하고 있다. 로드맵 부터가 방향성이 모호한데, 무슨 기대를 걸 수 있겠는가. 지자체들도 각자도생으로 내몰림 방지 정책들을 만들고 있지만, 한계도 있는데다 효과적인 정책을 못내고 과거의 실패를 반복할 여지도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현상이 유지가 되면, 내몰림 현상은 해결은커녕 오히려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필자는 적어도 문재인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고 떠넘기려는 비상식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일말의 신뢰가 있다. 현상을 유지해서 더 큰 피해를 만드는 것보다, 실패를 선언하고 재정비하는 것이 다음 정부의 부담도 덜어주는 동시에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길이다. 그리고 지금 시점은 실패를 선언해도 괜찮다. 이번 총선으로 제도 수립의 걸림돌이 거의 사라진 상황에서, 새로운 제도를 제안하고 관련 법안을 만들 여건이 충분하다. 실패를 교훈 삼아 다시 시작하면 된다. 모호하게 국정 운영했던 박근혜 정부가 왜 무너졌는지, 그리고 촛불 이후에 시민들이 왜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켰는지를 복기해본다면 이해가 될 것이다.

* 필자 쌔미는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 에서 활동했고 지금은 민생문제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2018년 상가법 개정의 단초가 된 궁중족발을 비롯하여, 전국의 임대차 분쟁 상담 및 지원을 해왔다. 현재는 서초동 임차인 사망사건 대응, 군자역 1번출구 승강기 공사 비리 의혹 등 다양한 민생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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