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운동 대상이 된 남성을 지켜주는 올바른 방법

  • 기자명 박상현
  • 기사승인 2020.07.11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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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이 글은 박원순 서울시장 사망으로 촉발된 5일장 조문 논란, 그리고 성폭행 혐의로 박 시장을 고발한 전 비서에 대한 공격 논란 등을 계기로 쓰여진 칼럼입니다. 지지하는 인사가 미투 운동의 대상이 되었을 때 필요한 태도에 관한 내용이다.

 

1.
당신이 지지하고 좋아하는 남성이 미투운동의 대상이 되었다. 한 여성이 나타나서 그 남성이 아무도 안보는 곳에서 자신에게 성폭력을 행사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거다.

물론 당신은 1) 그 자리에 없었고 2) 신이 아니기 때문에 그 여성의 주장의 사실 여부를 알지 못한다. 다만 당신은 고소를 당한 남성의 인간 됨됨이를 잘 아는데,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굳게 믿는다. 그런데 고소를 한 여성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한다.

당신은 당신이 신뢰하는 남성, 즉 피고소인을 보호하고 싶다. (미투운동의 피고소인의 편에 서는 건 잘못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의 편을 가질 권리가 있다. 변호인 제도가 그거다). 그럼, 당신이 제법 괜찮은 사람이라는 가정 하에, 미투운동에 의해 지목된 남성은 어떻게 지켜주고 보호해줄 수 있을까?

 

2.
우선, 하면 안되는 게 있다. 고소한 사람을 공격해서는 안된다.

당신은 그 여성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하는 여성 개인에 대한 공격은 인격을 살해(character assassination)하는 행위다. 남성중심사회는 역사적으로 피해자 여성을 공격할 때 항상 이걸 무기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당신은 피고인을 보호하고 싶은 것이지, 더러운 역사 속의 악인이 되고 싶은 게 아니다.

당신은 그 여성이 당했다는 그 일이 일어나는 장소에 없었다. 그러면 그 여성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주장해서는 안된다. 그건 변호사가 ‘증명'할 일이지, 당신이 '주장’할 일이 아니다.

 

3.
피고인을 보호할 때는 고소인의 말을 거짓이라고 말하는 대신 피고인이 그럴 사람이 아님을 믿는 이유를 설득력있게 전달하는 게 좋다. (설득력이 없을 것 같으면 아예 하지 말라).

제3의 기관에서 그 혐의를 조사한 (남성의 무죄를 보여주는) 결과가 있으면 그 결과를 “믿는다”고 이야기하되, 그런 경우에도 그 여성의 말을 “믿지 않는다”라고 표현해서는 안된다. 결국 그 얘기가 그 얘기 아니냐고 할 사람도 있지만, 그 둘은 분명히 다른 얘기다. 소송변호사들은 그 차이를 잘 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냐면, 역사 속에서 여성의 말은 항상 남성의 말보다 신빙성이 적은 것으로 취급되어 왔기 때문이다. 고소인의 말을 "믿지 않는다”고 당신이 굳이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그렇게 말할 경우 당신은 우리 사회가 고쳐야 할 불평등과 편견의 문제를 지속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4.
그리고 반드시 “고소를 하는 모든 여성의 증언은 중요하고 우리 모두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는 말을 해야 한다. 그게 그 여성의 말을 무시하지 않고 역사에서 옳은 편에 서면서, 동시에 당신이 신뢰하는 그 남성을 보호하는 방법이다.

당신은 제법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 당신은 미투운동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고, 여성들이 차별받고 소외받아온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은 그걸 모두 알고 인정하지만, 피고인 남성의 결백을 믿고 그를 지지하고 싶은 것 뿐이기 때문이다.

 

5.
위에 적은 건 지난 몇 년 동안 미국에서 일어난 세 가지 미투운동 사건을 보고 알게 된 내용을 바탕으로 한 거다.

성폭행 의혹을 받은 대법관 후보자 브렛 캐버너(왼쪽)와 피해자를 주장한 크리스틴 포드.
성폭행 의혹을 받은 대법관 후보자 브렛 캐버너(왼쪽)와 피해자를 주장한 크리스틴 포드.

1) 크리스틴 블라지 포드 Christine Blasey Ford vs. 브렛 캐버너 Brett Kavanaugh
크리스틴 포드는 미국의 대법원 대법관 후보자인 브렛 캐버너로부터 고등학생 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대학교수다. 2018년 미국을 둘로 갈라놓은 대결이었다. 수십 년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한 검증은 거의 추리영화를 뺨치는 수준으로 진행되었고, 포드 교수는 아주 침착하고 호소력있게 자신이 당한 일을 증언하며, 캐버너가 대법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캐버너를 대법관으로 만들려는 트럼프와 공화당 지지자들은 포드 교수의 됨됨이를 공격했고, 정치적 목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 혹은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으로 몰아갔다. 이런 공격에 맞서 미국의 미투운동은 더욱 뜨거워졌다.

