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제주도 감귤을 박정희가 처음 심었다?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18.11.14 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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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닌 '감귤 논쟁'이 붙었다. 정부가 송이버섯 답례품으로 북한에 귤 200톤을 보내자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페이스북에 "북한에 보낸 감귤상자에 감귤만 들었겠느냐"며 대북 불법 지원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이후 민주당이 과거 한나라당의 불법정치자금 수수 '차떼기'사건을 언급하며 역공에 나섰다. 그러자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본인의 페이스북에 "1962년 박정희 최고회의의장이 제주도를 방문해 감귤농사를 제안해 처음 도입되었다"며 뜬금없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칭송했다.

 

유튜브의 팬앤드마이크 정규재TV도 12일 "제주도 감귤은 박정희가 심었다"며 김 의원의 주장을 뒷받침했다. 1961년 9월 8일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 제주도를 방문했고 제주도가 너무 낙후되어 있는데 현무암 토질에는 감귤이 좋다며 일본에서 감귤나무를 수입을 오도록 했다는 것이다. 정규재TV는 "재주는 박정희 대통령이 다 부리셨는데 생색은 문재인이 내는 것 같습니다"라고 논평했다. 김 의원과 정규재TV 주장대로 박 대통령이 정말 '사실상 처음'으로 감귤을 제주에 심었는지 팩트체크했다. 
 

일제시대때 현재 제주감귤 묘목 들여와

제주 귤의 역사는 공식적으로는 고려시대로 올라간다. 제주국제감귤박람회의 감귤의 역사에 따르면 고려사 세가(高麗史 世家) 7권의 기록에 의하면 문종(文宗) 6년 (1052년) 3월에 "탐라에서 세공하는 귤자의 수량을 일백포로 개정 결정한다"라고 되어있다. 조선시대에도 제주도 귤유(橘柚) 공물 기록이 계속됐다. 현재 제주에서 재배되고 있는 감귤의 효시는 1911년 프랑스 출신 엄탁가(Esmile J. Taque) 신부가 온주밀감 나무를 들여온 것이다. 1960년대 일본에서 도입된 품종은 궁천조생(宮川早生)과 임온주(林溫州) 등으로 모두 온주밀감이다. 

일제시대부터 현재의 감귤이 생산됐다는 글은 다른 기사에서도 나온다. 조선말기 공물개혁 이후 감귤을 직접 조정에 바칠 일은 없어지자 제주 농민들은 식량을 심기 위해, 또 공물을 바치던 것이 지긋지긋해 감귤나무를 다 캐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1930년대 제주에서 다시 감귤재배가 시작됐고 일본산 감귤이 들어왔다. 감귤박물관에 따르면 일제시대 때 일본식 온주감귤이 제주의 재래감귤을 밀어내고 주류를 차지했으며 1950년대 후반부터 감귤의 재배면적이 늘어났다. 1954년부터 재일 교포 등에 의해 도입되기 시작한 묘목은 1970년까지 349만 주가 넘었다. 1951년 '씨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 박사가 제주도를 방문해 적극적으로 감귤재배를 권했다는 기사도 있다. 종합해 볼 때 현재의 온주밀감 감귤은 일제시대때 도입되었고 1950년대부터 일반화됐다고 봐야 한다. 

11일 오후 제주국제공항에서 공군 장병들이 북한에 보낼 제주산 감귤을 공군 C-130 수송기에 싣고 있다. 출처: 국방부

 

박정희 정권 제주를 감귤 주산지로 선정

그렇다면 제주 감귤 확산에 박정희 대통령의 역할은 어느 정도로 봐야할까. 여러 문헌을 보면 박정희 정부가 제주 감귤 산지 조성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사실이다. 1962년 10월 13일자 경향신문은 "혁명정부당국은 이를(감귤재배를) 적극 장려하기 위해 밀감의 외국수입을 금지시키고 대신 묘목 수입으로 최근 제주도에는 감귤재배선풍이 불고 있다"고 적었다. 1966년 5월 4일자 매일경제 기사는 "제주도 개별현황 시찰자 이곳에 온 박동양 농림부장관은 제주도를 양송이, 유채, 감귤, 맥주맥, 고구마 등만 중심으로 한 주산지조성과 이들 종목의 가공시설을 지원할 것을 밝혔다"고 적었다. 1967년 1월 7일자 동아일보 기사는 "농림부가 농가소득의 증대를 목적으로 한 67년도 농업주산지 조성계획을 마련하고 박대통령에게 보고했다"며 감귤 주산지로 제주와 경남남해지구를 선정한 사실을 보도했다. 

