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식장에서 계란후라이가 나온다면? 삶, 음식, 가족의 영화속 하모니

  • 기자명 홍상현
  • 기사승인 2020.07.02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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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으로 향하는 내내 거리에 잔류해있는 겨울의 스산함을 느꼈다.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로 높아지던 일상복귀의 기대조차 무색할 만큼의 고요. 오랜만의 야간외출이 갑작스레 날아든 부고 때문이었음을 상기하며 입술을 깨문다. 수면제 장복에 따른 우울증이 언제 다시 도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역설적으로 20여 년 전 어느 날. 봄볕 가득한 백양로를 가로지르며 나눈 대화를 소환한 것은 바로 그 때다.

토키와 시로 감독의 첫 장편상업영화 「최초의 만찬」은“정성을 들이고 애정을 담아,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낸 음식이 마음을 키우는 모습, 쌓여가는 세월의 행보를 깊이 있게 묘사”했다는 평을 들으며, 「블루 아워」로 심은경이 최우수주연여우상을 받은 다카사키영화제의 최우수감독상을 거머쥐었다. 사진제공: Ⓒ2019 「최초의 만찬」 제작위원회
토키와 시로 감독의 첫 장편상업영화 「최초의 만찬」은 “정성을 들이고 애정을 담아,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낸 음식이 마음을 키우는 모습, 쌓여가는 세월의 행보를 깊이 있게 묘사”했다는 평을 들으며, 「블루 아워」로 심은경이 최우수주연여우상을 받은 다카사키영화제의 최우수감독상을 거머쥐었다. 사진제공: Ⓒ2019 「최초의 만찬」 제작위원회

“말의 의미는 알겠는데 공감하긴 어려운 문제가 하나 있어.”

“뭔데?”

“응. 자란 환경이 달라서 그런지 몰라도 나는 통 모르겠던데...”

“...?”

“외국에서 김치를 구하기 어려워서 힘들다는 게 왜 그런 거야?”

또래들에 비해 무척 어른스럽다는 평을 듣던 대학동기가 낮은 한숨을 쉬며 운을 떼었다.

“네가 매운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안다만 그건 좀 다른 얘기 같다. 캅사이신의 중독성보다 김치라는 음식이랑 같이 떠오르는 기억이란 게 있어. ‘그리움’ 같은 감정이 뒤섞인. 예컨대 우리 집은 김장하는 날이 꼭 잔칫집 같았거든. 그래서 요즘도 햇김치를 먹을 때마다 할머니 생각이 나지.”

이후 읽었던 어떤 문화학자들의 저작에서도 ‘가정식’과 가족이 모여 그것을 나누는 행위에 대한 이토록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접해보지 못했다.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특유의 여유로운 성품으로 항상 내면의 폭풍우를 안고 사는 필자를 추슬러주는 동업자가 인사한다. 캔 맥주와 전을 올린 종이접시 몇 개를 놓고 앉아 다시 태어나도 배울 수 없을 푸근함을 유산으로 남기신 고인을 어림하는 사이, 의식은 <최초의 만찬>이 던져준 묵직한 감동을 기억해내고 있었다.

「최초의 만찬」을 만들기 이전까지 CMㆍ뮤직비디오 등을 넘나들며 ‘전방위’영상디렉터로 활약해온 토키와 시로 감독은 2005년 첫 번째 장편독립영화 「130센티미터」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월드판타스틱시네마 부문에 초청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사진제공: 토키와 시로 감독
「최초의 만찬」을 만들기 이전까지 CMㆍ뮤직비디오 등을 넘나들며 ‘전방위’ 영상디렉터로 활약해온 토키와 시로 감독은 2005년 첫 번째 장편독립영화 「130센티미터」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월드판타스틱시네마 부문에 초청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사진제공: 토키와 시로 감독

토키와 시로 감독의 첫 장편상업영화인 이 작품은 도입부에서 부친의 부음을 듣고 귀성한 주인공과 갑작스레 주문한 장례음식을 취소해버리는 의붓어머니를 대비시키는 ‘영화적 의외성(unexpectedness in the film)’으로 관객의 주의를 모은다. 그리고 차례차례 등장하는 ‘집밥’ 메뉴들과, 여기 견고한 짜임새로 결합해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뿔뿔이 흩어져 있던 의붓가정(step family)의 재결합을 그려낸다. “정성을 들이고 애정을 담아, 누군가를 위해 만들어낸 음식이 마음을 키우는 모습, 쌓여가는 세월의 행보를 깊이 있게 묘사”했다는 다카사키영화제의 최우수감독상 수상이유가 실로 적확하다.

