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성욕은 3대 욕구 중 하나?

  • 기자명 송영훈 기자
  • 기사승인 2020.06.0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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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이태원에서 확인된 코로나19 확산과 관련해 한 SNS 게시물이 화제가 됐습니다. 31세 남성이라는 글쓴이는 “이태원 클럽에 다녀온 후 방역당국으로부터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을 받았다”며, “집에만 있기 답답해서 여자도 만날 겸 주말에 클럽 갔다 왔더니 사람 취급도 안 해준다.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가 성욕인데 성욕은 어떻게 해소하라는 거냐?”고 항변했습니다.

해당 게시물에 대해, 일부 남성 중심 커뮤니티에서는 공감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비판적인 반응이 많았습니다. 특히 이 가운데 ‘성욕은 인간의 3대 욕구가 아니라 동물적인 본능’이라는 댓글이 관심을 모았는데, 어느 것이 맞는지를 묻는 추가댓글도 있었습니다.

성욕이 인간의 3대 욕구’라는 표현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블로그는 물론 언론보도에서도 쉽게 인용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것 혹은 상식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특히 성범죄 관련 재판에서 가해자가 ‘성욕을 참을 수 없었다’는 변명은 성범죄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쓰이기도 합니다.

 

'성욕이 인간의 3대 욕구'라는 학술적 근거 없어

하지만 여러 학술 문헌과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성욕이 인간의 3대 욕구’라는 것은 어떤 학술적인 근거도 없습니다. 관련 연구논문은 물론 근거가 되는 문헌도 찾을 수 없습니다. ‘3대 이론’, ‘7대 명소’, ‘10대 불가사의’ 등 대중들에게 쉽게 기억될 수 있도록 ‘숫자 수식’을 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인간의 욕구와 관련해 널리 알려진 이론은 미국의 심리학자인 매슬로우(Maslow:1908~1970)의 욕구단계설이 있습니다. 하나의 욕구가 충족되면 다음 단계에 있는 다른 욕구가 나타나서 그 충족을 요구하는 식으로 체계를 이루며, 가장 먼저 요구되는 욕구는 다음 단계에서 달성하려는 욕구보다 강하고 그 욕구가 만족되었을 때만 다음 단계의 욕구로 전이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장 낮은 단계인 첫 번째 욕구는 의식주에 대한 욕구, 인간의 생명을 유지해가기 위한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Physiological Needs)로 호흡, 수분, 의식주 등과 함께 성욕까지를 포함합니다.

이미지 출처: simplypsychology.org
이미지 출처: simplypsychology.org

1972년 미국의 심리학자 앨더퍼(C.Alderfer)는 매슬로의 욕구단계설을 발전시켜 ERG(Existen-ce, Relatedness, Growth) 이론을 주창했습니다. 여기서 E에 해당하는 존재욕구는 가장 기본적인 욕구로 음식, 공기, 물, 임금 그리고 작업조건과 같은 것에 대한 욕구로 정의했습니다.

비슷한 용어로 ‘인간기본욕구(Basic Human Needs)'라는 것이 있습니다. 개도국의 빈곤층에 직접적인 이익을 주는 식량, 물, 주택, 의복, 보건, 의료, 교육 등의 분야에 중점을 두고 원조를 해야 한다는 방안으로 1973년경부터 미국, 세계은행을 중심으로 제창되어 ILO(국제노동기구), OECD 개발원조위원회에 계승되어 현재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이 밖에 상담학 선택이론에서 인간의 다섯 가지 기본적인 욕구로 ‘사랑과 소속감(belonging)’, ‘힘과 성취(power)’, ‘자유(freedom)’, ‘즐거움(fun)’, ‘생존(survival)’을, 사회심리학자이나 철학자로 유명한 프롬(Erich Fromm)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로 관계성(relatedness), 초월(transcen-dence), 소속감(rootedness), 정체감(identity), 지향 틀(frame of orientation), 흥분과 자극(ex-citement and stimulation) 등을 제시하였습니다.

범위를 근대 학문 이전으로 확장하면, 중국 전국시대의 사상가로 맹자와의 논쟁으로 잘 알려진 고자(告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욕구(식욕, 색욕)만 가지고 태어났고 인간 외의 동물도 동일하다’는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을 주장했으며, 불교에서는 오욕칠정(五慾七情: 사람의 다섯 가지 욕망과 일곱 가지 감정) 가운데 하나로 ‘색욕(色慾)’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현대의 인간 욕구 관련 용어와 이론에서 성욕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것은 매슬로우의 욕구단계설이 유일합니다.

 

국내 언론 보도에서는 '욕구'보다는 본능의 의미로 주로 쓰여

국내 언론에서 식욕, 수면욕, 성욕을 묶어서 처음 언급한 것은 1975년 6월 13일자 경향신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토론토 요크대학 교수인 캐펀박사가 '식욕의 심리학'이라는 주제의 심포지엄에서 식욕, 성욕, 수면욕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지적을 했다는 내용입니다.

‘인간의 3대 욕구’라는 표현은 역시 경향신문의 1992년 11월 7일자 ‘특급조리사 특급호텔의 손끝하나로 VIP입맛 평정’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처음 찾을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인간의 3대 욕구 중 하나라며 식욕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 1988년 11월 12일 경향신문의 '중년의 의학(43) 식욕과 성'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곽대희 비뇨기과 전문의는 “인간의 3대 욕망은 수면욕, 식욕, 성욕의 순으로 강하다고들 한다”고 했습니다.

이후 국내 언론 보도에서 의학자나 심리학자 같은 전문가들은 식욕, 수면욕, 성욕을 인간의 기본 욕구보다는 생물 혹은 동물적인 3대 본능으로 주로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이 경우 성욕 대신 배설욕을 언급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정리하면 여러 학술자료와 언론보도 등을 통해 종합한 결과, ‘성욕이 인간의 3대 욕구’라는 근거는 없습니다. 1970년대 이후 성욕은 식욕, 수면욕 등과 함께 언급되며 의지의 의미를 담은 ‘욕구’보다는 주로 인간의 생물학적인 ‘본능’에 비중을 둔 표현으로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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