2018년 2월 한국경제 칼럼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65년부터"라며 "1964년 연두순시차 제주를 찾은 박정희 대통령이 '수익성 높은 감귤을 재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제주특별자치도감귤출하연합회의 FTA관련자료에 따르면, 1961년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초도순시 차 제주를 처음으로 방문, 따뜻한 기후에 적합한 감귤 진흥을 통한 소득 수준 향상을 지시했다. 이어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은 제주도 연두방문 시 ‘감귤지사’를 주문했고, 1968년부터 감귤 증식 사업을 농어민 소득증대 특별사업으로 지원했다. 종합하면 박정희 정권이 농가소득증대 일환으로 제주에서의 감귤 생산을 독려하고 지원을 한 것은 사실이다.

 

남북교류협력 상징으로 20년간 감귤 활용

야당 및 보수언론은 정부의 감귤 대북지원이 이례적인 것처럼 평가했지만 사실 감귤은 오랜기간동안 남북교류 상징 중 하나였다. 감귤이 남한에서만 생산되는 농산물이기 때문에 감귤을 북한에 보내는 행사 자체가 통일의 물꼬를 트는 행사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1988년 10월 4일자 한겨레에 따르면 제주도의 '민족화해통일연구소'는 북한동포들이 남한의 감귤을 맛보고 단군의 자손임을 확인할 수 있게 '북한동포에게 감귤보내기 운동'을 펼쳤다. 당시 통일원이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하면서 북한에 귤보내기 운동은 무산됐다. 1996년에는 제주산 감귤이 사상 처음으로 홍콩을 거쳐 북한에 수출된 사실이 보도됐고, 1999년 1월에는 제주도가 처음으로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제주 감귤 100톤을 북한에 보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소떼방북'에 이은 남북화해협력의 일환이었다. 2001년에는 감귤 1만톤, 2003년에는 5000톤이 북한에 전달되는 등 제주도와 남북협력제주도민운동본부는 2010년까지 감귤을 북한에 전달해 왔다. '북한에 감귤보내기 운동'은 감귤 소비를 촉진하고 남북화해협력에 이바지하겠다는 제주도 노력의 결실이었다.

MBC 화면 캡쳐

 

그런데 자유한국당이 "감귤 조공"이라며 비판하자 일부 제주도민이 분노를 드러냈다. 고창덕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 사무처장은 13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당황스럽고 기분이 안 좋다. 정치인들이 책임 있는 발언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적은 양이지만 감귤이 남북간 평화의 전령사로 선택된 것이 기분 좋고, 제주 농산물이 남북 교류로 확대ㆍ발전된다면 큰 이익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고 밝혔다. 

논의를 종합하면 제주 감귤은 일제시대때 이미 현재의 일본산 감귤이 널리 보급되어 대세가 되었고 1950년대 산지가 널리 확대되었다. 1960년대 박정희 정부의 감귤 주산지 지정으로 감귤 농가가 더욱 늘어나면서 제주도를 상징하는 농산물이 됐다. 또한 감귤은 남북화해협력의 상징이었다. 현 정부가 북한에 감귤을 보낸 것은 2010년 5.24조치 이후 끊긴 남북 화해협력을 복원한다는 의미가 있다. 김진태 의원이 주장하듯이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 제주도에 감귤을 심은 것은 아니고 정규재TV가 주장하듯이 생색은 문재인만 낸 것이 아니라 역대 정부가 다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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