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대북 삐라'를 이용한 '코로나19 세균전'은 정말 가능한가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0.06.10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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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북한에서 남한측의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며 각종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박지원 전 의원(단국대 석좌교수)이 탈북자들의 대북 전달 살포를 두고 지난 6일 "코로나 확산을 노리는 반인륜적 처사"라고 비판을 했다. 북한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코로나19 확진자들이 사용하던 물품을 구해 바이러스를 페트병이나 생필품에 묻힌 뒤 북에 보내겠다는 일부 탈북단체의 계획이 언론에 알려지면서다.

그러자 보수진영에서는 음모론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21대 총선 미래통합당 송파병 후보)는 "전단 살포가 밉다고 탈북민을 보균자로 여기는 것" 이라고 했고,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은 "북한 당국의 괴담 선동을 앵무새처럼 반복하더니 괴담 좌파가 됐다”고 말했다. 사건의 전모는 무엇인지, 그리고 대북 전단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 살포가 가능한지 뉴스톱이 확인했다. 

 

 

박지원 전 의원 페이스북 캡처
박지원 전 의원 페이스북 캡처

 

'대북 삐라=코로나 확산 기도' 논란은 어떻게 퍼졌나

북한은 탈북자들의 전단 살포를 문제 삼으며 통신선을 차단하는 등 연일 대남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박 교수는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는 근거있는 소스를 가지고 말합니다. 아래 기사 읽으시길 추천합니다."라며 기사를 하나 소개했다. 연합뉴스가 보도한 <북한, 전단살포에 왜 반발하나…이번엔 코로나19도 '한몫'?> 기사이다.

연합뉴스는 이 보도에서 북한이 삐라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에 대한 비난을 최악의 적대행위로 간주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번 강경 대응에는 올해 들어 탈북민 단체의 페트병을 통한 반북 물품 살포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고 덧붙였다. 

이 기사는 지난 3월부터 탈북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커뮤니티에 김정은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프로젝트에 관한 내용이 공유됐다는 내용도 언급했다. 탈북자들이 코로나19 확진환자의 콧물과 침, 사용하던 물품 등을 구매해 북한에 보내는 페트병이나 풍선 같은 전단에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함께 넣어 보내자는 것이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이 사이트에는 "북한의 의료체계와 방역체계는 소말리아 수준이라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면 북한이 붕괴된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사실이 공개된 이후 북한 당국이 내부적으로 탈북민의 다양한 방식의 전단 살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며 강경 대응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교수는 일부 탈북자 그룹의 이런 움직임을 두고 "코로나 확산을 노리는 반인륜적 처사"라고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의 '대북 코로나19 확산 프로젝트'는 사실인가?

그렇다면 코로나19 살포 프로젝트는 정말 실행이 된 것일까. 인터넷매체 '서울의 소리' 보도를 보자. 지난 3월 보도된 <[단독]수상한 탈북자 대화방..''북한에 코로나 퍼뜨려 정권 붕괴시키자> 제하의 기사는 위에서 언급한 연합뉴스의 보도보다 상세하게 일부 탈북자들의 움직임을 전하고 있다. 매체는 제보를 소개하며 "내용은 북한 정권의 붕괴를 위해 조직적으로 코로나를 퍼뜨리기 위해 '코로나 확진자의 침이나 콧물을 고액으로 구매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고 언급했다.

기사 말미에는 제보자가 제공한 근거 자료라며 링크를 제시했다. 링크 대부분이 '삭제된 페이지'로 연결됐지만 그 중 하나는 살아남아 있었다.

'서울의 소리' 기사에 첨부된 링크. 일본계 웹사이트 게시판이다.
'서울의 소리' 기사에 첨부된 링크. 일본계 웹사이트 게시판

살아남은 링크에는 탈북자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북한에 확산시켰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페트병과 풍선을 이용해 코로나 바이러스에 오염된 지폐와 쌀을 북쪽으로 보냈다고 전했다.

북한전문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NK도 유사한 내용을 전했다.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남조선이 코로나 비루스 묻은 돈 뿌려 신의주에 발병”> 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가 인용한 북한 소식통은 “얼마 전 회령에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회가 열렸다”면서 “이 강연회에서 코로나 비루스(바이러스)는 남조선(한국)에서 조선(북한)에 뿌린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또 “강연자는 ‘남조선에서 풍선이나 플라스틱 통을 바다로 흘려서 보내온 쌀과 돈, 중국에서 건너온 안기부(국정원) 괴뢰가 뿌린 돈에 (코로나) 균이 묻어있다’고 말했다”며 “그런 것을 발견하면 무조건 신고할 것을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웹사이트에 올라온 글과 뉴스만으로 이 프로젝트가 정말 실행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북한에서 남측의 전단 살포를 예민하게 받아들일 이유는 충분하다. 최고 존엄인 김정은 위원장을 모욕하는 전단에 더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묻은 생필품이 실제 북한에 떨어졌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다크웹에서 코로나19 환자의 침 등을 구매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보안뉴스' 보도 내용.
다크웹에서 코로나19 환자의 침 등을 구매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보안뉴스' 보도 내용.

 

코로나19 세균전? 불가능하진 않지만 실행가능성은 매우 낮아

북한이 탈북자들의 전단 살포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하태경 의원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북한에선 오래전부터 대북 삐라(전단)를 막으려고 ‘삐라를 만지면 세균에 감염된다’는 괴담 선동을 해왔다”며 “이를 박 전 의원이 대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북한 정권의 선동처럼 삐라를 만지는 것만으로 코로나19에 감염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먼저 환자의 몸 속이 아닌 물체 표면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지(활성화 상태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지난 3월 미국 국립보건원(NIH)의 바이러스학자 닐제반 도어말런과 해밀턴 소재 로키마운틴실험실에 근무하는 그의 동료들이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실험한 결과를 발표했다. 기침으로 공기 중에 나온 비말에 바이러스가 3시간까지 살아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공기의 이동이 없을 경우 1~5마이크로미터(사람 머리카락 두께의 약 30분의 1) 크기의 미세한 방울은 수시간 동안 남아있을 수 있다.

NIH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판지 소재에서는 최장 24시간,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강 표면에서는 2~3일까지도 생존한다고 밝혔다. 바이러스가 합판 소재의 조리대나 플라스틱으로 코팅된 손잡이 등 다른 딱딱한 표면에서 더 오래 살아남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구리 재질의 표면에서 바이러스는 4시간 안에 죽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바이러스 전문가는 삐라로 인한 코로나19 확산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서울대 생명과학부 안광석 교수는 "코로나 19는 접촉매개물에 의해서 당연히 전염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방역 당국은 노래방 감염 전파 사례 등 다수의 사례에서 매개물에 의한 간접 전파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일부 탈북자 그룹이 '코로나19 세균전'을 실행에 옮겼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코로나19로 확진되면 곧바로 의료시설로 이송되고 자택 및 동선에 대한 방역 소독이 이뤄진다. 확진환자로부터 직접 분비물을 구하려면 국가지정 격리병상 또는 무증상자의 경우 생활치료시설에서 거래가 이뤄져야 하는데 물품의 반입과 반출이 극히 제한적이다.

일련의 사태를 정리해보자. 일부 탈북자 그룹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통해 북한에 코로나19를 확산시키자는 선동이 있었지만 실제로 실행이 됐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이런 탈북자들의 언동을 빌미로 남북관계를 급랭시켰다. 진보진영은 탈북자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반면 반사이익을 구하려는 일부 보수 인사들은 '맹목적인 북한 추종'이라면서 변죽을 때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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