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동생은 채찍, 오빠는 당근...군사행동계획 보류로 협상 여지 남긴 김정은

  • 기자명 김준일 기자
  • 기사승인 2020.06.24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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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3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75차 회의 예비회의를 주재한 뒤 대남 군사행동계획들을 보류했다고 노동신문이 24일 보도했습니다. 이날 회의에서는 주요 군사정책 토의안 심의가 이뤄졌고 전쟁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국가적 대책을 반영한 여러 문건도 논의됐습니다. '대남 군사행동 계획 보류한 김정은', 이 뉴스의 행간을 살펴보겠습니다.

 

1. 17일만에 건재 과시한 김정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공식석상에 나타난 것은 지난7일 당 정치국회의가 마지막입니다. 지난 4일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과 통일선전부가 대북전단 살포를 비난하는 담화를 낸 직후 열린 정치국 회의여서 주목을 받았지만 김정은 위원장은 남한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김 위원장은 회의에서 대남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채 민생 문제에 철저히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후 김여정 부부장 주도로 각종 대남 성명이 줄을 이었고, 남북연락사무소 폭파와 대남삐라 준비, 디엠지 군 배치 계획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17일 동안 잠행이 이어지자, 일부에서는 다시 김정은 '건강이상설'을 제기했습니다. 신변에 이상이 생기자 김여정 후계자 구도를 본격화하기 위해 김여정을 전면에 내세웠다는 겁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잠행과 깜짝 복귀는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4월 11일 당 정치국 회의 이후 4월 15일 태양절 참배식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김정은 뇌사설 등 각종 썰들이 불거졌지만 보란듯이 20일만에 5월 1일 순천비료인공장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후 23일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24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회의에 나타나 전략무기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했습니다. 이후 14일간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6월 7일 당 정치국 회의에 모습을 드러냈고, 다시 17일 잠행 이후 다시 중앙군사위원회 회의에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이번에 노동신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존재감을 극대화하려는 전략 중 하나입니다. 

 

2. 여동생은 채찍, 오빠는 당근

김여정이 채찍이라면 김정은은 당근입니다. 당초 김정은 위원장이 나서지 않은 이유는 국가 최고 지도자가 한번 말을 꺼낼 경우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수가 있기 때문에 협상의 여지를 남기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남북 관계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 '짠'하고 나타나서 문제를 해결하는 정치력과 결단력을 보여주려는 전략인 겁니다. 지금 최고지도자가 남한에 대한 군사행동을 승인해버리면 협상카드가 남지 않는다는 고려도 했을 겁니다.

다른 이유는 미국의 군사적 압박이 본격화됐다는 점입니다. 미국 인도태평양사령부 발표에 따르면 미국 항공모함 두 척이 7함대 작전구역에 전진 배치됐습니다. 7함대 작전구역에는 한반도도 포함됩니다. 중국 해군력을 견제할 목적으로 전진배치된 것으로 보이지만 한반도 안보 정세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미군 폭격기 B-52도 최근 일본 열도 인근에 출격했고 미 공군 정찰기 리벳조인트 등도 대북감시 비행을 최근 실시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북한이 굳이 무리해서 군사적 도발을 하지 않는게 낫다는 현실적 상황도 고려됐을 겁니다.

하지만 노동신문 내용만으로 북한이 다시 협상 테이블에 앉으리라고 기대하는 건 너무 섣부른 판단일 수 있습니다. 대남군사행동을 취소가 아니라 보류했다는 것은 언제든지 다시 시행할 수 있다고 봐야 합니다.

 

3. 다시 넘어온 공

북한 총참모부는 지난 16일과 17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에 군대를 주둔시키는 등의 대남 군사행동을 할 것이고, 구체적 계획을 세워 중앙군사위의 승인을 받을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 위원장이 승인을 보류함에 따라 당분간 군사행동은 중단될 것으로 보입니다. 공이 다시 한국 정부에게로 넘어왔다는 뜻입니다.

최근 우리 정부는 북한의 비난과 요구조건에 대해 가능한 것은 수용하려고 노력중이었습니다. 최근 볼턴 회고록 폭로로 곤경에 빠진 상황이어서 문재인 정부는 안팎으로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이번 조치는, 우리 정부가 한번 숨고를 시간을 줬다는 의미입니다. 한국 정부는 이 기간 중 뭔가 극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국 정부의 조치가 미흡하고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할 경우 북한은 언제든지 군사적 조치를 재개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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