34년의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며 심은경에게 <블루 아워>로 최우수주연여우상을 안기기도 한 이 영화제에서 <최초의 만찬>은 최우수감독상, 최우수조연여우ㆍ남우상, 최우수신인남우상 등 총 4개 부문을 석권했다. 또한 인상적인 것은 이 작품을 만들기 이전까지 CMㆍ뮤직비디오 등을 넘나들며 ‘전방위’ 영상디렉터로 활약해온 토키와 감독이 이미 15년 전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는 사실. 그는 2005년 첫 번째 장편독립영화 <130센티미터>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월드판타스틱시네마 부문에 초청되었다.

도입부에서 부친의 부음을 듣고 귀성한 주인공과 갑작스레 주문한 장례음식을 취소해버리는 의붓어머니를 대비시킨‘영화적 의외성’으로 관객의 주의를 모으는 「최초의 만찬」은 차례차례 등장하는‘집밥’메뉴들과, 견고한 짜임새로 결합해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뿔뿔이 흩어져 있던 의붓가정의 재결합을 그려낸다. (사진은 최우수조연여우상을 받은 사이토 유키) 사진제공: Ⓒ2019 「최초의 만찬」 제작위원회
도입부에서 부친의 부음을 듣고 귀성한 주인공과 갑작스레 주문한 장례음식을 취소해버리는 의붓어머니를 대비시킨 ‘영화적 의외성’으로 관객의 주의를 모으는 「최초의 만찬」은 차례차례 등장하는 ‘집밥’ 메뉴들과, 견고한 짜임새로 결합해있는 에피소드를 통해 뿔뿔이 흩어져 있던 의붓가정의 재결합을 그려낸다. (사진은 최우수조연여우상을 받은 사이토 유키) 사진제공: Ⓒ2019 「최초의 만찬」 제작위원회

홍상현

심은경 배우의 수상 여부가 궁금해서 다카사키영화제 시상식 중계를 지켜보다 깜짝 놀랐다. (웃음) 한국과 오랜 인연이 있기도 하지만 한국영화 사랑이 워낙 각별한 걸로 유명한데.

토키와 시로

한국영화, 그리고 한국영화계를 바라볼 때마다 늘 국제무대를 염두에 두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해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아닐까. 전부터 늘 영화문화에 대한 대우와 영화자체를 깊이 사랑하는 한국이 훌륭하다고 생각해왔다.

 

홍상현

좋아하는 한국 감독이나 배우 등이 있으신지.

토키와 시로

오래전부터 봉준호 감독님을 좋아했다. <살인의 추억>, <마더> 등, 영화를 다 보고나면 밀려오는, 뭐라 말할 수 없는 느낌이 좋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 자주 출연하시는 송강호 배우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있고, 그밖에 이창동 감독님의 작품도 좋아한다.

「최초의 만찬」의 기획 작업이 시작된 것은 7년 전. 토키와 시로 감독은 한 프로듀서로부터“스텝 패밀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당신만한 적임자가 없을 것 같다”는 말을 듣는 순간, 부친의 장례식을 떠올렸다고 한다. (사진 오른쪽은 최우수신인남우상을 받은 라이쿠) 사진제공: Ⓒ2019 「최초의 만찬」 제작위원회
「최초의 만찬」의 기획 작업이 시작된 것은 7년 전. 토키와 시로 감독은 한 프로듀서로부터 “의붓가정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당신만한 적임자가 없을 것 같다”는 말을 듣는 순간, 부친의 장례식을 떠올렸다고 한다. (사진 오른쪽은 최우수신인남우상을 받은 라이쿠) 사진제공: Ⓒ2019 「최초의 만찬」 제작위원회

홍상현

장편독립영화를 만들자마자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고, 폭넓은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아왔다. 더 일찍 장편상업영화 감독으로 데뷔하려고 했더라도 가능했을 텐데.

