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의 그늘] ③'소독약 뿌리는 장면' 반복 보도, 언론도 공범

  • 기자명 권성진 기자
  • 기사승인 2020.06.24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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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전문 미디어 뉴스톱이 전국 229개 기초지자체(세종시, 제주시, 서귀포시 포함)를 전수조사한 결과 4곳(1.7%)만이 질병관리본부의 방역소독 지침을 준수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자체 99곳(43.2%)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소독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소독약을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거의 모든 지자체들은 질병관리본부가 권고하는 소독법인 ‘헝겊에 소독약 묻혀 닦기’ 대신 약품을 뿌리는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뉴스톱은 일선 지자체의 코로나19 방역 소독 실태를 [K-방역의 뒷면, 시늉에 그친 코로나19 소독] 시리즈로 4회에 걸쳐 기록한다. 왜 일선 지자체 공무원들은 효과 없는 소독약과 소독 방식을 선택했는지를 밝히고자 한다. 반드시 재연될 향후 감염병 사태에서 방역 소독이 전시행정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다.

[K-방역의 그늘, 시늉에 그친 코로나19 소독] 시리즈 

① 전국 지자체, 코로나19 잡는다며 살충제 뿌렸다 

② 길거리 소독, 세금을 '길에 뿌린' 지자체

③ '소독약 뿌리는 장면' 반복 보도, 언론도 공범

뿌리면 오히려 위험하다...닦고 문 열고 손 씻기!

<뉴스톱>은 '코로나19 방역 소독=소독약 뿌리기'라는 연상 작용이 굳어진 데는 언론의 원인 제공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판단했다. '소독약 뿌리는' 장면에 집착한 언론의 보도 행태를 확인하기 위해 1월 20일 (국내 최초 코로나 확진자 발생일) 이후 5월 25일(뉴스톱의 전수 조사 개시일)까지 지상파 3사 메인 뉴스의 방역소독 관련 꼭지의 영상을 분석했다. 

 

◈재탕 삼탕 소독약 뿌리는 이미지만

1월 20일 코로나19의 국내 첫 발병 이후 각 언론사들은 방역 소독 장면을 다수 보도했다. 뉴스톱은 지상파 3사의 메인 뉴스 중 방역 소독 장면이 노출된 꼭지의 수(오프닝 포함)를 계량했다. 단, 해외 사례는 제외했다. 

지상파 3사의 잘못된 보도 사진(뿌리는 모습 또는 연무기 분사)의 노출 추이.
지상파 3사의 잘못된 보도 사진(뿌리는 모습 또는 연무기 분사)의 노출 추이.

확인 결과, SBS가 74개, MBC가 66개, KBS가 46개로 SBS가 다른 지상파 방송보다 많은 보도량을 기록했다. 

방송사들은 코로나19 관련 뉴스를 보도하면서 방역소독 장면을 내보낼 때는 대부분 '소독약을 뿌리는' 장면을 선택했다. 화면 상당수가 재사용되기도 했다. 방역 담당자 서너 명이 신천지 교회를 등지고 길거리에 등짐 펌프로 분무식 방역 소독을 하는 모습과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에서 미립자형 분사기로 소독을 하는 모습이 방송사를 가리지 않고 재사용됐다. 

신천지 교회 당시 주변을 방역하는 사진. 해당 사진은 수 차례 재사용됐다.
신천지 교회 당시 주변을 방역하는 사진. 해당 사진은 수 차례 재사용됐다.

◈'뿌리기 vs 닦기' 장면 비율 '74대 3' 

방역당국은 올바른 코로나19 방역소독 방식으로 '천에 소독약을 충분히 적신 뒤 사람들의 손길이 많이 닿는 물체 표면을 닦아내라'고 권고한다. 소독약을 뿌리는 방법은 물체 표면에 소독약이 고르게 묻지 않아 충분한 살균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한 압력으로 소독약을 뿌리면 물체 표면에 내려앉았던 바이러스가 공기 중으로 다시 떠올라 오히려 감염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방송사들의 코로나19 방역 소독 관련 장면은 '소독약을 뿌리는' 방식 일변도였다. 방역당국의 권고대로 소독약을 헝겊에 적셔 닦는 모습은 극히 일부였다. 그나마 송출된 일부 장면도 뿌리는 모습과 닦는 모습이 함께 나온 장면이었다. 약통을 멘 방역 요원들이 지하철역 구내 바닥에 소독약을 뿌리면서 벽면을 걸레로 닦거나 버스 내부에 의자를 걸레로 닦는 장면이 많았다. 

MBC가 '천으로 닦는 장면'을 6꼭지에서 내보냈고 KBS가 4꼭지, SBS는 3꼭지를 내보내는 데 그쳤다. MBC의 경우 '소독약을 뿌리는 장면'이 포함된 보도가 66꼭지였던 반면 닦아내는 방식은 6꼭지로 11:1의 비율을 보였다. KBS의 경우 46:4, SBS의 경우 74:3으로 뿌리는 장면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뿌리는 그림을 선호하는 건 신문사도 마찬가지였다. 언론은 뭔가 긴박한 느낌을 주는 것을 방역 사진을 선호한다. 신문사가 방호복을 입고 소독약을 뿌리는 장면을 집중 게재하다보니, 지자체에서 그런 구도로 사진을 찍어서 보내는 일이 반복됐다. 언론과 지자체가 뿌리는 소독약 사태 '세금낭비의 공범'인 셈이다. 

