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공원 '오랑우탄'이 코로나19를 원망하는 이유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0.05.26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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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공원 동물원(서울동물원)의 오랑우탄들이 설레는 고향길을 준비했지만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 탓에 하염없이 기다림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서울동물원 유인원관에 살고 있는 오순(1968년생)과 백석(2009년생)이 주인공이다. 모자지간인 이들 오랑우탄은 원래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고향 말레이시아로 돌아가 열대우림 속에서 생활하고 있어야 한다. 지난해 11월 서울동물원이 말레이시아 오랑우탄 보전 기구인 부킷 미라 오랑우탄 파운데이션(Bukit Merah Orangutan Foundation)과 협약을 맺고 오랑우탄 두 마리를 늦어도 5월 중으로는 말레이시아에 보내는 방안을 추진 중이었기 때문이다. 서울대공원은 이런 내용을 보도자료로 만들어 배포했고 다수의 매체들이 기사로 내보냈다. 

서울동물원에 살고 있는 오랑우탄 오순. 1968년생 만 42세로 대략 30~40년 정도인 오랑우탄 수명을 감안하면 초고령인 셈이다.
서울동물원에 살고 있는 오랑우탄 오순. 1968년생 만 42세로 대략 30~40년 정도인 오랑우탄 수명을 감안하면 초고령인 셈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전세계를 휩쓸며 상황이 바뀌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3월부터 이동제한명령을 발동했는데 6월 9일까지로 기한을 연장했다. 모든 외국인들의 입국이 금지되고 학교, 영화관, 종교 시설 등과 단체 스포츠, 대규모 집회 등도 금지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오랑우탄을 말레이시아로 보내려는 계획도 발이 묶였다. 

오랑우탄은 평균 수명이 30~40년 정도이기 때문에 만 52세인 오순은 이미 천수를 누렸다고 할 상황이다. 좁은 울타리를 벗어나 원서식지인 열대 우림 속에서 여생을 보낼 나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하늘길을 막은 코로나19가 야속할 따름이다. 서울동물원 개원(1984년) 멤버인 오순은 개원 준비가 한창이던 1983년 미국에서 도입됐다. 동남아 국가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보내졌는지 미국 동물원에서 태어났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오순의 새끼인 백석도 사정이 딱하다. 선천성 뒷다리 마비 증상을 갖고 있는 백석도 부킷 미라 오랑우탄 파운데이션에서 더 전문적인 재활 치료를 받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복 고환을 갖고 태어나 수술을 받기도 하는 등 곡절을 많이 겪었다.  갓 태어나 덩치가 작았을 때는 사육사들이 뒷다리를 주물러주는 등 물리치료도 자주 해줬지만 몸집이 커진 이후로는 사육사들이 자유롭게 접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고령인 오순과 장애를 지닌 백석은 동물원내 다른 오랑우탄과는 전혀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약한 개체'인 백석은 다른 '건강한' 오랑우탄을 두려워한다. 어미인 '오순'에게도 다가가지 못하는 정도라고 한다. 오순도 다른 오랑우탄이 내실로 들어가야 실외 사육사로 나와 기지개를 펼 수 있는 상황이다. 이래저래 오순과 백석에겐 말레이시아의 새 삶이 좀 더 편안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방편인 셈이다.  

서울동물원에 살고있는 수컷 오랑우탄 백석. 오순의 새끼이다. 태어날 때부터 뒷다리 마비를 갖고 있다.
서울동물원에 살고있는 수컷 오랑우탄 백석. 오순의 새끼이다. 태어날 때부터 뒷다리 마비를 갖고 있다. 잠복고환 수술을 받는 등 곡절은 많이 겪었다.

 

부킷 미라 오랑우탄 파운데이션은 35 에이커(14만1639㎡:축구장 20개 정도 면적) 규모 섬에 오랑우탄 전문 진료실과 입원실을 갖추고 재활과 치료를 진행해왔다. 현재 오랑우탄 16마리가 이곳에서 지내고 있다. 대공원 측은 백석과 오순이 말레이시아로 가게 된다면 더욱 전문적인 관리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오랑우탄을 해외로 보내려면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 교역에 관한 국제협약’(CITES)에 따라 양국 정부로부터 수출입 허가를 받아야 한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지난 1월 오랑우탄 백석과 오순의 수입을 허가했다. 우리나라 환경부도 수출 허가를 내준 상황이라 항공편만 연결되면 언제든 출발이 가능한 상황이다.현재 오순, 백석 모두 건강 상태가 양호한 편이라 비행기 탑승에도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서울동물원은 "부킷 미라 오랑우탄 파운데이션에서 오순과 백석이 더 세밀하고 전문적인 돌봄과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해외 동물원에서 호랑이 등 여러 종류의 동물이 코로나19에 감염됐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서울동물원의 동물들은 아직까지 평온하게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서울동물원 측은 "사육사가 동물 우리에 접근할 때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소독제를 사용하는 등 방역 지침을 철저히 따르고 있고 동물원의 모든 동물 가운데 코로나19 관련 특이 동향을 나타내는 개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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