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의 그늘] ②길거리 소독, 세금을 '길에 뿌린' 지자체

  • 기자명 선정수 기자
  • 기사승인 2020.06.2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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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전문 미디어 뉴스톱이 전국 229개 기초지자체(세종시, 제주시, 서귀포시 포함)를 전수조사한 결과 4곳(1.7%)만이 질병관리본부의 방역소독 지침을 준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자체 99곳(43.2%)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소독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소독약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거의 모든 지자체들은 질병관리본부가 권고하는 소독법인 ‘헝겊에 소독약 묻혀 닦기’ 대신 약품을 뿌리는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뉴스톱은 일선 지자체의 코로나19 방역 소독 실태를 [K-방역의 뒷면, 시늉에 그친 코로나19 소독] 시리즈로 4회에 걸쳐 기록한다. 왜 일선 지자체 공무원들은 효과 없는 소독약과 소독 방식을 선택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반드시 재연될 향후 감염병 사태에서 방역 소독이 전시행정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다.

[K-방역의 그늘, 시늉에 그친 코로나19 소독] 시리즈 

① 전국 지자체, 코로나19 잡는다며 살충제 뿌렸다 

② 길거리 소독, 세금을 '길에 뿌린' 지자체

③ '소독약 뿌리는 장면' 반복 보도, 언론도 공범

④ 뿌리면 오히려 위험하다...닦고 문 열고 손 씻기!

<코로나19 바이러스 소독>이라는 용어를 봤을 때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인가? 대번 흰 방역복을 입은 사람들이 약통을 둘러메고 거리에 약을 뿌리는 장면일 것이다. 수많은 방송, 인터넷, 신문 등 매체를 가리지 않고 '뿌리는' 장면을 내보낸다.

전문 방역업체 직원들이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내부를 소독하고 있는 모습이 서초구 구정홍보지에 실렸다.
전문 방역업체 직원들이 서초구 고속버스터미널 내부를 소독하고 있는 모습이 서초구 구정홍보지에 실렸다.

 

◈뿌리기만 해선 효과 없다?

과연 뿌리는 방식은 효과가 있을까? 아니다. 정부는 오히려 뿌리는 방식을 사용하지 말라고 누차 강조했다. 질병관리본부는 뿌리는 방식의 비효율성을 지적한다. 우선 개방된 실외 공간을 소독하는 행위 자체가 거의 무의미하다. 코로나19는 비말 또는 접촉전파(간접전파) 방식에 의해 감염되는데 실외 공간(공기 중)에 아무리 소독약을 뿌려봐야 감염 가능성을 낮출 수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존재한다고 해도 순식간에 확산되거나 중력에 이끌려 바닥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소독약 역시 공기 중으로 확산되거나 땅에 떨어지기 때문에 소독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그리고 실내 공간에서는 소독약을 뿌릴 경우 물체 표면에 균일하게 소독약이 묻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독 효과가 떨어진다는 입장이다. 소독약을 뿌릴 경우 물체의 표면이 흥건히 젖을 정도로 뿌려야하는데 이 정도로 양을 뿌리면 반드시 남용의 피해를 겪게 된다.

 

5월 17일 중앙방역대책본부 정례브리핑에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길거리에 뿌리는 방식의 방역소독을 하지 말 것을 요청하고 있다.
5월 17일 중앙방역대책본부 정례브리핑에서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이 길거리에 뿌리는 방식의 방역소독을 하지 말 것을 요청하고 있다.

 

◈많이 뿌릴수록 위험하다

환경부는 뿌리는 방식의 위험성을 강조한다. 환경부는 지침에서 "소독제의 성분이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효과를 보이는 농도라면 피부, 눈, 호흡기에도 자극을 주게 됩니다. 따라서 공기 중에 분무·분사 등의 인체 노출 위험이 높은 소독방식은 권장하지 않습니다"라고 밝혔다. 