토키와 시로

어찌 보면 늦은 감독 데뷔일지도 모르지만, 정작 저 자신은 별로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도리어 단편영화를 차근차근 만들어 왔으니 장편상업영화 데뷔작 <최초의 만찬>도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한다. 자신감을 가지고 임할 수 있었고.

<최초의 만찬>은 기획 단계까지 포함해 7년 넘는 시간을 투자한 작품이다. 시나리오와 저에 대한 믿음 하나로 최고의 캐스트와 스태프가 모였다. 미련 없이 제 길을 걸어왔기에 그런 신뢰를 받을 수 있었을 거라 믿는다.

 

홍상현

2006년 제작해 화제가 되고, 상업적 성공까지 거둔 다큐멘터리 주인공이 밴드였을 만큼 음악에 대한 애정이 깊고, 그간 연출한 CM에서 BGM이 모델 이상의 임팩트를 줄 만큼 음악적 감각이 뛰어나다.

토키와 시로

음악은 제 삶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이미 대여섯 살 무렵부터 영화음악을 들으면서 자라왔으니까. 부모님의 영향이 아니라 제 선택이었다. 당시부터 영화를 좋아했는데 집에 비디오플레이어가 없었다. 극장에서 봤던 영화의 세계에 빠져있고 싶다는 생각에 늘 사운드트랙을 들었다. 영화감독을 ‘직업’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게 10살 때인데 그밖에 다른 길은 상상도 못해봤다.

“장례란 고인을 배웅하는 의식인 한편, 모인 사람들과 고인 사이의 유대를 재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이들에게는 같으면서도 다른 고인의 얼굴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생전의 고인과 관련된 사람들의 애피소드로 인물의 다양한 면모를 부각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토키와 시로 감독의 말이다. 사진제공: Ⓒ2019 「최초의 만찬」 제작위원회
“장례란 고인을 배웅하는 의식인 한편, 모인 사람들과 고인 사이의 유대를 재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들에게는 같으면서도 다른 고인의 얼굴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생전의 고인과 관련된 사람들의 애피소드로 인물의 다양한 면모를 부각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토키와 시로 감독의 말이다. 사진제공: Ⓒ2019 「최초의 만찬」 제작위원회

홍상현

토키와 시로라는 감독이 가진 최고의 강점은 이른바 “스토리텔러(storyteller)”로서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유지하기 위해 평소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시는가.

토키와 시로

말씀처럼 스토리텔링은 제가 영화의 가장 큰 강점으로 살려가고 싶은 요소다. 무엇보다 중요하고. 다만, 스스로 너무 좋아서, 빠져들어 하는 일이기에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또, 재능에 관한 대답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말씀드릴 수 있는 점은, 어떤 작업을 하든 절대로 도중에 내팽개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나리오를 쓰는(또는 영화를 만드는) 작업은 제 모든 것을 쏟아 부어야 하는 일이라 중간에 포기하면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그러니 어떻게든 써내려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거 아닐까. (웃음)

 

홍상현

<축제>라고 하는 한국영화도 ‘장례’에서 재회하는 가족을 그린다. 다만, 이청준이라는 문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기에 <최초의 만찬> 또한 막연히 원작이 따로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감독이 직접 쓰신 오리지널 시나리오였다.

토키와 시로

7년 전, 한 프로듀서로부터 “의붓가정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은데, 당신만한 적임자가 없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최초의 만찬>의 시작이다. 부친의 장례식을 떠올렸고, 이를 토대로 스태프들과 기획 작업을 시작했다. 부친과 함께한 추억을 돌아보면서 깨달은 건 그것이 대부분 ‘음식’과 얽혀있다는 사실이었다. 바로 이 ‘음식’에 관한 주인공들의 기억을 소환하다 보면 하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 제작사ㆍ배급사 분들이 백업에 나서주시면서 영화제작이 실현되었다.