 

리앤 트위든이 공개한 2006년 사진. 프랭큰 의원이 잠든 리앤의 가슴에 손을 얹고 웃으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미 LA 라디오 KABC 홈페이지
리앤 트위든이 공개한 2006년 사진. 프랭큰 의원이 잠든 리앤의 가슴에 손을 얹고 웃으면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출처: 미 LA 라디오 KABC 홈페이지

2) 리앤 트위든 Leeann Tweeden vs. 앨 프랭큰 Al Franken
코미디언 출신의 미네소타 주 연방상원의원인 앨 프랭큰은 화려한 말솜씨와 글솜씨로 민주당의 ‘입’ 노릇을 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2017년 미투운동이 한창일 때, 라디오쇼 호스트인 트위든이 과거에 프랭큰이 코미디쇼 리허설 중에 자신에게 강제로 키스를 했다는 증언을 했고, 뒤이어 몇몇 여성들이 프랭큰이 사진을 찍을 때 여성의 엉덩이에 손을 얹는 등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고 증언했다. 그러자 커스틴 질리브랜드 상원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이 사퇴를 요구했고, 프랭큰은 즉각 사퇴했다.

미투운동과 관련해서 가장 신속한 사퇴였고, 일각에서는 미투운동에서 가장 경미한 케이스였다고 했다. 프랭큰의 결벽증 때문이었다고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다. 하지만 여성들의 증언은 사실로 받아들여졌고, 프랭큰은 인정했다.

 

1990년대 성폭행을 당했다고 타라 리드(왼쪽)와 민주당 상원의원 조 바이든
1990년대 성폭행을 당했다고 타라 리드(왼쪽)와 민주당 상원의원 조 바이든

3) 타라 리드 Tara Reade vs. 조 바이든 Joe Biden
올해 들어 조 바이든이 민주당 후보로 사실상 결정된 후 1990년대에 바이든의 스탭으로 활동했던 타라 리드가 바이든이 자신을 성폭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주장은 처음 등장한 것도 아니고, 이를 취재한 기사도 있었다.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많은 언론들이 이를 취재했지만, 대부분 이 여성의 주장에 일관성이 없어도 너무 없고, 그녀의 말을 들은 주위 사람들을 취재한 결과 이 여성이 지어낸 말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취재를 중단했다. 게다가 이 여성의 변호사도 함께 일하던 중 변호를 포기할 만큼 소송이 성립되기 힘들만큼 어설픈 케이스였다.

그러자 2번 케이스에서 앨 프랭큰에게 사퇴를 요구한 여성인 커스틴 질리브랜드 상원의원이 나서서 조 바이든의 결백을 믿는다고 선언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조 바이든의 편이다. 그는 일생을 통해 여성의 권리를 지지해왔고, 이 혐의를 적극 부인해왔다. 나는 여성들의 주장은 반드시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사람들이 그 여성의 주장을 귀 기울여 들었고, 뉴욕타임즈가 철저하게 취재했고, 다른 매체도 취재했지만 (혐의가 드러나지 않았다).”

이 여성을 공격하지 않으려 애쓰는 게 보인다.

 

6.
위의 케이스들에서 한 남성은 미투운동으로 물러났고, 두 남성은 버티고 살아났다. 그런데 살아난 남성 중 한 사람은 여성들이 반대했고, 다른 한 사람은 손을 들어줬다.

미투운동의 목적이 사회적 고발과 매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건 우리나라 판사들 처럼 가해자의 처지에 동화되어 생각하는 습관의 결과이고, 사실은 그렇지 않다. 미투운동은 피해자 여성이 법에 호소할 때 항상 수반되던 불평등한 사회적 압력을 중화(neutralize)하기 위한 운동이다. 그 사회적 압력은 "꽃뱀" 같은 단어로 대표되는 피해자 공격과, 학교면 학교, 직장이면 직장에서 퇴출시키는 생계/커리어의 위협, 행실 운운하는 사회적 낙인 등으로 이루어져있다.

성폭력 피해자는 기울어진 법원에서 불리한 건 둘째치고 이 사회적 압력 때문에 법원에 조차 가지 못하기 때문에 미투운동이 생긴 거다. 피해자가 홀로 받아야 하는 압력을 여성들이 단결해서 함께 방어해줌으로써 적어도 사회적으로 평등한 운동장을 만드는 것이 미투운동의 목적이다.

 

7.
미투운동의 대상이 된 남성들은 (스스로 인정하고 포기하지 않는 한) 당연히 반론의 기회를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 반론의 기회는 고소한 여성이 강요받은 침묵으로 만들어져서는 안된다. 여성의 목소리는 들어야 하고, 무시하거나, 음모나 공작으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하면 여성을 공격하지 않고도 당신이 지지하는 사람의 편에 설 수 있다. 그럴 경우 여성도 동등한 법정싸움을 할 수 있다. 미투운동이 원하는 게 바로 그거다. 동등한 싸움을 할 기회.

*이 글은 필자 박상현이 본인의 페이스북에 쓴 글을 전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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