소독제를 공간에 뿌리기보다는 신체 접촉이 잦은 물체 표면을 위주로 소독제를 사용해 자주 닦고, 일정 시간이 지난 뒤 물을 적신 천 등으로 닦아내는 방법이 효과적이라는 설명이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 본부장은 5월 17일 오후 정례브리핑에서 “실외에서 소독하는 경우 효과가 크지 않아 권장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실내공간은 손이 많이 가는 문고리나 표면, 탁자 등을 소독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사람들과의 접촉이 많은 표면을 알코올이나 가정용 락스(차염소산나트륨) 같은 소독제를 희석시킨 뒤 천에 적셔서 표면을 깨끗이 닦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고 부연했다. 

약품을 분사하는 방식은 에어로졸을 발생시켜 표면에 붙어있던 바이러스가 공기 중으로 재확산될 우려가 있다는 게 질병관리본부의 입장이다.

서울지하철의 코로나19 방역소독 활동 관련 포스터. 질병관리본부 권고대로 소독약을 묻힌 헝겊으로 개찰구를 소독하고 있다.
서울지하철의 코로나19 방역소독 활동 관련 포스터. 질병관리본부 권고대로 소독약을 묻힌 헝겊으로 개찰구를 소독하고 있다.

 

◈길거리에 헛되이 뿌려진 소독약만 500억

뉴스톱이 전국 229개 지자체의 코로나19 방역소독제 사용 내역을 전수 조사한 결과 지침과는 동떨어진 현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전국 시군구 가운데 82곳(35.8%)은 헝겊으로 닦는 방식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이들 지자체에겐 코로나19 방역 소독은 '소독약을 뿌리는 행위' 그 자체인 것이다. 지자체 방역 담당 공무원들에게 이유를 물었다. A지자체 방역 소독 담당자는 "장소가 넓은 곳은 일일이 걸레로 닦기가 어렵다"고 항변했다. 그는 "손이 닿는 곳은 소독약을 뿌린 뒤 천으로 닦기도 하지만 손이 닿지 않거나 넓은 공간은 소독약을 뿌린 뒤 일일이 닦아내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질병관리본부의 권고대로라면 손이 닿지 않는 곳은 소독약을 뿌리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낫다.

소독약을 뿌리지 않고 질병관리본부의 권고대로 헝겊에 적셔 문질러 닦는 방법 만을 사용하는 지자체는 단 4곳(1.7%)에 불과했다. 뉴스톱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파악한 전국 지자체의 코로나19 방역 소독약 구입비용은 최소 1394억원 이다.(일부 지자체들이 소독약 구매비용을 비공개했기 때문) 천에 묻혀 닦는 방법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지자체가 35.8%라는 점을 감안하면 세금 499억원 이상이 헛되이 뿌려진 셈이다. 

 

◈인건비 부담에 닦는 방법 꺼려

인건비 부담도 지자체들이 약품을 뿌리는 소독 방법을 채택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규모가 큰 다중이용시설의 경우 천으로 닦아내는 방식으로 소독을 하게 되면 작업 시간이 길어지고 많은 인력을 동원해야 하는데 인건비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일부 지자체는 소독 업무를 용역업체에 위탁하기도 했지만 상당수는 소독 업무를 전담할 일용직이나 기간제 근로자를 고용했다. 지자체 소속 정규 공무원들이 직접 방역 소독 작업에 투입한 지자체도 다수이다. 

그러나 약품을 뿌리는 방식은 적은 인력으로도 넓은 면적을 빠른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있어 비용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그러나 코로나19바이러스를 잡는 가장 확실한 방법(소독약을 적신 헝겊으로 문질러 닦기)을 놔두고 경제적 이유를 들어 소독효과가 불확실한 뿌리는 방법을 채택하는 것은 보여주기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육군 32사단 화생방 지원대 장병들의 코로나19 방역소독 지원작전. 소독약이 밀대걸레를 적시는 방식을 채용해 질병관리본부의 지침을 충족할 수 있었다. 사진출처:국방홍보원

그러나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안전하면서도 효과적이고 비용부담도 적은 방역 소독을 실시할 수 있다. 