감독의 페르소나를 연기한 소메타니 쇼타 배우(가운데)는 촬영장에서 계속 감독을 관찰했다. 직접‘어떤 성격이냐,’ 혹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등을 묻기보다 관찰을 통해 캐릭터를 잡아내려 한 것이다. 사진제공: Ⓒ2019 「최초의 만찬」 제작위원회
감독의 페르소나를 연기한 소메타니 쇼타 배우(가운데)는 촬영장에서 계속 감독을 관찰했다. 직접‘어떤 성격이냐,’ 혹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등을 묻기보다 관찰을 통해 캐릭터를 잡아내려 한 것이다. 사진제공: Ⓒ2019 「최초의 만찬」 제작위원회

홍상현

그래서인가. 등장인물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산만해지는 게 아니라 스토리에 몰입하게 된다.

토키와 시로

장례란 고인을 배웅하는 의식인 한편, 모인 사람들과 고인 사이의 유대를 재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고인과 아들, 고인과 딸, 고인과 아내, 고인과 친구...

이들에게는 같으면서도 다른 고인의 얼굴이 보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생전의 고인과 관련된 사람들의 애피소드로 인물의 다양한 면모를 부각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인간은 다면적인 존재다. 이를 본인이 아닌 그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보여주는 거다.

 

홍상현

한국에서도 장례라고 하면 육개장 같은 음식을 떠올린다. “망자가 자신을 기리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베푸는 후의”로써의 의미다.

토키와 시로

장례식장에서 음식을 대접하는 데는 말씀처럼 조문객에 대한 감사 외에 먹을 것을 나눔으로써 고인을 추억하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초의 만찬>에서 어머니가 가족ㆍ친지들에게 손수 만든 소박한 음식을 대접한 것도 아버지를 기억해주기 바라서다.

한국 관객들에게는 「데스 노트」 시리즈를 통해 알려진 토다 에리카 배우(사진 왼쪽)는 촬영이 진행되는 내내 토키와 시로 감독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며 연기에 임해주었다고 한다. 사진제공: Ⓒ2019 「최초의 만찬」 제작위원회
한국 관객들에게는 「데스 노트」 시리즈를 통해 알려진 토다 에리카 배우(사진 왼쪽)는 촬영이 진행되는 내내 토키와 시로 감독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며 연기에 임해주었다고 한다. 사진제공: Ⓒ2019 「최초의 만찬」 제작위원회

홍상현

누구도 장례식장에서 나오는 음식일 거라고 예상할 수 없는 계란프라이가 등장하는 게 특히 인상적이었다.

토키와 시로

관객들에게 보통 장례식의 전개와 다르다는 걸 보여 주는 게 중요했다. 다만 에피소드 자체는 제 어린 시절 기억에서 가져왔다. 어머니가 맹장 수술로 입원을 하셨는데, 요리가 서툴던 부친이 음식을 만들어 주셨고, 그것을 두고두고 자랑했거든. 계란프라이는 아니었지만. (웃음)

 

홍상현

<최초의 만찬>은 장편상업영화의 소비방식이 아니라 먼저 국제영화제를 통해 국제무대에서 인정받아 보자는 의도로 만들어진 작품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토키와 시로

그렇다. 해외 관객 여러분께서 봐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래서 프로듀서, 스태프, 캐스트, 모두 특별한 마음가짐으로 작품에 임했고.

가족이란 어떤 문화에서든 존재할 것이고, 따라서 어느 나라 관객이든 공감해주시는 부분이 많을 거라 생각했다. 당연히 ‘음식’과 관련해서도 관객들이 속한 문화권의 ‘가정식'을 떠올려주시길 바랐다. 특히 제 첫 장편독립영화를 영화제에 초청해 주셨던 한국 관객 여러분께서.

아직도 「Go」에서의 강렬한 이미지를 기억하는 관객이 많은 쿠보츠카 요스케 배우에 대해 토키와 시로 감독은 “현관문을 여는 순간 (영상에 보이지 않는) 공기에 변화를 줄 정도로 존재감을 어필해주었으면 했다”고 한다. 쿠보츠카 배우는 이를 훌륭하게 체현해 주었고. 그 결과 「최초의 만찬」의 수상리스트에 최우수조연남우상이 추가되었다. 사진제공: Ⓒ2019 「최초의 만찬」 제작위원회
아직도 「Go」에서의 강렬한 이미지를 기억하는 관객이 많은 쿠보츠카 요스케 배우에 대해 토키와 시로 감독은 “현관문을 여는 순간 (영상에 보이지 않는) 공기에 변화를 줄 정도로 존재감을 어필해주었으면 했다”고 한다. 쿠보츠카 배우는 이를 훌륭하게 체현해 주었고. 그 결과 「최초의 만찬」의 수상리스트에 최우수조연남우상이 추가되었다. 사진제공: Ⓒ2019 「최초의 만찬」 제작위원회

홍상현

저예산 영화라는 것을 믿기 어려울 만큼 호화로운 캐스팅이 돋보인다.