적절한 '실내 소독 요령'을 소개하는 SBS 뉴스8
적절한 '실내 소독 요령'을 소개하는 SBS 뉴스8

특히 SBS와 KBS의 경우 적절한 소독 방법을 설명하는 꼭지를 내보내기도 했지만 자신들의 보도 영상에는 부적절한 방식의 소독 장면을 내보내는 자기모순적인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SBS는 2월 7일 최재욱 고려대학교 예방의학과 교수의 말을 인용해 헝겊에 소독제를 묻혀 표면을 닦는 방법을 소개했지만 당일 ‘사실은’ 보도에서는 실내에서 펌프식 분사 소독을 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내보냈다. KBS는 보다 적극적으로 3월 15일 “소독액 뿌리기보다는 닦아야 한다”는 보도를 내보냈지만 정작 이 꼭지 이외의 당일 뉴스에서는 소독약을 뿌리는 장면만 두 꼭지에 걸쳐 내보냈고 천으로 닦는 장면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올바른 실내 소독 방법을 소개하는 KBS 뉴스
올바른 실내 소독 방법을 소개하는 KBS 뉴스

◈'뉴스에 나오는 게 올바른 방법 아니유?'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방역 소독 이미지도 왜곡됐다. 이태원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승언씨(28세)는 ‘코로나19 방역’을 생각하면 “조끼 입고 지하철에서 약통을 둘러메고 소독약을 뿌리는 모습”이 떠오른다고 했다. 그는 "뉴스에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그들 덕분에 K-방역도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했다"고 덧붙였다. 

서울시 중구 소재 영화관에 근무하는 김모씨(29세)는 ‘코로나19 방역’을 들으면 “약통을 둘러메고 확진자가 방문한 경로에 소독약을 뿌리는 모습”이나 “자동 연무소독기로 실내를 소독하는 모습”부터 생각난다고 했다. 그가 근무지 인근 타 영화관에 코로나19 확진자가 방문한 적 있었고 뉴스에서 본 것처럼 수동식 분사기와 자동 연무소독기로 방역이 시행됐다. 그 모습을 보면서 김씨는 방역이 철저히 이뤄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안심과는 달리 방송 뉴스가 보여주는 소독약 뿌리는 장면은 질병관리본부에서 권장하지 않는 방역의 대표적인 사례다. 

경기도 군포시에 사는 주부 김명희(54세)씨도 “약통을 둘러멘 수동 분사기로 소독하는 장면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 본 적은 없다”고 말하며 “뉴스로만 접했지만 저런 모습을 보면 정부가 방역을 열심히 하고 있구나 싶다”고 했다. 방역 당국의 권고와는 동떨어진 소독 방식이 익숙한 이미지로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펌프로 실내 방역을 하고 있는 모습.
펌프로 실내 방역을 하고 있는 모습.

◈고위험시설 관리자도 정확한 소독 방법 알지 못해

일반 시민들은 ‘코로나19 방역에 관해 왜곡된 이미지’를 갖게 된 정도에 불과하지만 현장에서 방역까지 책임져야 하는 자영업자의 ‘방역소독 이미지 왜곡’은 더욱 심각하다. 특히 코로나19 고위험시설을 운영하는 자영업자의 왜곡된 이미지는 부실 방역 소독이라는 암담한 현실로 돌아온다. 

지난달 31일 방역 당국은 300인 이상의 학원, 노래연습장, 실내집단운동(GX)장 등 고위험시설 8종을 선정했다. 높은 밀집도와 밀폐도가 기준이 돼 감염병 예방을 위한 결정이었다. 

실내 소독을 하고 있는 피트니스 센터의 모습. 출처=제주시 보도자료
실내 소독을 하고 있는 피트니스 센터의 모습. 출처=제주시 보도자료

하지만 이런 조치를 비웃기라도 하듯 고위험시설 관리자 역시 왜곡된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4일 <뉴스톱>이 포털에 ‘크로스핏’으로 검색해 소개되는 체육관 10곳을 무작위로 전화해 확인한 결과, “소독약을 묻힌 걸레로 기구를 직접 소독한다”고 말한 곳은 절반에 불과했다. 나머지 5곳은 “자동연무소독기로 기구를 소독한다”, “환기를 주기적으로 하고 마스크를 착용하고 운동을 한다”고 했을 뿐이다. 질병관리본부가 권장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던 실내에서 소독약을 뿌리는 행위를 모든 체육관이 하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에 위치한 크로스핏 체육관 관계자는 이런 방역 소독 방식에 대해서 “유튜브를 통해서 뉴스와 다른 영상을 보고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해당 체육관 관계자는 소독약을 묻힌 천을 사용해 기구를 닦는 것이 아닌 자동연무소독기로만 꼼꼼하게 뿌린다고 했다. 언론이 '시각효과'에만 급급해 '뿌리는 방식'만 보여주다보니 시민들의 뇌리에도 '방역소독=소독약 뿌리기'라는 공식이 굳어진 것이다. 이는 방역 당국의 권고와는 동떨어진 비효율적이고 오히려 위험한 '소독약 뿌리기'가 코로나19 방역소독의 모든 것이 되는 악영향을 낳았다. 

<④ 일반 가정에선 어떻게?? 뿌리지 말고 닦자!!>로 이어집니다.

 

2020년 6월29일 11:14 기사수정> 독자 김진흥님의 제보에 따라 서울 마포구 사례를 재점검한 결과 일부 '소독약을 뿌리는 방법'으로 방역이 진행된 것이 확인됐습니다. 따라서 질병관리본부의 지침을 모두 준수한 지자체는 5곳→4곳으로 정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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