국방홍보원은 지난 4월 육군32사단 화생방지원대의 활약을 소개했다. 32사단 화생방지원대가  ‘다중이용시설 전용 방역 장비’를 자체 개발했다는 내용이다. 이 장비는 방역기와 대걸레를 일체형으로 결합한 형태로, 버튼만 누르면 소독제가 걸레 부분에 자동으로 스며들어 그대로 닦기만 하면 된다. 소독제가 광범위하게 분사돼 시민들에게 불편을 끼치거나, 필요 이상으로 많은 양의 소독제가 소요될 우려가 없다. 또 소독제 살포·도포·닦기 3단계 과정을 한 번에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어 시간도 대폭 절약할 수 있다.

 

◈길거리 소독은 제발 이제 그만

전국 대부분의 지자체는 1월~5월15일 기간 동안 길거리 소독에 많은 공을 들였다. 서울시는 수도방위사령부의 지원을 받아 서울 곳곳에 제독차를 이용한 도로 방역을 실시했다. 육중한 트럭 앞뒤에 달려있는 노즐에서 흰색 포말 형태의 소독약을 뿌려댔으니 전시 효과는 만점이었다. 대구, 광주 등 전국 각지에서 화생방 지원부대들이 제독차량을 동원해 도심 도로에 소독약을 뿌렸다. 하지만 실질적인 방역 효과는 얼마나 거뒀을까?

육군 2작전사령부 화생방 지원부대가 신천지교회 부근 도로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육군 2작전사령부 화생방 지원부대가 신천지교회 부근 도로에 소독약을 뿌리고 있다. 출처: 국방홍보원

 

지난 4월15일 총선을 앞두고는 총선 출마자들이 너도나도 약통을 울터메고 길거리에 소독약을 뿌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서울 구로구, 경기 화성시 등 일부 자치구들은 방역 소독차 또는 특장차를 야외 소독에 동원했다.

경기 성남시는 드론을 이용해 소독약을 살포하기도 했다. 성남시는 "영국의  국영방송인 BBC의 대표 테크뉴스 프로그램의 최신 에피소드, ‘The Race To Save Lives’ (생명을 살리기 위한 레이스) 에서 코로나19에 맞서 드론을 활용한 선진 사례로 소개되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드론이 다중이용시설 내부로 접근할 수 없는데다가 소독약을 뿌리는 것에 한정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 또한 큰 방역 효율성을 기대할 수 없는 방식이다.

한 지자체 방역 담당자는 뉴스톱에 "비효율적이라는 것도 알고 질본의 지침에 위배된다는 것도 알지만 주민들의 요구가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분무식을 사용한다"고 털어놨다. 소독약이 하얗게 뿌려지는 모습을 봐야 주민들이 안심하기 때문에 약품을 뿌리는 방식을 사용할 수 밖에 없다는 변명이다. 일종의 플라시보 효과다. 

하지만 다른 지자체 방역 담당자의 말은 또 달랐다. 이 담당자는 "코로나19 초기엔 우리 마을에 와서 소독약을 뿌려달라는 민원이 많았다"고 전했다. 하지만 그는 "이장 회의에 찾아가 뿌리는 소독 방식은 효과가 없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소독약을 묻혀 닦아내는 방식을 사용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니 주민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③언론도 한 몫... 약통 메고 뿌리는 이미지는 이제 그만!!> 기사로 이어집니다.

 

2020년 6월29일 11:13 기사수정> 독자 김진흥님의 제보에 따라 서울 마포구 사례를 재점검한 결과 일부 '소독약을 뿌리는 방법'으로 방역이 진행된 것이 확인됐습니다. 따라서 질병관리본부의 지침을 모두 준수한 지자체는 5곳→4곳으로 정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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