토키와 시로

시나리오가 매력을 지니고 있지 않았으면 그토록 뛰어난 캐스트와 스태프를 모을 수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제 경우 첫 장편상업영화이다 보니 더더욱 그랬고.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봐주셨겠지. 깊은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는데 자부심을 느낀다.

 

홍상현

주연을 맡은 소메타니 쇼타 배우가 감독의 페르소나인 ‘린타로’라는 캐릭터를 잘 소화해냈다.

토키와 시로

전부터 연기자로서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기본적인 신뢰가 있었다. 그래서 우선은 그 자신이 원하는 연기를 보고, 이를 다시 조정하는 느낌으로 연출을 진행했다. 그런데 연기플랜 면에서 저와 그의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더라.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소메타니 배우는 촬영장에서 계속 저를 관찰하고 있었다고 한다. 직접 ‘어떤 성격이냐,’ 혹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등을 묻기보다 관찰을 통해 린타로라는 캐릭터를 잡아내려 했던 거다. 그런 말을 들으니 좀 쑥스러웠다. (웃음)

「최초의 만찬」의 촬영감독은 수많은 관객들이 “인생영화”로 꼽는 기타노 다케시의 감독ㆍ주연작 「하나-비」에서 촬영을 맡았던 야마모토 히데오 촬영감독이다. 야마모토 감독은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토키와 시로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사진제공: Ⓒ2019 「최초의 만찬」 제작위원회
「최초의 만찬」의 촬영감독은 수많은 관객들이 “인생영화”로 꼽는 기타노 다케시의 감독ㆍ주연작 「하나-비」에서 촬영을 맡았던 야마모토 히데오 촬영감독이다. 야마모토 감독은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토키와 시로 감독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사진제공: Ⓒ2019 「최초의 만찬」 제작위원회

홍상현

한국 관객들에게는 <데스 노트> 시리즈를 통해 알려진 토다 에리카 배우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토키와 시로

토다 배우는 촬영이 진행되는 내내 저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면서 연기에 임해주셨다. 어쩌면 제 각본에 연기플랜을 위한 단서가 많이 포함되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웃음) 제가 직접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라서인지 몰라도 현장에서 캐스트와 의견이 엇갈렸던 적이 거의 없다.

 

홍상현

쿠보츠카 요스케 배우의 경우 아직도 <Go>에서의 강렬한 이미지를 기억하는 관객이 많다. 다만, 어떤 감독을 만나느냐에 따라 무척 다른 연기의 양상을 보여주는 걸로도 유명한데, <최초의 만찬>에서는 결과가 무척 성공적이었다.

토키와 시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정말 기쁘다.

쿠보즈카 군은 지금까지 액티브 한 이미지의 역할을 많이 맡았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그의 일면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이번에 맡은 캐릭터에서는 일견 평범한 듯하지만, 등장하는 후반부에 등장해 현관문을 여는 순간 (영상에 보이지 않는) 공기에 변화를 줄 정도로 존재감을 어필해주었으면 했다. 물론 훌륭하게 체현해 주었고. 다카사키영화제에서 최우수조연남우상을 받은 그가 자랑스럽다.

「최초의 만찬」에는 저예산 영화라는 사실을 믿기 힘들 정도의 화려한 캐스트가 등장하는 한편, 이전에 단 한 번도 토키와 시로 감독과 일해본 적이 없는 업계 최고의 스태프가 함께해 화제가 되었다. 그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은 토키와 감독의 ‘스토리텔러’로서의 재능이었다. 사진제공: Ⓒ2019 「최초의 만찬」 제작위원회
「최초의 만찬」에는 저예산 영화라는 사실을 믿기 힘들 정도의 화려한 캐스트가 등장하는 한편, 이전에 단 한 번도 토키와 시로 감독과 일해본 적이 없는 업계 최고의 스태프가 함께해 화제가 되었다. 그들을 한자리에 모은 것은 토키와 감독의 ‘스토리텔러’로서의 재능이었다. 사진제공: Ⓒ2019 「최초의 만찬」 제작위원회

홍상현

작품의 비주얼이 훌륭하다 싶었는데 역시 엔딩 크레디트를 보니 <하나-비>의 야마모토 히데오 촬영감독의 이름이 있었다.

토키와 시로

이전에 한 번도 같이 일해본적 없었는데,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제안을 받아들여 주셨다. 아니, 실은 다른 스태프도 마찬가지였다. <최초의 만찬>의 스태프 가운데 예전에 저와 일해 보았던 분은 단 한사람도 없다. 그런 분들이 심지어 하나같이 업계 톱클래스의 실력을 가지고 계셔서 일하기 너무 수월했다. 온 힘을 다해 저를 뒷받침해 주신 것에 깊이 감사한다.

야마모토 감독과는 사전에 몇 번 작업내용에 대해 협의를 진행했지만 촬영현장에서는 둘 다 그런 사항들을 의식하지 않았다. 보다 순수하게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파악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해서다. 덕분에 배우의 표정이나 풍경 등 시시각각 변하는 가장 좋은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낼 수 있었다.

「130센티미터」를 발표한지 15년 만에 「최초의 만찬」의 국제영화제 출품을 통해 ‘금의환향’하려던 토키와 시로 감독의 꿈은 코로나 19의 폭발적인 확산으로 좌절되었다. 그럼에도 토키와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 안심하고 영화관을 찾는 날 한국 관객들과 재회하려는 꿈을. 출전: 토키와 시로 감독 트위터
「130센티미터」를 발표한지 15년 만에 「최초의 만찬」의 국제영화제 출품을 통해 ‘금의환향’하려던 토키와 시로 감독의 꿈은 코로나 19의 폭발적인 확산으로 좌절되었다. 그럼에도 토키와 감독은 포기하지 않았다. 우리 모두 안심하고 영화관을 찾는 날 한국 관객들과 재회하려는 꿈을. 사진제공: 토키와 시로 감독

“제 입으로 <최초의 만찬>이라는 작품에 대해 제 뭐라고 말씀을 드리기가 십지 않네요. 영화는 관객의 관람을 통해 완결되는 예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요. 다만 한 가지, <최초의 만찬>에서 ‘가족’에 대해 큰 질문을 던졌기 때문에 같은 소재의 작품은 다시 만들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보다, 코로나바이러스의 소용돌이 속에서 온 세계 사람들이 큰 상처를 입고 계신데요. 우선은 모든 인류가 협력해서 바이러스를 이겨낸 뒤에, 부디 안심하고 영화관을 찾을 수 있는 일상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하루빨리 한국 관객 여러분과도 다시 만나고 싶고요. 마지막으로 여러분 모두와 가족 분들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는 그의 어조에서 가장 진하게 배어나오는 감정은 홀가분함이나 뿌듯함이 아닌 안타까움과 아쉬움이었다. 충분히 이해할만했다. <최초의 만찬>에게 4관왕의 영광을 안겨준 다카사키영화제는 한국에 비해 낮은 1인당 검사율에도 불구하고 가파른 상향곡선을 그리며 확산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시상식을 제외한 모든 일정을 중지했다. 뿐만이 아니다. 영화제 기간이 끝난 지 이틀 뒤에 나온 긴급사태선언에 따라 영화 상영은 물론 해외영화제 출품 등과 관련한 모든 일정에 차질이 빚어졌다. 결국 첫 장편독립영화인 <130센티미터>를 발표한지 15년 만에 ‘금의환향’해 한국의 관객과 재회하려던 토키와 감독의 계획도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마지막 메시지에서 영화에 대한 소개보다 한국 관객들에 대한 염려를 전하는 그의 말에는 <최초의 만찬>이 재정의해 준 친애(親愛)의 느낌이 배어나왔다.

하지만 딱히 의로의 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그저, 우리 모두 마스크나 발열체크 없이 극장 문을 들어서는 일상의 은총을 돌려받는 어느 날, 자신의 작품이 상영되는 서울의 어느 영화관 객석에 설레는 표정으로 앉아있는 그의 모습을 상상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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